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화
질문이 이상한 곳으로 흘렀다. 그래도 장천운은 착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자신은 호위무사, 사마경은 소성주니까.
“주로 상냥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데다, 손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기녀가 인기 많았죠. 거기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으면 금상첨화고요.”
문득 무창의 향아가 생각났다.
그 애는 지금쯤 기녀가 되었을까? 자신더러 머리를 얹어달라고 했는데.
‘그 계집애, 기녀가 되었으면 인기 좋을 거야.’
그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가려는데 사마경이 물었다.
“남자들은 차가운 여자를 싫어하나 보지?”
“물론이죠. 남자들이 기루에 가는 이유는 반쯤 신세한탄도 하면서 즐겁게 놀기 위해 갑니다. 그런데 기녀의 표정이 차가우면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색하죠.”
“그래도 기녀를 하려면 예뻐야 할 것 아냐?”
“그거야 물론 그렇죠. 하지만 얼굴보다 중요한 게 성격입니다. 아니면 머릿속에 든 것이라도 많아서 지적으로 보이던가요. 누구처럼 얼굴만 예뻐서는 삼류기녀밖에 못합니다.”
이야기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소연추와 이능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장천운과 사마경을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장천운과 사마경은 그녀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차가운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많다던데.”
“물론 그런 남자도 있긴 하죠.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여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남자가 좋아해?”
“대부분 조금 이상한 남자들이죠. 그래서 그런 남자와 맺어지는 여자들은 대부분 뒤가 불행하죠.”
“천운은 연송하처럼 상냥한 여자가 좋단 말이지?”
“차가운 여자보다야 훨씬 낫죠.”
“그래서 동겸도 연송하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거야?”
“그자는 송하를 노리개처럼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주 나쁜 놈이죠.”
“동겸의 이가 일곱 개나 더 빠졌다던데, 들었어?”
“그 이로 식사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군요.”
“아마 죽만 먹어야 할 거야.”
“소성주께선 제가 너무 심하게 했다고 보십니까?”
“아니, 잘했어. 그런 자는 죽도 아까워.”
사마경이 냉랭히 말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우문 숙부하고 친해?”
흠칫한 장천운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친하다기보다 조금 아는 사이죠. 무창에 있는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니까요.”
“우문 숙부가 그러던데. 내가 시키면 뭐든 할 거라고.”
장천운은 사마경의 눈을 직시했다.
소성주가 빤히 바라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대답을 하려면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차갑게 반짝이는 사마경의 눈을 본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양반과 그렇게 약속했죠.”
“그럼 내가 위기에 처할 경우, 대신 죽어줄 수 있어?”
“아뇨.”
장천운이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설마 그렇게 대답할 줄은 생각도 못한 듯 사마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연추와 이능능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입을 반쯤 벌렸다.
그때 장천운이 말했다.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약 소성주가 위기에 처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구해내고 저도 살 겁니다. 약속하죠.”
아버지는 검화문의 소문주를 지키고 죽었다.
남들은 훌륭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왕이면 호위대상도 살리고 자신도 살아야지.
‘나는 절대 그렇게 죽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처음에는 놀랐던 사마경의 눈빛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정말…… 약속할 수 있어?”
“무창에서 제 별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별명? 몰라.”
“귀호. 친구들은 저를, 한다면 하는 홍구로의 귀호라고 불렀죠.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귀호라고도 했고요. 총사에게 물어보십쇼. 저를 데려올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겁니다.”
사마경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별빛 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장천운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럴 때는 차가운 얼음꽃 같은 소성주가 아니라 마치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소녀 같았다.
그녀는 장천운이 말을 맺자, 턱을 쳐들고 툭 던지듯이 말했다.
“좋아, 그럼 나도 믿어볼게. 한다면 하는 홍구로의 귀호.”
***
유월이 되자 수혼대에 긴장감이 흘렀다.
십 년 전에 병사한 사마경의 모친 남여여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마경은 매해 모친의 기일이 되면 이백여 리 떨어진 대운사(大運寺)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대운사에서 불공을 드리며 닷새를 보낼 예정이었다.
외부에서의 호위임무는 수혼대로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안단 말인가.
총사 우문각이 장천운을 호출한 것이 유월 사일 오후였다. 대운사로 가기 전날.
수련에 열중하고 있던 장천운은 간단하게 땀만 씻고 총사의 집무실로 우문각을 찾아갔다.
“부르셨습니까, 총사?”
우문각의 눈빛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약간의 놀람이 깃든 눈빛이었다.
‘어이가 없군.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가 장천운을 가장 최근에 본 것은 보름 전이다.
구천성이 넓은 이유도 있지만, 그가 암중의 무리를 의식해서 잦은 출입을 삼가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름 만에 달라진 듯 느껴졌다.
무공의 경지가 단 보름 만에 눈에 띌 정도로 발전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상식대로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앞에 있는 장천운에게는 해당사항이 되지 않는 듯했다.
“그 동안 수련을 열심히 한 모양이구나. 며칠 사이에 달라진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험한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지요.”
“소성주께선 요즘 어떠시냐?”
“잘 지내고 계십니다.”
“대운사에 가면 닷새 정도 지낼 거다. 오가는 날짜까지 합하면 열흘 가까이 된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놓도록 해라.”
“예, 총사.”
“소성주께 급한 일이 생기면 너를 믿으라고 했다. 뭐든 해줄 거라고 했지. 항상 소성주 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도록 해라.”
“그러잖아도 소성주께서 그러시더군요. 위기에 처하면 대신 죽어줄 수 있냐고요.”
“그래? 그래서 뭐라고 했느냐?”
“그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 우문각의 눈이 커졌다. 장천운이야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았지만.
“대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수련했죠. 저도 살고 소성주도 구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하니까요.”
“호위무사의 첫 번째 존재이유는 호위대상의 안전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하지. 설마 네가 그 점을 모르진 않을 것 같다만.”
“진짜 위기라면 대신 죽어준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죽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기왕이면 같이 사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장천운다운 대답이다.
우문각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네가 죽어야만 소성주가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문각을 직시했다.
“제가 말입니다. 명이 좀 깁니다.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말장난하려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대답해봐.”
우문각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장천운도 무저갱처럼 깊어진 눈빛으로 마주보며 피하지 않았다.
“총사께선 제가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말장난이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이건 자신감입니다. 반드시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소성주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죠.”
우문각은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의 장천운처럼 눈이 마주쳤을 때는 더욱 더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묘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말장난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장천운의 눈에는 절대적인 자신감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저놈의 과대망상증 같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의 마음을 짐작한 듯 장천운이 몇 마디 덧붙였다.
“저는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쇼. 총사께서도 기왕이면 살아서 지키라고 하셨잖습니까?”
“으으음.”
끝내 우문각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입구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호위무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총사 앞에서 저딴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어린놈이 정말 간덩이가 크군.’
그때 우문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너를 믿겠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반드시 소성주를 지켜라. 만약 소성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너에게 책임을 물을 거다.”
“걱정 마십쇼, 총사 나리.”
***
유월 오일.
아침이 되자 사마중천이 장로와 호법 등을 대동하고서 무화원으로 찾아왔다.
무화원의 앞마당에는 마차 두 대가 서있고, 사마경과 단봉선자를 비롯해 수혼대원들이 출발준비를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사마중천은 사마경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출발할 것이냐?”
“예, 아버지.”
“매년 가던 길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만, 혹시라도 몸이 안 좋거나 하면 즉시 돌아오도록 해라.”
“너무 걱정 마세요. 대운사에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닌데 별 일이야 있겠어요?”
대답은 공손하게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말투와 달리 싸늘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에 사마중천은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는 떠나는 딸을 안아보지는 못할망정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마경은 내미는 손을 보고도 못 본 척 돌아섰다.
“다녀올게요.”
멈칫한 사마중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냉원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고하게, 냉 대주.”
“심려 마십시오, 성주.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잠시 후. 마차 세 대가 무화원을 나섰다.
한 대에는 사마경과 단봉선자가 탔고, 한 대에는 장로인 남조연과 호법인 육선기가 탔다.
그리고 허름하게 생긴 마차에는 편의를 위한 물품과 식품들이 실려 있었다.
소성주의 행차인 만큼 냉원상이 직접 수혼대원들을 이끌고 마차를 호위했다.
류화와 이능능, 연송하는 소성주가 탄 마차에 바짝 붙어서 따라갔고, 장천운은 후위에서 삼조 대원들과 함께 이동했다.
소성주의 행차가 지나가자 성 안의 무사들이 모두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언뜻 저만치 서있는 독고민이 장천운의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멀어서인지 그는 예를 취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느꼈을지 몰라도, 장천운의 예민한 감각은 그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싸늘함을 놓치지 않았다.
‘저 자식, 왜 저런 표정이지?’
정확하게 뭐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절대 호의적인 표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번 일 때문에 그런 걸까?
사실이라면 속 좁은 놈이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새끼, 거 되게 기분 나쁜 표정이네.’
장천운이 찝찝하게 생각하는 사이, 건물에 그의 모습이 가려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장천운도 신경을 끄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천경전과 동쪽 대연무장을 천천히 지난 마차는 활짝 열린 거대한 정문을 통과했다.
***
“사마경이 출발했습니다.”
“연락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연락했습니다.”
“그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예, 사형.”
초로인은 중년인의 대답을 들으며 은은한 다향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다향 사이로 십오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땐 정말 어이가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