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91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91화
91화
좌소천이 말을 끌자 토끼눈들이 일제히 좌소천에게 고정되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인내의 한계를 드러낼 즈음, 좌소천이 한 마디 한 마디 못을 박듯이 말했다.
“사공은환, 그가 보낸 자들이었지요.”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황창안과 남평화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특히 남평화는 처음의 암살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천외천가가 아무리 단주와 원한을 졌다고 해도, 본 궁과 협력을 하기로 했다면 무리를 하면서까지 암살을 할 이유가 없잖소? 게다가 밀천단주가 왜 단주를 죽이려 암살자를 보낸단 말이오?”
“나를 죽여야할 이유가 있으니 보낸 것이겠지요.”
“흥! 나는 단주의 말을 믿을 수 없소!”
다른 사람들도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좌소천은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오. 당신이 믿지 않는다 해서 달라질 사실이 아니니까.”
“뭐요? 보자 보자 하니까! 어디서 감히 배신을 꿈꾼단 말이냐? 본 궁에서 네놈들을 가만둘 줄 아느냐?”
그때였다. 한 발 앞으로 나선 능야산이 남평화를 향해 손을 털었다.
순간, 한 줄기 빛살이 벼락처럼 번쩍였다.
홱,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하다못해 바람을 가른 소리도.
그런데 남평화의 이마에 뭔가가 박혀 있었다.
유등불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체, 그것은 손바닥만큼 작은 비수였다.
“네, 네놈들…….”
남평화가 입을 몇 번 달싹이더니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게 무슨 짓인가?”
황창안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조용익과 소궁석을 비롯한 나머지 간부들이 무기를 잡은 채 반쯤 몸을 일으키고,
“이놈!”
제일 가까이 있던 무천단의 삼대주 동파증이 두 손바닥을 쫙 편 채 능야산을 덮쳤다.
능야산도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려서 마주 내밀었다.
쾅!
대기가 출렁이며 유등불이 꺼질듯이 흔들렸다.
한 걸음 물러선 능야산. 두어 걸음 뒤로 튕겨진 동파증이다.
“우리를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가? 흥! 쉽지 않을걸?”
철컥.
자존심이 상한 듯 동파증이 검을 세 치쯤 뽑고 안광을 번뜩인다.
그때 공손양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자는 사공은환의 개, 밀천단의 비찰이지요. 그간 이곳의 상황이 모두 저자에 의해서 사공은환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동 대주, 잠깐 멈추게.”
황창안이 손을 들어서 동파증을 제지했다.
인상을 찡그린 동파증이 검을 탁, 소리가 나게 밀어 넣었다.
좌소천은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태연히 의자를 당겨서 앉았다. 그러고는 처음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맞은편의 황창안을 마주보았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사공은환에게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손을 쓰라 했습니다.”
장내에 서서히 살을 에는 한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황창안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좌소천 쪽 사람은 모두 넷이다. 반면에 자신들은 여덟.
그러나 숫자가 많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데다, 이런저런 상황을 알게 된 이상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인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마당.
황창안은 좌소천을 지그시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가?”
좌소천이 그의 눈을 직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로운 하늘에 대한 이야기지요.”
황창안이 잘게 떨리는 눈으로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무천단과 제천단의 대주들도 일제히 눈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하늘이라고?”
황창안은 올 것이 왔다는 듯 아래로 내린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정말 궁주와 맞설 생각인가?”
그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 흐르던 한기가 멈추고 살얼음이 얼었다.
무천단과 제천단의 대주들의 몸이 경직되자, 서 있던 공손양 등도 손에 힘을 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때 좌소천이 말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천신궁의 주인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묘한 말이다. 궁주와 맞선다면서 궁의 주인 될 마음은 없다니.
단순히 궁주의 뜻을 꺾고, 궁주의 손발인 사공은환을 제거하는 정도로 끝내겠다는 걸까? 그렇다면 왜 ‘새로운 하늘’이라는 단어를 쓴 걸까?
황창안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새로운 세력이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가소롭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하늘 아래 제천신궁을 둘 생각입니다.”
쿠궁!
뇌리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황창안과 조용익을 비롯한 간부들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잘해야 호북에 새로운 문파를 만들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혁련무천에게 반기를 들고 제천신궁을 뒤엎든지.
좌소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 정도 명분은 있으니까.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다.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을 휘하 세력으로 만들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말이다!
황창안을 비롯한 무천단과 제천단 간부들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절로 떠올랐다.
좌소천이 그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전에 배덕자들을 물리치고 제천신궁을 먼저 얻어야겠지요.”
“그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나?”
“불가능할 것도 없지요. 지부장님과 여기 계신 분만 협조를 해주신다면, 일단 호북의 십이 개 지부 중 다섯 곳이 저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로는 본 궁의 이 할 세력도 되지 않을 것이네.”
황창안이 고개를 저었다.
좌소천이 그의 생각에 하나를 더했다.
“거기에 패천단을 더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잘해야 삼 할 정도에 불과하지.”
또 하나를 더했다.
“그리고 곧 패천단 정도의 힘이 하나 더 가세할 겁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지만, 일단은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다.
그것만으로도 황창안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사 할에 불과하네.”
목소리가 억눌려 나온다. 하긴 황창안 정도의 사람이 그 힘의 차이를 계산하지 못할 리 없다.
좌소천이 억눌린 황창안의 가슴에 못을 하나 더 박았다.
“황파 총지부까지 제 손에 들어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찌나 세게 이를 다물었는지 황창안의 입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쉽지 않을 것이네. 총지부장은 궁주의 사촌 아우인데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일이면 정예 오백의 지원군이 이곳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황파에 남은 정예는 오백에 불과하지요. 그래도 일반 무사들까지 합쳐서 일천이 조금 넘을 것입니다만, 그들로서는 결코 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물론 힘으로 그들을 칠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만, 최후의 경우가 닥치면 어쩔 수 없지요.”
만월평은 일천이면 일만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지. 아무리 좌소천이라도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 분명하다.
하나 그것도 적일 때의 이야기다. 만일 좌소천이 간다면, 설령 적인 걸 안다 해도 반은 검을 내릴 것이 분명했다.
하물며 적이 아닌 패천단의 단주로 가는데 누가 막는단 말인가.
피가 마르는 설전이었다.
황창안으로선 모든 기운이 다 빠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되면 호북의 모든 지부가 좌소천에게 넘어간 셈.
오 할!
제천신궁의 무력 중 오 할에 가까운 힘이 좌소천의 손에 들어간다.
물론 가상일 뿐이지만,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생각되었다.
그걸 계획한 사람이 신유 좌유승의 아들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이 아는 한, 제천무제와 엇비슷한 무공을 지닌 좌소천 말이다.
황창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시에 긁힌 것 같은 목소리가 그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전마성에게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데, 너무 무리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때 좌소천이 커다란 대못을 황창안의 가슴에 박았다.
“전마성과의 싸움을 생각하신다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직접 사도철군과 만나 담판을 지을 생각이니까요. 이미 사람을 보내서 약속 날짜까지 받아놨습니다.”
그제야 전마성과의 일마저 좌소천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안 황창안은 허탈감마저 들었다.
“전마성이 순순히 자네를 인정할까?”
“사도 성주도 저와 싸우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공멸을 원치 않는 이상은.”
힘이 빠진 황창안이 의자의 등받이에 털썩 등을 기댔다.
백중지세(伯仲之勢)!
단순 계산으로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아마 궁주는 더욱더 천외천가를 끌어들이려 하겠지.
문제는 그럴 경우, 제천신궁의 사람들 중 좌소천의 손을 들어줄 사람들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자신부터 그럴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라 해서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만일… 우리가 대항하겠다면 어찌할 생각인가?”
“참으로 아쉽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순간 살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를 악문 무천단과 제천단의 대주들이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그때 조용익이 바싹 말라 달라붙은 입술을 떼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궁주와 전쟁을 벌일 것이오?”
좌소천이 느릿하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제천신궁을 얻으려 하는 것이지,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오. 당장의 싸움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없소. 해서 나는, 이곳의 일이 내 생각대로 마무리되고, 전마성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확실시될 때 궁으로 돌아갈 거요.”
한 가지 의문을 파헤쳐야 했다. 하기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위험이 따르더라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을 대신해서 조용익이 다시 물었다.
“만일 좌 단주의 뜻대로 된다면, 본 궁을 어느 선까지 정리할 것이오?”
좌소천이 짧게 대답했다.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까지 정리할 것이오.”
좋은 말로는 융통성이 있는 대답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대답이 차라리 나았다. 그만큼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으로서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조용익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간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황창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찌하시겠습니다. 저는 부전주님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지부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잠강 지부장으로서가 아니라, 제천신궁 제무전의 부전주로서 답해달라는 뜻.
황창안은 힘들게 몸을 세우고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
황창안이 좌소천을 직시한 채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강하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네. 대항하면 우리 모두가 죽을지도 모르지. 하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네. 그 점은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좌소천도 당연히 알고 있다.
제천단과 무천단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명예(名譽), 신의(信義).
이들은 그 두 가지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번거로움을 자처하면서 이들을 얻으려는 것도 그러한 점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닌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좌소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를 지그시 악문 황창안이 답했다.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좌 단주를 따르겠네.”
3
숨을 깊게 들이쉰 백리도운은 방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별다른 장식도 없는 방에 들어가자, 태사의에 깊이 몸을 묻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도철군이 보였다.
당금 강호를 움직이는 하늘 중 하나. 강호인들이 한때 철혈의 전사라 불렀던 철혈마제다.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그의 표정에 일말의 변화도 없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머리를 쓰기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분이다. 그런 분이 고민에 빠져 있다.
그 때문인지 방 안의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백리도운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가 잠강에 도착했습니다, 주군.”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사도철군의 눈이 슬며시 뜨였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남을 자입니다.”
촛불 때문인가? 입을 여는 백리도운의 눈빛이 반짝인다.
사도철군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반했나 보군.”
뜬금없는 말에 백리도운의 눈이 커졌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