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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36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36화

 

36화

 

 

 

 

 

 

이 년 전.

 

영허 진인은 세속의 모든 인연을 떨치고 거처인 승허암에서 우화등선했다. 우화등선하기 전날 밤, 좌소천의 세맥을 타통 시켜 주고서.

 

그 후 혼자가 된 좌소천은 절벽의 그림을 모두 지우고도 바로 승허암을 떠나지 못했다.

 

자신에게 모든 공력을 쏟아 부은 영허 진인이 마지막으로 부탁을 한데다가, 부탁의 말미에 내민 한 권의 책자 때문이었다.

 

그것은 천악신마 악붕의 무공이 적힌 책자였다.

 

그곳에는 단 칠 초의 도법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영허 진인이 없애려 했을 정도의 패도적인 도법이.

 

그 도법의 이름은 멸악천도(滅惡天刀)!

 

단지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좌소천은 전율이 일어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영허 진인의 부탁도 부탁이었지만, 그 도법을 본 좌소천은 승허암을 떠나지 않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강해지려 작정한 그였다.

 

하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스스로 하늘이 되기 위해서!

 

그는 강해지기 위해서 그 도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무진도를 지니고도 제대로 된 도법을 익히지 못한 그가 아니던가.

 

그렇게 이 년. 좌소천은 멸악천도를 무연칠식에 융화시키고는 무진칠도(無瞋七刀)라 이름 붙였다.

 

무진도의 무거움은 결코 멸악천도를 익히는 데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거움이 멸악천도의 지나친 신랄함을 억누르고 강맹한 위력은 더욱 강맹하게 배가시켰다. 

 

멸악천도가 생각보다 쉽게 무연칠식에 융화되고, 무진칠도로 재탄생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컸다.

 

멸악천도가 무진도를 만나서 진정한 천도(天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허 진인에게 구함을 받은 지 사 년 사 개월째 되는 삼월의 어느 날 아침, 좌소천은 승허암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천외천가여! 그대들은 내가 있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2

 

 

 

 

 

좌소천이 자소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날 점심 무렵이었다.

 

떠나기 전 몇 사람과 인사라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자소궁이 가까워지자 왠지 모를 무거운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왜 저렇게 경비가 삼엄하지?’

 

언뜻 느껴지는 사람의 수만도 이십여 명. 얼핏 보이는 자소궁 안쪽에 무당의 제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좌소천은 다가가던 걸음을 늦추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안을 엿보는 것이냐?!”

 

안쪽에서도 그를 봤는지 누군가가 소리쳤다.

 

동시에 두 사람이 자소궁에서 날 듯이 튀어나왔다. 

 

둘 다 이제 서른 전후로 보이는 자들이었는데, 평범한 체구인 사람은 검을, 덩치가 큰 사람은 도를 차고 있었다.

 

둘 중 도를 차고 있는 거한이 예리한 눈빛으로 좌소천을 살펴보았다.

 

“무당의 제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댄 누군가?”

 

평복. 옆구리에는 도(刀) 한 자루.

 

그런 복장을 한 무당의 제자가 있을 리 만무한 일. 당연한 물음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무당의 제자가 아닌 자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무당의 제자는 아닙니다만, 무당과 인연은 있지요. 한데 그러는 두 분은 뉘십니까? 아무리 봐도 무당의 제자는 아닌 듯합니다만.”

 

“흠…….”

 

검을 찬 자가 콧숨을 내쉬며 좌소천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무림맹 호정단의 무사들이다. 이 안으로는 당분간 누구도 들일 수 없으니 괜한 목숨 잃기 전에 돌아가라.”

 

호정단은 무림맹 산하 사단 중 하나.

 

그곳은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는 곳이었는데, 이백 명의 단원은 모두 구파, 오가와 대문파의 제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명무실하던 무림맹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더니…….’

 

식량을 가지고 오는 정은이 강호의 일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무림맹에 대한 것도 그의 말을 듣고 알았다.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세력이 너무 팽창하자,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오십 년 만에 무림맹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무림맹의 인사들이 무당까지 직접 찾아왔단 말인가?

 

어쨌든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들어갈 수 있습니까?”

 

검을 찬 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글쎄, 그건 우리도 모른다. 그러니 볼일이 있거든 돌아가서 나중에 오도록.”

 

그는 조금 강압적인 말투로 좌소천을 쫓아내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첩자로 오인 받아 봐야 자네에게도 좋을 것 없잖은가?”

 

좌소천은 그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 친 순간, 검을 찬 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입가에 떠 있던 비릿한 조소는 씻은 듯이 사라진 후였다.

 

‘이, 이런, 내가 왜……?’

 

그는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좌소천은 그를 더 바라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돌아선 그가 몇 걸음 내려갔을 때다.

 

“어? 무진!”

 

저 아래쪽에서 이십대 초반의 도사 하나가 좌소천을 보더니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좌소천이 그를 보고 조용히 웃음 짓자 그가 마주 빙그레 웃었다.

 

“무진, 어쩐 일인가? 식량이 떨어진 건가?”

 

“아니네, 정은.”

 

정은(靜殷). 그는 좌소천과 나이가 동갑이었는데, 승허암에 맨 처음 찾아왔던 현오자의 막내제자였다.

 

그는 좌소천이 식량을 가지러 올 때마다 아는 척을 하더니, 육 개월이 넘자 친구처럼 지내자며 먼저 말을 텄다. 

 

좌소천도 소탈하게 사람을 대하는 그가 싫지 않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후 정은이 직접 식량을 들고 승허암에 왔는데, 영허 진인은 그를 앉혀놓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 해주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마다 좌소천은 두 사람만을 남긴 채 자리를 피해주었다. 영허 진인이 정은을 통해서 무당에 뭔가를 남기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오자도 상황을 알았는지 정은을 열흘에 한 번씩 영허 진인에게 보냈다.

 

무당파에서 좌소천을 허물없이 대하는 유일한 친구, 영허 진인의 마지막 심득을 얻은 무당의 제자. 그게 정은이었다.

 

좌소천이 정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승허암을 떠나려고 하네.”

 

“떠난다고? 오늘 말인가?”

 

“해서 그간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나 하고 가려고 했지.”

 

“이런, 만일 장문인이나 사부님을 만나려 했다면 시간을 잘못 잡았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왜 저 안의 경비가 저리 삼엄하지? 다른 문파의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기보단…….”

 

잠시 망설이던 정은이 좌소천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좌우간 이리 오게. 지금 가봐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테니까.”

 

 

 

정은은 좌소천을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 저 안에는 무림맹의 장로 다섯 분이 와 계시네. 그 바람에 본 파의 제자들도 허락받지 않고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네.”

 

“무림맹이 제천신궁과 전마성 때문에 힘을 키우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만, 그들이 정말 그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는 건가?”

 

“남쪽으로 세력을 뻗는 것에 한계가 있다 보니 자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더군. 그럼 자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잖은가?”

 

그건 그랬다. 힘이 있는 자일수록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천하제일패라는 제천신궁이 아닌가? 

 

비옥한 곳을 근처에 놔둔 채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그들의 힘이 너무 강했다.

 

게다가 그런 제천신궁의 움직임에 전마성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월맹도 무너졌는데 자신들이라고 해서 무너지지 말란 법이 없잖은가 말이다.

 

강호에 무지한 좌소천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왜 다시 무림맹을 중심으로 뭉치려 하는지 이해가 갔다.

 

더구나 무당은 전마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문득, 좌소천의 눈 깊은 곳에서 싸늘한 광채가 번뜩였다.

 

‘천하가 요동치기 직전이란 말이지?’

 

하지만 정은은 좌소천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자신이 아는 강호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힘을 결집하기 시작한 무림맹의 움직임, 제천신궁을 비롯한 천하사패의 준동.

 

와중에 좌소천이 천외천가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천외천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

 

“글쎄, 몇 년 전 제천신궁에서 천외천가를 향해 한바탕 난리를 친 후로 그들은 활동을 자제하고 움직이지 않는 걸로 알고 있네.”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영허 진인에게 구함을 받고 정신을 차렸을 즈음, 혁련무천이 천외천가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고 했다.

 

그 일로 전 강호가 들썩이고, 천외천가의 가주가 큰아들인 순우무종을 보내서 본의 아니게 제천신궁에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사죄를 했다고 한다.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 같군. 내려가세. 떠날 때 떠나더라도 식사는 해야 하지 않겠나?”

 

 

 

결국 좌소천은 현고자를 만나지 못하고 자소궁을 떠나왔다.

 

현고자와는 영허 진인이 우화등선한 그날 단 한 번 봤을 뿐인 사이,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서너 달에 한 번씩 승허암에 들러서 영허 진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현오자를 만나지 못한 것만이 조금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도재전에 들어가려고 하자 누군가가 정은을 불렀다.

 

“정은 사제, 어디 갔다 오는 길인가? 한참을 찾았지 않은가?”

 

정은이 뒤를 돌아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도인이 느물거리는 웃음을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하관이 뾰족하니 빠진데다 가는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것이 얍삽하면서도 냉혹하게 보이는 자였다.

 

“정은이 정수 사형을 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것인지요?”

 

“대사형께서 시킬 일이 있다고 너를 찾아보라고 해서 찾은 거다.”

 

도인의 도호는 정수. 정은의 다섯 사형 중 셋째였다.

 

그는 기회만 되면 정은을 골탕 먹이고 무공을 가르쳐 준다며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사부인 현오자가 정은을 편애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찌나 교묘하게 괴롭히는지 정은은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그 괴로움을 삭여야만 했다.

 

정은의 나이 스물이 넘고, 절치부심 익힌 무공이 정수와 비슷해지기 전까지 무려 팔 년간을.

 

물론 그 후부터는 힘이 아닌 사형이라는 명분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지만.

 

그러니 정은이 그와 마주치기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사형께선 어디 계십니까?”

 

“연은전에 계실 거다. 옆에 있는 도우는 영허 사백조의 의손이라는 무진 도우가 아닌가?”

 

그가 좌소천을 바라보며 그러잖아도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좌소천을 본 사람은 많아도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은 무당을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무당의 장로들이었고, 일반 제자 중에선 십여 명만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정수도 도재전을 자주 오갔기에, 정은이 직접 식량을 승허암으로 가져오기 전 식량을 구하러 내려온 좌소천을 먼발치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사형. 이 친구가 무진입니다.”

 

정수가 가늘게 뜬 눈으로 좌소천을 훑어본다.

 

“흠, 그래? 한데 이상하군. 사백조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검을 차고 있어야 정상인데 칼을 들었다니, 어떤 무공을 익혔지? 무당의 무공을 배운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은근히 시비조다.

 

좌소천도 정은에게 정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심심하면 괴롭히고 골탕 먹이기 일쑤라 했다. 어찌나 교묘하게 괴롭히는지 당하고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 혼자 삭여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하기에 좌소천은 그를 무시해 버렸다.

 

“대사형이 부른다면 빨리 가봐야 하지 않겠나? 나는 아무래도 그냥 떠나야 할 것 같군.”

 

순간 정수의 가늘게 뜬 눈이 뱀처럼 싸늘하게 번뜩였다. 정은도 못마땅한데 무당에서 빌어먹고 사는 놈이 자신의 말에 일언반구 대꾸도 없다니.

 

‘이 건방진 놈이!’

 

“사백조의 의손이라는 걸 대단한 신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정수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좌소천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한쪽으로 흘려버렸다.

 

“정은, 주위가 어수선하니 식사는 다음에 하지.”

 

정은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 마지막으로 식사나 함께하려고 했더니.”

 

그때, 더 참지 못하겠는지 정수가 싸늘히 소리치며 좌소천에게 다가왔다.

 

“네가 지금 나를 무시하겠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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