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42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42화
42화
죽기 직전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회광반조.
어쩌면 그것일지도 몰랐다.
제갈조릉은 바짝 몸을 붙이고 제갈진우를 향해 소리쳤다.
“숙부님!”
그 충격 때문인지 제갈진우의 손끝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바로 그 순간, 제갈조릉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한곳에 시선을 멈춘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갈진우의 손끝이 글을 쓰고 있다. 흐릿한 초서가 힘겹게 이어진다.
[자득(自得). 부(不)… 수(讐)… 초려(草廬)… 하(下).]
자득이라니? 복수를 하지 말라니?
‘초려 밑?’
그가 한참 멍하니 그 글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으로 멸사검대주 제갈추가 들어왔다.
“당주, 왜 철수시킨 겁니까?”
제갈조릉은 입술을 깨물고 제갈진우가 쓴 글자를 지워 버렸다.
“모두 돌아왔는가?”
“아직 대여섯 명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나서 본가로 철수한다! 추적은 본 당이 맡을 것이니 너희들은 항시 출동대기 상태를 유지해라!”
“예, 당주!”
제갈추가 수하들과 함께 주위를 정리하는 사이, 제갈조릉은 초려로 들어갔다.
초려의 안은 넓지 않았다. 그나마도 초려의 반쯤은 책으로 쌓여 있었다.
초려 밑에 뭐가 있기에 죽기 직전 그런 글을 남긴 걸까?
제갈조릉은 제갈진우가 글을 남긴 뜻을 파악하려 애쓰며 빠르게 초려 바닥을 살펴보았다.
책을 치운 후 바닥에 깔린 대나무 자리를 들추어내고, 혹여 비밀스럽게 만든 비고가 있는지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 보았다.
하지만 제갈진우의 침상까지 들추고 샅샅이 훑어보았는데도 이상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갈추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주, 정리가 끝났습니다.”
제갈조릉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바닥을 한 번 더 살펴보고는 몸을 돌렸다.
“철수하자!”
그는 벽에 걸린 낡은 족자 앞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제갈량이 초려 안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그려진 족자였다.
* * *
젊을 때는 지룡(智龍)이라 불렸고, 나이 먹어 혜왕(慧王)이라 불리는 자.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황에게 제갈조릉의 보고가 들어간 것은 일각 후였다.
그는 마시던 찻잔으로 탁자를 내려치고 대경했다.
탕!
“뭐라? 숙부께서 돌아가셔?”
고개를 숙인 제갈조릉이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마저 보고를 올렸다.
“청죽만상진이 깨져 있고, 한 팔을 잃은 숙부께서는 심장이 뚫린 채……. 소제가 조금 더 서둘렀어야 하는데…….”
“지금 그게 문젠가? 그래, 놈은! 놈은 어디로 갔는가?”
“숙부님을 해치고 나서 양양 쪽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양양? 그럼 한수를 타고 내려가려는 건가?”
“그리 예상하고 수하들을 보내 탐문 중입니다, 가주!”
제갈조릉은 보고를 올리고 제갈황의 반응을 살폈다.
제갈황의 눈 깊은 곳에서 불길이 인다. 금방이라도 제갈세가를 뒤흔드는 일갈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제갈황의 성격은 온화한 듯하면서도 냉철하기가 무정효보다 더했다. 그가 중원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가주가 된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제갈황의 입이 열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언제 분노했냐는 듯 격동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은 후였다.
“다른 피해는?”
제갈조릉은 제갈황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마저 보고를 올렸다.
“멸사검대 다섯이 중상을 입은 채 돌아왔습니다, 가주. 그리고…….”
제갈조릉이 머뭇거리자 제갈황이 굳은 얼굴로 제갈조릉을 직시했다.
“뭘 머뭇거리는가? 말해보게.”
제갈조릉은 마지막으로 제갈진우가 남긴 글자에 대해 보고했다. 나중에 자신이 한 번 더 확인해 볼 생각으로 ‘초려 하’라는 글자는 빼고서.
순간 제갈황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싸늘한 광채가 쏟아졌다.
“자득? 숙부께서 복수를 원치 않으셨다고?”
“그런 뜻으로 보였습니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소제뿐입니다.”
제갈황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겠지?”
“그래서 지운 것입니다. 소제는 가주 형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제갈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를 포기하는 거야 문제가 아니다.
하나 그리하면 천하가 제갈세가를 얕볼 터. 그는 숙부의 뜻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놈의 뒤를 쫓는 것은 현천단과 절호당에게 맡길 것이네. 놈이 천하 어디로 가든 행적을 놓치지 말도록.”
“예, 형님.”
“숙부님의 장례는 최대한 성대하게 치를 것이네. 그 자리에서 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할 것이야.”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군. 그럼 나가서 장로들을 모두 모이라 전해주게.”
“예, 형님.”
제갈조릉이 밖으로 나가자 제갈황이 태사의에 깊숙이 등을 묻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처음부터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진을 무력으로 돌파한 자라……. 정말 그가 순수한 무력만으로 청죽만상진을 돌파했을까?”
천하에 그러한 무위를 지닌 자가 몇이나 될 것인가.
아마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대고수라는 뜻!
그가 제갈조릉의 판단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였다.
하기에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왜 제갈진우가 복수를 포기하라 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 * *
제갈세가에서는 전대 절호당주이자, 추적에 있어서 천하일절로 손꼽히는 제갈진경이 형님의 복수를 하겠다며 직접 나섰다.
그는 제갈승의 전서를 꼼꼼히 살피고는 양양으로 향했다는 수하들의 보고에 고개를 저었다.
“놈은 무정효라 불리는 승 조카를 농락한 놈이다. 일반적인 생각만으로 잡을 수 있는 자가 아니야.”
그는 주력을 이끌고 양양을 뒤졌다.
양양에서 제갈세가는 제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인상착의를 전달하자마자 양양이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두 시진 만에 구석진 곳 객잔에서 장하경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봤다는 사람이 나왔다.
그로부터 일각 후, 장하경이 어떤 청년과 함께 한수를 건너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갈진경은 즉시 절호당으로 하여금 적의 흔적을 쫓도록 하고, 제갈세가 제일의 무력 단체인 현천검대의 무사 삼십 명과 세 명의 중견 고수를 대동한 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이틀.
제갈세가의 추적대는 대홍산 북쪽 삼십 리 지점에서 좌소천과 장하경의 흔적을 발견했다.
두어 시진 전에 지나간 흔적이었다.
절호당의 제이조장인 제갈부는 추적 형태를 횡에서 종으로 변환시켰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이십 장 거리로 놈들을 쫓는다.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고, 발견 즉시 신호를 보내도록.”
2
약초를 떼어낸 자리에선 붉은 새살이 보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상처가 덧나지 않을 듯했다.
좌소천은 손에 들린 약초를 쥐어 즙을 짜냈다. 약초 즙이 장하경의 어깨에 떨어져서 상처 속으로 스며들자, 벌겋게 일그러진 장하경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끄으으으으!”
하지만 좌소천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약초를 쿡쿡 찍어서 즙이 더 잘 스미도록 했다.
“어흑! 꺼헉!”
얼굴의 상처가 쩍쩍 벌어졌다 닫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힘을 주었는지 상처에서 핏물이 배어나올 정도였다.
좌소천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끝까지 손을 멈추지 않고 일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야 남은 약초를 장하경의 상처에 얹고 천으로 어깨를 감쌌다.
어깨를 다 감싸고 손을 떼자 이를 악문 장하경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갑시다, 장 형.”
“예, 좌 공자.”
* * *
장하경의 상처를 치료하고 출발한 지 두 시진. 좌소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은밀한 기운이 그들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를 쫓아올 자들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제법 빨리 쫓아왔군.’
은밀한 기운이 백 장 가까이 접근하자 좌소천이 장하경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쫓아왔소. 싸움이 벌어지거든 무리하지 말고 수비에 중점을 두도록 하시오.”
장하경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좌소천은 굳이 추적대와 거리를 벌이려 하지 않았다. 거리가 점점 줄어드는데도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다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자 걸음을 멈추었다.
한쪽에 백 장 절벽이 있어서 삼면만 방어하면 되는 곳.
우거진 숲 앞의 공터가 제법 넓어서 암습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추적자들이 삼십여 장 거리로 근접한 상태. 좌소천은 장하경을 절벽에 붙어 있게 하고 조용히 서서 적을 기다렸다.
스스스스스…….
기다리는 사이 적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여섯… 열…….
숫자가 많아지자 자신이 생겼는지 제갈세가 무사들이 숲에서 나왔다.
제일 먼저 나온 자는 제갈부였다.
그는 나서기 전에 한참을 망설여야만 했다.
상대는 제갈광마저 죽인 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자신보다 어려도 한참은 어려 보였다.
정말 저놈이 절정의 고수일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
더구나 이십 명의 조원이 다 모인 상황이다.
제갈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설사 상대가 절정의 고수라 해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포기한 건가?”
좌소천은 앞으로 나선 제갈세가 추적대를 둘러보았다.
전부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잘해야 서른 초반 나이에 키가 큰 자가 수장인 듯 보였다.
그때 멀리서 또 다른 기운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들이 본진인 듯했다.
“성질이 급하군.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벌써 나타나다니.”
“큭, 굳이 그분들까지는 오시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글쎄…….”
좌소천은 천천히 뒷짐 지고 있던 두 손을 풀고 걸음을 옮겼다.
순간 그를 향해 서너 명의 무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미리 이야기가 된 듯 철저히 합공을 하면서.
하지만 잠시잠깐의 방심은 그들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우르르릉!
우렛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서너 번의 주먹질에 사상의 방위가 무너지며 달려들던 무사들이 사방으로 튕겨졌다.
“크으윽!”
“커헉!”
대경한 제갈부가 급히 수하들을 독려하며 전권으로 뛰어들었다.
“철저히 진세로 대응해!”
좌소천은 무사 일곱이 칠성의 방위를 점한 채 달려들자 금환비영을 펼쳤다.
동시에 아홉 번의 주먹질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콰과과광!
칠성진의 변화 정도는 환히 꿰뚫고 있는 좌소천에게 진세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피해!”
“허어억!”
순식간에 다섯 명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남은 두 명마저 비틀거리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제갈부는 십여 걸음을 물러선 채 아연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이, 이 정도였다니!’
휘이잉!
바람이 누런 흙먼지를 쓸어갈 때다. 숲이 갈라지며 삼십여 명이 장내로 날아들었다.
“멈춰라!”
제갈세가의 본진이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그들 중 중년인 셋이 장내로 들어서자마자 좌소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셋째 숙부를 죽인 놈이더냐?”
좌소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두 주먹이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움직였다.
건곤이 휘돌며 강력한 권풍이 세 사람의 공격을 감싸고 휘돌았다.
쿠구구궁!
중년인들은 달려들 때만큼이나 빠르게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좌소천과 제갈세가 무사들 사이에 다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사이 제갈진경이 앞으로 나섰다.
“왜 형님을 살해한 것이더냐?”
그는 감정을 앞세워 무작정 손을 쓸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고 장내가 수습될 시간을 기다리며 좌소천을 압박했다.
좌소천도 서두르지 않았다.
제갈세가의 원로가 나선 것으로 봐서 이들이 전부인 듯했다.
“죽일 이유가 있었으니까 죽인 것 아니겠소?”
“죽일 이유? 형님께선 오래전부터 초려에 기거하며 학문에만 힘쓰신 분이다. 그런 분을 죽일 이유가 뭐란 말이냐?”
“우습군. 그런 사람이 왜 남의 앞잡이가 되어서 평화로운 섬에 피를 뿌리게 했단 말이오?”
“뭐라?”
“만패철검 선우궁현이라는 분이 그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 무슨 말이냐? 선우궁현은 천외천가의 사람들에게 죽었다고 들었거늘, 형님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