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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6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60화

 

60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그래요?”

 

홍려운은 좌소천이 웃자 이를 악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좌소천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때 좌소천이 넌지시 말했다.

 

“어떻소, 내가 도법을 하나 알려줄 테니 한번 익혀보겠소?”

 

홍려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정말입니까?”

 

좋아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좌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

 

 

 

 

 

마차가 멈춰 선 곳은 삼십여 장 높이의 완만한 언덕 정상이었다.

 

안개가 희미한 새벽녘,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에 멈춰선 백색 마차 한 대.

 

안개가 마차를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건지, 마차에서 안개가 스미어 나오는 건지 모를 신비한 풍경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백색 마차 주위로 수십 명의 여인이 모여들었다.

 

백의 경장에 백색 면사, 흑의 경장에 흑색 면사, 핏빛 경장에 붉은 면사.

 

합이 구십여 명에 이르는 여인들은 백색 마차를 둘러싼 채 조용히 서서 점점 짙어지는 안개와 하나가 되어갔다.

 

시간이 흐른다.

 

낮게 깔린 안개가 언덕 아래로 흘러간다.

 

모일 사람이 다 모였는지 더 이상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태양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슬그머니 내밀 즈음, 저 멀리 커다란 장원의 지붕도 하나둘 시커먼 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마차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가장, 삼십 년 전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 여인을 구박해서 결국 자살로 내몰고, 그로 인해 욕을 먹자 여인의 가문을 몰래 멸문시킨 자들. 겉으로는 정파의 껍질을 쓰고, 안으로는 마도의 무리보다 더 사악한 짓을 서슴지 않은 악귀들. 저들은 죽어도 마땅한 자들이다. 한에 사무친 정한녀들아, 저들에게 본 궁의 한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려주어라!”

 

구십구 명의 여인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초원에 얼굴을 댔다.

 

“신녀의 뜻을 받들어, 저들에게 여인의 한을 되돌려주겠나이다!”

 

그녀들의 나직한 목소리가 안개 속으로 흐트러짐과 동시, 여인들의 모습도 초원 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일다경, 보강제일의 문파 백가장이 피바람에 휩싸였다.

 

그날, 사시가 되기 전에 백가장의 무사 사백 중 반 이상이 죽고, 반 정도만이 부상을 입은 채 백가장을 탈출했다.

 

싸우는 소리가 멈췄을 때, 장원 안에 살아 있던 사람은 힘없는 가솔들과 여인들뿐이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정문 위에 꽂힌, 정한(情恨)이라 쓰인 깃발을 바라보고는 그제야 살았다는 것을 알고 망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월이 중반에 이른 완연한 봄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기 시작한 혈풍은 단순히 백가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보강에서 이백 리 동남쪽 곡양의 마령문이 피로 씻기고, 또 그 다음날에는 백오십 리 서쪽의 혈곡에서 처참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신출귀몰.

 

하루에 한 곳, 그녀들은 단 사흘 사이에 문파 세 곳의 지붕에 정한기를 꽂고 또 갑자기 사라졌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천하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전마성은 백가장이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정한기의 주인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리라 생각하고 안심했다.

 

그러던 차에 북쪽의 지부인 마령문과 혈곡이 혈풍에 쓸려 버렸으니, 북쪽으로 힘을 키우려던 전마성에겐 대낮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전마성의 성주인 철혈마제 사도철군이 대노했다.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그 계집들을 찾아라! 지원대를 조직해서 지부에 사람들을 보내!”

 

전마성은 급히 지원대를 조직하고 북부 지부의 문파들을 지원하기 위해 무사들을 파견했다.

 

 

 

비상이 걸린 것은 전마성만이 아니었다.

 

백가장은 정도의 문파 중 하나. 무당파도 바빠졌다.

 

백가장의 생존자들이 무당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둘이 아닌 수십 명이다. 그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무당에 도움을 요청했다.

 

비록 정한기에 쓰인 내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백가장을 욕했지만, 그렇다고 백 년간 친분을 유지한 그들을 나 몰라라 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무당은 자파의 제자들도 보호할 겸 제자들을 소집했다.

 

골짜기에 처박혀서 수도에 정진하는 현 자 배 장로들을 모조리 자소궁으로 불러 모으고, 정 자 배 제자들은 누구도 외유를 하지 못하게 했다.

 

뜻밖의 일이라면, 현 자 배의 장로들을 찾던 와중에 영 자 배의 노도인들이 네 명이나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당산에서 수도하던 무당파 외의 고인 십여 명이, 무당파가 어려움에 처하면 돕겠다는 언질까지 해왔다.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무당으로서는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

 

현고자는 몇몇 제자들과 무당산 인근의 속가제자들로 하여금 정한거(情恨車)와 정한기(情恨旗)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조금은 느긋해진 마음으로.

 

 

 

제갈세가도 모든 일을 제치고 그 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갈진우가 죽고 제갈진경이 스스로 옥에 들어간 마당이다.

 

그날, 제갈황은 그냥 돌아온 제갈진경에게 노성을 내지르며 분노했다. 

 

하지만 그도 시신을 살펴본 후에야 제갈진경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단 추살령을 거두어들였다.

 

군자복구 십년불만(君子復仇 十年不晩)이라 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그는 좌소천에 대한 복수를 미루고 분노를 씹어 삼켜야만 했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거라는 다짐을 하고서!

 

그렇게 침울할 때 정한거와 정한기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들은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한수의 경계망을 세 배로 늘렸다.

 

전마성에 이어 무당과 제갈세가가 움직인 상황.

 

호북 전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 곳은 그들과 달리 정한기의 출현을 호기로 생각했다.

 

 

 

 

 

 

 

 

 

5장 전야(前夜)

 

 

 

 

 

1

 

 

 

 

 

“좋아! 호승이와 소천이를 불러라!”

 

혁련무천의 명이 제천전을 울렸다.

 

사공은환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예, 주군!”

 

마침내 때가 되었다.

 

전마성이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혁련무천의 눈에서 신광이 쏟아졌다.

 

‘사도철군, 나도 너의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분노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너와 다른 점이라면, 너는 복수를 위해 움직였지만, 나는 천하를 생각하고 움직였을 거라는 점이다. 그 차이가 천하의 주인을 결정할 것이니라!’

 

 

 

점심 무렵, 제천무령이 오대로 찾아왔다.

 

“패천단 오대 대주 좌소천은 속히 제천전으로 들라는 명이오!”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제천무령이 왜 좌소천을 찾아와서 제천전으로 들라고 하는지 짐작도 못하는 눈치였다.

 

좌소천이 방을 나서려 하자, 공손양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대주, 무슨 일이오? 갑자기 제천전으로 들라니?”

 

“별일 아니오. 모두에게 무기를 점검하고 출정 준비을 하라 일러놓으시오.”

 

“예?”

 

“멀리 가야 할지 모르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거요.”

 

그 말에 공손양이 눈을 빛내며 묻는다.

 

“혹시… 호북으로 가는 겁니까?”

 

그제야 그도 뭔가를 예상한 눈치다.

 

좌소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어쩌면…….”

 

‘천하가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 첫걸음을 떼는 날일 뿐!’

 

 

 

제천전으로 들어가니 혁련호승이 먼저 와 있었다.

 

좌소천은 혁련호승 옆에 나란히 섰다.

 

정한거에 대한 소문을 들은 터다. 왜 불렀는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말이겠지!

 

“패천단 제 오대 대주 좌소천, 궁주님을 뵈옵니다!”

 

공식적인 자리다. 좌소천이 백부라는 호칭 대신 궁주라 부르자 혁련호승이 고개를 돌렸다.

 

그때 혁련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 궁의 앞날이 너희 둘의 어깨에 달려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을 파견하고 싶으나, 당장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지원대가 갈 때까지 최대한의 성과를 보이기 바란다.”

 

“예, 궁주님!”

 

“예, 아버님!”

 

좌소천과 혁련호승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혁련무천이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너희 둘은 형제와도 같으니, 너무 심한 경쟁을 벌여서 공연한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혁련호승은 담담히 대답하고는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잘해보자.”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달리 눈 깊은 곳에는 불길이 잠들어 있었다. 사악한 분노의 불길이었다.

 

‘벌레 같은 거지새끼, 너는 내 밑이나 닦아라.’

 

좌소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겠습니다.”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혁련호승.’

 

그때 사공은환이 입을 열었다.

 

“잠강과 천문 지부를 치고 그곳에 본 궁의 지부를 설립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많을 것이나, 그 두 곳을 점유해야만 전마성의 반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좌소천이 반문을 던졌다.

 

“제가 잠강으로 갔으면 합니다만. 어찌 생각하십니까?”

 

혁련호승이 이마를 좁혔다.

 

잠강에 지부가 설립되면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 천문이 훨씬 더 안전한 곳인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천문 지부는 잠강 지부의 지원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비천한 놈을 지원이나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다니!

 

“아니다. 내가 잠강을 맡으마. 아무래도 이제 갓 생긴 패천단보다는 제천단이 최전선을 맡는 게 더 나을 것 같군.”

 

좌소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위험할지 모릅니다.”

 

“하하하, 그 정도 위험이야 감수를 해야지.”

 

호탕하게 웃는 혁련호승의 눈에서 불길이 일렁인다. 좌소천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서 혁련무천을 바라보았다.

 

“궁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혁련무천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묵직하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어느 곳을 맡던 둘이 상부상조를 해야 할 것이다. 호승, 정말 잠강을 맡을 자신이 있느냐?”

 

“염려 마십시오, 아버님.”

 

자신에 찬 목소리.

 

결국 혁련무천도 혁련호승의 손을 들어주었다.

 

“좋다. 그럼 네가 잠강 지부를 맡고, 소천이가 천문 지부를 맡아라. 각 단주들에게 이야기를 해놨으니 사흘 후에 출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라.”

 

혁련호승이 고개를 돌려서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건방진 새끼, 네놈은 내 발바닥이나 핥아라.’

 

“예, 궁주!”

 

고개 숙이며 대답하는 좌소천의 눈 깊은 곳에서 차디찬 웃음이 번졌다.

 

일단은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

 

 

 

좌소천이 제천전을 나서자 저만치 서 있던 혁련미려가 다가왔다.

 

“출정한다며?”

 

“예, 누님.”

 

“조심해.”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나가거든 사매도 찾아보고. 못 찾겠으면 개방에 부탁해 봐.”

 

개방이라면 거지들이 뭉쳐서 만든 문파다. 

 

천하에 거지가 없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개방의 제자들도 천하에 퍼져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제천신궁과 구포방이 찾지 못한 소영령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영령을 찾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겐들 부탁을 하지 못할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알겠습니다, 누님.”

 

“찾으면… 미안하다는 말 전해주고.”

 

얼마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기가 죽은 모습.

 

좌소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얼굴 좀 펴고 사세요. 예쁜 얼굴에 주름지잖아요.”

 

그 말에 혁련미려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고 보니 조금 나아 보였다.

 

“아직 주름 안 졌어.”

 

“누가 누님을 데려갈지 몰라도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혁련미려가 힐끔거리며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정해질지 몰라.”

 

“누굽니까?”

 

“그건 아직 모르는데, 누가 청혼을 했대. 아버님도 마음이 있는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시집가기 싫었는데…….”

 

제천신궁 주인의 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서 혼인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정해진 사실이다. 어쩌면 그래서 순우무궁에게 더 끌렸을지도 몰랐다.

 

좌소천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서기 전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혁련미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소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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