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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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93화
93화
모두가 경악에 물든 눈으로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뜻에 의해 허리가 펴진 것이 아니다. 좌소천이 부드러운 기운을 뻗어 그들의 허리를 세운 것이다.
대부분이 나름대로 대항을 해봤다.
그러나 좌소천의 두 손에서 뻗친 기운은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그들의 저항을 일시에 무너뜨려 버렸다.
절대의 경지!
모두가 진심이 담긴 경외의 눈빛으로 탄복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육부경은 장하경의 말을 반신반의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오오오! 누가 있어 저 나이에 절대의 경지를 밟아보았을 건가!
하늘! 절대의 하늘이다!
모두가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굳어 있던 황창안과 조용익 등도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낀 것이다.
그래! 해보자!
저 사람을 중심으로 새로운 하늘을 만들어보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얼굴이 벌게졌다.
도유관은 환희의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악다문 입에 힘을 주고, 능야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와중에도 좌소천의 등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사람이라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일을 꾸민 공손양마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새벽에 온 장하경의 말을 듣고, 좌소천에게 그들을 실력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들이 진심으로 따른다면서.
이유를 알면서도 잠시 망설이던 좌소천이 말했다.
“정 해야 한다면 내 방식대로 하겠소.”
하지만 설마하니 한자리에서 열 명을, 그것도 손짓 한 번으로 단숨에 제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크게 들이쉰 숨을 천천히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단주의 명을 받아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으니,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한잔하십시다.”
“그거 좋지요!”
내기에서 이긴 장하경이 제일 반겼다.
8장 협상(協商)
1
탁!
찻잔이 탁자에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순우연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죽이기는커녕 그의 사지 하나 자르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날이 선 목소리.
순우무궁이 반쯤 미쳐서 돌아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자의 곁에 고수들이 워낙 많아서, 몇 군데 자상을 입혔을 뿐, 심각한 타격은 주지 못한 듯 보였다 합니다.”
엎드린 채 보고를 하던 요응은 감히 머리를 들지도 못한 채 순우연의 말이 이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순우연은 한참 동안 턱만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의 좌우에는 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눈이 고정된 곳에는 오십대 초반의 무표정한 흑의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은?”
그는 순우연의 질문을 받고, 입에 대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천외천가에서 순우연 옆에 앉아 그 정도의 담담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즉, 그가 그 정도의 인물이라는 말.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입을 열었다.
“뜻밖이군요. 신양으로 간 아이들이 비록 최고는 아니라 하지만, 그래도 다섯이면 일파의 장문인도 처리할 수 있는 실력인데…….”
“내가 놈을 너무 가볍게 판단했나?”
“어찌 가주의 판단이 잘못되었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상대를 너무 가볍게 여겼거나, 주위의 고수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겠지요.”
다시 고개를 돌린 순우연이 찻잔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으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실패했으니, 천해의 노야가 그 말을 들으면 비웃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그때 우측에 앉아 있던 노인이 까칠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노야께서 천해에 맡기라 하셨다는데, 그때 맡기는 게 나았지 싶습니다, 가주.”
가은의 눈초리가 미미하게 치켜졌다.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제가 다시 한번 아이들을 보내겠습니다, 가주. 삼요라면 놈의 심장에 구멍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아니야. 묵령천의 잔당들을 추적하는 일만 해도 바쁠 텐데, 굳이 놈을 당장 죽이겠다고 잠사령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지닌 아이들을 빼낼 필요는 없네.”
“잠사령의 자존심이 걸린 일입니다. 한 번 더 맡겨주시지요.”
잠사령(潛邪嶺).
천외천가의 진정한 힘이 숨어 있는 삼령(三嶺) 중 하나.
그곳에서 키운 삼백 살수는 천외천가가 암중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특급으로 구분되는 여섯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삼혼(三魂)과 삼요(三妖)였다.
“흠, 삼요라…….”
“아시다시피 삼혼과 함께 최고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 셋이라면 혁련무천이라 해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가주.”
“이번에도 실패하면 천해에 맡기는 수밖에 없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자네도 알겠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가은의 옆에 앉아 있던 회의노인이 가은의 손을 들어주었다.
“삼요라면 충분히 적절한 기회를 노려서 놈의 숨퉁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주. 이제 이십대 중반이라는 놈이 설마 당대 제일을 다툰다는 오제, 육기, 구마보다 강하겠습니까?”
순우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하지.”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 문사를 바라보았다.
순우연의 팔촌 동생이자, 천외천가의 군사 역할을 하는 천유각주 순우기정이 바로 그였다.
“기정, 정한궁의 계집들이 자양(紫陽)까지 기어올라 왔다는데, 행적은 발견이 되었느냐?”
“예, 가주. 작은 장원에 모이고 있다 합니다. 아마 대공자께서 곧 그녀들을 칠 것입니다.”
“무종이가 잘해낼지 모르겠군. 무당조차 그녀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하던데 말이야.”
“호릉하가 자신의 수하들을 데리고 직접 나설 거라 했으니 너무 염려 마시지요.”
“흠, 그래?”
아직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는 정한궁이다.
그럼에도 정한궁을 공격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들을 제거함으로써 무림맹에 빚을 지우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겠다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정한궁을 칠 이유는 충분했다.
2
좌소천은 육부경 등이 이끄는 삼백 무사를 무창으로 보냈다.
무창에서 장강만 건너면 황파까지 백오십 리 거리다.
최악의 경우, 만월평의 총지부를 힘으로 눌러야 할 일이 생기면 본대와 합류하기에 적절한 곳이 무창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목적이 있었는데, 좌소천은 그들을 이용해서 무창 일대 제일의 세력인 신검장을 접수할 작정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좌소천은 패천단의 사 개 대를 잠강에 남겨놓은 채 자신의 직속 호위무사만을 데리고 천문으로 갔다.
태양이 온 대지를 태워 버릴 듯 불길을 뿜어내는 유월.
좌소천이 불길을 짊어지고 천문에 들어선 그날, 태양보다 더 뜨거운 의지의 불길이 서서히 호북을 달구기 시작했다.
“왔군.”
문 앞에까지 마중 나온 악청백이 한마디로 좌소천을 반겼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환한 얼굴, 입가에 매달린 잔잔한 미소. 그의 얼굴에 그의 마음이 다 드러나 있었다.
“별고 없으셨습니까?”
“별일이 왜 없겠나? 노인네들 성화에 살이 다 빠질 판이네. 자네의 서신을 받고 겨우 말리기는 했네만, 입이 한 자는 나와서 매일 죄 없는 무사들만 닦달한다네.”
악청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흥! 악가야! 우리가 언제 애들을 닦달했다는 거냐? 놈들이 먼저 가르쳐 달라니까 한 수 가르쳐 주느라 그런 것이지. 그런데 뭐라?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닦달?”
등소패가 악청백을 흘겨보고는 좌소천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안 그러냐?”
좌소천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부상을 입거나 한 사람은 없습니까?”
등소패가 움찔하며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갈비뼈 부러진 애들이 두어 명 있긴 하다만, 그 정도야 곧 나을 것이야.”
“그럼 별것 아니군요. 저는 쓰러져서 정신까지 잃었는데요.”
등소패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그렇지? 별것 아니지?”
동천옹이 그런 등소패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어째 갈수록 애처럼 구는 것인지…….”
그러더니 동그란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등가는 갈비뼈를 몇 개나 부러뜨렸지만, 나는 팔뼈를 하나밖에 부러뜨리지 않았다네. 흘흘흘.”
사람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동천옹을 바라보았다.
그거나 저거나. 도대체 누가 더 애처럼 구는 것인지 모를 판이다.
하지만 누구도 소리 내어 웃지 못했다. 웃었다가는 자신의 팔뼈가 부러질지도 모르니까.
좌소천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허리를 숙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들어가시지요, 어르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등소패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우고 좌소천을 신중하게 쳐다보았다.
“정말 궁주와 갈라설 결심이 섰더냐?”
오면서 각오하고 왔던 터다.
지난날, 용수선에 놀러 가서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하늘은 넓고, 자신은 저 넓은 하늘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그때만 해도 듣지 못한 척 히히덕거리며 술을 마시던 분들이다.
자신 역시 더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웃음으로써 마무리했다.
그런데 마침내 물어온다.
좌소천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소문은 들었다. 하나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만.”
무겁게 가라앉은 고요한 눈빛의 위지승정이다.
등소패도 노인답지 않은 강렬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뭐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딴짓을 하고 있지만, 동천옹도 귀는 좌소천의 입을 향해 열어놓은 상태다.
천장에 누워 있는 무영자 역시.
좌소천은 잠강에서 이야기했던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았다.
천외천가와의 관계, 사공은환이 시도한 암살미수에 대한 일. 그리고 새로운 하늘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는 것까지, 모조리!
네 노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가슴의 심장을 꺼내 보여주고 싶은 좌소천이다.
무엇인들 말을 못할까!
좌소천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일각가량이 지나서였다.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시비가 가져다 놓은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등소패의 얼굴이 서너 번에 걸쳐 변하더니 한숨이 길게 터져 나왔다.
“하아, 답답하군, 답답해. 사공은환, 그 미친놈의 농간 때문에 제천신궁이 쪼개질 판이라니…….”
이마를 잔뜩 찌푸린 동천옹이 코웃음을 쳤다.
“흥, 혁련 애송이가 누군데 그런 놈의 농간에 넘어간단 말이냐? 이건 내 생각이다만, 아마 암살은 사공은환이라는 그 미친놈이 혼자 생각한 것이고, 천외천가와 손을 잡은 것은 혁련 애송이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위지승정이 동천옹을 바라보았다.
“암살에 대해 궁주가 모르고 있었을 거라는 것입니까?”
“혁련 애송이가 다른 것은 몰라도 간덩이 하나는 크다. 만일 그가 소천이를 제거하려 했다면, 암살 따위를 지시하지 않고 직접 손을 썼을 거다.”
그때 천장에서 무영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나도 애늙은이와 같은 생각이다. 혁련 꼬마가 그렇게 좀생이는 아니거든.”
좌소천은 두 사람의 말에 묵묵히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 역시 그럴지 모른다 생각했다.
전마성과의 대전을 생각해야만 하는 혁련무천이 암살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 하나보다 전마성과의 대전 결과가 더 중요했을 테니까.
자신을 제거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각할 사람. 그게 바로 혁련무천이 아니던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사실이 도도히 흐르는 하늘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네 분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 뜻을 막지만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등소패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제자가 하늘이 되겠다는데, 스승이 왜 막아?”
“날이 더워서 소천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이래서 스승이 옆에 있어야 제자가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이지요. 뭐, 두 어르신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험!”
근엄한 자세로 입을 연 위지승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천옹이 의자에 올려놓은 다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글쎄, 제천신궁에만 있으면 심심하다니까? 나는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아.”
동시에 천장에서도 무영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주절댔다.
“암살자가 또 노릴지 모르는데, 당연히 내가 옆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근데 너를 노린 놈이 누구지? 어떤 간덩이 부은 놈이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