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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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1화
11화
‘차라리 모든 것을 다 말하고 궁주에게 도움을 청할 걸 그랬나?’
그런 마음을 가져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녀가 혁련무천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좌유승을 아우처럼 생각했다면, 죽이더라도 절대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었다.
목을 치다니!
만인 앞에서 그토록 처참하게 죽이다니!
고통스럽지 않게 죽일 수도 있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효과는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좌유승이 빼돌린 제천단의 무사들은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 군사가 스스로 처참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을 알고 투지를 불태웠을 테니까.
하지만 동방선유는 그것으로써 혁련무천이 남편에게 베푼 은혜를 상쇄시켜 버렸다.
자식의 앞날을 생각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런 혁련무천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믿지 못했다.
“어떤 경우가 닥쳐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예, 어머니. 어머니도 조심하셔야 돼요. 그리고 절대 나서지 마세요. 아셨죠?”
동방선유는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좌소천의 머리를 잡아당겨 가슴에 안았다.
“이 어미는 우리 소천이와 늙어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단다.”
“저도 그래요, 어머니.”
좌소천도 어머니 동방선유의 허리를 감싸 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호로로로! 삐이이이익!
그때 멀리서 밤새 소리가 들렸다.
동방선유는 좌소천의 머리를 가슴에서 떼어내고 밖을 향해 말했다.
“조 대주님, 밖에 계신가요?”
숨 두어 번 쉴 시간이 지나자 밖에서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태부인, 부르셨습니까?”
“들어와 보세요.”
문이 열리고 삼십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경비를 서고 있는 무사들을 이끄는 자로 호성당 제칠대주인 조철신이라는 자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동방선유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전에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봤어요. 아무래도 그동안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이 뭔가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희들이 지키고 있는 이상 궁내에서 함부로 이곳을 넘볼 사람은 없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궁내의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조철신의 눈빛이 싸늘히 빛났다.
“정말 태부인께서 하신 말씀대로 외부인이 이곳을 넘본다면 저희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동방선유가 조철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그들이 만일 제가 생각한 자들이 맞는다면 결코 호성당 무사 열 명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어요.”
잠시 말문을 닫은 조철신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이곳에는 저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태부인.”
호성당만 있지 않다?
동방선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왜 알리지 않은 걸까. 최소한 자신들에게만큼은 알렸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누가 와있나요?”
조철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밀천단의 삼유(三幽)가 비밀리에 움직였습니다.”
밀천단이라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밀스런 일을 총괄하는 단체다. 과거 좌유승이 이끌던 군사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자들.
더구나 삼유라면 밀천단 내에서도 서열 십위 권 근처에 있는 초일류의 능력자들이다. 그것이 정보를 모으는 것이든, 살인을 하는 것이든.
그런 자들이 와 있다는 것은 혁련무천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혁련무천이 직접 명을 내렸든지.
문제는 상대가 정말 천외천가의 사람들이라면 그들이라 해도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요. 그러니 속히 사람들에게 알려서 대비를 하라고…….”
미처 동방선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삐이이익!
밤새의 울음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날카로운 소리가 야공을 갈랐다.
동방선유와 조철신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좌소천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갔다.
“소천아, 물러서라!”
동방선유가 다급히 소리치며 창문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커억!”
“웬 놈이냐?!”
밖에서 억눌린 비명과 호통이 터져 나왔다.
“위험하니 여기 계십시오. 제가 나가서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철신이 다급히 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동방선유는 손을 저어서 촛불을 끄고는, 좌소천을 이끌고 창문이 있는 벽 쪽으로 가서 등을 붙였다.
“호성당 때문에 놈들의 마음이 급해진 것 같다. 적이 창문으로 들어올지 모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좌소천은 조용히 내력을 끌어올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저는 걱정 마시고 어머니 몸을 돌보세요.”
좌소천은 동방선유를 향해 나직하고 빠르게 말하고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의 동향을 살폈다.
아직 초가을인데도 한겨울이라도 된 듯 싸늘한 기운만이 온 집 안을 덮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죽 북 터지는 요란한 소리.
침입자가 한둘이 아닌 듯하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라!”
조철신의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들린다.
좌소천은 조금 더 확실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창문가에 바짝 붙었다.
그때였다!
쾅!
창문이 터져 나가며 한 사람이 폭풍에 휘말린 듯 날아들어 왔다.
어둠 속의 방 안을 뒹구는 그는 호성당의 무사 중 한 사람인 소지석이라는 자였다.
“크윽!”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그의 왼팔이 어깨 부위에서 덜렁거린다.
덜렁거리는 부위에서 뿜어지는 시뻘건 핏물.
창밖의 횃불로 인해 유난히 붉어 보이는 피가 방 안을 검게 물들인다.
순간 좌소천은 눈을 빛내며 바닥을 바라보았다. 소지석의 것으로 보이는 검 한 자루가 탁자 옆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좌소천이 검을 주워 들기 위해서 움직이려 할 때였다.
“거기 그대로 있어라!”
동방선유가 나직이 소리치더니 몸을 낮추고 바람처럼 움직였다.
“어머니!”
어머니가 검을 주워 든다.
동시에 창문 밖에서 오한이 들 정도의 싸늘한 기운이 몰려온다.
“조심하세요!”
좌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튀어나가며 창문 쪽을 향해 노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횃불의 불빛을 등에 지고 안으로 날아든다. 소리없이 움직이는 것이 유령 같기만 하다.
좌소천은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통과했다 싶은 순간, 좌소천의 주먹이 허공에 작은 원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찰나, 검은 그림자의 손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좌소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좌소천은 급박히 몸을 비틀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 해보는 실전이지만 긴장을 느낄 새도 없었다.
오직 본능에 의해서 움직일 뿐.
쉬익!
뭔가가 어깨 위를 스치며 지나간다.
싸한 통증. 바람이 뼈 사이를 지나가는 것만 같다.
곧이어 불에 달궈진 인두가 어깨를 뚫는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흐읍!’
조금만 늦었으면 가슴이 꿰뚫렸을지도 모를 일.
이를 악다문 좌소천은 몸을 최대한 옆으로 눕히며 비연번신의 신법을 펼쳐서 몸을 뒤집었다.
동시에 대경한 동방선유가 검은 그림자를 향해 검을 날렸다.
“물러서라!”
쩌정!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고, 좌소천을 덮치던 검은 그림자가 옆으로 흘렀다.
“금라비화검! 역시 우리의 생각이 맞았구나!”
몸을 세운 검은 그림자의 입에서 희열에 찬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몸을 세우고 동방선유를 바라보며 경악성을 발한 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구르다시피 몸을 피한 좌소천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 부서진 창문의 나무 쪼가리가 손에 잡혔다. 비스듬히 부러져 나간 부분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나무 쪼가리였다. 길이는 한 자 반 정도.
좌소천은 나무 쪼가리를 움켜쥐고 몸을 낮춘 자세 그대로 검은 그림자의 옆을 향해 쇄도했다.
급박한 상황에 어깨의 통증조차 잊어버렸다.
찰나에 일 장 반의 간격이 좁혀졌다.
뒤늦게 검은 그림자가 몸을 틀었다.
“엇?”
그때였다. 좌소천이 움직임과 동시에 동방선유가 검을 날렸다.
좌소천의 공격이야 가소롭기만 했다. 그러나 동방선유의 공격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일. 검은 그림자는 뜻밖의 양면 협공에 유령 같은 몸놀림으로 뒤로 물러섰다.
문제는 이곳이 방 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방 안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동방선유와 좌소천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뒤로 물러서는 검은 그림자의 진로를 막았다. 검은 그림자로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턱!
진로가 막히고 멈칫한 순간, 좌소천의 전신 공력이 담긴 나무 쪼가리가 검은 그림자의 옆구리에 꽂혔다.
“큭! 이놈이!”
검은 그림자가 대노하며 좌소천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온 동방선유의 검이 그의 칼을 쳐냈다.
쩡!
그사이 좌소천은 뒤로 몸을 눕히며 자신이 꽂은 나무 쪼가리를 힘껏 발로 차고 몸을 굴렸다.
매끈한 도검이 아닌, 거친 나무 쪼가리가 내장을 파고든다.
“크윽!”
검은 그림자의 입에서 또다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다시 동방선유의 검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의 무공은 좌소천이나 동방선유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번개처럼 칼을 휘둘렀다.
쩌저정!
동방선유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검은 그림자는 탁자와 의자를 발로 차서 부숴 버리고는 불길이 이는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둘 다 살려서 데려가려 했더니, 네놈만큼은 필히 죽여야겠구나!”
그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천외천가 도유당의 당주인 자신이 젖비린내 나는 꼬마에게 당하다니!
어이가 없어 두 눈에 불이 붙고 콧구멍에서 연기가 날 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좌소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흥! 도적놈들! 네놈들은 절대 내 아들을 해칠 수 없다!”
동방선유가 검을 움켜쥐고 재빨리 좌소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결코 반 각 전의 일개 여염집 여인이 아니었다.
자식의 위험 앞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어머니’가 바로 그녀였다.
검은 그림자는 그런 동방선유를 덮치며 칼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순식간에 사오 초의 공방이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검은 그림자의 도에서 푸르스름한 도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라면 동방선유가 막아내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강맹한 도세였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는 자식이 있었고, 검은 그림자의 옆구리는 나무 쪼가리에 의해 뚫려 있었다.
검은 그림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와 검이 부딪칠 때마다 충격이 옆구리를 뒤흔들었다. 불꼬챙이가 꽂혀 있는 느낌.
그는 뜻대로 되지 않자 점점 초조해졌다.
시간이 없었다. 곧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몰려올 터.
최선은 물건의 행방을 알고 계집을 죽이는 것. 차선은 물건은 못 찾아도 계집을 죽이는 것이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행하는 수밖에.’
어느 순간, 검은 그림자의 칼날에서 넘실거리던 푸르스름한 도기가 안개처럼 뭉쳤다.
동방선유는 검은 그림자의 뜻을 간파하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은 죽어도 자식은 살려야 한다는 것.
“생각대로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도적놈들!”
동방선유가 싸늘하게 소리칠 때다.
두 사람의 의도를 짐작한 좌소천이 부서진 의자의 나무토막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곤처럼 쓰기에는 무리가 없을 듯했다.
어깨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좌소천은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소리쳤다.
“어머니! 곧 궁내의 무사들이 올 테니까 힘을 합쳐 버텨봐요!”
좌소천마저 달려들 것만 같은 상황.
초조해진 검은 그림자는 동방선유를 향해 거칠게 도를 휘둘렀다.
쒜엑!
종전과 달리 그의 도에서 대기를 찢어발기는 기음이 터져 나왔다.
동방선유도 혼신을 다해 삼초 이십칠식의 금라비화검을 펼쳤다.
좌소천이 끼어들 틈도 없이 벌어진 격돌이었다.
콰과과광!
일순간, 두 사람의 전력을 다한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