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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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6화
어깨를 으쓱 추켜올린 장천운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건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셔서요.”
“…….”
‘뭐? 이 자식이 진짜!’
유진생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어디서 상관을 놀려?’
아무리 장천운이라 해도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단단히 다그쳐서 다시는 놀리지 못하게 하리라.
그런데 빤히 쳐다보는 장천운과 눈이 마주치자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 하, 하. 나도 맞장구 좀 춰주었을 뿐이야.”
빌어먹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행히 장천운이 표정을 굳히면서 말을 건넨 덕에 창피는 면할 수 있었다.
“잠깐만요.”
“또 뭐야?”
이번에는 범인 속곳이라고 보았나?
“저길 보십시오.”
장천운이 눈짓으로 창고 밖을 가리켰다.
유진생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길을 따라가 보았다.
한 뼘 가량 열린 문 사이로 밖이 보였다.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벽호당 순찰무사가 지나가고 있었다.
“제가 처음 밖을 보았을 때도 순찰무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지나갑니다. 시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죠.”
“그럼……?”
유진생의 눈빛이 빛났다.
그도 명색이 강련곡의 수석교관이었던 사람이다. 단 몇 마디만으로도 장천운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들었다.
“누군가 이곳에서 나온 사람을 봤을지도 모르겠군.”
“일조를 시켜서 조사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돌아가죠.”
장천운이 돌아서서 비밀통로로 향했다. 유진생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통로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비밀통로를 찾아냈다는 걸 저들이 모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유진생과 장천운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전무궁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천운은 비밀통로 쪽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물론 유진생을 놀린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전무궁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방 안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의 결과만 봐도 충분했다.
“이번 사건은 오대에 맡기겠다. 뒤는 걱정 말고 마음대로 조사해 봐.”
* * *
거처로 돌아온 장천운은 천경전에서 조원으로 뽑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양가쌍호와 함께 이조의 조원이 된 사람은 모두 넷이었다.
마공추.
주무기는 검. 섬서 태원 태생. 스물여덟 살. 큰 키, 평범한 얼굴. 이 년 전에 하남으로 내려와 상단의 무사로 있다가 구천성 무사에 지원한 자.
악승.
면이 넓은 칼을 주무기로 사용. 산동 제남부의 구석진 곳 빈민촌 출신. 스물다섯 살. 작은 키에 탄탄한 몸, 말수가 거의 없어서 음침함마저 느껴짐. 본래 숙수가 꿈이었음.
감조명.
검법과 지법이 뛰어남. 서른 살. 절정고수인 홍비검 전매동의 제자. 그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음.
진명산.
서른여덟 살. 무공은 네 사람 중 가장 약함. 그러나 이십 년 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닌 덕에-자신은 경험을 쌓기 위해 천하를 두루두루 여행했다고 하지만- 잡다한 지식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음.
마공추와 감조명은 일류고수였다. 악승과 진명산은 무공이 약한 대신 쓸모가 많았다.
천경전에서 급하게 뽑은 걸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흑월대에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어.’
나름대로 흡족해진 장천운이 운을 뗐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율검당 오대의 제 이조 조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요. 또한 구천성의 규율을 엄수해야 하며, 어기는 사람은 구천률에 따라서 처벌을 받게 것이오. 싫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거부할 수 있소.”
장천운은 잠깐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거부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겠소.”
장천운은 선언하듯 말하고, 고개를 돌려서 단승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단형이 부조장이야. 괜찮지?”
부조장?
불만 가득하던 단승의 표정이 눈곱만큼 펴졌다.
그나마 일반조원보다는 나았다.
아마 부조장이기 때문에 잡다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알았다.”
정말 몰라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 이조의 임무를 설명하겠소.”
* * *
화금당주의 살해소식은 구천성 전체를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이 밤이 되면서 화톳불 수백 개가 구천성 곳곳을 밝혔다.
그 시각 유진생의 방 안에는 유진생과 강도청, 장천운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쯤 벽호당 순찰무사 중 하나가 창고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을 봤다고 합니다. 옷은 짙은 청색인지 감색인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짙은 청색 아니면 감색 옷을 입었단 말이지?”
“예, 대주.”
유진생은 강도청의 말을 들으며, 창고 안에서 장천운이 내밀었던 실을 떠올렸다.
“그럼 범인을 본 게 확실한 것 같군.”
“예?”
“범인은 감색 옷을 입었거든.”
자신이 알아낸 것처럼 단정적으로 답한 유진생은 강도청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든 말든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공, 구천성에 감색 옷을 입은 자만 수백 명은 될 거다. 찾아낼 방법은 생각해 봤느냐?”
“그 중에서 일반무사와 평범한 일꾼들을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을 겁니다.”
화금당주가 일반무사나 평범한 일꾼을 만났을 리는 없다.
“그래도 수십 명은 될 걸?”
“그 정도야 어려울 것 없죠. 그들이 창고 쪽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그것만 조사하면 될 테니까요. 그럼 열 명 안쪽으로 용의자가 줄어들 겁니다.”
“흐음, 그렇군.”
강도청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진생은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꼭 자신이 억지로 말꼬리를 잡은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강도청.”
“예, 대주.”
“내일까지 그들의 신분을 파악해봐라. 열 명 안쪽이라면 어렵지 않을 거다.”
“내일까지요?”
“열 명도 안 되는 사람 조사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려서?”
“고위간부나 빈객들이 끼어 있으면 쉽지 않을 수도…….”
“그런 걱정 말고 조사해 봐. 화금당주의 죽음에 대해서 조사하는데 누가 방해를 한단 말이냐?”
“알겠습니다, 대주.”
“혹시라도 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자가 있으면 말해. 내가 처리할 테니까.”
강도청은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지었다.
아무리 율검당이라 해도 고위간부가 방해하면 일개 대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위에 보고하는 수밖에.
유진생이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고위간부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문제는 무의식중에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재빨리 정색을 했는데도 유진생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크!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주.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척! 포권을 취한 후 몸을 돌렸다.
뒤통수에 바늘이 꽂히는 듯했다.
‘아, 씨발. 하필 지금 그런 실수를…….’
그때 유진생이 말했다.
“비공, 네가 좀 잘 돌봐줘라. 아무래도 불안해.”
강도청은 기분이 팍 상했지만 모른 척 방을 나섰다.
‘그 자식이 얼마나 대단해서?’
저런 말을 안 들으려면 언제 시간을 내서 기강을 확실히 잡아 놓아야 할 것 같다.
“저 자식, 어때?”
강도청이 나간 후 유진생이 물었다.
장천운은 솔직하게 말했다.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을 뽑은 것 같습니다.”
“근데 자식이 나를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
“설마요.”
“우습게 보니까 나한테 유마두라는 별명을 붙였겠지.”
“예? 그럼……?”
“십 년 전에 저놈이 지었어. 내가 저를 얼마나 독하게 다루었다고 마두야, 마두는.”
장천운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도 강련곡에 있을 때 유진생을 유마두라고 불렀었다.
누군가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별명을 지은 사람이 강도청이었다니.
장천운은 이야기가 더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고위간부들에게 사람을 붙여놓아야겠습니다.”
“정말 천외인지 뭔지에서 나온 놈들이 간부로 활동하고 있을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빌어먹을! 사실이라면 피 좀 보겠군.”
* * *
어둑한 방안.
오십대 중후반의 중노인과 사십대 중년인이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달랑 하나 켜진 촛불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가 방 안을 짓누르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때 청의를 입은 중노인의 입이 열렸다.
“너무 성급하게 제거했어.”
“그냥 놔두고 지켜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와의 관계를 상부에 보고할 것인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자칫 제거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라서 지켜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네 판단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율검당은 범인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청산과 암천에서도 심어 놓은 놈들이 제법 많다고 했던가?”
“예, 장로.”
“그럼 그들을 이용해서 율검당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좋겠군.”
“좋은 생각이십니다.”
“먹기 좋게 맛좋은 미끼를 하나 던져 줘.”
104장 전무궁의 과거
율검당 삼대와 사대는 만 하루 동안 화금당 사람들을 조사했음에도 아무런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화금당 사람은 아무도 보지를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사이 강도청은 열심히 뛰어다녀서 나름대로 수확을 얻어냈다.
“대주, 창고 쪽으로 간 적이 있는 감색옷의 주인은 모두 열한 명이었습니다. 그 중 시간까지 일치하는 사람은 모두 셋입니다.”
강도청의 보고를 들은 유진생은 반색했다.
이미 삼대와 사대의 조사에서 별 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오대가 뭔가를 찾아내면 그럭저럭 밥값은 한 셈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 누구냐?”
“선미당의 장학 당주와 소문량 장로님, 그리고 빈객으로 와 있는 은검수사 주진상 대협입니다.”
선미당은 구천성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물자를 책임진 화금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렇다면 당주끼리도 당연히 가까운 사이일 터.
의심의 여지가 충분했다.
장로인 소문량은 무사라기보다 학자에 가까웠다. 본래 유문에 몸담고 있던 사람인데, 사마중천이 초청해서 장로가 되었다.
그와 류징은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학문에 관심이 많은 류징이 가끔 그를 불러서 공맹을 논한 일은 화금당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류징을 몰래 죽일 정도의 실력이 되지 못했다. 최소한 알려진 사실은 그러했다.
빈객인 은검수사 주진상은 구천성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다.
류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들을 만나 봤느냐?”
“먼저 선미당의 장 당주를 만나봤습니다. 그는 새로 들어온 식재료들을 점검하기 위해 창고에 갔었다고 합니다.”
“설마 창고에 갔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겠지?”
유진생이 넌지시 묻자, 강도창은 얼핏 ‘그걸 말이라고 하쇼? 내가 멍청이인 줄 아쇼?’라는 뜻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가 재빨리 정색하고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냥 사건이 벌어진 시각의 행적만 물어봤을 뿐입니다.”
유진생도 눈치라면 한가락 했다.
강련곡 수석교관이 성질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도창이 순간적으로 지은 표정의 의미를 눈치 챈 그는 눈을 치켜뜨고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또? 누굴 만났지?”
“소문량 장로님을…….”
“그래? 그는 뭐라고 하더냐?”
“종이와 붓을 얻으러 갔다고…….”
“왜 말이 기어들어가,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