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0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화
“혹시…… 염 형?”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맞네. 그 두 사람을 발견한 건 나였지. 그날 비가 제법 왔는데, 두 사람의 시신 곁에 발자국이 찍혀 있더군.”
“발자국만으로 범인을 추측해냈단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움푹 파인 발자국 속에서 뭘 하나 주웠네.”
“그래요?”
“나는 그것을 율검당에 건네주었네. 물론 그들이 수사를 잘 할 거라 생각하고 준 거지.”
“그런데 왜 조용하죠?”
“그래서 후회하고 있다네. 차라리 내가 갖고 있었으면 증거로라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주웠다는 게 뭡니까?”
“실이 아홉 가닥인 검의 수술. 파란색 실이었지.”
구천성 무사들의 검이나 도에 달린 수술은 실이 아홉 가닥이다.
그 때문에 다른 문파에서는 절대 아홉 가닥의 수술을 쓰지 않는다.
“그럼 본 성의 무사일 가능성이 팔 할은 된다고 봐야겠군요.”
“이 할은?”
“외부인이 고의로 그런 수술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염우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군.”
“어쨌든 팔 할이면 염 형의 말이 거의 옳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제길, 바로 조사했으면 수술이 떨어진 검을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
장천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육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범인은 구천성의 인물이라고.
‘그것도 제법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거나, 중요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자일 거다. 어쨌든 상황이 생각보다 더 복잡한 것 같군.’
장천운은 괴물 같은 총사가 고민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는 아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젠장, 한 번 터지면 크게 터지겠어.’
***
언제부턴가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봄과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다가올 여름의 무더위를 걱정했다.
뒷마당에서 무공수련에 여념이 없던 장천운도 그랬다.
근육을 자극하고 신경의 예민한 감각을 올올이 일깨우기 위해서는 공력을 끌어올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공력을 끌어올리지 않고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초식의 형을 수련했다.
특히 혼천수라권의 형을 펼치는 것은 수련이라기보다 사람의 몸을 괴롭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다.
수련 반 시진째.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서 마치 소나기라도 맞은 듯했다.
아무리 여름이 추운 겨울보다는 낫다 해도 무더위가 반갑지 않은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으로 얼굴의 땀을 쓸어낸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하다못해 구름이라도 끼었으면 나으련만 오늘 따라 뜨내기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 뜨거운 햇살만 쏟아질 뿐.
“후우. 햇살이 벌써 이렇게 뜨거워지는 걸 보니, 올해 여름은 정말 덥겠는데?”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뒤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장천운은 고개를 돌리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오관이 건물을 돌아서 뒷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오관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너를 찾아왔어.”
“누구?”
장천운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묻자, 오관이 손가락으로 이를 가리켰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동겸이?”
“그래, 일행까지 데리고 왔어.”
“그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날이 더워지긴 더워졌나 보군.”
“단단히 벼르고 온 모양이야. 조심해.”
장천운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봤자 개는 개일 뿐, 호랑이가 되진 않아.”
건물을 돌아서 앞마당으로 나가자 수혼대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마당 저편에 서있는 동겸을 바라보던 그들은 장천운이 나타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중에는 냉원상과 관철양도 있었다.
[동겸이 무슨 일로 왔는지 알 거다. 싫으면 싫다고 해라.]
관철양의 전음이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장천운도 전음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자신 있느냐?]
[저, 아시는 것보다 강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관철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상황을 장천운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알았다. 동겸의 뒤에 서있는 자는 철귀권(鐵龜拳) 호종방이다. 동욱의 오른팔이지. 대주께서 계시니 함부로 나서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조장.]
세 사람이 동겸과 동행했다.
이십대 중후반의 청년 둘과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
그 중 땅딸막하고 얼굴이 거무스름한 중년인이 바로 권법의 고수인 호종방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요?”
장천운은 동겸의 목적을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동겸의 눈빛에서 독기가 번뜩였다.
“몰라서 묻는 거냐?”
“내가 동 공자의 마음을 어찌 안단 말이오?”
동겸이 어금니를 뿌드득 갈고는 냉랭히 말했다.
“좋아, 모른다면 말해주지. 너와 정식으로 비무를 벌이고자 한다. 우리 남자답게 주먹으로 한판 붙자.”
몰래 수작을 피우지 않고 정식 비무를 신청하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겠군.’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이기고 싶겠지.
그래야 땅에 떨어져서 이미 다 썩어버린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꼭 그 비무를 받아줄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장천운은 한번 빼보았다. 동겸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아니나 다를까, 동겸이 눈을 치켜떴다.
“네가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것이냐?”
“나는 동 공자를 모욕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소.”
사실 정식비무를 청한 것은 장천운이 더 반가웠다.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일. 지저분한 수작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다면 거부하지 마라.”
“좋소. 뭐, 정 원한다면 받아들이지요.”
“잘 생각했다.”
“단, 다른 사람은 절대 끼어들어선 안 되오.”
“나야말로 바라는 바다.”
“그럼 저쪽으로 갑시다.”
수혼대 연무장에서 장천운과 동겸의 대결이 벌어졌다.
대단한 대결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대결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대결이 시작되자 장천운은 피하기만 했다.
예전의 싸움에서는 그가 먼저 한 대 맞아주었었다. 그래야 뒤탈이 생겨도 할 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정식 무사가 되었고, 정식 비무가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예전의 동겸이 아니었다. 공력이 실린 주먹에 잘못 맞으면 한방에 끝장날 수 있었다.
대신 그는 바로 공격하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철저히 방어하며 시간을 끌었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절정고수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 청년고수라는 동겸을 처음부터 두들겨 패면 자신의 실력이 드러날 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옛날에 누가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삼푼은 숨기라고. 그래야 오래 살 수 있는 곳이 강호라고.
장천운은 그 말이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했다.
동겸이야 아슬아슬한 차이로 공격을 피하는 장천운 때문에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쳤지만.
“오냐, 이놈! 어디까지 피하는지 보자!”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공력이 실린 주먹을 세차게 휘둘렀다.
강련곡의 일 이후 복수를 다짐하며 불철주야 노력했다. 덕분에 일류고수 중에서도 중급은 될 만큼 실력을 키웠다.
그럼에도 장천운을 패죽이지 못하다니!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이놈!”
그는 주먹에서 권풍을 일으키며 찰나에 팔권을 폭풍처럼 쏟아냈다.
그가 자신하는 팔방풍뢰권(八方風雷拳)이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동겸의 주먹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로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약한데?’
사실 동겸이 약한 게 아니라 그가 그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자신은 아직 잘 모르고 있지만.
하긴 공력증진에 좋다는 용설단까지 복용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는 몸을 세 번 비트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팔권을 모두 피해냈다.
동겸은 헛손질할 때마다 치켜뜬 눈이 커지고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으아아아! 개자식! 미꾸라지처럼 피하지만 말고 덤벼라!”
그렇게 동겸의 공격이 십오초를 지날 즈음, 장천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때가 되었다 생각한 그는 공격의 빈틈 사이로 주먹을 내지르며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했다.
장천운을 마음껏 공격하던 동겸은 갑작스런 반격에 당황하며 일단 뒤로 물러섰다.
장천운은 물러서는 동겸을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연속으로 내질렀다.
그의 쇠망치 같은 주먹은 없는 틈도 만들어냈다.
“헉! 이놈이…….”
당황한 동겸이 전력을 다해서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장천운의 공격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고 강했다.
게다가 그의 주먹질은 단순한 타격이 아니라 혼천수라권의 비기를 품고 있었다.
그가 주먹을 뻗을 때마다 한 줄기 경력이 팔을 타고 회오리처럼 휘돌면서 주먹 끝으로 뻗어갔다.
그의 주먹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허공이 이지러졌다.
장천운의 주먹을 가벼운 마음으로 쳐낸 동겸은 부딪친 부위가 저릿저릿해서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공력을 더 끌어올려서 두 팔을 보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이 자식이 언제 이런 실력을…….’
초수가 늘어나면서 충격이 쌓이자 동겸의 마음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안 되겠다 싶어진 그는 뒤로 죽 물러섰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나 일단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그 순간, 장천운이 튕기듯이 몸을 날리며 주먹을 뻗었다.
동겸은 장천운의 악착같은 공격에 당황했다.
게으른 잠보로 불렸던 장천운이 물러서는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반면 장천운은 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았을 때 자신만의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동겸은 급히 손을 뻗어서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흐트러진 자세로는 장천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장천운의 주먹이 절묘하게 빈틈을 파고들더니 동겸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쾅!
주먹에서 발출된 경력이 동겸의 옆구리에서 세 치의 거리를 두고 폭발했다.
옆구리에서 시작되어 머리끝까지 치달리는 전율 같은 충격!
동겸은 입을 떡 벌리고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장천운은 허리를 숙이는 동겸의 턱을 오른손바닥으로 올려치고 왼 주먹을 내질렀다.
퍽!
동겸은 강력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고통의 신음을 내뱉고 싶어도 목소리가 목구멍에 막혀서 나오지 못했다.
장천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동겸을 따라 움직이며 마저 삼권을 더 쏟아냈다.
“그만!”
호종방이 대경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장천운의 주먹은 동겸의 몸을 두들기고 있었다.
퍼버벅!
동겸이 붕 떠서 일 장 가량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디서 감히!”
호종방이 노성을 내지르며 장천운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