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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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화
17화
다행히 그들의 공력은 좌소천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무진도의 무거움이 적을 상대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오래 막지는 못해도 두어 번 정도 막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으로선 처음으로 하는 실전인데도 그리 떨리지 않았다. 하긴 내공을 쓰지 않은 비무였지만, 절정고수인 운추양의 사심이 깃든 도를 삼 년이나 상대하지 않았던가.
가끔은 원망도 했는데, 지금은 운추양이 고맙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게 칠팔 초가 흐르자 적의 투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붙었다.
“백부님! 뒤는 너무 걱정 말고 앞을 먼저 처리하세요!”
좌소천은 대뜸 소리치고는 날아드는 검을 옆으로 비껴 쳤다.
그것이 짧은 시간이라 해도 선우궁현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좋아! 잘한다, 소천아!”
교초온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앗!”
검신이 두 자 정도의 짧고 넓은 검을 든 교초온은 십 장을 단숨에 날아서 선우궁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좌우에서 흑의인들이 달려들고, 전면에서 황의인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상황. 그런 와중에 행해진 교초온의 공격은 선우궁현의 얼굴을 굳히게 하고도 남았다.
“차아아앗!”
선우궁현은 철검을 휘둘러서 전면의 황의인들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교초온을 향해 철검을 치켜들었다.
순간이었다. 치켜든 선우궁현의 철검에서 시퍼런 빛이 번쩍이며 교초온의 검과 부딪쳤다.
쾅!
선우궁현이 주춤거리며 한 걸음을 물러섰다.
반면에 교초온은 뒤로 훌쩍 몸을 날리더니 세 걸음을 물러서서 몸을 세웠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목소리가 경악으로 떨려 나왔다.
“검… 강?”
그때 통통한 얼굴의 중년인이 두 개의 륜(輪)을 꺼내 들고는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모두 함께 쳐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충돌의 여파에 뒤로 물러섰던 자들이 일제히 선우궁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교초온도 다시 검을 움켜쥐고 신중하게 선우궁현을 향해 뻗었다.
쾅!
쩌저저정!
삼 초의 공방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적들 중 흑의인 둘과 황의인 하나가 선우궁현의 공격권을 벗어나서 좌소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보다 훨씬 신랄한 검초. 얕보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들은 좌소천을 자신들의 상대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서 도검을 펼쳤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
좌소천은 이를 악물고 무진도를 휘둘렀다.
따다당!
선우궁현과의 거리는 이 장. 적들의 연환공격에 자신을 도와줄 수가 없는 상태다. 그나마 더 이상의 적이 자신 쪽으로 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좋아! 결코 방해물이 되지는 않겠어!’
좌소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도를 휘두르는 손이 더욱 빨라졌다.
초식의 순서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휘둘렀다.
올려치고, 흘리고, 비껴 치고, 내려치고…….
조금의 거침도 없는 도식이 좌소천의 손에서 쏟아졌다.
땅! 쩌저정!
황의인의 검이 옆으로 밀려난다.
그 사이를 흑의인의 도가 파고든다.
눈코 뜰 새도 없이 적들의 공격이 이어진다.
“타앗!”
좌소천의 무진도가 크게 원을 그리며 흑의인의 도를 감아 옆으로 튕겼다.
천만다행으로 내력에서는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황의인의 공력이 자신보다 강한 것 같지만, 그것 역시 무진도의 뛰어남으로 어느 정도 상쇄되고 있다.
뜻밖의 강한 반발에 황의인이 검을 고쳐 쥐며 소리쳤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순간, 좌소천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적을 먼저 쳤다.
“조심해라! 앞으로 나아가지 마!”
그때 뒤에서 선우궁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흠칫한 좌소천이 다시 물러서려 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황의인과 흑의인이 동시에 공격했다.
좌소천은 이를 악문 채 무진도를 다섯 번 휘둘러 세 사람의 검과 도를 쳐냈다.
찰나, 검이 팔을 스치고, 도가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흡!”
순간적으로 팔과 옆구리에서 전해지는 싸늘한 느낌.
좌소천은 혼신을 다해 무진도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은 듯했다. 도를 휘두르며 물러서는데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순간적인 충격으로 호흡이 흐트러져서인지 숨이 거칠어졌을 뿐.
하지만 생사를 가르는 격전에서는 그 작은 차이가 곧 삶과 죽음인 것.
힐끔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본 선우궁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아앗!”
그는 대뜸 검강으로 인해 두 자가 길어진 철검을 연속으로 휘둘러 적과의 거리를 벌리고는, 두 걸음을 물러서서 좌소천과의 거리를 좁혔다.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계속 검강을 써서 상대하는 것뿐. 그러나 공력의 소모가 막대해서 언제까지 계속 검강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조차 확신할 수가 없다.
거기다 두 명의 절정고수가 합세한 상황.
혼자라면 거칠 것이 없다. 이십 초 정도면 전면에 있는 자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동안 좌소천이 견딜 수 있을까?
좌소천의 능력은 흑의인 둘을 상대할 수 있는 정도. 황의인이 합류한 이상 지금 좌소천의 능력으로는 이십 초를 막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다른 자들이 가세한다면 그 시간은 더욱 단축될 것이 분명한 터.
자존심을 생각해서 위기를 자초할 수는 없었다.
번개처럼 판단을 마친 선우궁현은 좌소천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슬쩍 고개를 돌리고 전음을 보냈다.
<내가 검을 펼치고 적들이 뒤로 물러서거든 내 손을 잡아라!>
그러고는 좌소천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않고 전면을 향해 나아갔다.
갑자기 이 장을 나아간 선우궁현이 철검을 휘둘러 허공을 가로로 가르며 소리쳤다.
“이놈들!”
허공이 갈라지며 쩍!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대경한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메뚜기처럼 뛰어 뒤로 물러났다. 와중에 두어 명은 미처 물러설 틈도 없이 검강에 몸이 갈라졌다.
“크억!”
“흐악!”
그걸 본 교초온과 손자기가 이를 악물고 선우궁현에 대항했다.
쩌어엉!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교초온과 손자기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선우궁현은 때를 놓치지 않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서 뒤로 주욱 물러났다. 그러자 대경한 두 명의 황의인이 좌소천을 공격하려다 말고 대경해서 몸을 뺐다.
그때 선우궁현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자신감을 얻은 좌소천이지만, 자만에 빠져 상황을 오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선우궁현의 좌수를 힘껏 움켜쥐었다.
순간 선우궁현이 남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좌소천도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채 선우궁현의 몸놀림을 도왔다.
“막아!”
남쪽에 있던 자들은 모두 다섯. 하지만 그들로서는 선우궁현의 철검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선우궁현의 철검이 휘둘러지며 검풍이 일자 물러서기에 급급한 그들이다.
그사이 선우궁현은 그들의 머리를 타넘어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쫓아라!”
손자기가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쳤다.
“비겁하게 도망가는 거냐, 선우궁현!”
교초온이 몸을 날리며 외쳤다.
“하하하하! 내가 가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
선우궁현의 웃음소리가 답처럼 들려왔다.
결국 교초온과 손자기는 이백여 장을 가다 말고 멈춰야만 했다. 거리가 멀어져서가 아니었다. 거리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쫓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들 둘뿐이었다.
천귀단의 단원들과 도유당의 무사 중 남은 자는 열셋. 그나마도 내상을 입어서 이백여 장을 가기도 전에 오십 장의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둘이 가서는, 솔직히 선우궁현의 검강을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교초온은 까마득히 멀어지는 선우궁현을 보고 허탈한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중원칠기의 무공이 이토록 강했단 말인가?”
손자기도 소름이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만일 선우궁현이 끝까지 싸웠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꼬맹이를 죽일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우리 또한 모두 죽었겠지. 나도 교 장로도…….’
그런데 도망을 쳤다. 중원칠기 중 한 사람이 자존심조차 내팽개치고.
그래서 손자기는 선우궁현이 더 두려웠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공자, 순우무궁. 그는 포기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한편, 선우궁현은 오 리를 달리고 걸음을 멈췄다.
적이 쫓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선우궁현이 손을 놓자 좌소천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부님. 제가 백부님의 명예에 누를 끼쳤습니다.”
선우궁현은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좌소천의 옆구리 상처를 살피며 웃었다.
“하하하! 나는 말이다,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도망쳤다. 거기에 한 번 더 더해졌을 뿐인데 뭐가 미안하단 말이냐?”
“예?”
“어디, 상처 좀 보자.”
좌소천은 뜻밖의 말에 고개를 들어 선우궁현을 바라보았다.
중원칠기는 삼성, 오제, 팔마와 더불어 천하를 아우르는 고수들이다. 그런 고수가 수백 번도 더 도망쳤다니, 그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런데 여전히 맑은 모습, 환한 표정의 선우궁현이다.
“왜, 믿지 못하겠느냐?”
“아니, 그게 아니오라…….”
뭐라 대답한단 말인가?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백부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고, 믿는다고 하면 수백 번 도망친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흠,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군. 그래도 이런 상처를 얕보면 큰일 난다. 일단 덧나지 않게 약을 바르고 싸매놓자.”
“저에게 옷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백부님.”
좌소천이 웃옷을 벗고는 보따리에서 새 옷을 꺼냈다.
그러자 선우궁현이 좌소천이 벗은 옷자락을 찢어 배를 둘러주고는 다시 옷자락을 하나 찢었다.
“내가 왜 만패철검이란 별호를 얻은 줄 아느냐?”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왜 하필 만패철검일까?
선우궁현은 찢은 천으로 좌소천의 팔을 감싸고 매듭을 지어 조였다.
“그만큼 많이 패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십오 년 동안 팔천팔백 번 패했는데, 팔천팔백패철검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는지 사람들이 만패철검이라고 부르더구나.”
좌소천은 새 옷을 입으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선우궁현을 올려다봤다.
선우궁현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팔천팔백 번, 그 이후로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좌소천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팔천팔백 번 패했다는 것이 만승을 했다는 것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자존심이 상해서 죽자사자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길가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아마 자신뿐이 아니라 강호의 무사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팔천팔백 번의 패배를 딛고 중원칠기의 한 사람이 된 선우궁현. 좌소천은 그런 선우궁현을 백부로 삼았다는 것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때 선우궁현이 말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졌지만 내 검은 완성된 검이 아니다. 단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검일 뿐이지. 그래서 말인데……. 어떠냐, 조카인 네가 한번 완성해 볼 생각은 없느냐? 꼭 검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무공인데 말이야.”
좌소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백부님…….”
“왜? 싫냐?”
“그게 아니라…….”
탁!
선우궁현이 좌소천의 등을 쳤다.
“너는 다 좋은데 가끔 말을 더듬어 탈이다!”
‘그게 어디 제 탓인가요? 백부님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지요.’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황사바람은 어느새 걷히고 하늘은 파란 물을 들인 듯 시원해 보였다.
좌소천의 답답하던 마음도 하늘처럼 맑게 갠 느낌이었다.
“실전은 처음이지?”
“예, 백부님.”
“그래, 느낌이 어떠냐?”
좌소천은 솔직히 말했다.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