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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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98화
98화
두 개의 건물을 지나는 사이 몇 사람이 좌소천의 앞을 막았다.
“웬 놈이냐?”
그러나 좌소천은 대답 대신 그들의 복부와 가슴에 일권을 선사하고는 태연히 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두 채의 건물을 돌아갔을 때다. 수십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가 반쯤 얼굴을 가린 중년인. 수십 명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면을 바라본 채 눈을 빛내는 그는 소광섭, 바로 그였다.
일단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간 좌소천은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몰려든 무사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신검장의 무사들이 전부 몰려들 것 같은 상황.
그런데 기이한 것은, 소광섭을 둘러싼 자들이 삼 장의 거리를 둔 채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소천의 눈이 소광섭의 손으로 향했다.
소광섭은 손에 길이가 두 자밖에 되지 않는 작은 활을 들고 있었다.
은은히 푸른빛이 도는 활의 몸체는 그리 두껍지도, 크지도 않았다. 활의 아귀에서 오금 사이에 파여 있는 몇 개의 톱날 같은 깊은 골이 조금 남다르게 보일 뿐.
웅크린 호랑이처럼 당겨진 시위에 걸쳐진 화살은 기껏 해봐야 한 푼 정도의 굵기.
그런데 모두가 소광섭의 손에 들린 활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주위에 쓰러져 있는 십여 명이 모두 가슴이나 목, 또는 이마에 가느다란 화살이 꽂혀 있는 걸 보니 그 활에 당한 듯했다.
화살 한 발에 목숨 하나.
‘궁술도 그렇지만 저 활도 기물이군.’
활 전체에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 시위를 힘으로 당긴 것이 아니라 내력으로 당겼다는 뜻이다.
시위를 내력으로 당겨야 할 만큼 탄력이 강하다는 말. 그렇다면 위력 역시 일반적인 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었다.
“모두 저 활에 당한 것 같군요.”
옆에 내려선 도유관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 소광섭이 광기마저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나 있는 상처쯤은 아랑곳없다는 태도였다.
“흐흐흐. 설위진, 설마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설위진. 장주인 설학진의 아우이며 신검장의 총관인 자.
그는 소광섭을 노려보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소광섭의 손에 들린 활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앞에 쓰러져 절명한 수하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소광섭의 손에 들린 활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기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고, 소광섭의 활이 자신을 향한 순간 재빨리 몸을 날려서 심장이 뚫리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깨가 뚫리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불로 지진 것 같은 통증!
신검장의 총관인 자신이 일개 광인의 손에 당하다니!
분노가 치민 그는 소광섭을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당장은 소광섭의 손에 들린 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었다.
“활을 내려라! 복수를 하려면 광한방으로 갈 것이지, 왜 본 장에 와서 설친단 말이냐?”
“물론 광한방의 섭정산도 죽일 놈이지. 세운산장의 사람들이 거의 다 그놈의 수하들에게 죽었으니까. 그러나 그전에, 한낱 보물에 눈이 어두워서 친구를 해친 네놈을 먼저 죽일 것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소광섭!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까짓 물건 하나 때문에 세운산장을 친단 말이냐?”
“후후후, 다른 사람을 몰라도 나는 네놈의 버릇을 알지. 복면을 썼다고 못 알아본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설위진. 봐라! 이것이 바로 네놈이 그렇게 욕심내던 것이니까!”
설위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광섭의 말대로 그에게는 사십여 년간 고치지 못한 버릇이 있다.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코를 비트는 것이다. 아마 그때도 복면을 의식하지 못한 채 코를 비튼 것 같다.
‘죽일 놈. 네놈이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그때다. 소광섭이 활을 들어 올렸다.
설위진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탈혼궁(奪魂弓)!
저 작은 활이 고금팔대신기 중 하나인 탈혼궁이다.
잘하면 놈이 지닌 보물이 자신에게 굴러들어 올지도 모르는 일. 그는 탐욕에 가득 찬 눈으로 소광섭을 노려보았다.
때마침 수하 둘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
“총관, 저자는 저희에게 맡기고 물러서시지요.”
설위진은 슬쩍 옆으로 한 걸음을 옮겨서 소광섭의 활이 노리는 동선을 벗어났다. 동시에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느냐? 허튼소리나 하는 저놈을 죽여라!”
찰나였다.
퉁! 쉬익!
짧은 파공성이 일더니 앞을 가로막았던 두 무사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대경한 설위진은 어깨의 통증을 무시한 채 급히 일 장가량 더 뒤로 물러났다.
“모두 놈을 쳐라!”
이를 악문 무사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순간, 빙글 몸을 돌린 소광섭이 번개처럼 활을 튕겼다.
어느새 시위에 걸었는지 네 개의 화살이 한꺼번에 튕겨진다.
투두두둥!
한 바퀴 도는 사이 세 번에 걸쳐 탈혼궁이 튕겨지고, 칠팔 명의 무사가 벼락에 맞은 것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헉!”
“끄윽!”
가공할 속사! 소름 끼치는 위력이다.
달려들려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찰나간, 한 바퀴 휘돈 소광섭이 전면을 향해 활을 튕겼다.
투두둥!
줄지어 날아간 세 발의 화살이 세 사람의 가슴과 목에 꽂힌다.
“허엇!”
설위진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화살에 세 명의 무사가 무너지자, 앞이 훤히 뚫린 것이다.
“이, 이런!”
경악한 그는 급히 땅을 박찼다.
그때였다.
쉬익!
짧은 소음이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설위진의 가슴으로 사라졌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허억!”
설위진은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가슴을 내려다봤다.
한 푼 두께나 될 것 같은 화살이 깃만 남긴 채 가슴에 박혀 있었다.
화살의 깃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선혈이 유난히 붉다.
심장이 그대로 뚫린 듯 전신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다.
“너… 네놈이…….”
“우흐흐흐. 어떠냐, 설위진. 네놈이 그렇게 욕심냈던 활에 죽는 기분이.”
하지만 설위진은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화살을 타고 시뻘건 선혈이 앞으로 뿜어진다.
스르르 무너지는 설위진의 입이 몇 번 달싹거리다 멎었다.
쿵!
소광섭은 설위진이 쓰러지는 걸 바라보며 눈을 번들거렸다.
“후후후, 죽고 싶은 놈은 언제든 덤벼라. 아직 화살은 백 개도 넘게 남았으니까.”
화살이 가느다란 만큼 그가 소지할 수 있는 양도 많았다.
그가 가져온 백오십 개의 화살 중 아직 백여 개가 등과 허리에 꽂혀 있었다.
허언이 아닌 것이다.
한편, 좌소천은 소광섭의 손에 들린 작은 활의 위력과 궁술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벼락이 튀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 힘껏 당기는 것 같지 않은데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름이다.
가공할 탄력!
어디 그뿐인가?
활이 작은 만큼 쏘는 동작도 작았다. 다음 화살을 쏘는 것이 그만큼 빠를 수밖에.
또한 화살이 가늘어서 한 번에 몇 개씩 절피(시위의 화살 꽂는 곳)에 걸 수가 있었다.
좌소천은 그제야 활의 몸체에 톱날 같은 골이 파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몇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걸면 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법, 아마도 화살이 제멋대로 날아가지 않게끔 그리 만든 듯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활이라도 그걸 소유한 자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번개와 같은 속사(速射)와 연사(連射).
지난 칠 년간 소광섭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련을 하며 궁술을 익혔을지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둘러싼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소광섭의 몸에 난 상처가 그의 움직임을 제어할 터.
좌소천은 급히 소광섭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 대협, 지붕으로 몸을 피하시오.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광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던 소광섭이 움찔했다.
<시간이 없소. 소영령을 아신다면 내 말에 따라주시오.>
소광섭은 소영령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더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소광섭! 네놈이 감히 내 아우를 죽이다니! 모두 뭐 하느냐! 놈을 잡아라!”
둘러싼 무사들 뒤쪽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검장의 장주인 설학진의 목소리다.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자 마침내 그가 나온 것이다.
이판사판.
투두두두둥!
소광섭은 전면과 후면을 향해 열 발의 활을 더 쏘고는 땅을 박찼다.
“놈이 도망친다! 쫓아라!”
황급히 몸을 피하던 자들이 소광섭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콰과광!
굉음이 일며 소광섭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린 자들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웬 놈이냐?!”
“지붕에 놈과 한패가 있다! 그놈들도 잡아라!”
여기저기서 외침이 터지는가 싶더니 신검장의 무사들 중 수십 명이 지붕으로 올라왔다.
좌소천은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고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느 분이 신검장주요?”
“웬 놈인데 감히 나를 찾는 것이냐?”
무사들이 쫙 갈라지며 백의 비단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명의 중년 무사에게 둘러싸인 자, 그가 바로 신검장의 장주인 신검대협 설학진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내려와서 말하라!”
이미 소광섭은 지붕을 타고 뒤쪽으로 사라진 상태. 좌소천은 망설이지 않고 지붕에서 내려갔다.
도유관과 능야산이 그림자처럼 따라서 움직였다.
그들이 땅에 내려서자 신검장의 무사들이 에워쌌다.
“네놈들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본 장에 침입한 것이더냐? 소광섭이라는 놈과 한패더냐?”
“내가 그와 한패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가려도 되오. 지금 중요한 일은 그것이 아니니까.”
“내 아우가 죽었거늘, 중요하지 않다고? 흥! 그럼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신검장의 존폐. 귀하는 그걸 걱정해야 하오.”
“건방진 놈! 네깟 놈이 감히 본 장의 존폐를 논하다니!”
바로 그때, 사방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곧이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들을 막아!”
“으악!”
“크억!”
차창! 챙!
격전음이 점점 가까워진다. 적을 막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빠른 속도.
“뭐 하느냐? 가서 막아!”
누군가가 호통을 쳤다.
그러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무사들 중 반 이상이 몸을 돌려서 비명이 터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난데없는 상황. 설학진이 굳어진 얼굴로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감히……!”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검장의 무사들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소. 대항하면 신검장 무사들의 피로 장강이 붉게 물들 것이오.”
그때 설학진의 옆에 서 있던 삼십대의 무사 중 세 명이 좌소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도유관과 능야산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휘둘렀다.
쩡! 퍽!
쉭!
검을 튕겨낸 도끼가 이마를 가르고, 일곱 치 비수가 목에 작은 구멍을 내고서 능야산의 손으로 돌아왔다.
눈 깜짝할 틈도 없이 무사 셋이 무너져 내린다.
너무나 어이없는 세 사람의 죽음에 설학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좌소천은 그런 설학진을 직시한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피가 흐를 터. 나와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아니면 싸울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흥! 너희 몇이서 이곳에 있는 우리를 모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네놈이 먼저 죽을 것이다.”
설학진의 몸에서 삼엄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의 마음을 알아챈 신검장의 장로 네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장주, 저희가 저자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좌소천의 무심한 눈이 그들을 향했다.
“안타깝군. 그래도 신망이 있는 분이라 해서 대화로 해결하려 했거늘.”
그때 단정한 흑염을 기른 중년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너는 우리가 상대하겠다. 칼을 뽑아라!”
좌소천의 무심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오.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