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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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70화
70화
사도진성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송충이처럼 휘어졌다.
“무슨… 말이냐?”
“당신은 제천무제를 너무나 모르는군.”
“…….”
“그는 철저한 사람이야. 하나에서 열까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지.”
사도진성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너는…….”
좌소천이 사도진성의 말을 끊고 고저없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는 의혹이 있으면 오 년, 십 년을 기다려서라도 풀고 나서 움직이는 사람이야. 그걸 모른다면, 수하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좀 더 큰 것을 보지 못한다면 전마성은 해가 가기도 전에 무너질 수밖에 없어.”
전마성이 무너진다고?
“감히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사도진성은 발끈한 표정으로 좌소천의 눈을 직시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식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고요해서 무저의 늪처럼 보이는 눈이다.
뭔가 욕을 퍼붓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자는 제천무제 혁련무천을 남처럼 부르는 것일까?
거기다 말뜻도 구부러진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에 걸린다.
좀 더 큰 것을 보라고?
“대체… 너는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사도진성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낮아졌다.
그제야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사도진성을 짓눌렀다.
“며칠만 기다려. 종후전과 함께 풀어줄 테니까. 물론 공력까지 다 되돌려주지.”
움찔한 사도진성이 눈을 치켜떴다.
“종 호법도 살아 계시단 말이냐?”
“이전처럼 무공을 펼치기는 힘들 테지만, 그래도 사는 데 지장은 없으니 다행으로 알아.”
입술을 질겅거리던 사도진성이 억지로 입을 벌렸다.
“대… 가는?”
“없어.”
좌소천은 짧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는 돌아가서 내 말을 사도철군에게 전하기만 하면 돼.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판단은 그가 할 테니까.’
그러고는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도진성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사도진성이 안간힘을 써서 소리쳤다.
“이, 이봐! 네 진짜 이름은 뭐지?”
좌소천이 방문을 향하며 나직이 대답했다.
“좌소천.”
덜컹!
방문이 열리자 사도진성이 다급히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부탁이다! 네가 나를 제압한 도법의 이름을 알려다오!”
텅!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좌소천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무애일정(无涯一靜).”
4
전마성 천문 지부의 지부장이었던 염혁의 집무실에 이십여 명이 들어앉았다.
두 시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전마성의 중견 고수들이 제천신궁의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굳이 그 두 사람을 풀어줄 필요가 있겠나? 단전이 다친 종후전이야 그렇다 해도 사도진성은 인질로 충분할 텐데?”
사도진성을 사흘 후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단청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대했다.
좌소천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도철군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를 사흘로 잡았지요. 그는 분노가 가라앉으면 아들의 죽음과 빼앗긴 지부의 무게를 저울질할 겁니다.”
잠시 말을 끊은 좌소천이 단청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만 그리 향해 있을 뿐, 그는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투로 말했다.
“제가 그를 잘못 판단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들을 포기할 겁니다. 그리고 전마성의 무사들에게 자신이 아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를 절절히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정한거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일단 잠강과 천문을 먼저 탈환하려고 달려오겠지요.”
“철혈마제가 아무리 단순한 성격을 지녔다고 해도 무조건 그리할 거라는 확신은 없지 않은가?”
“그에게는 아들이 둘이나 더 있습니다. 하나 천문과 잠강을 제천신궁에 빼앗기면, 여차할 경우 자신의 가족 모두를 잃을지 모르지요.”
단청호가 눈을 치켜떴다.
“그럼 어떻게 되든 결국은 그가 공격할 거라는 말 아닌가?”
“사도진성이 돌아가면 사도철군은 잠시 망설일 겁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하겠지요.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좌소천이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공손 형, 그가 어떤 선택을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공손양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사도철군은 공격을 보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유는?”
“그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기 때문이지요.”
“예상되는 기간은?”
“한 달 정도로 생각됩니다.”
그 이유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러나 그것까지 단청호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닷새 안에 분노한 무사들의 공격을 받느냐, 한 달 후에 분노가 가라앉은 무사들의 공격을 받느냐. 단 대협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으음…….”
단청호가 침음성을 발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분노한 자들과 분노가 가라앉은 자들. 똑같은 자들이 온다 해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배 이상 힘든 싸움이 된다.
빈틈만 보이면 한마디 하려던 다른 사람들도 찍소리 못하고 눈치만 봤다.
좌소천이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천문 지부를 뺏고 끝나는 일이라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마성의 역공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더 이상의 의견 대립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사인학과 종리명한을 바라보았다.
“투항한 자들은 어떻게 처리했소?”
5
전마성에선 마종각과 혈전각의 무사 이백과 전마성 최강의 싸움꾼들인 이십팔전마 중 다섯이 호법인 월영신마를 따라 은밀히 움직였다.
남향이 잠강에서 칠십 리 떨어진 모장(毛場)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그들이 모두 합류한 후였다.
혁련호승은 제천단과 무천단, 황파에서 도착한 지원군과 한천 지부의 무사 등 총 오백을 이끌고 모장에서 전초대가 잠강의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천문에서의 소식은?”
혁련호승은 잠강의 싸움보다 천문의 소식에 더 신경을 썼다.
“아직 없습니다, 향주.”
그게 불만인 조용익이 퉁퉁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성의 후속대에서도 소식이 없소?”
“예상대로라면 오늘 신시쯤 합류할 걸로 예상됩니다만, 아직은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제야 혁련호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선도 지부야 제천단과 무천단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잠강 지부는 선도 지부와 달랐다.
황파 지부에서 달려온 이백의 무사가 합류했다 해도 잠강을 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만만하게 잠강으로 향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잠강과 천문 지부를 치면 전마성의 대대적인 반격이 있을 게 분명한 일. 그들을 막고 설립된 지부를 지키기 위해선 그만한 무력이 뒤따라와야 한다.
그들이 곧 올 것이었다.
그것도 천문 지부로 가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강자들이.
다만 문제는, 혁련호승이 좌소천에게 지지 않으려고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다.
“좋아, 일단 쉬도록 해. 후속대가 오면 곧바로 친다!”
혁련호승이 짜증을 내며 명령을 내리고 임시 거처로 정한 객잔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즈음, 제천신궁 후속대는 선도 지부를 출발해서 정신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달려오는 자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잠강 지부에서도 전마성 무사들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서 이를 갈며 달려오고 있었다.
누가 먼저 올지…….
8장 너는 더 겪어봐야 한다
1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을까?
눈처럼 하얀 마차가 가파른 절벽 위에 멈춰 서 있다.
“저기서 신녀를 구했다오.”
노파가 계곡 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백색 마차의 주렴이 걷혔다.
하얀 면사를 쓴 신녀가 고개를 내밀더니 한탄곡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저 아래쪽에 툭 튀어나온 곳이 가물가물하다.
그곳을 바라보는 신녀의 눈빛이 모호한 빛을 띠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의 눈빛이 기공 하나 없는 얼음마냥 투명해졌다.
“맞아요. 나는 저 위에 있었어요.”
한령파파가 담담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 사람이 같이 떨어지면서 신녀를 그곳에 던졌다오. 그는 손이 찢어지는데도 검으로 절벽을 찍으면서 속도를 늦추었지요.”
극히 짧은 순간이나마 신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누군지 아나요?”
한령파파가 슬며시 절벽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사 년 전, 십이정한녀 중 하나를 시켜 그 일에 대한 것을 조사했다. 그리고 석 달 만에 당시 한탄곡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내막을 들었다.
내막을 듣고 난 한령파파는 그 자리에서 딸이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그 일을 알아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복수를 부탁하고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전, 한령파파는 그녀가 원한 보정의 백가장을 멸망시키며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
애지중지했던 정한녀의 목숨과 맞바꾼 진실이 아닌가. 한령파파는 모든 것을 다 진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설령 그게 신녀라 해도, 아직은.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사실 신녀가 한탄곡의 정확한 지형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면 대충 둘러댔을 것이었다. 신녀가 자신의 마음을 엿보고 자신을 죽인다 해도.
그러나 신녀는 너무도 정확히 한탄곡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지난 일이 기억날지도 모르는 일, 한령파파는 모든 것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실과 거짓을 반반 섞어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젊다는 것만 알 뿐…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오.”
계곡의 바람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갈라지며 흩어졌다.
“그는 어떻게 되었나요?”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진데다가 부상까지 입은 상태로 급류에 휩쓸려서……. 아마 그 상태라면 절정고수라 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오, 신녀. 하나 절벽에 검을 박았다고 해서 손이 찢어지는 걸로 봐서는…….”
“그랬군요.”
그때 계곡 아래에서 부는 바람에 면사가 출렁였다.
살짝 드러나는 면사 속의 얼굴.
옥빛 투명한 얼굴은 태양빛이 낯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정도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넋을 잃고, 그녀의 손짓 한 번에 한탄곡으로 뛰어내렸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앵두보다 더 붉은 입술을 슬며시 열어서 나직이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얽매일 것이 없다는 말이군요.”
향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입술에서 하얀 서리가 내렸다.
“그렇다오, 신녀.”
한령파파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신녀는 그래야 하오. 은(銀)이 아무리 크다 해도, 어찌 한(恨)보다 클 수가 있단 말이오.’
신녀가 손으로 잡고 있던 주렴을 놓았다.
“파파, 다음 정한기가 꽂힐 곳이 어디죠?”
한탄곡 위를 스쳐 가던 바람이 얼어붙었다.
“의성(宜城)의 한가장이라오.”
“무당은 언제 갈 거죠?”
신녀의 갑작스런 물음에 한령파파가 어깨를 떨었다.
반드시 쳐야 할 곳이 무당이다. 그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이 무당이 아니던가.
신녀가 아무리 강하다 하나, 무당을 치려면 정한궁의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설령 이긴다 해도 그 피해가 엄청날 것이 분명한 터. 그럼 남들에게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무당을 치고 자멸할 바에는 시기를 늦추는 것이 더 나았다.지금도 정한궁의 힘은 꾸준히 커지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쳐야겠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라오. 하나…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생각이라오.”
“좋아요. 파파의 생각이 그렇다면 일단 한가장부터 치기로 해요.”
“예, 신녀시여!”
2
천문 지부에서 잠강까지는 백여 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개의 강, 한수(漢水)와 천문하(天門河)가 사이에 있어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서 발걸음은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좌소천은 무사 이백여 명을 대동하고 잠강으로 향했다.
혁련호승이 곧 잠강을 칠 터. 그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를 위해 먼저 달려갈 이유는 없는 만큼 시간을 적절히 조절했다.
직속무사들과 패천오대의 무사 팔십오 명.
포규상과 모이산이 이끄는 일대와 이대의 인원 팔십 명.
단청호와 평완동을 비롯한 황파 지부의 무사 이십.
효창 지부와 운몽 지부의 무사 이십.
나머지는 후속대가 오기 전까지 천문을 지키도록 했다.
문제는 네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