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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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2화
전무궁은 흠칫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날아들던 물체가 속도를 급속도로 줄이더니, 살아 있는 황금새처럼 천천히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탁자 위를 바라본 전무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천금령!”
“소성주님의 명령을 받들고, 구천성 내에서 암약하는 천외의 무리를 찾아내기 위해 왔습니다. 당주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구천금령은 진품이 분명했다.
구천금령의 주인은 곧 소성주와 동격.
설령 어디서 훔쳐왔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소성주가 직접 거두기 전까지는.
“그럼 조금 전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구천금령을 보여줄 것이지, 왜……?”
“이번 일은 영패의 힘보다 진심이 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전무궁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영패부터 보였다면 자신이 상대의 말을 믿었을까?
아마 영패 때문에 따르긴 해도 진실로 믿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대는 누군데 구천금령을 지니고 있는가?”
“비공. 소성주님의 보이지 않는 비밀호위입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율검당도 인원이 넉넉하지는 않은 걸로 압니다만.”
전 당주인 강극효의 측근 오십여 명을 다른 부서로 발령 냈다. 그 후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 했지만 감찰업무를 능란하게 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네 말이 맞네. 삼십여 명 정도 더 뽑을 생각이지.”
“그렇다면 강련곡의 유진생 교관을 대주로 임명해서 별동대를 하나 맡기십시오.”
“강련곡의 교관 유진생?”
“현재 의심에서 벗어나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유진생 교관이라면 대주가 된다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긴 그가 소문대로 강하다면야……”
“아무리 구천성이라 해도 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가 흔한 건 아니지요.”
“그 정도인가?”
전무궁의 눈이 커졌다. 정말 절정 경지에 이르렀다면 대주로서 차고도 넘치는 실력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와 몇 사람을 뽑아서 유진생 교관의 밑으로 넣으십시오. 그럼 남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흠, 좋은 생각이군.”
“당분간은 누구에게도 저에 대해서 말하시면 안 됩니다. 설령 구천호령이라 해도.”
구천호령까지 의심하는 말투.
전무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 *
유진생에 이어 전무궁까지 만난 장천운은 구천무원으로 향했다.
외곽은 벽호당이 형식적으로 순찰을 돌았고, 내부는 구천호령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 누구도 장천운이 사마경의 침실까지 들어가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침실로 들어간 장천운은 사마경이 알려준 대로 기관을 조종했다.
지하 수련실로 들어가는 비밀문은 강제로 열거나 부술 경우 죽음의 기관이 작동된다고 했다.
자신은 강제로 열거나 부술 생각이 없으니 염려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를 철저히 차단하고 침착하게 침상의 우측 벽면에 있는 기관, 일명 오행관을 조종했다.
곧 두께가 한 자나 되는 벽면이 서서히 밀려나더니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소리를 완벽히 차단한 그는 안으로 들어간 후 벽을 원상복구 시켰다.
지하 수련장은 생각보다 깊었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굉장하군!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감탄하며 수련장을 둘러본 장천운은 비고로 향했다.
철기보를 떠나오기 전, 사마경이 자신에게 비고의 출입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마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다. 구천성의 핵심 중에 핵심인 장소니까.
그럼에도 알려준 것은 천외 때문이었다.
사마중천이 천외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대응방법도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어딘가에 남겨놓았을지 몰랐다.
사마경은 사마중천의 일지를 다 읽어보고, 비고 역시 철저히 뒤져보았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사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보일 때가 있는 법.
자기가 찾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자신에게 비고의 출입방법을 알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철컥.
수련장에서 비고로 이어진 문을 연 장천운은 천하제일 구천성의 비밀이 숨 쉬는 대지로 발을 내디뎠다.
많은 사람들이 구천성 성주의 비밀창고에 휘황찬란한 보물이 가득할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사실 보물이 많기는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물과 다를 뿐.
무림인들에게는 보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수천 권의 책과 상자, 그리고 약간의 무기.
특수처리 된 약고에 보관중인 약재.
그 외에 어떤 용도로 쓰는지도 모를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장천운은 사마경이 한 말을 떠올리며 중요 서류와 사마중천의 일지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지런히 쌓인 책 수백 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훑어본다 해도 사나흘은 걸릴 듯했다.
하지만 그는 가지런히 쌓인 책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듯이 앉았다.
그러고는 구석진 곳에 손을 뻗어서 만지작거렸다.
곧 그의 손길을 따라 고리 하나가 딸려 나왔다. 뒤이어 벽에서 두꺼운 석판도 빠져나왔다.
석판이 빠져나온 공간에는 작은 함이 들어 있었다.
함을 꺼낸 장천운은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책 십여 권이 들어 있었다.
사마경이 발견했다는 사마중천의 비밀일지였다.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맨 위의 책을 꺼낸 그는 조심스럽게 표지를 젖혔다.
* * *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오후.
금선장의 별원에 있던 나극은 공손백이 보낸 서신을 읽고 입가를 씰룩였다.
살기가 깃든 차가운 웃음. 마제 특유의 으스스한 마소(魔笑)가 입가에서 시작되어 눈초리까지 번졌다.
“공손백이 이제야 결정을 내렸군.”
그의 앞에 서 있던 오십대 중반의 중노인이 눈을 들었다.
귀혼필(鬼魂筆) 염자승. 구천성의 장로이기도 한 그는 이십 년 동안 오직 대장로인 나극만 보좌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를 나극의 그림자, 또는 마제의 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허락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들. 기이한 호칭인데도 나극은 그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가 ‘그들’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독단적인 결정일지도 모른다. 사실 너무 오래 참았어.”
“정말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거라면, 그들이 그대로 놔둘 거라 보십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전과 상황이 다르거든?”
나극의 그 말에 염자승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란 말씀인지요?”
“본좌의 생각이 잘못 된 게 아니라면, 그 미친 늙은이들은 이번에 모든 걸 끝내고 싶어 할 거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그 자존심 대결을.”
냉랭히 말을 뱉은 나극이 수염 사이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인간 같지 않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자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도의 제왕, 마제!
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창한 이름인가.
마도의 무사들은 자신을 마도제일인으로 숭앙하며 떠받든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는 한줌 모래와도 같은 이름일 뿐이었다.
자신이 구천성에서 조용히 지낸 이유도, 공손백과 손을 잡은 이유도, 천궁마신 사마중천을 제거하려 했던 이유도 모두 그들 때문이었다.
조용히 지내야 안전하고, 공손백과 손을 잡아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고, 천궁마신을 죽이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지 못할 테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 기회가 온 것일지도…….’
천하의 마제가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숨어서 살다 죽을 순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불꽃놀이 정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결정을 내린 그가 염자승에게 말했다.
“자승, 경화에게 내 서신을 보내고 무사들을 거두어들여라. 성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염자승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길고 긴 기다림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가.
“예, 대장로.”
대지와 지붕을 두들기던 빗소리도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 * *
사마경은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쯤 도착했겠지?’
장천운에게 지하비고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신에게 최악의 경우가 닥쳤을 때를 생각해서 한 결정이었다.
이제 구천성의 운명은 장천운의 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천외의 힘을 견제한다 해서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싸워볼 만한 상황은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절대 당신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설령 나를 죽인다 해도.’
사마경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각오를 다지듯 이를 앙다물었다.
그때 밖에서 백리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님, 총사께서 오셨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사마경은 셋을 셀 시간 동안 생각을 가다듬고는 몸을 돌렸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예전과 같은 도도함이 흘러나왔다.
곧 문이 열리고 우문각이 들어왔다.
“부르셨소?”
“앉으세요.”
우문각이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준비했다.
사마경도 탁자로 가서 우문각의 맞은편에 앉았다.
곧 은은한 다향이 방안에 퍼졌다. 시비가 차를 따르는 동안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마경은 도도한 자세로 찻잔을 들어서 입술을 축였다. 찻물에 젖은 붉은 입술에서 윤기가 흘렀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오시라 했어요.”
“말씀해 보시구려.”
사마경은 말하기 전에 다시 찻잔을 들었다.
기이한 침묵이 방안을 휘감았다. 한쪽에 서 있던 시비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진난. 심한 부상을 입은 연송하와 류화가 임무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긴급히 투입된 천경전의 여무사 중 하나였다.
그녀는 오늘이 임무 사흘째인 데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소성주의 방 안은 마치 촘촘한 거미줄로 가득 찬 듯했다.
그래선지 사마경의 명령이 반갑기만 했다.
“진난, 잠깐 밖에 좀 나가 있어.”
“예, 소성주님.”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소진난은 곧바로 방을 나왔다. 그제야 답답함이 가시면서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무슨 일이야?>
백리우진이 그녀를 향해 슬쩍 눈짓을 하며 전음을 보냈다.
소진난은 이마의 땀을 닦는 척하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성주께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만 하셔서…….>
<그래? 그럼 나중에 한번 넌지시 알아봐.>
<예, 공자.>
늘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 적당히 살이 오른 몸매.
천경전에서 남자들의 추파를 매일처럼 겪어본 그녀는 백리우진이 자신을 정보원으로 택한 이유가 자신의 몸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싫진 않았다. 잘 생겼지, 천혼전주의 조카지, 백천대의 대주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 아닌가 말이다.
‘백리우진만 잡으면 나도 귀부인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나름대로 야무진 꿈을 꾸며 백리우진의 곁을 스쳐갔다.
<오늘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멈칫한 백리우진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진성전 뒤에서 보자.>
한편, 소진난을 내보낸 사마경은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숙부, 이제 말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뭘 말이오?”
“숙부의 뒤에는 누가 있지요?”
갑작스런 질문.
흠칫한 우문각은 하마터면 찻물을 흘릴 뻔했다.
단순히 구천성의 세력에 대한 걸 묻는 걸까? 아니면…….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있긴 누가 있단 말이오?’라고 대답하자니 알고서 묻는 듯했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사마경이 다시 말했다.
“서로 간의 신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물어보는 거예요.”
“장로와 호법 몇 분이 나를 도와주고 있소.”
우문각은 일단 돌려서 대답했다.
사마경의 입가에 한겨울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하얗고 차가운 미소가 피어났다.
“숙부, 저는 숙부와 다투고 싶지 않아요. 숙부가 아니어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