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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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8화
108화
도유관이 앞으로 나서서 장한에게 물었다.
“그 아이들,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도유관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적개심을 품은 눈빛이다.
장한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오로 가는 길이외다.”
“샀는가?”
“그, 그렇소이다. 효, 효창에서 돈을 주고 사온 아이들이외다.”
‘배고픔에 지쳐 자식들을 팔아넘기는 빌어먹을 세상…….’
도유관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장한을 노려보았다.
파는 사람도 나쁘지만, 사는 사람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어릴 적 자신의 여동생도 팔렸다. 닷새를 굶은 부모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겨우 일곱 살짜리인 여아를 판 것이다.
소녀들을 보자 당시 울면서 매달리던 여동생이 떠올라서 가슴이 저렸다.
“얼마 주고 샀나?”
“그, 그게…….”
도유관이 슬쩍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도유관의 생각을 눈치 챈 좌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도유관이 장한을 거쳐 세 소녀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몽롱하게 흐려진 눈빛이다.
거기다 찢어진 옷 사이로 언뜻 비치는 살결에 붉은 자국이 나 있다.
아마도 장한들의 수작질에 당한 듯하다.
도유관의 눈빛에 살기마저 감돌았다.
“손해 보지는 않게 주지. 넘겨라.”
“이, 이 아이들은 팔려고 산 것이 아니외다.”
장한이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팔려고 산 것이 아니라고?”
“그, 그렇소이다. 문주의 몸종으로 쓸 아이들이어서…….”
“상관없다. 그대들은 둘 중 하나만 택하면 돼. 그 아이들을 팔든지, 아니면 내 손에 죽든지.”
장한들의 표정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정말 죽일 것 같은 눈빛이다. 아니, 틀림없이 죽일 것 같았다.
그때 도유관이 다시 물었다.
“모두 얼마지?”
“배, 백오십 냥…….”
옆에 있던 털보장한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백오십 냥 주고 샀으니, 삼백 냥은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가서 다른 아이들이라도 사갈 수가 있으니…….”
도유관의 살기 띤 눈이 그를 향했다.
털보장한은 그제야 왜 옆의 동료가 그렇게 기죽은 듯 말을 했는지 알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이백 냥이라도…….”
좌소천이 품속에서 백 냥짜리 전표 두 장을 꺼내 장한에게 던졌다.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도유관이 손해 보지 않게 준다는 말을 했기에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전표를 받은 장한들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선다.
도유관이 소녀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따라와라.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때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던 단리연홍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저희 마차에 태우면 안 될까요?”
효창 검인보에 도착해서 소녀들을 단장시키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했던 대로 단장한 소녀들의 미색은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였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팔다니…….”
벽여령이 가련하다는 눈으로 소녀들을 보며 투덜댔다.
이미 말을 들어 아는 것이다. 소녀들이 왜 그런 모습으로 좌소천과 함께 왔는지.
좌소천은 가만히 소녀들을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을 판 걸 생각하면 한없이 밉지만, 그 돈이면 남은 식구들이 몇 년은 먹고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하긴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곧 구겨진 마음도 펴질 거예요.”
벽여령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녀의 복숭아 빛 뺨에 보조개가 깊게 파인다.
좌소천은 그 모습을 볼수록 소영령이 떠올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후우, 정녕 령 매를 찾을 수 없단 말인가?’
그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세 소녀가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세 소녀는 각기 다른 향기를 풍겼다.
비록 나이는 십칠팔 세 정도로 보이지만, 성숙한 몸을 지닌 그녀들이 일제히 인사를 하자 좌소천의 표정이 어색하게 변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지 네 노인이 킬킬거리며 놀려댔다.
“저거 봐라. 좌가 꼬마 얼굴이 빨개졌다.”
“클클클, 홍려운이라는 놈이나 비슷해졌는데?”
“이제 보니 소천이가 여자에게 약했나 보군요.”
좌소천은 노인들의 놀림이 계속되자 손을 저어서 소녀들을 일으켰다.
“이제 그만 일어서시오.”
소녀들이 일어서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좌소천이 끝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녀 중 백의를 입은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사옵니다. 허락만 하신다면 앞으로 공자님의 시비가 되어 모시겠습니다.”
“그건 안 되오. 정 갈 곳이 없으면 차라리 이곳에 머물도록 하시오.”
이번에는 벽여령이 나서서 좌소천을 구석으로 몰았다.
“황파에 시비들이 부족하다던데, 그냥 데려가세요. 정 뭐하면 다른 분을 모시게 하면 되잖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황파에는 이상할 정도로 시비들이 부족했다.
무사들이 별반 신경 쓰지 않아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곳 일대에 시비로 쓸 여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벽여령마저 그리 말하자 좌소천은 소녀들을 데려가기로 했다.
네 노인의 수발을 들게 하면 될 듯했다.
4
좌소천은 황파에 도착해서야 제천신궁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보고 받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 소문을 퍼뜨린 것은 자신이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잠시 미루어 둔 것을 누가, 어떻게 알고 퍼뜨렸을까? 분명 혁련무천이 철저히 입막음을 했을 텐데.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 좌소천은 소문에 대해서는 귀만 열어둔 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겉보기에는 고요한 가운데 도도히 흐르는 장강처럼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만월평의 이곳저곳에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사라졌다.
도유관과 능야산이 공손양의 지시를 받고서, 황파에 들어와 있던 밀천단의 비찰들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는 모두 열셋. 비찰의 제거는 사흘에 걸쳐서 암암리에 진행되었다.
좌소천은 일차로 밀천단의 비찰들이 제거되자 서부 지부를 순찰하기로 했다. 물론 순찰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떠나기 전날, 그는 총지부의 간부들과 함께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호북 세력의 단합을 위한 자리여서인지 그날따라 좌소천도 상당한 양의 술을 마셨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듯 술을 건넨 이유도 있지만, 옆에서 시중들던 백화가 잔을 비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팔려가다가 좌소천에게 구함을 받은 세 소녀가 백화의 방에 모였다.
사람들은 좌소천과 함께 온 소녀들에게 백화, 청화, 홍화라 이름 붙였다.
팔린 몸, 이름조차 잊고 싶다는 그녀들의 간청에 각자가 입었던 옷의 색깔을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그중 제일 언니인 백화가 좌소천의 시비가 되고, 청화는 등소패, 홍화는 위지승정의 시비가 되었다. 동천옹과 무영자에게는 단리 남매가 있었기에 따로 시비가 필요 없었다.
방에 모인 세 소녀는 빈 탁자 앞에 앉아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백화였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 내력을 제어하던 침이 예정했던 것보다 더 빨리 빠져나오려 하고 있어.”
청화가 아무런 빛도 없어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눈으로 백화를 바라보았다.
“저도 그래요, 언니. 사흘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침이 빠져나오면 내력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그러면 저들을 더 이상 속일 수 없어.”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 극한의 고통을 참고 침으로 내력을 완전히 금제했다.
그 덕에 목표는 자신들을 평범한 촌락의 소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조용히 있던 홍화가 음산한 눈을 번뜩였다. 평범한 소녀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눈빛이었다.
“내일 지부 순찰을 나가면 적어도 열흘은 걸릴 거예요. 기회는 오늘밖에 없어요, 일요 언니.”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어쨌든 최고의 상황은 아니지만, 마침 술을 많이 마셨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다. 일단 제력금혼침을 빼고, 회혼마단을 복용한 후 내력을 최대한도로 회복시켜라.”
“알았어요, 일요 언니.”
“예.”
“일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 상대는 초절정의 고수라는 점을 명심하고. 만약 저들이 눈치 챘다 싶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청화와 홍화의 두 눈에 진득한 살기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녀들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그녀들의 몸이 십칠팔 세의 소녀로 보이는 것은 육체 발달이 십 년 전에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러한 몸을 가지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자들은 자신들을 어린 소녀로 알고 죽어갔다.
때로는 강제로 안으려고 하다가, 때로는 그녀들이 스스로 안기는 것에 마음이 풀려서.
이번에도 그리될 것이었다, 분명히!
5
해시 초, 백화가 찻주전자를 들고 좌소천의 방으로 들어갔다.
직속무사 네 명이 좌소천의 방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흔들리는 백화의 엉덩이를 힐끔거리기만 했을 뿐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호위대 조장인 홍려운도 꽃이 피어난 것 같은 백화의 웃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찻주전자를 놓고 나오는 백화를 보고 홍려운이 빙그레 웃었다.
“힘들지?”
백화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뭘요. 이 정도는 제가 살던 곳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일도 아니에요.”
“험, 그래? 그래도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가서 쉬어라.”
“예, 나으리.”
막 돌아서려던 백화가 배시시 웃으며 홍려운에게 한마디 더 건넸다.
“저, 혹시 차가 빌지도 모르니, 인시쯤에 다시 찻주전자를 가져올 거예요. 새벽에 속풀이 하실 약간의 죽과 탕도 가져올 거구요. 어쩌면 청화와 홍화도 함께 올지 몰라요. 내일 입으실 옷도 미리 준비해올 거니까요. 혹시 호위하시는 분이 바뀌시면 말씀 좀 드려주세요.”
“그건 걱정 마라. 너희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쨌든 내가 말은 해놓으마.”
“감사합니다, 나으리.”
상냥하게 고개를 숙인 백화가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 그녀의 엉덩이가 평소에 비해서 유난히 좌우로 흔들렸다.
호위무사들은 차마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눈알만 돌려서 힐끔거렸다.
“눈들을 어디다 두나?”
홍려운이 그런 호위무사들을 향해 나직이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인시 무렵.
백화는 청화와 홍화를 대동하고서 좌소천의 방으로 향했다.
백화의 손에는 찻주전자가, 청화의 손에는 죽 그릇과 탕 그릇이 얹어진 쟁반이, 홍화의 손에는 따뜻한 물수건과 깨끗한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호위조장인 이자광이 싱글거리며 세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홍려운에게 말을 들은 터라 그녀들이 왜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냄새가 구수한데? 남은 것 있으면 우리도 좀 주면 안 되겠냐?”
청화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끓여놓았어요. 나중에 가져다 드릴게요, 멋지신 나으리.”
“그래?”
이자광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갯짓을 했다.
“들어가 봐라.”
그러고는 호위무사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자신 덕분에 간식을 먹게 되었으니 고마워하라는 눈빛으로,
그사이 세 소녀, 삼요(三妖)가 좌소천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간 백화가 탁자 위의 찻주전자를 살펴보았다.
찻주전자는 삼 할 정도가 비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마셨군.’
차에다 무미무취(無味無臭)의 강렬한 미약인 초혼단의 가루를 탔다.
이 정도 마셨다면, 좌소천이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해도 지금쯤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었다.
백화는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청화와 홍화에게 눈짓을 보냈다.
청화와 홍화가 쟁반을 내려놓고 공력을 끌어올려서 소리를 차단했다.
그 사이 백화가 요기 서린 눈빛을 빛내며 옷고름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