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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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화
2화
한때는, 아니, 석 달 전만 해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그다. 그러나 연이어 세 번의 실수를 하고, 오백여 정예무사를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잃은 그는 단 석 달 만에 죄인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가족들도 내궁의 군사부에서 외궁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다만 마침 제게 의견이 하나 있어서…….”
그래도 고개를 숙이며 끝까지 말하겠다는 그다.
결국 혁련무천이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의견 개진을 허락하였다.
“말해보라. 여기까지 왔으니 말하는 것 정도야 못 들어주겠는가?”
그제야 그가 말했다.
“본 궁과 가장 가까운 곳은 신월맹이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또한 나머지 사패 중 지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혁련무천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는 것 말고, 새로운 것을 말하란 말이다!”
“예, 궁주.”
짜증을 내는 혁련무천의 다그침에도 굴하지 않고 그가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본 궁과 신월맹의 힘이 합쳐지면 전마성도 사천련도 감히 도발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쾅!
혁련무천이 태사의의 팔걸이를 부서지도록 내려치고 벌떡 일어섰다.
“유승, 자네!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건가? 그렇군.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그런 것 같구먼.”
“어찌 속하가…….”
“아니라 이 말인가? 좋다! 그럼 본론을 말해봐라! 만일 특별한 계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 용서치 않고 지난일의 죄까지 물을 것이니라!”
혁련무천의 대노에 모두가 침을 삼키는 것도 삼가고 눈도 굴리지 않았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천둥벼락같이 들릴 것 같은 대전의 분위기다.
그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신월맹과 단순히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신월맹을 쳐서 흡수하자는 것이옵니다, 궁주.”
“뭐라!”
혁련무천이 버럭 소리쳤다.
그런데도 왜소한 체구의 그는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비록 신월맹의 총단이 난공불락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고는 하나, 저에게 신월맹의 총단을 단숨에 부술 수 있는 비책이 있사옵니다.”
“그대가 감히……! 그간의 공을 생각해서 참형의 죄를 단순히 근신하는 것으로 무마했거늘, 뭐라? 사돈지간인 신월맹을 쳐?”
“궁주, 궁주의 누이가 안타깝기는 하나, 대의를 위해…….”
“그마아안!”
혁련무천이 으르렁거리며 불길이 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여봐라! 제천무령주 여가릉은 밖에 있느냐!”
갑자기 혁련무천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대전의 문이 덜컹 열리고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속하 대령이옵니다, 궁주!”
혁련무천의 손이 그를 가리켰다.
“죄인 좌유승을 묶어 뇌옥에 가두어라!”
쿵!
대전에 앉아 있던 오전오각의 주인들이 벌떡 일어섰다. 개중에 좌유승과 가깝게 지냈던 몇 사람이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궁주! 좌 군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간의 공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한 번만…….”
혁련무천이 단칼에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만! 누구도 그를 비호하지 마라! 그는 나와 사돈지간인 신월맹을 치고자 하는 자다! 감히 나 혁련무천을 배덕한 자로 취급했단 말이다! 닷새 후 참형에 처할 것이니 모두 그렇게 알고 물러가라! 누구든 그를 비호하려는 자는 함께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니라!”
대전이 뒤흔들릴 정도로 노성을 내지른 그는 자신의 말이 끝나자 홱 몸을 돌렸다.
“데려가라!”
뒤에서 제천무령주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괘씸한 놈! 아우처럼 대해주었거늘, 뭐라? 내 누이가 어떻게 되든 말든 신월맹을 치자고?”
그는 끓어오르는 노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다시 몸을 홱 돌렸다.
“모두 돌아가게! 당분간 회의는 없네!”
돌아서서 소리치는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유승……. 잘 가게.’
3
칠월 육일 아침.
일천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의 참수형이 집행되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오백의 최정예무사를 천하사대금지 중 하나인 귀무곡(鬼霧谷)에 집어넣어 실종되게 했다는 죄였다.
거기에 더해 궁주를 기만하고 사돈지간인 신월맹을 이간질시키려 했다는 죄목이 추가되었다.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에요!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궁주님!”
“궁주,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가족들과 친우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에도 형의 집행은 멈추지 않았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 순간, 얼어붙은 은빛 비늘처럼 차가운 칼날이 그대로 좌유승의 목에 떨어졌다.
“아버지이이이!”
“여보오오오!”
4
칠월 칠일 저녁.
신월맹에서는 맹주인 비월신군 초동강의 거처에서 축하연이 열렸다.
가장 껄끄러웠던 적인 제천신궁의 군사 신유(神儒) 좌유승의 죽음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하하하하! 혁련무천이 그래도 의리는 있단 말이야. 우리가 전마성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돈 간의 의를 잊지 않다니, 안 그런가?”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맹주.”
“별수 있나. 우리도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런 것인데. 그래도… 당분간은 전마성과도 거리를 두세나. 혁련무천이 자신의 오른팔보다 아끼던 자를 죽이면서까지 마음을 보였는데, 우리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맹주. 그러잖아도 전마성에 잠시 일을 미루자고 연락을 넣었습니다.”
“하하하! 잘했네. 현웅, 역시 자네는 내 마음을 아는구먼. 자, 들게! 신월맹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맹주께서도 만복을 누리소서!”
그렇게 연회가 무르익어 자정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대답 대신 신월전의 문이 떨어져 나갈 듯이 거세게 열리고 한 사람이 다급히 들어섰다.
사십대 초반의 중년 무사였다. 뛰다시피 초동강 앞에 당도한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급히 외쳤다.
“맹주!”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사현웅이 이마를 찌푸리며 들어선 자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들어선 자는 그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초동강을 향해 소리쳤다.
“급습이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술 취했느냐!”
“놈들이, 제천신궁 놈들이 쳐들어왔사옵니다, 맹주!”
초동강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전위, 그리 말한다고 내가 놀랄 거라 생각하나? 이봐, 현웅. 전위에게도 술 한 잔 따라주게나! 아마 우리끼리만 마시니까 골이 난 모양일세!”
초동강의 말에 신월맹 상현당주 전위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이미 만월평의 입구까지 놈들의 수중에 들어갔사옵니다! 곧 이곳으로 쳐들어올…….”
그때였다.
전면이 아닌 후면에서 처절한 비명과 외침이 암흑 천공을 떨어 울렸다.
“으아악!”
“웬 놈이냐!”
“적이다! 모두 일어나서 적을 막아라!”
그게 시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백의 제천단이 난공불락이라 여겼던 신월맹의 후면을 급습했다.
전면으로는 제천신궁의 삼천 정예무사가 들이닥쳤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빨랐다.
알아챘을 때는 이미 오백의 제천단이 후면의 삼백 장 높이 절벽을 타고 모두 올라온 이후였다.
술에 취한 무사들은 제대로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썩어 말라버린 갈대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게다가 전면의 유일한 통로가 막히는 바람에 외부에 있던 무사들은 만월평으로 올라오지도 못했다.
일천이면 일만을 막아낼 수 있다는 천혜의 요지 만월평이 일시에 최악의 악지로 바뀌어 버렸다.
“으아악!”
“사, 살려줘!!”
처절한 비명과 살고자 발악하는 아우성에 하늘이 떨었다.
비명이 커지면서 고이던 피가 넘쳐흐르고, 뒤편의 절벽으로 피의 폭포가 떨어졌다.
그날, 하늘도 숨을 죽이고 만월평의 참사를 외면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천무제 혁련무천이 초동강의 심장을 가루로 만들면서 싸움이 끝이 났다.
“초동강! 네 피로써 좌 군사의 넋을 위로하리라!”
난공불락의 요충지에 세워져 있던 천하오패천 중의 하나인 신월맹의 총단이 단 하룻밤 만에 끝장나 버린 것이다.
5
한 장의 서신이 좌소천의 손에 쥐어졌다.
열세 살, 아직 어린 나이인 그의 눈에서 쏟아진 피눈물이 마르기도 전이었다.
아들아, 한비자 설난(設難) 십이편, 대부(大夫) 관기사(關其思)의 이야기에 대해 알지? 안다면 이 아비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이 아비는 어차피 더 살지 못할 몸이었다. 하기에 아비의 온전치 못한 몸을 돌봐준 궁주의 은혜를 갚기 위해 스스로 관기사가 되기로 한 것이란다.
…중략…….
너도 알겠지만, 궁주께선 그동안 아비의 뒤틀린 기혈을 다스리기 위해서 십수 년간 수많은 영약을 쓰시지 않았더냐. 덕분에 너와 함께 지낼 수 있었고 말이다. 미리 말해주지 못한 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이니 네가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부디 어머니를 잘 모시고…….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아버지!”
좌소천은 서신을 움켜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지가 남긴 서신이었다. 이미 읽어보셨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눈이 텅 비어 있다.
벌써 한 시진째. 저대로 쓰러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다.
‘아버지! 왜? 왜!’
이대로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이 통곡하면 어머니의 가슴에 맺힌 피멍울이 터져 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이 더 지났을 때다.
어머니의 입이 열렸다.
“무정한 양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슬픔도 담겨 있지 않은 듯한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좌소천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 억지로 감정을 짓누르고 있다는 걸.
“어머니…….”
좌소천의 목에서 자갈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가 답하듯 다시 입을 연다.
“나쁜 사람…….”
‘차라리 우세요, 어머니! 소리 내어 원망이라도 하면서 우세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렇게 가버리다니……. 정말 나쁜 사람이다, 네 아비는…….”
‘맞아요. 아버지가 잘못한 거예요. 말도 없이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참으세요, 제발……. 어머니마저 쓰러지시면 저는 어떡해요.’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네 아버지는 네가 그렇게 슬피 울어줄 만큼 잘난 짓을 한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 어머니부터 몸을 추스르세요. 아버지가 잘못했는데 왜 어머니가 고생하세요.”
“그래. 나도 일어나마. 그럼, 일어나야지!”
다짐하듯 강하게 말하시는 어머니시다. 그러나 속은 텅 비어 공허한 울림이 이는 것만 같다.
좌소천은 아무런 표도 내지 않고 천천히 무릎을 폈다.
저릿저릿한 것이 수십 개의 바늘이 핏줄에 박힌 듯했다.
좌소천의 무릎이 반쯤 펴졌을 때다.
“안에 있소?”
밖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렸다.
좌소천도, 좌소천의 어머니 은선향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알아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가 악다물어지고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자! 아버지를 죽인 자!
남편의 목숨을 부지시켜 준 자! 남편의 목을 자른 자!
제천무제 혁련무천, 바로 그였던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소, 부인.”
제천무제 혁련무천의 머리가 숙여진다.
천하제일의 세력을 이룬 제왕의 고개가 꺾인다. 한낱 초부 앞에서.
하지만 여인은 고개를 꼿꼿이 쳐든 채 혁련무천을 응시하며 말했다.
“궁주께서는 그분이 어떤 말을 했다 해도 거절하셔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지를 못하셨죠.”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소.”
앞에 있는 자는 은인인가, 원수인가.
원수라 하기에는 그간의 은혜가 너무 크고, 은인이라 하기에는 무너진 가슴이 너무 참담하다.
은선향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