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5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7화
“그가 왔군.”
나직한 으르렁거림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손우곤. 그자의 무공 흔적이 보였다.
가공할 위력의 장력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곳. 바로 그곳에 거대한 뱀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 땅이 갈지자로 파여 있었다.
“공손백의 하수인들과 손우곤이란 자가 손을 잡고 공격했다고 봐야겠군.”
청산자는 자신이 만났다. 그는 사마경이 쫓기는 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사마경을 공격한 자들은 청산자와 관계가 없다는 뜻.
그렇다면……?
“제길, 공손백도 그쪽 사람이었나?”
장천운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한광을 번뜩였다.
사실이라면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일부 수정해야만 한다.
‘일단 이창에 가봐야겠군.’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만날 사람도 있고.
* * *
자정 무렵, 이창에 도착한 장천운은 식사도 하고 방도 잡을 겸 문이 열린 객잔을 찾아보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런데 다행히 문을 연 객잔이 하나 보였다.
‘용원객잔이라…… 다행히 아직 안 끝난 것 같군.’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탁자 세 곳에 손님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주방 쪽에는 고주망태가 된 자들 둘이 앉아 있었고, 창가 쪽에는 무사 셋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안쪽 벽 바로 앞에는 청년이 혼자 앉아서 자작하고 있었다.
장천운은 한 사람이 앉아 있는 바로 옆쪽의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점소이가 오자 방을 먼저 잡고 요리를 시켰다.
점소이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끝날 때가 다 됐는데 빌어먹을 손님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쫓자니 무사들이어서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지금 들어온 놈도 칼은 차지 않았지만, 복장이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년만 같았어도, 저런 새끼는 한주먹 감이었는데…….’
장천운은 점소이의 불만 이유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아마 자신이라도 짜증이 났을 것이었다.
“이봐.”
혼자 앉아서 자작하던 청년이 말을 건넸다.
장천운은 고개를 돌리고서야 그가 자신을 불렀다는 걸 알았다.
“왜?”
상대의 말투대로 답해주었다.
상대도 그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술 마시려고 왔나?”
“식사만 할 거네.”
술은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를 풍긴다.
“아쉽군.”
장천운은 이채 띤 눈으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처럼 갸름한 얼굴에 피부도 유난히 하얗고 눈썹마저 가늘었다. 거기다 호리호리한 체구까지.
수염만 아니라면 남장여자라고 믿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자의 모습 때문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흠, 대단한 공력을 지니고 있군. 제법인데?’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여자처럼 생긴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장천운이 빤히 바라보자,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보나?”
“워낙 잘생겨서.”
다른 청년이라면 그 말을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단승은 그 말을 무척 싫어했다.
“나에게 신경 쓰지 마.”
“원한다면.”
장천운도 여자처럼 생긴 남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멈칫한 단승이 다시 시선을 돌리더니 물었다.
“혹시 장천운이란 자에 대해서 아나?”
“…….”
“그가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하나?”
“남들은 다 그가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장천운은 쉽게 죽을 자가 아니야.”
“하긴 대운이 인정한 자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지.”
단승이 중얼거리며 술잔을 잡았다.
누구지? 누군데 대운을 들먹이지?
장천운은 청년의 모습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어디에서도 청년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요리가 나왔다. 야채와 닭고기, 돼지고기를 섞여서 볶은 요리였다.
장천운은 식사를 하며 청년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청년은 식사를 무척 느리게 했다.
“소림사의 대운을 말하는 건가?”
끄덕끄덕.
단승은 고개만 끄덕였다.
“대운을 잘 아나 보군.”
“싸워봤지. 승부를 가리지는 못했지만.”
호오 그래?
대운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면,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단승이 몇 마디 덧붙였다.
“그가 그러더군. 장천운이란 자를 이겨야 진짜 고수 소리 듣는다고. 그래서 기다렸지. 그가 오면 싸워보려고 말이야.”
그렇다면 정말 잘 골랐다. 앞에 빤히 앉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죽었다고 하더군.”
살아 있다니까.
장천운은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참고 식사에 열중했다.
그때 단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그가 멈칫하더니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와는 나중에 다시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장천운 역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냥 스치듯 지나갈 인연은 아닌 듯했다. 어떤 식으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기대하지.’
* * *
그날 밤.
철기보는 또 다른 긴장감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구천성의 소성주 사마경이 암습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수혼대 무사 칠십여 명이 죽고 흑월대와 백천대 대원도 십여 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로인 진철평이 죽고 호법인 장린과 호문대곡은 중상을 입었다.
문제는 암습한 자들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마경이 대주천을 마치고 눈을 뜬 것은 인시 정 무렵이었다.
운기 덕분인지 창백했던 안색에 혈색이 돌았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피해가 너무 컸어.’
자신이 대운사에 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미안한 한편으로 분노가 끓었다.
비록 자신 혼자 한 맹세지만 절대 그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철무 아저씨.”
“예, 소성주.”
“몸은 좀 어때요?”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라 하지만 철무의 부상이 심하다는 걸 사마경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른 척 말했다.
“그럼 성으로 돌아가세요. 해줄 일이 있어요.”
“제 임무는 소성주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달라는 거예요.”
“……?”
“아마 제가 없는 동안 수작을 벌이는 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들을 파악해줘요.”
그제야 철무는 사마경의 뜻을 눈치 챘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없으면 너무 위험합니다.”
“여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소성주, 재고를…….”
그때였다. 전음 한줄기가 사마경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일은 제가 처리하죠.>
사마경의 몸이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어찌 그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까.
눈자위가 찡해지면서 앞이 흐릿해졌다.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가까스로 격정을 참아낸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역시 살아 있었어. 고마워, 천운.’
<놈들이 알면 안 되기 때문에 연락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살아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소성주를 제거하기 위해서 천외의 세 곳 중 두 곳이 나섰습니다. 아마 성에서도 그들의 수족들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마경도 철무를 성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마경은 자연스럽게 방안을 둘러보았다. 장천운이 그녀의 뜻을 짐작하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측에 걸린 족자 보이십니까? 그쪽에 있습니다.>
사마경은 고개를 돌려서 우측을 바라보았다. 수염이 가슴까지 뻗은 노인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아주 잠시잠깐이지만 그 노인이 한쪽 눈을 찡긋 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야?>
사마경이 전음으로 물었다. 자신이 정확히 봤다면 장천운도 전음을 들었을 것이었다.
<예, 소성주. 일단 철 대협에게 맡긴 임무부터 취소시키십시오.>
사마경은 그 즉시 철무에게 말했다. 한숨까지 쉬어가면서. 아주 완벽한 연기였다.
“후우, 알았어요.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어요. 대신 오늘 하루는 조용한 곳에 가서 운기하며 쉬세요. 지금 당장 가요.”
“그건…….”
“아니면 성에 가주시던가요.”
철무도 더 이상은 고집부리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소성주. 그럼 운기한 후에 오겠습니다.”
“점심 전까지는 오지 않아도 돼요.”
사마경은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류화와 연송하도 부상이 심한 터라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반각 정도 지난 후였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 숨어 있을 거야?>
<죄송합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습니까.>
<죽을 곳으로 보낸 나에게 화가 나서 그래? 하긴 밉기도 하겠지.>
<제가 왜 소성주를 미워합니까. 호위무사가 주인의 말에 목숨을 거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요.>
사마경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로 미안했다. 괜찮다고 하니 더욱 더 미안했다. 입이 열 개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고마워, 천운.’
<지금 우시는 겁니까?>
<아냐, 그냥 티가 들어가서 그래.>
사마경은 뻔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는 소매로 눈물을 콕콕 찍어냈다.
<밤톨만한 티가 들어갔나 보죠?>
<헛소리 그만하고 뒤로 와서 나 좀 안아줘. 힘들어 죽겠어.>
<지금은 환술을 쓰고 있어서…….>
<안 된다는 거야?>
<뭐…… 한번 해보죠.>
그때 사마경이 밖을 향해 말했다.
“사공 조장, 오늘은 불 끄고 잘 거니까, 아주 중요한 일 아니면 깨우지 마.”
“예, 소성주.”
그로써 좀 더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빨리 안 오고 뭐해?>
101장 너…… 누구냐?
장천운은 동이 틀 때쯤 철기보를 빠져나왔다.
무창에서 북상할 때만 해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생존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청산자를 만난 후 사마경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상은 모른다. 그들, 천외의 괴물들이 얼마나 강한지.
아니 그들에게는 강하다는 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인들.
그들을 상대하려면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상대할 수 있는 방책을 확실하게 구축한 후 치지 않으면 역공을 당할지 몰라.’
그 일 때문에 사마경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절히 붙잡고 싶었던 사마경이 그를 놓아준 것도 천외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해. 내가 돌아갈 때까지.”
어차피 무림맹은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구천성도 허창까지 가서 무림맹 본진을 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사마경은 철기보에 머물면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어쩌면 그녀보다 공손백이 더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후우, 일단은 내부정리부터 하고 보자.’
객잔에 도착한 장천운은 운공조식으로 잠을 대신했다.
지평선 위로 솟구친 해가 중간쯤 올라갔을 때 방에서 나온 장천운은 일층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일층으로 내려간 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가 오늘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자, 여자처럼 얼굴이 곱상한 청년이.
장천운은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았다.
단승은 슬쩍 눈을 들어서 장천운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묘한 놈이군.’
상당히 큰 키에 잘 발달된 몸. 덥수룩한 수염, 머리로 반쯤 가린 얼굴, 손은 부드러운 듯 보이면서도 무두질한 가죽보다 더 질기게 보인다.
무기는 보이지 않지만 예사로운 놈이 아니다.
기이한 것은 공력의 정도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공력이 별 볼일 없던가, 아니면 알아보지 못할 경지에 올라 있던가.
아무리 봐도 전자는 아닌 것 같고, 후자라는 건 더 믿기가 힘들었다.
“이봐.”
그가 더 참지 못하고 장천운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