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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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5화
105화
‘내 아이들이 저 꼬마를 두려워하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 저 꼬마에게 내 아이들을 두렵게 할 천고의 법보(法寶)라도 있단 말인가?’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라면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귀령(鬼靈)들이 아니던가.
반면에 좌소천도 기이한 느낌에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뭔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다. 염불곡의 시선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이.
‘뭐지? 정말 귀신이란 말인가?’
오죽하면 그런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로 그때, 염불곡이 입을 오므리고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동시였다.
좌소천은 자신을 향해 뭔가가 밀려옴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금라천황공을 끌어올렸다.
찰나! 좌소천의 몸에서 은은히 묵빛 섞인 금광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좌소천의 온몸을 뒤덮을 듯 달려들던 뭔가가 확 밀려갔다.
대기가 출렁였다.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끼아아아아!’
하지만 방 안에서 울린 것은 뭔가의 비명이 아닌 염불곡의 신음이었다.
“크으으…….”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쥔 염불곡이 떨리는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불신과 경악이 가득한 눈빛!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고의 법보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한데 법보가 아니다.
절대상극의 기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법보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법보는 몸에서 떨어지면 그만이지만, 기운은 죽기 전까지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다시 말해, 좌소천은 자신을 죽일 수 있지만, 자신은 좌소천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염불곡은 허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육십 년 적공을 아무런 쓸모도 없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니 어찌 허탈하지 않을까.
‘사부께서는 본 문의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절대의 기운이 있다고 했지. 전설로만 전해지는 기운이기에 천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반신반의했거늘, 정말로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사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러한 기운을 지닌 자를 거부하지 말라고.
‘제기랄!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이게 무슨 꼴이람?’
갈등도 잠시였다.
그가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부탁인지, 일단 들어보세.”
좌소천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정신을 제압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하나 알고자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염불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것도 아닌 부탁이군.”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침상 뒤쪽에서 작은 함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몇 개의 둥근 고리를 꺼냈다.
“굳이 사법(邪法)을 사용할 필요도 없네. 이 아이들이면 될 테니까. 사용법은…….”
원로원을 나서는 좌소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니…….’
그가 염불곡을 생각하며 천화원의 담장을 따라 걷는데 누군가가 천화원에서 나오며 불렀다.
“소천이 아니냐?”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 혁련호정이다.
천천히 몸을 돌린 좌소천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요즘 네 이야기로 제천신궁이 떠들썩하더구나. 하하하, 이거 이러다 내가 밀려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화통한 웃음의 저편에 무거운 눈빛이 자리하고 있다.
혁련호승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혁련무천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닌 사람이 혁련호정이다.
그런 무위를 지니고도 남 앞에 드러내지 않아서 제천대공자라는 별호 대신 잠룡공자라 불리기까지 하는 자.
“별말씀을. 태백산에 가셨다고 하시던데, 언제 오셨습니까?”
혁련호정의 눈빛이 기묘하게 빛났다.
“누가 그러더냐?”
“군사께서 언뜻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공 단주가? 그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저에게 천외천가와의 일에 본 궁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말씀하시던 와중에…….”
거짓이 아니다. 확인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어느 정도는 확인하기를 바라고 한 말이기도 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개인적인 일에 본 궁을 끌어들이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흠, 잘 생각했다. 남자란 공과 사를 명백히 가려 움직여야 한다.”
“한데…… 미려 누님의 혼사 날짜는 결정되었습니까?”
어정쩡한 물음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말하지 않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 쉬웠다.
혁련호정도 좌소천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아마 다음 달쯤이면 서로 간에 인사가 오갈 거다.”
“미려 누님이 직접 태백산으로 가시는 겁니까?”
“아니다. 일단 그쪽에서 먼저 올 것이야.”
“예…….”
혁련호정이 나직이 답하는 좌소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한다만,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황파에 가면 당분간 올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충분한 대답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더 이상 말하기도 어정쩡했는지 혁련호정도 그 일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겠다. 다음에 보자.”
“예, 형님.”
혁련호정은 자신감에 찬 몸짓으로 돌아섰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좌소천이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요.’
4
그날 밤, 사공은환이 사람을 보내 좌소천을 청했다. 조용히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좌소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도유관과 능야산을 대동한 채 밀천단의 수하를 따라나섰다.
밀천단은 예전의 군사부 옆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지금은 밀천단이 양쪽을 다 사용하고 있었다.
좌소천은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군사부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군사부의 건물은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뿐.
좌소천은 무심한 눈으로 군사부의 건물을 바라본 후 밀천단주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좌소천이 도유관과 능야산을 대동한 채 입구로 다가가자 싸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앞에 서 있던 위사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군사의 명입니다. 좌 단주님만 들어가십시오.”
좌소천은 두 사람을 입구에 남겨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유관과 능야산이 입구에서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주위에서 은근히 뿜어지던 싸늘한 기운들도 잠잠해졌다.
‘열 명. 사공은환, 너도 네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아나 보구나. 내궁에 있으면서도 호위를 열 명이나 세우다니.’
안으로 들어가자 저만치 앉아 있는 사공은환이 보였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좌소천은 그를 직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이 장으로 줄어들고 나서야 사공은환이 눈을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좌소천이 자리에 앉으며 태연한 말투로 물었다.
사공은환은 뭔가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집어넣고, 숨을 한번 크게 쉬더니 음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내 처지를 곤란하게 하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대공자께서 태백산에 간 것을 내가 말했다고, 좌 단주가 그랬다 하던데?”
“대공자께서 묻는데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태연한 말투에 사공은환의 눈썹이 치켜졌다.
“내가 언제 대공자께서 태백산에 가셨다고 했단 말인가?”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 생각했지요.”
“자네 정말……!”
사공은환의 얼굴이 벌게지며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의 성품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좌소천의 나직한 목소리가 사공은환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건 그렇고…… 귀영천살에 대해서 혹시 아십니까?”
당장이라도 삿대질을 할 것 같던 사공은환의 몸이 굳어졌다.
“무, 무슨 말인가?”
“귀영천살이 본 궁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본 궁에서 그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정해져 있는데, 밀천단도 그러한 곳 중 하나여서 물어본 겁니다.”
슬며시 고개를 돌린 사공은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잘 모르겠군.”
“그래요?”
좌소천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지나가듯이 물었다.
“아, 그리고 혹시 공령초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십니까?”
좌소천이 말을 돌리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공은환이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군. 워낙 귀한 전설의 약초여서…….”
“그런가요?”
더 물을 것도 없었다. 그 말만으로도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은 알았으니까.
사공은환이 공령초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무척 귀한 약초라는 사실까지.
어쩌면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알지 몰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확인하면 되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버지의 몸을 공령초의 열매가 아니면 고칠 수 없게 망가뜨릴 생각을 한 사람이 누군지.
‘사공은환, 그게 너였더냐?’
좌소천은 그런 마음이 들수록 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궁주라면 아시지 않을까요?”
평소의 사공은환이라면 좌소천의 질문을 한 번쯤 의심해 봤을 것이다.
아무리 십 년 전의 일이라 해도 기억해 내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평정심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귀영천살의 이름마저 나오자, 그는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는 데만 신경 쓰느라 별다른 이상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마 궁주께서도 모르실 거네.”
“으음, 그것참.”
궁주는 모를 것이다?
확신에 찬 말투.
그걸로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좌소천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우간 대공자의 일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더 볼일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지요.”
“음?”
불러서 한바탕 야단치려 했거늘, 오히려 좌소천의 말투에 끌려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붙잡을 수도 없는 일.
멈칫한 사공은환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알겠네. 가서 쉬게나.”
돌아선 좌소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다, 사공은환. 기대하고 있어라.’
5
한중 양가장의 대전각인 웅풍전.
한여름인데도 대전 안은 사흘 밤낮으로 한풍이 밀어닥친 한겨울처럼 싸늘했다.
이십여 명의 간부를 바라보는 순우무종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서리가 내릴 듯했다.
“그 계집들의 위치는 파악되었소?”
“자양을 떠난 후 대파산중으로 들어간 듯 보입니다, 대공자.”
대파산(大巴山)이라면 한중과 사천과 호북의 경계를 짓는 험난하기 그지없는 대산이다.
그녀들이 그곳으로 들어갔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빌어먹을!”
순우무종의 입에서 짜증 섞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중요한 시기에 사백의 무사를 잃었다. 그중에는 천외천가의 주력 중 하나인 만사령의 부령주와 그의 수하 서른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흔들릴 천외천가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일로 인해서 천외천가의 위상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는 것이었다.
곧 태백산의 본가에서 가주의 전언이 올 터. 좋지 않은 내용일 게 분명했다.
“찾으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시오!”
순우무종이 신녀를 향해 이를 갈며 수하들을 독촉하고 있을 즈음, 태백산 천선곡에서는 순우연이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 그토록 신중히 상대하라 했거늘, 쯔쯔쯔…….”
“다른 피해야 별것이 아닙니다만, 호릉하를 잃은 것이 너무 크군요.”
순우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 문사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유각주 순우기정, 바로 그였다.
순우연도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옅은 탄식을 토해냈다.
“하아, 아까운 사람을 잃었어. 설마 신녀가 고금십대무공 중 하나라는 한천빙백소수공을 익혔을 줄이야…….”
무당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 정한궁의 무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할지 모른다 생각하기는 했다.
더구나 무당의 전대 장로들이 합공을 하고서야 신녀를 막아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호릉하가 수하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던져야 할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한중에 가 있는 사람 중에는 신녀를 막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네 생각을 말해봐라, 기정.”
순우기정이 형형한 눈빛으로 순우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 일을 천해에게 넘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