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9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9화
29화
그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부채를 든 백의청년이 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하면 소영령을 낚아채려 했다. 그런데 동료의 위기를 외면한 채 소영령의 허리를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어림없다!”
오른손에 부채를 든 순우무궁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빛을 한 채 노은을 향해 마주쳐 갔다.
쾅!
두 사람의 공격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노은과 순우무궁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노은은 순우무궁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소영령이 다칠까 봐 차마 전력을 쏟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이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라는 것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 대가는 작지 않았다.
노은은 가슴이 턱 막히는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네놈이……!”
“누구도 내게서 백미를 뺏어가지 못한다!”
결코 인질로 잡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집착이었을 뿐이다. 하나 그로 인해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이놈!”
분노한 노은이 다시 순우무궁을 공격했다. 그의 쌍장이 강력한 기운을 토해내며 순우무궁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순우무궁의 무위는 결코 노은의 아래가 아니었다.
분노만으로 순우무궁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콰광!
다시 한번 정면으로 두 사람의 공세가 부딪쳤다.
“으음…….”
노은이 창백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반면에 선우무궁은 차가운 냉소를 입에 물고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흐, 그따위 무공으로는 나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좌소천은 노은이 뛰쳐나간 것을 보고도 숨어서 기회를 엿보았다.
‘침착해야 돼! 침착해야 된다, 좌소천!’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놈들의 심장을 가르고 목을 쳐서 백부의 한을 갚고 싶었다.
그러나 그전에 소영령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소영령만 구하고 나면 아수라라고 욕하더라도 놈들을 처참하게 죽일 것이다.
그렇게 이를 악다문 채 참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이 두어 번 격돌한 순간, 백의청년의 옆구리가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
기회!
‘이놈!’
좌소천은 무진도를 소리없이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노은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조심하게!”
그러나 좌소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소리없이 달려드는 좌소천의 공격에 순우무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네놈이 감히!”
그의 부채가 쫙 펼쳐지더니 너덜너덜한 부챗살이 좌소천의 무진도를 후려쳤다.
쩌엉!
좌소천은 옆으로 밀려난 도를 그대로 미끄러뜨리며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는 공격.
쩌저정!
다시 한번 부채가 충돌한 무진도의 방향이 틀어졌다.
찰나,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린 좌소천이 홱 몸을 돌리며 좌수로 건곤신권을 펼쳤다.
순간 거대한 압력이 순우무궁의 머리를 짓눌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좌소천의 무위.
그걸 본 노은의 목소리가 활기를 띠었다.
“이제 보니 대단한 친구였군! 좋았어! 우리가 놈을 잡자고!”
힘이 솟은 노은은 함께 달려들며 순우무궁의 하체를 향해 쌍장을 날렸다.
대경한 순우무궁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부채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콰과광!
“흐읍!”
“크윽!”
“으음…….”
좌소천과 순우무궁, 노은이 동시에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순우무궁이 튕겨진 힘을 이용해서 교초온 쪽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위청현, 비혁산과 함께 교초온을 합공하던 남운평이 잠시 멈칫거렸다.
순간이었다.
순우무궁이 남운평을 공격하고는, 남운평의 장력을 역이용해서 숲 속을 향해 몸을 날렸다.
“교 장로, 뒤를 부탁하겠소!”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우무궁 덕에 합공에서 벗어난 교초온은 엉겁결에 숲을 가로막고 섰다.
자신들을 두고 도망가는 순우무궁에게 분노가 일었지만, 당장은 그를 지켜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쫓지 못할 것이다!”
“웃기는 소리! 비켜라!”
위청현과 비혁산과 남운평이 다시 교초온을 공격했다.
그사이 좌소천과 노은이 다급히 숲 속으로 들어갔다.
“멈춰라, 이놈!”
“거기 서!”
숲은 큰 나무가 별로 없었다.
대신 가시덩굴과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좌소천은 비연신법을 펼쳐서 나무를 박차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령매가 이상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비록 딱 한 번뿐이지만 눈이 마주쳤다.
숨 막히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백의청년의 옆구리에 끼어진 소영령의 눈은 허공을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움도 반가움도 없는 기이한 표정. 결코 정상인의 표정이라 볼 수 없었다.
더구나 소영령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좌소천은 그 생각에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령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숲은 그리 깊지 않았다. 십여 번의 도약에 끝이 보였다.
자신보다 한발 먼저 숲을 벗어난 노은이 백의청년의 뒤를 쫓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백의청년의 옆구리에는 소영령이 끼어져 있었다.
좌소천은 전력을 다해서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백여 장을 가기도 전에 노은과 백의청년이 부딪쳤다.
콰광! 쩌저정!
“이놈! 그 아이를 내놓아라!”
“흥! 누구도 나에게서 백미를 뺏어갈 수 없어!”
백미? 대체 누구를 백미라고 한단 말인가?
‘설마 령매를?’
좌소천은 그제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백의청년은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멋지게 생긴 자였다. 그런 자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린다.
‘저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령매가 위험해!’
미쳤다는 것은 언제든 소영령을 인질로 삼고 해칠 수 있는 자라는 말이다.
좌소천은 무진도를 늘어뜨리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접전은 어느새 오륙 초를 흐르고 있었다.
노은은 소영령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공격을 못하고 있었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무위에 공격조차 마음대로 못하니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좌소천은 옆으로 돌아가며 몸을 낮추었다.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백의청년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노은의 불리함이 상쇄되고 있었다.
좌소천은 서둘지 않고 끈기있게 기회를 엿보았다.
어차피 백의청년은 더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의 십여 장 뒤쪽은 언뜻 봐도 하늘도끼에 맞아서 쩍 갈라진 듯 보이는 협곡이었다. 자신과 거리가 이십 장이나 되는데도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는 미친 자.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슨 짓을 벌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좌소천은 천천히 그의 뒤쪽을 막아섰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노은의 장력에 밀린 백의청년이 비틀거리며 두 걸음을 물러섰다.
찰나였다.
쉬이익!
좌소천이 튕겨 나가며 순우무궁의 옆구리를 향해서 도를 휘둘렀다.
순우무공은 그의 공격에 당황해서 부채를 흔들었다.
좌소천은 찰나간에 네 번의 칼질로 부채를 걷어냈다.
쩌저저정!
일수유의 순간에 네 번의 칼질이 부채를 후려쳤다.
처음과 같은 충격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의 공력이 많이 소모되었다는 뜻.
자신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아직은 견딜 만했다.
좌소천은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의 오른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바로 그 순간, 순우무궁이 갑자기 협곡 쪽으로 달려갔다.
노은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멈춰라, 이놈!”
좌소천도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그때 협곡 앞에 선 순우무궁이 홱 몸을 돌렸다.
그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후후후후, 백미는 내 것이다. 누구도 뺏어가지 못한다! 선우궁현이 와도 절대 뺏어가지 못해! 뺏길 바에는 차라리 버릴 것이야!”
“멈춰!!”
좌소천은 머리가 하얗게 비는 충격에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놈이 팔을 뻗고 있다.
놈의 손끝에 소영령이 매달려 있다.
천 길 낭떠러지를 향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안 돼!!”
좌소천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순우무궁의 향해 몸을 날렸다.
“위험하네! 돌아오게!”
노은이 대경하며 소리쳤다.
그는 협곡, 한탄곡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탄곡은 깊기도 한 곳이지만 바람이 워낙 거센 곳이었다. 신법이 절정에 달한 자신도 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곳.
“조심하게! 한탄곡에 떨어지면 죽어!”
하지만 좌소천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은 순우무궁의 손끝에 집중되어 있었다.
“놓으면 안 돼! 놓지 마!”
그가 소리친 순간.
“크하하하하! 백미는 내 것이야! 그러니 버리는 것도 내가 버리겠다!”
순우무궁이 미친 듯 광소를 터뜨리며 소영령을 협곡에 던졌다.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리며 숲 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령매에에!”
“이보게!”
좌소천이 참담한 표정으로 외치며 미친 듯이 달려가고, 노은은 그런 좌소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멈추라니까!”
그러나 좌소천은 달리던 몸을 멈추지 않았다.
하얀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있는 소영령이다.
그걸 보고 어찌 멈춘단 말인가!
“령매! 내가 간다! 정신 차리고 나를 봐!”
좌소천은 오히려 절벽을 힘껏 박차고 아래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까마득한 아래쪽에 구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협곡의 물길이 보인다.
절벽의 높이는 적어도 백수십 장. 떨어지면 전신 혈맥이 터져 죽을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순식간에 삼십여 장 아래로 떨어져 내린 좌소천은 좌수를 뻗어서 소영령을 끌어안았다. 그사이에도 떨어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를 악문 좌소천은 완만하게 휘어진 절벽이 가까워지자 우수에 들린 무진도로 절벽을 찍었다.
콱! 드드드드득!
두 치가량 파고든 무진도가 절벽을 그으며 미끄러졌다.
“크으읍!”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는데도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덕분에 속도가 반은 줄어들었다.
좌소천은 금환비영을 펼쳐서 몸을 최대한 가볍게 했다. 소영령을 붙잡고 있는데도 속도가 조금 더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뿐. 십여 장을 내려가기도 전에 속도가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무공에 중점을 두느라 신법을 도외시한 것이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좌소천은 계속 절벽에 도를 박아 넣고 미끄러졌다.
콱! 드드드드!
찢어진 손아귀에서 핏물이 흘러내려 팔뚝을 적신다.
무진도를 움켜쥔 손아귀에서 점점 힘이 빠진다.
바로 그때! 이십여 장 아래쪽, 우측으로 꺾어진 곳에 단애에서 튀어나온 곳이 보였다.
‘영령아! 어떻게든 너만은 내가 구해줄 것이다!’
이를 악문 좌소천은 무진도로 절벽을 힘껏 밀치고 방향을 틀었다.
‘조금만 더!’
소영령을 안아 든 좌소천의 신형이 단애에서 툭 튀어나온 곳으로 날아갔다.
바로 그 순간!
휘이이잉!
거센 돌개바람이 불더니 그의 몸을 밀어냈다.
‘이, 이런! 안 돼!’
그대로만 날아가면 튀어나온 곳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손아귀가 완전히 뜯겨져 나가도 다시 한번 도로 절벽을 찍으면 속도도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몸을 다스린 후 내려갈 방법을 찾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개바람에 밀려서 이대로 내려가면 튀어나온 곳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다.
생각하는 사이 목표 지점이 코앞이 다가왔다. 예상했던 대로 빗나갈 듯했다.
좌소천은 또다시 절벽에 무진도를 힘껏 꽂았다.
찰나 무진도가 한 치가량 파고들며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앗!”
좌소천은 좌수로 안고 있던 소영령을 목적했던 곳에 힘껏 내던지고는, 찢어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무진도를 재빨리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동시에 그의 몸이 다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털썩!
얼핏 소영령의 몸이 단애에서 툭 튀어나온 곳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바닥까지 남은 거리는 삼십 장 남짓.
격랑 치는 계곡물의 용 울음소리 같은 울림이 들려온다.
‘하늘이여! 백부님! 부디 누군가가 영령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마지막 염원을 하늘에 빈 좌소천은 팔다리를 넓게 펼치고서 모든 공력을 아래쪽으로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