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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95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95화

 

95화

 

 

 

 

 

 

담담한 목소리다.

 

그러나 그 뜻은 결코 담담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앞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사도철군과 백리도운을 비롯해 전마성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제천신궁의 호북 세력…… 전체라 했나?”

 

좌소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사도철군이 다시 물었다.

 

“설마 황파까지?”

 

“열흘 후면 아시게 될 겁니다. 오늘의 결정을 그때까지 미루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단, 그때가 되면 친구가 되는 조건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끄응…….”

 

끝내 사도철군이 끙 소리를 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제길! 도운이 말대로 그냥 순순히 협상을 할 걸 그랬나?’

 

힘으로 억누르고 좀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협상을 하려 했다. 

 

내심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놈의 일이 이제는 거꾸로 되어버렸다.

 

힘의 대결에서 좌소천이 천하의 철혈무제와 비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전마성의 사람들조차 좌소천을 달리 보고 있지 않은가. 

 

한마디로 상대만 높여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거기다 이제는 세력의 득세도 별것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 보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백리도운의 눈빛이 얄밉게 생각될 정도다.

 

그러나 사도철군은 결코 아집을 피우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단순한 성격답게 자신의 잘못을 헛기침 한 방으로 날려 버렸다.

 

“허험! 그거 대단하군!”

 

그러고는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친구라, 그것도 좋지! 그래,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보게나.”

 

 

 

 

 

4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단 한 시진, 짧다면 짧은 시간에 천하의 향방을 좌우할지도 모를 결정이 내려졌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이제 성패는 하늘에 맡기고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전념하기만 하면 된다.

 

좌소천 본인이 누구보다도 그 점을 잘 알았다.

 

그런데 그는 협상을 끝내고 돌아온 그날 밤부터 엉뚱한 일 때문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도 그랬다. 

 

달도 없는 그날 밤. 그는 유등잔 아래 앉아서 손에 들린 묵령기환보를 곤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해서 거의 관심을 끊고 지냈던 물건이다.

 

어머니와의 연을 잇는 물건만 아니라면 놓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가슴에서 전해졌던 따뜻한 기운. 그것은 분명 묵령기환보에서 전해진 기운이었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전신 세맥에 잠들어 있던 영허 진인의 기운을 일깨운 걸까.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에 차가운 기운만 느껴진다.

 

내력을 주입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구성의 내력을 집어넣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사흘째. 묵령기환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애간장만 태울 뿐이었다.

 

‘아직 때가 아닌 걸까? 아니면 나와 연이 닿지 않는 물건인 걸까?’

 

그러나 아직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번 기운을 드러냈으니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 않겠는가.

 

“단주, 안에 계십니까?”

 

좌소천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밖에서 능야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좌소천은 묵령기환보를 한쪽에 놓고 능야산을 맞이했다.

 

의자에 앉은 능야산이 힐끔 묵령기환보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좌소천이 묻자 다시 눈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능 형?”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능야산의 말투는 잠강 지부를 떠나면서부터 변해 있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좌소천은 단순히 패천단의 단주가 아니었다. 

 

천하를 도모하는 하늘인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감복하여 좌소천을 따를 생각이지만, 그전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전에 저에 대해 물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어릴 때부터 이십사 년을 쫓겨 다녔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세 내력에 대해선 묻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 말할 수가 없다 했지요.”

 

“그렇습니다.”

 

좌소천은 그가 왜 찾아왔는지를 알고 조용히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능야산이 좌소천의 눈을 직시한 채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희 선조들은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 어떤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법 큰 힘을 이루고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좌소천의 눈이 커졌다.

 

숨을 크게 몰아쉰 능야산이 말을 이었다.

 

“한데 어느 날 우리의 세력이 약화되자 그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쳤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공격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요. 그 후 놈들은 악착같이 우리의 뒤를 쫓아 형제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이십사 년 동안 말이지요.”

 

참으로 지독한 추격이었다.

 

그들의 추격에 살아남았던 백여 명의 사람 중 반 이상이 죽었다.

 

문제는 그 추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능야산이 좌소천을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들이 누굽니까?”

 

좌소천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어머니도 십수 년간이나 천외천가의 추격을 받지 않았던가.

 

그때 능야산이 입술을 씹으며 대답했다.

 

“바로… 천외천가입니다.”

 

이십사 년의 추격. 천외천가.

 

좌소천은 가슴에 커다란 돌이 하나 얹어지는 기분이었다.

 

‘혹시……?’

 

미처 좌소천이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능야산이 신광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단주께서도 천외천가와 원한이 있다 하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함께 좌소천의 직속무사로 있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태부인인 은선향이―그들이 알고 있는 이름은 은선향이었다. 하기에 능야산이 알고 있는 좌소천의 어머니 이름도 은선향일 수밖에 없었다―천외천가의 무사들에게 중상을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오늘 결심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천외천가를 치실 것입니까?”

 

“물론이오.”

 

“그럼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뭡니까?”

 

“그들을 칠 때 우리를 선봉에 세워주십시오.”

 

‘내’가 아닌 ‘우리’다. 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말.

 

아니나 다를까, 능야산이 말한다.

 

“그리만 해주신다면, 형제들을 설득해서 데려올까 합니다.”

 

능야산의 형제들.

 

좌소천의 눈이 능야산을 직시했다.

 

“선봉에 서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만, 개중에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실망시켜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구포봉이 들었다면, 손짓도 안 했는데 봉이 날아든다고 춤을 출 일이었다.

 

좌소천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묵령기환보로 인해 답답했던 마음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좋습니다. 그 일에 대해선 약속하지요.”

 

 

 

 

 

5

 

 

 

 

 

좌소천은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대왕채의 무사들이 머물고 있다는 경산 북쪽 응암산의 산채를 찾아갔다.

 

뜻밖에도 응암산에는 북리환이 직접 수하들을 데리고 내려와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나, 북리환이 결코 불의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줄 작정이네.”

 

뜻밖이긴 했지만, 마다할 일도 아니었다.

 

“모두 몇 분이나 오셨습니까? 백 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만.”

 

“대홍산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 반을 끌고 왔네. 아마 이백 정도 될 거야.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끌고 왔으면 싶은데, 그곳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중 반이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고 절정고수도 네 명이나 된다. 

 

능히 제천신궁의 지부 두어 곳과 맞먹는 무력. 거대문파들이 왜 대홍산의 녹림산채를 그대로 놔두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내가 뭘 해주었으면 좋겠나?”

 

북리환이 나름 자신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좌소천은 손가락으로 찻물을 찍어서 탁자에 대충 지도를 표시하며 말했다.

 

“제가 천문 지부에 있는 패천단을 이끌고 황파로 가면, 총표파자께서는 하남에서 내려오는 관문인 평정관(平靖關)과 무승관(武勝關)을 감시하면서, 혹시라도 남하하는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있거든 그들을 견제해 주십시오.”

 

“흠, 두 관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채가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네. 그런데 내려오는 족족 다 때려잡아야 하나?”

 

녹림왕이니 뭐니 해도 산적은 산적이다. 

 

주먹을 휘두르며 말하는 것이 말단 산적이나 별다르지 않은 행동이며 말투다.

 

좌소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죽자사자 막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단지 그들에게 호북으로 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만 알려주고, 이후 그들의 이동 경로만 파악하시면 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네만, 요즘 한수 일대에 전마성의 무사들이 집결했다는 말을 들었네. 전마성과의 싸움이 목전인데 제천신궁의 무사들을 왜 막고, 황파에는 무엇 때문에 간단 말인가?”

 

좌소천이 북리환의 눈을 보며 짧게 대답했다.

 

“전마성과의 싸움은 없을 겁니다.”

 

“무슨 소린가?”

 

“사도 성주와 담판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내일모레 사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철수할 겁니다.”

 

“뭐라고?!”

 

북리환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좌소천이 사정을 설명했다. 황파에 가려는 목적까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북리환은 경악한 표정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입까지 반쯤 벌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제천신궁과 갈라서고 전마성과 한배를 타기로 했다, 이 말인가? 그것도 거의 동등한 입장에서?”

 

“비슷하게 보시면 됩니다.”

 

“사도철군이 자네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이던가?”

 

“사도 성주도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마성이 곤란해질 테니까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의 광폭한 성격만 보고 생각이 없다고들 하네. 하지만 그것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이지. 알고 보면 머릿속에서 능구렁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철혈마제라네. 조심해야 할 거야.”

 

“그를 잘 아십니까?”

 

“십여 년 전에 한번 만나봤지. 뭐 썩 좋은 결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둘은 성격이 비슷했다. 

 

불과 불이 부딪쳤으니 조용할 리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한바탕 싸우고는 나중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좌우간 싸움이라면 밥 먹다가도 뛰어나오는 그가 그냥 물러간다고 했다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네.”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번 일만큼은 사도 성주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든 북리황의 눈이 커졌다.

 

“호, 혹시……?”

 

좌소천이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에게 약간의 빚을 졌지요. 사도 성주도 저를 적으로 삼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북리황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돌려서 말했을 뿐 사도철군과 한바탕 해서 이긴 듯했다. 

 

아니지, 빚을 졌다고 했으니 이길 것을 비긴 정도로 끝냈나?

 

‘이건 완전히 괴물이군.’

 

눈앞에 있는 좌소천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단 세 달. 그사이에 천하의 판도를 바꾸어놓다니!

 

배신이라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좌소천의 어머니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제천신궁이 친우인 선우궁현을 죽인 천외천가와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었으니까.

 

오히려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제천신궁과 결별하려는 좌소천의 뜻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전격적인 행동이었다.

 

‘바로 이거야!’

 

북리환은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었다.

 

좌소천이 이룬 일이야말로, 언젠가는 이루고야 말 거라며 자신 역시 이십여 년간 꿈속에서조차 다짐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북리환이 호안을 번뜩이며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

 

“호북 동북부에 만족할 자네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긴말이 필요 없었다.

 

“천하의 주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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