절대천왕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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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16화
116화
“함께 왔으니 일행이라면 일행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 중요한 건은 그것이 아니네. 일단 우리의 일 먼저 해결하고 보세.”
두강호는 한 번 더 좌소천 등을 바라보고는, 수하들을 시켜 그날 일과 관계된 자들을 찾아내도록 했다.
“가서 그날 싸웠다는 놈들을 데려와라. 빨리!”
그러고는 수하들 중 둘이 안으로 달려가자 일행을 객당으로 안내했다.
한편, 좌소천은 조용히 뒤를 따르며 광한방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구봉장에서 미리 광한방의 건물 배치도를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좌소천이 살피는 것은 건물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간부 급 무사들은 모두가 일류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었다. 대충 예상한다 해도 삼사백의 일류무사가 광한방에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그중 일류 상급에 다다른 무사들도 상당수가 될 터였다.
그간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신검장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전력이라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절정의 고수가 이삼십 명 된다고 했지?’
문제는 그들이었다.
절정의 경지라 해도 다 같은 경지가 아니다. 비무가 아닌 생사결(生死決)에선 약간의 차이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보대로라면 그들 중에서도 절정의 경지를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가 서너 명 정도 된다고 했다.
특히 전대 방주이며 구마(九魔) 중 한 사람인 광한마존 섭궁안은 이미 십 년 전에 절대의 초입에 들었고, 현 방주인 천혼신마 섭정산도 절대의 경지에 근접한 고수라 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구포방의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섭궁안과 섭정산을 자신이 맡으면 될 테니까.
그러나 피해 역시 적지 않게 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온 이유는 두 가지.
광한방의 뜻을 알아보는 것도 있지만, 정면 대결이 벌어졌을 경우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의 판단대로라면, 피해를 줄일 방법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절정고수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
물론 전격적인 공격 이전에 광한방을 손들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을 테지만, 아무리 봐도 쉽게 고개를 숙일 것 같지는 않았다.
‘피를 보자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두강호가 사람들을 객당에 남겨놓고 안으로 들어간 지 반 시진이 지났다.
지금쯤이면 어떤 소식이 전해져야 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장원영의 제자인 원진평이 답답한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부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적진에 들어와 있는 상황. 그러잖아도 신경이 쓰이던 터였다. 하지만 나가서 그를 찾기도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장원영이 굳은 표정으로 제자를 다독거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때 좌소천이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살짝 열린 창문 밖으로 저만치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굳은 표정들. 게다가 숫자가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굳은 표정이야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지만, 말을 나누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좌소천 곁으로 다가온 공손양이 담담히 말했다.
“범인을 순순히 내놓을 생각이 없나 봅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마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범인을 내주고 사과할 것인지, 아니면 힘으로 밀고 나갈 것인지.
“입 안에 들어왔으니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제압해 놓으면, 나중에 그만큼 싸워야 할 적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오.”
나직한 좌소천의 말에 장원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광한방이 본 파와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본 파의 제자들을 죽인 자 몇 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고 있던 좌소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들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라니?”
“범인이 누군지 알았는데,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장원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때 문득, 장원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제일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서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누구 하나 끼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서른에 가까운 자가 공손한 말투로 존대를 하지 않던가.
‘이상하군. 양 대협이나 소 대협의 제자가 아니면 수하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하지만 더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방문이 열리더니, 두강호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조금 늦었소이다.”
장원영은 좌소천에 대한 의문을 접고 두강호를 직시했다.
“표정을 보니 모든 것을 다 알아낸 것 같은데, 범인은 밝혀졌는가?”
두강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그건 지금 말씀드릴 수 없소이다.”
“말할 수 없다? 흥! 범인이 소방주라도 되나?”
좌소천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그냥 해본 말이었다.
형산과 정면 대결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굴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무심코 나온 게 방주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 말에 두강호가 지그시 이를 악문다.
풀숲에 돌을 던졌는데 잠자던 개구리가 맞은 꼴.
장원영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는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두강호를 몰아쳤다.
“내 말이 틀렸는가?”
두강호가 엉겁결에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소방주를 내놓겠나, 아니면 본 파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겠나?”
그에 대한 대답은 문 쪽에서 들려왔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장 형도 잘 아시잖소?”
대답과 함께 한 사람이 들어왔다. 오십대 초반의 청삼인이었다.
그를 본 장원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광한방의 서열 오위이자 방주인 섭정산의 셋째 아우이며, 광한방의 머리라는 유마(儒魔) 섭양산이 바로 그였다.
“소방주는 방주님께서 어렵게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외다. 그리고 이번 일은 소방주만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더구려. 그러니 우리로선 소방주를 내드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소.”
이러나저러나 소방주인 섭은수를 내줄 수 없다는 말이다.
“설마 본 파의 제자 다섯을 죽이고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거요?”
“어찌 모른 척할 수가 있겠소? 본 방에선 소방주를 제외하고, 그 일에 나섰던 네 명의 무사를 내놓겠소. 그리고 소방주를 내주지 않는 대신 황금 일천 냥을 보상비로 드리겠소.”
장원영이 눈을 치켜떴다.
“돈으로 본 파 제자들의 죽음을 무마하겠다는 것이오?”
“한 명의 무사가 아까운 판에 넷을 내주겠다고 했소. 그 정도면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한 것이오.”
말로는 최선을 다했다면서, ‘너희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능글능글한 섭양산의 태도에 장원영의 입에서 냉랭한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흥! 만약 본 파에서 끝까지 소방주를 원한다면?”
“그럼 할 수 없이 싸우는 수밖에.”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방 안을 짓눌렀다.
“본 방은 일처리를 할 때 후환을 남겨놓지 않소. 우리의 제안이 끝까지 거부된다면, 미안하지만 그대들은 본 방을 나갈 수 없소이다.”
섭양산이 장원영과 양화천을 거쳐 좌소천 일행을 둘러보더니,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밖의 상황으로 봐서는 이미 들어올 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때였다. 소광섭이 음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며 섭양산을 바라보았다.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일이 있는데, 대답해 주겠나? 그대라면 알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처음 보는 자가 아랫사람에게 묻듯 반말을 한다. 섭양산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짜증나는 투로 되물었다.
“뭘 말이오?”
“세운산장을 칠 때 그대도 갔나?”
“세운산장? 아! 통성의 그 장원?”
대답을 하던 섭양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광섭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이 왜 그걸……?”
“갔나 보군.”
소광섭이 절룩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두강호가 소광섭의 앞을 막았다.
“무슨 일인데…….”
찰나였다.
소광섭의 소매에 들어가 있던 손이 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두강호를 향했다. 어차피 저들의 생각을 안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퉁! 픽!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컥!”
한 발의 가느다란 화살이 두강호의 목을 뚫어버린 것이다.
두강호가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린 순간, 또다시 소광섭의 손에 들린 탈혼궁이 튕겨졌다.
퉁!
하지만 두강호가 비틀거리는 것을 본 섭양산은 이미 몸을 낮춘 채 뒤로 몸을 날린 후였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윽!”
섭양산이 가느다란 화살을 어깨에 꽂은 채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날아간다.
그 뒤를 따라 좌소천 일행이 방을 나섰다.
장원영도 멍하니 서 있는 제자들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밖에는 이미 수십 명의 무사가 객당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좌소천은 밖으로 나가자 재빨리 상황을 살펴보았다.
섭양산이 신음을 토하며 밖으로 날아가자, 객당을 둘러싸고 있던 무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적들 중 절정의 경지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는 서넛.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었다.
‘싸움이 격렬해지면 더 많은 고수들이 나오겠지.’
그때 도유관과 공손양과 능야산이 앞장서고, 그 뒤로 좌소천이 소광섭, 양화천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있는 자들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
“놈들을 쳐라!”
섭양산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둘러싸고 있던 자들 중 십여 명이 전면으로 나서며 태연히 걸음을 옮기는 도유관 등을 공격했다.
동시에 도유관의 두 손에 은빛도끼가 들리고, 공손양의 검도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선공은 능야산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능야산의 두 손이 허공을 털듯이 휘저은 순간, 두 줄기 번개가 달려드는 광한방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컥!”
“헉!”
일수일살(一手一殺)!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무사 둘이 꼬꾸라졌다.
뒤이어 도유관과 공손양이 공격을 시작했다.
쉬익!
벼락처럼 떨어진 은빛도끼가 상대의 검과 이마를 한꺼번에 가르고, 공손양의 검에서 뿜어진 붉은 기운이 두 명의 무사를 뒤덮었다.
츠츠츠츠!
“어헉!”
“조심……. 크억!?”
삼 초가 지나기도 전에 다섯의 무사가 쓰러졌다.
피범벅이 된 섭양산이 대경해서 뒤쪽에 서 있던 중년 무사들을 앞으로 나서게 했다.
“자네들이 나서야겠네!”
그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 일곱 명의 중년 무사가 앞으로 나섰다. 광한방의 최정예 무사들인 광한단의 삼십육 인 중 일곱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철립객들보다 한 수 위의 고수들.
개개인으로는 도유관이나 공손양, 능야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세 사람은 상대의 실력을 엿보기 위해서 전력을 쏟지 않는 상황. 그런 터에 두세 명이 합공을 하자 승부가 바로 나지 않고 길어졌다.
“안 되겠다. 우리도 나서자!”
그제야 장원영을 비롯한 형산의 제자들과 소광섭과 양화천이 싸움에 합류했다.
섭양산도 즉시 십여 명의 수하를 더 투입했다.
“모두 나가서 놈들을 죽여라!”
모두가 일류고수들이다. 하나 장원영이나 양화천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들도 그걸 알고 두셋이 장원영과 양화천을 합공했다.
그때 소광섭이 탈혼궁의 활시위를 당겼다.
섭양산이 뒤늦게 소광섭의 손에 들린 작은 활을 알아보고 다급히 외쳤다.
“서, 설마, 탈혼궁? 모두 저자의 손에 들린 궁을 조심해!”
투둥!
섭양산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소광섭의 손에서 탈혼궁이 튕겨졌다.
“헉!”
도신이 넓은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던 무사 하나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부릅떴다.
부릅뜬 두 눈 사이에 틀어박힌 화살 하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그는 보지도 않고 소광섭이 소리쳤다.
“섭정산을 나오라고 해라, 섭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