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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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4화
104화
2
좌소천이 등소패의 거처에서 기다리는데 동천옹과 위지승정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웬일인지 무영자는 오지 않았다.
“떠나려고 그러느냐?”
동천옹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좌소천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사흘 정도 볼일을 보고 떠날 생각입니다.”
담담히 대답한 좌소천의 눈이 단리운강을 향했다.
“잘 지냈느냐?”
“예, 좌 공자님.”
전과 달리 평온해진 표정, 훨씬 맑아진 눈빛이다.
뒤에서 고개를 삐죽 내민 단리연홍의 얼굴에도 발그레하니 꽃이 피어 있다.
이제 물어봐도 될 듯했다.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단리운강이 고개를 들고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좌소천은 단리운강의 눈을 빤히 바라본 채 본론을 꺼냈다.
“혹시 고향이 청봉이 아니더냐?”
단리운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무당산 근처에서 왔다 하지 않았더냐? 성이 단리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더니 청봉에서 일어난 일이 떠오르더구나.”
입술을 살짝 깨문 단리운강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와 여동생은 청봉의 장원에서 살겁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좌소천이 그간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해 물었다.
“정한궁의 여인들에게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만, 정말 그녀들이 너희 집안을 해하였더냐?”
그때 단리운강이 뜻밖의 말을 했다.
“그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집안은 정한궁에 당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공자님. 비록 밤인데다가 복면을 해서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놈들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침입한 놈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했다. 그렇다면 정한궁의 짓이 아니라는 말이다.
왠지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찜찜한 느낌이 구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누가, 왜 무당의 코밑에서 무당의 속가제자 가문을 멸했을까?’
어쨌든 그것은 나중에 무당에 알아보라 하면 될 일.
좌소천이 입을 닫고 생각에 잠기자 동천옹이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
“중요하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범인을 잘못 알고 있는 이상 진짜 범인은 세상에 버젓이 활개치고 다닐 것이 아닙니까? 이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뭔가 좀 찜찜한 면이 있어서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하긴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꼭 잡아야지. 그런 놈들은 그냥 모가지를……!”
동천옹은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단리운강을 바라다보았다.
“험, 그리고 말이다. 이 아이에게 내 무공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단리운강의 자질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구나 성격도 그렇고, 모든 것이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좌소천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터라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야 운강이의 복이지요. 뭐 하느냐? 어르신께서 말씀을 번복하시기 전에 빨리 인사를 올려라.”
3
한 시진 만에 등소패의 거처를 나온 좌소천은 무영자를 찾아갔다.
무영자가 단리연홍과 함께 오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보름에 한 번씩 하루 종일 암흑 지하에서 암천흑살기를 운기해야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이다.
언제 들어갔느냐는 물음에 동천옹이 대충 시간을 추정해 보더니 말했다.
“그 늙은이, 어제 이맘때쯤 들어갔으니 지금쯤은 나왔을 걸?”
아니나 다를까, 무영자의 거처인 원로원 맨 뒤쪽의 음침한 건물로 다가가자 무영자가 문을 열고 나선다.
“어? 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어디 가시려는 길입니까?”
“아니다. 연홍이가 보이지 않아서 애늙은이에게 갔나 싶어서 데리러 가려던 참이다.”
“아마 지금쯤은 동천옹 어르신 거처에 있을 것입니다만,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킁, 그놈의 늙은이. 운강이면 되었지, 혹시 연홍이까지 탐내는 거 아냐?”
그게 불안해서 당장 쫓아가려고 했던가보다.
좌소천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고개를 저었다.
“운강이에게 무공을 가르치시겠다고 하시면서도, 연홍이는 무영자 어르신 때문인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리연홍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무영자는 그런 단리연홍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번도 단리운강에 대해서 욕심을 내지 않았다.
언뜻 보면 거꾸로 된 선택이었지만,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두 아이를 사이좋게 나누어서 시종으로 삼았다.
“그래?”
무영자가 미적거리더니, 그제야 좌소천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웬일이냐?”
“어르신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나에게?”
무영자는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며 고개를 꼬았다.
이 괴물 같은 놈이 자신에게 무슨 부탁이 있다는 거지?
그런 표정.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들어가자.”
무영자의 방은 좌소천이 봐도 정말 괴이했다.
사방이 온통 검은 방 안.
검지 않은 것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뿐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만큼 음침한 분위기. 이곳에서 기거하는 단리연홍이 걱정될 정도다.
그런데도 무영자는 그런 자신의 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멋지지?”
“좀… 그렇군요.”
좌소천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는 방 한가운데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무영자가 의자에 앉으며 손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앉아라.”
당연히 탁자와 의자도 검었다.
그래선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무영자가 더욱 흐릿하니 보였다.
“애늙은이는 이런 고상한 취미를 이해 못하고 헛소리만 지껄이지. 우리 연홍이는 좋아하는데 말이야.”
솔직히 좌소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리연홍이 좋아한다는 것도 진심으로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표정이 밝아진 것으로 봐서는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그때 무영자가 물었다.
“어디 말해봐라. 무슨 부탁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그제야 좌소천이 입을 열었다.
“혹시 사람의 정신을 제압하는 방법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질문이 의외인 듯 무영자의 흐릿하던 눈빛이 반짝였다.
“왜 그런 것을 묻는 것이냐?”
“한 가지 꼭 알아볼 것이 있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 자가 도통 알려주려 하지 않아서 편법이나마 써보려고 합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니 아시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실 수 있는지 해서 찾아왔습니다.”
“흠, 그러니까, 천하를 꿀꺽하려는 좌소천이 나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
장난기 가득한 무영자의 말에 좌소천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 어르신.”
그런데 무영자의 말이 또 의외였다.
“뭐,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그런 거라면 나보다 더 정통한 놈이 하나 있다. 어떠냐? 내 소개시켜 주랴?”
자존심이라면 태산조차 아래로 내려다보는 무영자다. 그런 무영자가 서슴없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의외였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먼저 만나보고 싶었다.
“원로원에 계신 분입니까?”
“바로 옆이지. 멀지 않아.”
“믿을 수 없는 분이면 부탁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분이 승낙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킬킬킬, 왜? 들어주지 않으면 입을 막기라도 할 생각이냐?”
“비밀을 요하는 일입니다. 믿을 수 없으면 아예 만나지 않음만 못하지요.”
“걱정 마라. 내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할 거다. 좀 괴팍하긴 해도 사람은 믿을 수 있는 놈이지. 킬킬킬.”
킬킬거리며 일어선 무영자가 헐렁한 소매를 들어 손가락질을 했다.
“따라와라.”
무영자가 좌소천을 데려간 곳은 무영자의 거처에서 멀지 않았다. 딱 두 건물만 지나면 되었으니까.
좌소천이 보기에는 그곳 역시 무영자의 거처나 별반 차이가 없이 괴이했다.
기괴한 글자가 쓰인 수십 개의 깃발이 건물의 사면에 빙 둘러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 깃발은 아무리 봐도 어떤 기고한 기문진을 펼치기 위해서 꽂힌 것이 아닌 듯했다.
게다가 사방이 벽처럼 보여서 어디가 문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꽂힌 것, 귀신 쫓는 부적이라고 하더라. 남이야 믿거나 말거나.”
그랬다. 깃발은 무영자의 말대로 그저 부적일 뿐이었다.
“왜 왔수?”
무영자의 말에 안에서 짜증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데려왔다. 문 열어라, 이놈아.”
드르륵!
좌소천이 건물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바닥이 쩍 벌어지더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입구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들어가자.”
만일 무영자가 앞장서지 않았다면 좌소천은 한참을 더 망설였을지 몰랐다.
계단은 모두 열두 개였다. 계단마다 깃발에 쓰인 것과 같은 글자들이 빼곡이 새겨져 있었다.
귀신과 극한대립을 하는 사람, 아니면 귀신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
좌소천이 생각하기에는 이곳에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인 듯했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귀마종(鬼魔宗) 염불곡?’
그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고수는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건드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없었다. 죽을 때에도 편안한 표정으로 죽지 못했다.
소문으로는 귀신이 그의 상대를 괴롭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러나 한 사람, 두 사람…….
십여 년이 지나고, 그의 손에 백여 명이 죽어갔을 즈음,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죽은 백여 명의 시신이 한결같이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혼자 다녔고, 나이 오십이 넘도록 혼자 살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 대한 소문이 뚝 끊겼다. 그게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소식이 끊겼던 귀마종 염불곡이 제천신궁의 원로원에 있었을 줄이야.
다시 계단을 올라가자 곧바로 그의 방이 나왔다.
좌소천은 그의 방에 들어선 순간, 무영자의 방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무영자의 방이 온통 검었다면, 염불곡의 방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오색의 깃발이 난무했다.
“그놈은 누구요?”
까칠한 목소리가 수백 개의 깃발 한가운데, 붉은 포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왔다.
“패천단의 단주다. 여차하면 네놈 목쯤은 우습지 않게 딸 수 있는 아이지.”
무영자의 말에 염불곡의 시선이 좌소천을 직시했다.
좌소천도 무심한 눈으로 염불곡을 바라보았다.
“좌소천이라 합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염불곡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염불곡은 곧 일그러진 표정을 펴고서 무영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수?”
“이 아이가 볼일이 있다고 해서 왔다. 나야 안내만 한 것이지.”
“큭, 천하의 무영자 선배가 새카만 꼬마의 안내를 자처하다니. 하늘이 웃을 일이구려.”
“글쎄, 웃지 않을 걸? 그만한 자격이 있는 아이니까.”
일순간 염불곡이 경악하며 무영자를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의문인 표정이었다.
그러든 말든, 무영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까지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탁이 있다고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들어줘라. 아니면 뒤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나도 책임질 수 없으니까.”
염불곡의 주름진 얼굴이 꿈틀거리더니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저에게 패천단주라는 지위는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실 텐데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내 목을 딸 수 있는 칼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염불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영자의 목을 딸 수 있는 칼이라니!
그때 좌소천이 무심한 눈으로 염불곡을 바라보았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부탁을 들어주실 수 없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겠습니다.”
염불곡은 다시 좌소천의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표정이 무엇 때문인지 조금 전처럼 괴이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