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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84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2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84화

 

84화

 

 

 

 

 

 

느긋이 술잔을 기울이던 애꾸가 황의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뭘 봤는지 애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호오! 저기에도 물건이 하나 있는데?”

 

칼자국의 장한도 홍의여인을 보고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제길! 내가 양보했으면 저년은 내 것인데!”

 

마치 홍의여인이 자신들의 것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그제야 두 사람의 말뜻을 알아들은 홍의여인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저 미친놈들이!”

 

청의청년도 검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히 내 동생을 모욕하다니! 네놈들이 죽으려 작정했구나!”

 

그들이 갈 필요도 없었다. 애꾸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황의청년과 청의청년이 분노한 표정으로 검을 잡아 뽑고는 애꾸를 향해 마주쳐 갔다.

 

남아 있던 남삼의 청년만이 홍의여인의 앞을 가로막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성큼성큼 걸어간 청의청년이 먼저 애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겁대가리없는 놈들! 감히 상선보의 금지옥엽을 농락하다니!”

 

“엉? 상선보?”

 

애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청의청년이 득의만만해서 소리쳤다.

 

“내가 바로 상선보의 상유진이다, 이놈들!”

 

황의청년도 검을 들어 올려 애꾸를 가리켰다.

 

“비화검 위청기라는 이름을 아느냐? 죽어도 알고나 죽어라!”

 

눈을 크게 뜬 애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저 계집이 상소금이라는 계집인가 보군!”

 

청년들과 마주한 와중에도 여전히 계집이라고 말한다.

 

그때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애꾸의 말에 분노한 두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뻗었다.

 

“어디서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별 거지 같은 놈들이!”

 

순간 애꾸가 칼을 갈지자로 휘둘렀다.

 

따당!

 

단 한 번의 칼질에 두 사람의 검이 힘없이 튕겨졌다.

 

“헛!”

 

“이, 이놈이!”

 

“흐흐흐. 상선보의 계집을 품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재수가 아주 좋군.”

 

그때 남아 있던 남삼청년이 뒤늦게 애꾸를 알아보고 대경해 소리쳤다.

 

“상 형, 위 형! 조심하게! 그자는 독안귀도 조안이라는 자네!”

 

그 말에 대경한 상유진과 위청기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독안귀도 조안. 탐화귀 요호랑과 함께 화안쌍귀(花眼雙鬼)라 불리는 자.

 

하는 행동이 어찌나 지저분한지, 뛰어난 무공에도 불구하고 전마성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자들.

 

그들은 결코 상유진이나 위청기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이유로, 뒤에 여인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삼청년, 고한도 더는 안 되겠는지 앞으로 나섰다.

 

“조심해야 하네. 저자들은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네.”

 

그나마 세 사람 중 그가 가장 침착하게 대응하는데, 셋 중에 무공이 가장 강한 사람도 그였다.

 

힘을 얻은 상유진과 위청기가 눈짓을 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조안을 공격했다.

 

“죽어라, 이놈!”

 

그들도 명색이 한수 건너 의성과 남장 일대를 주름잡는 중소문파의 소주인들이다. 그리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자들. 

 

셋이라면 아무리 조안이라도 쉽게 꺾을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생사의 대결을 수백 번이나 치른 조안을 상대하기에는 그들의 경험이 너무도 일천했다.

 

더구나 요호랑이 몸을 날려 싸움에 가세하자, 상황이 한순간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따다당!

 

“헛! 저놈을 막아!”

 

“킬킬킬, 강아지도 잡을 수 없는 그따위 검으로 어딜!”

 

십 초도 지나기 전에 여기저기 옷이 찢기고, 찢겨진 곳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정신없이 검을 찔러보지만, 화안쌍귀의 살기 어린 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 사람은 칠팔 초가 더 흐르자 허겁지겁 물러서기에 바빠졌다.

 

당장 팔다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상황.

 

“킬킬킬, 어떠냐? 지금이라도 저 계집을 순순히 바친다면 너희 세 놈의 목숨은 살려주마.”

 

주춤거리며 물러선 세 사람이 결국 탁자 앞까지 밀리자, 상소금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갖 수실이 달린 검을 뽑아 들었다.

 

“오빠! 그놈을 죽여! 절대 나를 데려가게 하면 안 돼! 알았지?”

 

요호랑이 음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옆으로 돌았다.

 

막으면 누구든 죽이겠다는 듯 칼을 앞세운 채.

 

셋이서 조운 하나도 벅찬 판국. 위청기는 이를 악문 채 그를 바라보면서도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상소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악을 썼다.

 

“위 오빠! 놈을 막아! 죽이란 말이야! 어서!”

 

하지만 위청기는 몸을 반쯤 돌렸을 뿐 막상 그의 앞을 막지는 못했다.

 

“위 형! 위 형이 이자를 막아! 내가 그를 상대할 테니까!”

 

고한이 급히 옆 걸음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런데 위청기는 귀머거리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벗어나면 상유진이 위험해질 터. 고한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이만 악물었다.

 

그때 요호랑이 하얗게 웃으며 위청기와 여덟 자의 거리를 두고서 빙 돌아갔다.

 

“흐흐흐, 잘 생각했다. 계집 하나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어서야 쓰겠나?”

 

그때, 탁자를 돌아가려던 그가 한쪽을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은 또 뭐야? 죽으려고 환장한 놈들이군. 이런 판국에 술을 마시다니.”

 

그가 비릿한 조소를 흘리더니, 칼을 눕혀 탁자의 모서리를 내려쳤다.

 

탕!

 

귀머거리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그러나 당연히 쏟아질 거라 생각했던 음식이나 술은 탁자에서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와중에도 기분이 상했는지 요호랑이 힐끔 옆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꺼져라!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살려주마!”

 

좌소천은 물끄러미 손에 들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반면에 흑의장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을 털어서 산 음식이 하마터면 쏟아질 뻔했군.”

 

다시 상소금을 향해 가려던 요호랑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흑의장한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 이건가?”

 

“꺼져.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그냥 가면 목숨은 살려주마.”

 

요호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와 비슷한 말을 자신이 조금 전에 하지 않았던가. 

 

“미친놈.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어!”

 

요호랑이 홱 몸을 돌리며 흑의장한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찰나 흑의장한의 손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동시에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뽁!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어, 어…….”

 

요호랑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그의 이마에 박힌 젓가락을 타고 핏물이 흘러나온다.

 

똑!

 

젓가락 끝에 방울진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뒤에 있던 위청기가 그걸 보고는 검을 휘둘렀다.

 

“죽어!”

 

퍽!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요호랑의 목이 반쯤 베어지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크크크, 내가, 내가 놈을 죽였어! 모두 봤지?”

 

그때 조안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이놈!”

 

“위 형! 피해!”

 

고한이 고함을 내지르며 그를 막으려 했을 때는 이미 그의 칼이 물러서는 위청기를 스치고 있었다.

 

스걱!

 

“허억!”

 

단칼에 위청기의 팔 하나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갔다.

 

또다시 허공으로 길게 솟구치는 피분수!

 

“으아아아!”

 

위청기가 비명을 지르면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조안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흑의장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후웅!

 

갑자기 응축된 대기가 밀려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쾅!

 

묵직한 굉음과 함께 조안의 신형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쿵!

 

바닥을 울리며 떨어진 조안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움푹 함몰된 가슴.

 

튀어나올 듯이 커진 두 눈.

 

부들거리는 것도 잠시, 꺽꺽대던 그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객잔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직 흑의장한만이 좌소천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래 봐야 입꼬리를 미미하게 말아 올린 것에 불과했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서 술 한잔 더 했으면 싶은데, 어떻습니까?”

 

좌소천의 제안에 흑의장한이 일어섰다.

 

“나는 가진 게 없네. 그러니 그대가 사야 하네.”

 

“술 한잔 살 돈은 있습니다. 갑시다.”

 

두 사람이 피비린내 풍기는 객잔을 나서는데, 고한이 황급히 뛰어나왔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좌소천이 바라보자 고한이 포권을 취했다.

 

“고가장의 고한이라 하오. 먼저, 좀 전에 동료가 한 말을 사과하겠소.”

 

“그건 그대가 할 일이 아니오.”

 

“어쨌든 함께 있었으면서도 말리지 못했으니 내 잘못도 있소. 그리고 오늘 일, 정말 고맙소.”

 

일파의 소주인이 사과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을 접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것 역시.

 

아마 위청기라는 자였다면, 자신들의 힘으로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고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입을 꾹 다물고 있든지.

 

“당신이 왜 저들과 함께 있는지 모르겠군.”

 

“어릴 때부터 친구였소. 강호의 경험이 없어 실수를 해서 그렇지, 본심이 나쁜 친구들은 아니오. 용서해 주시오.”

 

“마음에 둘 것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럼.”

 

좌소천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고한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밖으로 다시 뛰어나왔다.

 

 

 

 

 

2

 

 

 

 

 

좌소천과 흑의장한은 백여 장 아래쪽의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능야산이라 하네. 자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아 말을 놓았으니 이해하게.”

 

“좌소천입니다. 저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존대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군.”

 

흑의장한 능야산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그렇게 웃으니 보기가 훨씬 좋습니다.”

 

“그런가?”

 

입가에 걸린 웃음이 쓴웃음으로 변한다.

 

왠지 사연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좌소천이 뜬금없이 물었다.

 

흑의장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암울함마저 묻어 있는 짙은 그늘이다.

 

그걸 보니 더욱 궁금해졌다.

 

좌소천은 능야산의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가만히 기다렸다.

 

능야산이 술잔을 입 안에 털어 넣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네. 그중 이십사 년을 형제, 동료들과 함께 쫓기면서 여기저기 숨어살았지. 매일 놈들이 찾아올까 걱정하면서. 나야 한곳에 처박혀 있기 싫어 나왔지만…….”

 

말을 하는 도중에도 눈빛이 흔들린다. 다른 형제와 동료들이 걱정되는가보다.

 

좌소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굳어졌다.

 

쫓기면서 숨어살아 온 이십사 년. 자신이 숨 쉬며 살아온 세월보다도 더 많다.

 

대체 어떤 사연이기에 이십사 년을 그렇게 살아왔단 말인가?

 

“능 형의 무공으로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단 말입니까?”

 

능야산의 얼굴에 비감이 어렸다.

 

“남들에 비하면 그럭저럭 강한 무공이지만, 나를 쫓는 자들에게는 그리 강한 무공이라 할 수도 없네.”

 

좌소천이 본 능야산은 절정의 경지가 완숙함에 이른 고수다. 도유관이나 공손양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듯했다. 

 

어느 누가 있어 그런 고수에게 대항할 의욕조차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자들이 그리도 독하게 능 형을 쫓는단 말입니까?”

 

능야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아직 거기까지는 말할 때가 아닌 것 같군.”

 

좌소천은 더 묻지 않고 빈 술잔에 술만 채웠다.

 

그때 주렴이 걷히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고한이었다.

 

“후우, 여기 계셨군요. 두 분을 찾으려고 객잔 다섯 곳을 뒤졌습니다.”

 

“무슨 일이오?”

 

“제가 한잔 사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나도 가진 게 있소. 말은 고맙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좌소천이 거절하는데도 고한은 될 대로 되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제가 한잔 따르겠소이다.”

 

겉보기보다 두꺼운 얼굴을 자랑하며 고한이 술병을 들자, 좌소천도 더는 마다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리가 무르익었을 때다. 능야산이 좌소천에게 물었다.

 

“아우는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낭인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겉모습만으로는 영락없이 삼류낭인이다. 그러나 좌소천이 지닌 무공과 기도는 낭인이라 하기에 지나치게 강하고 무거웠다.

 

“맞습니다. 저는 속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어딘가?”

 

“그 이전에 능 형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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