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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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57화
57화
순간 좌소천의 눈에서 깊고도 맑은 빛이 흘러나왔다.
‘공손양, 하늘을 날고 싶은가?’
공손양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
기껏해야 이화산장 장주의 셋째 아들이라는 것, 가슴에 뭔가 쌓인 게 있어 이화산장을 떠나왔다는 것, 그리고 이자광이나 종리명한, 사인학과는 격이 다른 고수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도유관이 반쪽을 채우기 전에는 공손양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다.’
공손양은 모이산이나 포규상보다 강했다.
아마 정식으로 겨룬다면, 악청백이라 해도 공손양을 쉽게 누르기 힘들 거라는 게 그의 짐작이었다.
그런 공손양이 자신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에게 행운이었다.
손안에 들어온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그냥 날아가게 하느냐 하는 것은 이제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좌소천은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다시 하늘로 눈을 향하자 걸음을 옮겼다.
좌소천의 기척을 알아챈 공손양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뒤따라 이자광도 고개를 돌리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좌소천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웬 곰이 하늘을 바라보나 했소.”
공손양이 조용히 웃으며 이자광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는군요.”
“형님!”
이자광이 버럭 소리치고는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너무 인신공격은 하지 마쇼, 대주. 대주도 만만치 않으니까.”
“내가 뭐 어때서 그럽니까?”
이자광이 머뭇거리더니 작정한 듯 말했다.
“남들이 다 그럽디다. 나무토막이 걸어다니는 것 같다고 말이오.”
하지만 좌소천이 한 수 위였다.
“아니, 나처럼 말하는 나무토막도 있소?”
처음 보는 좌소천의 태연한 농담 짓거리에 공손양의 미소가 짙어졌다.
뿔이 나는지 이자광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럼 나처럼 말하는 곰도 있수?!”
“내가 언제 곰이라고 했소? 곰처럼 보인다고 했지. 지금 신양으로 나가서 어슬렁거려 보시오. 남들이 뭐라고 하나. 아마 황강산에서 곰이 내려왔다고 난리가 날 거요.”
“하하하하!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소.”
공손양이 대소를 터뜨렸다.
이자광은 얼굴이 벌게져서 공손양을 째려보았다.
“정말 그러깁니까?”
공손양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살 좀 빼라고 했잖아?”
“쳇, 언제는 덩치가 커서 장군처럼 보여 멋지다면서요?”
“그것도 어느 정도야지. 내가 그 말을 했을 때와 비교해서 백 근은 더 찐 것 같지 않은가?”
사실이 그러니 이자광도 대놓고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인정하기도 싫었다.
이자광은 손을 옆구리에 끼고 잔뜩 어깨에 힘을 주었다.
“킁.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오, 근육.”
공손양은 피식 웃고는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데 밤에 무슨 일로 나오신 거요?”
“몸이나 풀어볼까 하고 나왔는데… 마침 상대도 있으니 잘되었군요.”
순간적으로 이자광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공손양도 깊게 가라앉은 눈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자신들이 본 것은 모이산과 일도를 나누던 광경뿐이었다.
포규상이나 도유관이 패한 것은 알지만 말로 들은 게 다였다.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우리와 비무를 하겠다는 겁니까?”
“왜요, 싫습니까?”
싫을 리가 없다. 특히 이자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무슨 말씀을! 합시다!”
잠시 후.
좌소천은 죽어도 먼저 하겠다는 이자광과 마주 서서 두 손을 늘어뜨렸다.
이자광은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좌소천에게 물었다.
“오늘 비무를 저번에 한 약속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수?”
“물론이오. 언제든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이자광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우두둑 소리 내며 꺾었다.
‘흐흐흐, 이게 웬 떡이냐. 형님 때문에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최근의 상황으로 봐선 질 확률이 많았다. 숨겨놓은 무공을 모조리 드러낸다 해도 자신의 실력은 잘해야 포규상이나 모이산과 비슷한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대체 얼마나 강해서 그 두 사람이 졌을까, 하는 의문도 풀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자광은 몸을 낮게 숙이고 두 손을 펴서 옆으로 벌렸다.
“조심하슈.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유.”
좌소천은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좌수를 가슴으로 끌어 올렸다.
이자광의 눈이 찌푸려졌다.
도가 아닌 권각으로 상대하겠다는 건가?
자신을 얼마나 얕봤으면 주먹으로 상대하겠다고 하는 걸까.
그 생각을 하니 슬며시 화가 났다.
‘좋아, 아주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그때 좌소천이 가슴으로 끌어 올린 좌수를 쭉 뻗더니, 손을 펴고 까딱거렸다.
‘들어와 봐!’ 그런 뜻으로.
순간 이자광이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오냐, 그래! 어디 한번 혼 좀 나봐라!’
휘잉!
통나무 같은 두 팔을 엇갈리며 휘두르는데 마치 곰이 앞발을 휘두르는 듯했다.
구부러진 손가락은 강철로 휘어 만든 갈퀴 같아서 제대로 걸리면 살점이고 뼈고 견뎌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빠르고 강력한 이자광의 일격에 좌소천은 내민 좌수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순간 이자광의 우수와 좌소천의 좌수가 엉켜들었다.
이자광은 이때다 싶었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좌소천의 좌수를 거머쥐었다. 당장에 손목을 부러뜨리겠다는 듯.
‘뭐야? 별거 아니잖아?’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 이자광은 거머쥔 좌소천의 좌수를 잡아당기며 좌소천의 가슴을 향해 강철 갈퀴 같은 왼손을 뻗었다.
동시에 좌소천의 우수가 이자광의 왼손을 마저 휘감았다.
그때였다.
“어?!”
이자광은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분에 의아한 일성을 내뱉었다.
좌소천의 건곤을 휘돌리는 손짓에 따라 이자광의 거대한 몸이 빙글 한 바퀴 돈다.
거대한 곰이 허공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만 같다.
좌소천은 이자광의 몸을 한 바퀴 돌리고는 한 걸음 내딛으며 두 손을 앞으로 밀어냈다.
곰이 공중제비를 돌며 허공을 날아갔다.
쿵!
이 장 밖으로 날아간 곰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지축이 흔들렸다.
발딱 일어선 이자광은 벌건 얼굴로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제길! 좀 더 침착했으면 한 방 갈길 수 있었는데!’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자광은 눈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좌소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힘껏 움켜쥔 그의 두 손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뭉클거리며 흘러나왔다.
“아자아아!”
좌소천은 하늘을 날아오는 곰을 바라보며, 하늘을 가리키던 우수와 땅을 가리키던 좌수를 뒤집고는 찰나간에 세 바퀴 휘돌렸다.
순간 대기가 이지러졌다.
연무장을 훑고 지나가던 바람이 그 안에 갇혔다.
다섯 자 반경으로 커진 소용돌이.
무엇이든 다 빨아들일 것 같은 소용돌이가 이자광을 향해 밀려갔다.
‘뭐, 뭐야?!’
숨이 턱 막힌 이자광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두 손을 떨쳐 냈다.
순식간에 스물네 개의 머리통만 한 권영이 좌소천을 폭풍처럼 쓸어갔다.
폭풍철권!
이자광이 아끼고 남 앞에 함부로 보이지 않는 비기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펼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미,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콰르릉!
좌소천과 이자광의 기운이 뒤엉키며 우렛소리가 연무장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맞부딪치며 휘돌자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금방이라도 좌소천을 땅속으로 파묻어 버릴 것 같던 이자광의 권영이 점차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더니, 십여 초가 지나는 사이 거짓말처럼 소멸되었다.
뻑!
그 와중에 통나무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곰이 또 한 번 허공을 날았다.
털썩!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이자광이 끙,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씨블, 지미, 끄응…….”
공손양이 스르르 미끄러지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정도면 되었다. 네가 졌다는 걸 인정해라.”
“나도 알고 있수!”
이자광은 씩씩거리며 일어섰다.
그때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자광이 그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다.
십여 초를 겨루었다. 나름 상대를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좌소천이 서 있는 곳은 처음 그 자리다. 그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완벽한 패배!
이자광은 질린 표정으로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포규상이 왜 순순히 도유관을 내주었는지, 도유관이 왜 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직속무사를 자청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 저따위 인간이 다 있어?’
그때 공손양이 천천히 담장 옆의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길게 뻗은 가지 하나를 꺾더니, 석 자 길이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쑥 훑어내고 몇 번 휘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좌소천을 향해 돌아섰다.
“지금 바로 하시겠습니까?”
나뭇가지를 검 대신 사용하겠다는 공손양이다.
좌소천도 두 자 길이의 나뭇가지를 하나 꺾었다.
공손양보다 한 자가 짧은 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길이 차이는 큰 영향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공격은 공손양이 먼저 했다.
기이하게도 그가 뻗은 나뭇가지에서는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불을 다스린다는 이화신공(理火神功). 이화산장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이화신공이 실려 있음이다.
좌소천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뻗어오는 공손양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나뭇가지를 마주 뻗었다.
쩡!
두 개의 나뭇가지가 한 자를 남겨놓고 부딪쳤다.
나뭇가지가 부딪치며 나는 소리라 믿을 수 없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공손양이 나뭇가지 끝을 돌렸다.
좌소천도 돌렸다.
따라랑!
옥구슬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연이어 십여 번 울렸다.
공손양이 나뭇가지로 찔러댔다.
찰나간에 수십 개의 몽둥이가 밀려오는 듯 보인다.
좌소천도 나뭇가지를 빙글 돌리며 밀었다.
쿠구구구궁!
밀려오던 수십 개의 몽둥이가 하나하나 부서지며 환영처럼 스러졌다.
좀 더 신중해진 공손양이 손목을 비틀었다. 허공에 붉은 기운이 쟁반처럼 뭉쳤다.
순간 좌소천이 나뭇가지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쩌억! 쩌엉!
붉은 쟁반이 반으로 쪼개지며 귀청을 울렸다.
갑자기 바닥의 흙먼지가 옆으로 쏴아 밀려나고, 이자광이 흠칫하며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섰다.
“으음…….”
공손양이 처음으로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두 걸음 밀려났다.
악다문 입, 몸을 꼿꼿이 세운 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충격이 작지 않은지, 나뭇가지를 든 손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정도였던가?’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도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건 생각보다 더하다.
전력을 다한다면 과연 몇 초나 상대할 수 있을까?
전이었다면 이삼십 초는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부딪쳐 본 지금은 그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 초?’
그것이 공손양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놀라기는 좌소천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강하군. 이미 절정의 경지에 든 지 오래되었어.’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미 이자광과 공손양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다. 그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그가 아니었다.
‘도유관에 이어 좋은 사람을 또 하나 얻었군.’
그것도 많은 사람이 딸린 공손양을. 그러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구경꾼이 많아졌으니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겠군요.”
좌소천의 말에 공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비무였습니다.”
이자광과의 비무는 결코 조용한 비무가 아니었다.
건물 뒤에서 소란스런 비무가 벌어졌는데 어찌 무사들이 잠들 수 있으랴.
아주 당연하게도, 패천단 오대의 무사들 중 상당수가 구석구석에 숨어서 비무를 지켜보았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한 번도 감지 않은 채.
그리고 그들 중에는 관추릉과 언자홍도 있었다.
관추릉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과 비무를 벌였으니 상당히 힘이 빠져 있을 거야.’
이자광과 공손양은 고수다. 그런 두 사람과 싸운 이상 힘이 빠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공손양과 좌소천의 비무가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비무였는지 알아볼 수 없는 그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공손양이 예를 취하고 뒤로 물러서자 관추릉은 검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섰다.
“대주, 지금 비무를 신청해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