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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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65화
65화
그 시각.
작은 보따리를 짊어진 노인 하나가 투덜대며 바삐 효창을 빠져나갔다.
“우적우적, 망할 늙은이들, 대체 어딜 가는데 저렇게 서두르는 거야? 우적우적……. 괜히 따라왔나? 우적, 꿀꺽.”
4
운몽으로 먼저 간 사람은 사인학과 종리명한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운몽에 도착해서 좌소천의 서신을 운몽 지부에 건네주고는 아침이 되기 전에 큰 배 네 척을 구해놓았다.
강의 너비는 오십여 장. 아침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운이 좋군.’
사오 월의 강가에는 짙은 아침 안개가 낀다.
이른 아침 시간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짙은 안개다. 음산함이 느껴질 정도. 하늘이 북향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듯하다.
북향의 인원 모두가 강 건너편에 도착하는 데는 이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좌소천은 운몽 지부에서 차출한 길잡이를 앞으로 내세웠다.
“응성 지부까지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하시오.”
응성까지의 지리는 배에 타기 전 간단하게 숙지한 터다. 더구나 안개가 일행의 움직임을 가려줄 것이었다.
중간에 또 하나의 강이 있지만, 그곳은 깊이가 얕아서 배가 필요없다고 했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길 안내를 맞은 무사가 앞으로 나아가자 사백여 무사가 일제히 서쪽으로 치달렸다.
강가에서 응성까지의 거리는 삼십 리.
전마성의 응성 지부는 응성의 동쪽 외곽, 야트막한 야산에 웅크리고 있었다.
좌소천은 응성 지부가 오 리 정도 남자 북향의 무사들을 셋으로 나누었다.
포규상이 이끄는 일대와 검인보의 무사들이 북쪽을, 모이산의 이대와 운몽 지부의 무사들이 남쪽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대를 이끌고 정면을 치기로 했다.
좌소천은 직속무사 여덟 명과 함께 선두에 섰다.
각 조의 조장들이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음산한 안개는 여전했다.
“누구냐?!”
오대가 안개를 뚫고 정문으로 다가가자 수문위사가 소리쳤다.
정문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네 명.
도유관과 공손양, 종리명한, 전하련이 앞으로 나아갔다.
“웬 놈들이냐?”
수문위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오며 다시 물었다.
“나야.”
태연히 대답한 도유관이 성큼, 한 걸음 나아가더니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찰나, 은빛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퍽!
그와 동시, 공손양과 종리명한의 검이 두 명의 목과 가슴에 꽂히고, 전하련의 추룡편이 뒤로 도망치려는 무사의 목을 감았다.
“커억!”
“허억!”
순식간에 정문을 지키던 네 명의 무사가 꼬꾸라진다.
좌소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 사이를 지나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오가던 몇 사람이 좌소천 일행을 발견하고 의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새끼들, 뭐야?!”
“누가 저것들을 들여보냈어? 이봐! 소삼! 정문을 어떻게 지키는……!”
하지만 그도 잠시, 정문과 담을 통해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뭐, 뭐야?”
“저, 적이다!”
동시에 남쪽과 북쪽 담장 위로도 수백 명이 올라섰다.
그때 이자광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부로! 응성은 제천신궁이 접수한다!”
건물들이 웅웅 울리고, 희미하던 안개가 진저리를 치며 일렁였다.
안쪽에서 이십여 명이 방문을 거칠게 열며 쏟아져 나왔다.
“어떤 새끼가 아침부터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밥을 똥구멍으로 먹었나!”
“그 자식, 주둥이를 찢어 버려!”
숨을 몇 번 쉬기도 전에 무사들의 숫자가 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자광이 다시 소리쳤다.
“대항하는 자는 죽인다! 대항하지 않는 자는 살려준다!”
모두가 좌소천이 미리 지시한 외침이었다.
이자광의 목소리는 수십 명이 웅성거리는 소리마저 묻어버린 채 장원에 울려 퍼졌다.
그 말에 답하듯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이자광의 목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려왔다.
“이놈들이 제대로 미쳤구나! 모두 죽여서 밖에다 던져 버려라!”
나왔던 자들 중 제법 강해 보이는 이십여 명이 무기를 빼 들고는 좌소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바로 그때였다.
좌소천이 달려오는 이십여 명의 무사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딸깍, 무진도가 튀어 오르고, 좌소천의 우수가 무진도를 잡아갔다.
순간, 사람들은 모두 환상을 봤다고 생각했다.
스스스, 쩌저적!
안개가 쩍쩍 갈라지고, 그 끝에서 동백꽃만큼이나 붉은 꽃이 피어난다.
전마성 무사들은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몇 걸음 더 다가오다 밑동이 잘린 보릿대처럼 쓰러졌다.
“허엇!”
“컥!”
“끄윽!”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무진도의 검은 궤적이 몇 번 안개를 긋고 지나가나 싶더니 이십여 명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미처 도유관과 공손양 등이 움직일 시간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응성 지부의 중간 간부로 보이는 자들.
좌소천은 의도적으로 그들을 일거에 쳐버리고는 그 가운데 고요히 서서 이자광을 불렀다.
“이 형!”
입을 반쯤 벌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있던 이자광이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이 시간부로 응성은 제천신궁이 접수한다! 대항하는 자는 죽인다! 대항하지 않는 자는 제천신궁의 이름을 걸고 살려준다!”
좀 전보다도 훨씬 더 큰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덜컹!
대신 방문이 열리며 커다란 덩치의 중년인이 튀어나왔다.
“네, 네놈은 누구냐?”
웅혈검마 우적생. 응성 지부의 부지부장이 바로 그였다.
그가 나오는 동안 응성 지부의 무사들은 삼백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커다란 연무장의 한쪽이 그들로 꽉 찬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세에서 밀린 그들은 침입자들을 칠 생각도 못한 채 눈치만 봤다.
반면에 장원을 빙 둘러 포위한 북향의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이제 숫자란 별 의미가 없었다.
좌소천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흐르자 우적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부장은 어디 있소?”
자신이 아는 한 상대는 전마성 응성 지부장인 황문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덩치가 크지 않았으니까.
“나는 부지부장 우적생이다! 네놈은 누구냐?”
“나는 제천신궁 북향의 향주. 오늘부로 응성 지부는 제천신궁이 접수할 것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본 성의 무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네놈들은 절대 응성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우적생이 버럭 소리쳤다.
그때 뒤쪽에서 이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우적생! 뭐 하는 것이냐? 적들을 쳐라! 놈들을 다 죽여 버려!”
응성 지부장인 철사비검(鐵絲飛劍) 황문이었다.
마침내 그가 나타나자 수십 명의 무사가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죽음을 각오한 표정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좌소천의 눈에 차디찬 미소가 걸렸다.
황문과 우적생의 주위에 몰려든 자들은 전마성의 골수 무사들. 그들은 우적생의 말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지 몰랐다.
하나 나머지 무사들은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는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이십여 명을 단숨에 죽이는 것을 본 이상은.
게다가 대항하지 않으면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제천신궁의 이름을 걸고 말이다!
좌소천이 무진도를 들어 황문을 가리켰다.
이제 마지막 장막을 올려야 할 때였다.
그의 입에서 고저없는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
장원을 둘러싼 사백의 무사,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오백의 무사. 구백에 가까운 무사들의 귀에 좌소천의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스며들었다.
담장 위에 서 있던 북향의 무사들이 일제히 장원 안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적들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덤비는 자들만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대치한 상황이면서도 적극적인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예상대로 상황이 흐르자 좌소천은 황문을 향해 소리없이 몸을 날렸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적의 기세를 죽이는 것. 그리고 머리를 치는 것!
마침 적들은 대응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조장 급 이상 간부들이 황문과 우적생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상태. 그들만 제거하면 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좌소천이 몸을 날리자 도유관과 공손양을 비롯한 직속무사들이 그 뒤를 받쳤다.
패천오대의 무사들도 끓는 피를 식히기 위해 앞으로 달렸다.
전마성 응성 지부의 무사들은 좌소천을 위시한 패천오대가 달려들자 자신들도 모르게 좌우로 쫙 갈라졌다.
“피하지 말고 막아!”
“으악!”
“죽여…… 커억!”
개중 간간이 막아선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두어 번 도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피를 뿌리며 쓰러져 버렸다.
퍽!
도유관의 은빛도끼가 막아서는 자의 이마를 찍고,
스걱!
공손양의 붉은 검이 마주쳐 오는 자의 심장을 가르고 지나갔다.
쾅!
적의 가슴에 일권을 내지른 이자광이 크게 소리쳤다.
“대항하지 않으면 살려준다니까!”
무인지경!
사기가 충천한 패천오대는 모여 있는 전마성 응성 지부의 무사들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길을 뚫었다.
수백의 무사가 있었으나, 사기가 떨어진 응성 지부의 무사들은 결코 패천오대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군.’
좌소천은 땅을 박차고는 곧장 십여 장 떨어진 곳의 황문을 덮쳤다.
“오냐, 이놈!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구나!”
황문이 소리치며 폭이 좁은 검을 휘둘렀다.
그는 조금 전의 상황을 보지 못했다.
하기에 새파랗게 젊은 좌소천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가소롭기만 했다.
‘미친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대문파의 장로들이라 하더라도 자신 앞에서는 한 수 굽히고 들어간다.
하물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살소를 머금은 그가 소리쳤다.
“건방진 새끼, 내 네놈을 다섯 토막 내서 죽여주마!”
하지만 많은 수가 도살에 가까운 장면을 목도한 터다.
그들은 좌소천이 날아들자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찰나였다!
허공이 길게 갈라지며, 황문을 향해서 검은 선 한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막 좌소천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린 황문의 눈이 커졌다.
앞이 캄캄해지더니 거대한 칼이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져 내린다.
‘뭐, 뭐야?!’
놀랄 틈도 없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검을 들어 올려 떨어지는 칼을 막았다.
쩡!
그의 가느다란 검이 부러질 듯 휘어지는가 싶더니, 옆으로 미끄러지며 어깨를 가르고 지나간다.
“크윽!”
그 충격에 뒤로 일 장이나 튕겨진 황문을 향해 좌소천의 두 번째 도세가 밀려갔다.
“허억!”
“지부장님을 구해! 놈을 막아!”
뒤늦게 주변의 무사들이 황문의 앞을 가로막으며 좌소천의 도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좌소천의 도세는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으악!”
“커어억!”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이 대항도 하지 못하고서 피를 뿌렸다.
뒤이어 도유관과 공손양마저 가세하자 도살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우적생이 황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놈! 여기도 있다!”
좌소천의 무진도가 옆으로 꺾어지며 우적생의 검을 후려쳤다.
쾅!
굉음이 일며 우적생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도유관이 피화살을 뿜어내며 튕겨진 우적생을 향해 은빛도끼를 휘둘렀다.
“커헉!”
은빛 벼락이 우적생의 목을 반쯤 찍어내고 다른 먹이를 향해 돌아섰다.
우적생을 튕겨낸 좌소천은 그 반동을 이용해서 황문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대경한 황문이 피로 물든 몸을 뒤로 빼며 검을 휘두른다.
쩡! 쩌저저정!
다섯 번의 칼질에 황문의 가느다란 검이 찢어진 손아귀에서 튕겨진다.
콰직!
좌소천은 좌수를 번개같이 뻗었다.
“컥!”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황문의 목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응성 지부는 이제부터 제천신궁이 접수한다!”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다. 그러나 내력이 실린 목소리여서 드넓은 연무장의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병장기 부딪치던 소리가 반으로 줄었다.
이자광이 또 소리쳤다.
“황문도 잡혔다! 대항하지 않는 자는 제천신궁의 이름을 걸고 살려준다! 무기를 내려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