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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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5화
갈의인이 움찔했다. 평소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명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백운은 연수합공을 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럴 만한 적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어쨌든 주군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따르는 수밖에.
갈의인, 여강은 쌍장 가득 공력을 집중하고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망설인 시간은 그야말로 숨 한 번 쉴 정도의 잠깐이었을 뿐이다.
장천운은 그 짧은 시간에 또 다른 결정을 내렸다.
속전속결. 최대한 빨리 벽을 무너뜨리고 빠져나가기로!
콰아아아아아!
쌍권을 폭풍처럼 내지른 그는 우수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뺐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우수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춘 듯 느껴졌다.
쉬이이잉.
맑은 소음이 허리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품속에서 청색 광채가 번쩍이며 솟구쳤다. 안쪽 허리에 두르고 있던 연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던 백운은 눈을 부릅떴다.
절대의 공력이 주입된 연검에서 검강이 뻗어나갔다. 독을 가득 품은 살모사가 상대의 목을 노리는 듯했다.
백운은 반사적으로 검을 틀어서 장천운의 공격을 막았다. 검대 검의 정면 격돌을 하기에는 거리가 가까웠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쩌저저정!
연인은 격돌음에 고막이 먹먹해졌다.
급습이나 다름없는 장천운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백운은 조소를 지었다.
‘검은 별 것이 없군.’
애송이의 검은 자신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백이면 백 모두 막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그때 장천운의 검이 다시 날아들었다.
밑으로 쳐졌던 검이 사각의 틈을 노리고 솟구치자, 살모사 몇 마리가 한꺼번에 머리를 쳐드는 듯했다.
백운은 더욱 짙은 조소를 지으며 장천운의 공격을 막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장천운의 검초는 미숙한 애송이의 검에 불과했다. 그 정도 변화로 자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멍청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게 장천운의 검을 쳐내던 그가 아차하며 눈을 부릅떴다.
쩡! 하는 외마디 폭음이 터짐과 동시에 연검의 검첨부분이 살아있는 뱀처럼 휘어졌다.
대경한 백운은 다급히 상체을 틀었다.
휘어진 검첨이야 한 자에 불과했다. 문제는 연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였다. 검신보다 더 기다란 강기가 검첨을 따라 휘어지면서 백운의 목을 노렸다.
“흡!”
백운의 입에서 단말마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연검의 강기가 그의 목옆과 얼굴을 깊게 훑으며 지나간 것이다.
순간, 살이 쩍 갈라지는가 싶더니 핏줄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크읍!”
백운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면서 상처를 눌렀다. 일그러진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이 죽일 놈이!”
여강이 노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자신의 머뭇거림 때문에 백운이 당한 거라 생각한 그는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친 분노를 쌍장에 담아서 쳐냈다.
그가 자랑하는 천강삼원장의 강맹한 장력이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장천운에게 밀려갔다.
일격을 성공한 장천운은 여강을 상대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여강의 장력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청산자가 이마를 찌푸리며 바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무공의 경지에서 한계라는 절대경지를 넘어선 초인(超人)이다. 그가 나서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했다.
여강은 물러서는 장천운을 그림자처럼 쫓아가며 쌍장을 당겼다가 뻗었다.
또다시 강맹한 장력이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서 쏟아졌다.
물러서던 장천운도 좌수를 뻗었다.
쾅!
일성 굉음이 천둥처럼 울렸다. 두 사람 사이의 대지가 폭발하듯 들썩이더니 흙먼지가 사방으로 밀려갔다.
장천운은 그 충돌의 반탄력을 이용해서 더욱 빨리 뒤로 날아갔다. 연이은 격돌로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당장은 이곳을 벗어나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보니 교활하기까지 하구나!”
청산자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단순히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도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흐려지는 기분.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갈대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청산자 같은 초인에게 갈대숲은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평지보다는 낫겠지.’
그가 갈대숲 속으로 스며든 순간,
고오오오오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가공할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반경 삼 장 이내의 갈대숲이 가루로 변해서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먼지구름으로 만들어진 결계 속에 갇힌 형국.
‘젠장!’
목구멍 안에서 절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청산자가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오죽하면 강호를 자신의 놀이터 정도로 여겼겠는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절대경지에 오른 자신을 숨조차 쉴 수 없게 압박하다니!
상상을 뛰어넘는 무력이다.
금룡신군과 만났던 환마 우곡의 질린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은 우곡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 손 들고 나갈 마음도 없었다.
이가 부서지도록 턱에 힘을 준 장천운은 몸을 바닥까지 바짝 낮추고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날렸다.
일대의 대기가 끈적끈적한 아교처럼 그를 붙잡았다.
참으로 무섭고도 두려운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인간이 이런 능력을 지녔단 말인가!
그는 사력을 다해서 청산자가 펼친 결계를 벗어났다.
진탕된 진기가 요동쳤다. 혈맥이 충격을 받아서 터질 듯했다.
장천운은 구륜심법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서 요동치는 진기를 억눌렀다. 그러고는 환귀자의 무영무종을 펼치면서 계속 전진했다.
이제는 자신의 정체를 들킨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이 먼저니까.
일순간, 그의 모습이 갈대숲 속에서 사라졌다.
“갈―!”
둥실 허공으로 떠오른 청산자가 일갈을 내지르며 갈대숲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노기가 섞인 듯 느껴지는 일성.
백운과 여강은 눈을 홉떴다.
진정 그 애송이가 청산자로 하여금 노기를 드러내게 할 정도의 고수란 말인가.
그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장천운이 사라진 곳, 사방 십여 장 넓이의 갈대숲이 먼지처럼 부서지더니 평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장천운은 보이지 않았다.
“제가 놈을 쫓겠습니다, 주군!”
여강이 나섰다.
그러나 이마를 찌푸린 청산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놔둬라. 노도의 청허만상공을 견뎌내고 도망친 놈이다. 이미 사문(死門)을 통과한 이상 오늘의 인연은 여기까지야.”
“하오나 놈이 다른 어르신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훗,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늙은이들에게 몸을 맡길 놈이었다면 오늘 내 청을 뿌리치지도 않았을 거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남도 가져선 안 된다. 특히 그 두 늙은이는.
그 때문에 손을 써서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놈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남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놈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조용한 곳에서 알콩달콩 살겠다는 그 어이없는 꿈이.
그래도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어차피 자신의 사람도 되지 않을 자. 결국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한편, 장천운은 청산자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후 십 리를 달렸다.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는 듯했다.
야산자락의 갈대숲 구석진 곳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가부좌를 틀고 구륜심법을 운용했다.
“으으음.”
신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당하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막연히 생각했던 천외 노괴물의 능력은 자신의 상상 밖에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을 모두 드러냈다면 청산자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었다. 잘해야 이삼십 초?
그 이상은 자신이 없었다.
인간이 말도 안 되는 그런 능력을 지녔다니.
허탈감에 기운이 쭉 빠질 지경.
왜 천하가 그들에 의해 농락당할 수밖에 없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적삼검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는 맞서는 것조차 위험해.’
거기다 환귀자의 환술을 펼치면서도 공력을 십성 사용할 수 있어야만 승부를 논할 수 있을 듯했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자신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내상부터 치유하고 보자.’
쫓기고 있을 사마경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지금으로선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도사 늙은이 말대로 아무 일 없으면 좋을 텐데…….’
* * *
지평선에 턱을 걸치고 악착같이 버티던 태양이 끝내 저 너머로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그 시각, 사마경 일행은 배수진이라는 말 그대로 호수를 등진 채 적을 상대했다.
대운사를 출발할 때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수혼대였지만, 백천대와 흑월대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몇 있었다.
남은 사람들도 온몸이 피로 범벅된 채 사력을 다해서 적의 공격에 맞섰다.
“그쪽을 철저히 막아!”
“이 개새끼들! 얼마든지 덤벼!”
“뭐해? 사정 봐줄 것 없이 목을 쳐버리라니까!”
흑월대원들의 악쓰는 소리가 호숫가를 뒤흔들었다.
소리를 지른다 해서 적이 물러설 리는 없었다. 그래도 바락바락 악을 쓰고 나면 답답한 속이 시원해졌다.
사마경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끌어냈다.
가끔 나서서 싸워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지속적으로 적을 상대한 적은 없었다.
힘이 들고 위험에 처한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그 동안 익혔던 무공에 대해서 점점 익숙해졌다.
어쩌면 흑월대가 버티고 있는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아마 그녀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면 최소한 절반은 지옥에서 서로 잘났다며 싸우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조심해!”
목진화가 한쪽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수은귀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적 중 하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은귀를 공격했다.
“정신 차려, 인마!”
막소광도 악을 쓰며 경고를 보냈다.
수은귀도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빌어먹을! 숨 한번 쉴 여유만 있어도 좋으련만.’
진기가 꼬인 듯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적의 검이 날아드는 걸 빤히 보면서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죽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벼락이 옆에서 번쩍였다.
“뭐해!”
차가운 일갈. 여자의 목소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소성주의 목소리.
쩌정!
청량한 쇳소리와 함께 적의 검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사마경이 적의 검을 튕겨낸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마경의 검이 봉황의 부리처럼 뻗어가더니 적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적들도 보호망에서 밖으로 나온 사마경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흑의인 셋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철무는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 둘을 상대하느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사마경은 입술을 깨물고 봉황검무를 추었다. 공력이 많이 소모되어서 제대로 된 검을 펼칠 순 없었다. 그래도 전력을 다해서 적의 검을 막아냈다.
겨우 위기를 면한 수은귀는 숨을 두세 번 들이쉬면서 진기를 안정시켰다. 사마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머리가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을 것이었다.
‘씨바, 저런 주인이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까울 것 없지 뭐.’
감격한 그는 더욱 힘을 내서 적을 상대했다.
“와봐, 이 개새끼들아!”
흑월대원들도 사기 백배해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냈다.
특히 은명객들은 눈빛 자체가 달라졌다.
겉으로는 못 잡아먹어서 한인 듯 으르렁거리긴 해도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런 형제를 귀하디귀한 소성주께서 몸소 위험 속에 몸을 던져 구해주셨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이 비록 성질은 더러워도 의리 빼면 시체였다.
은(恩)이든 원(怨)이든 받은 만큼 돌려줘야만 속이 시원한 남자들.
이제 소성주는 더 이상 저 너머에 있는 보호대상이 아니었다. 형제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뚫려선 안 된다! 목숨을 걸고 소성주를 보호해!”
피로 범벅된 막소광이 소리쳤다. 그의 입에서 소성주를 보호하란 말이 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