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1화
무 노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빛 한 점 없는 무저의 심해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장산을 바라보았다.
“괜찮겠느냐?”
“이번 기회에 소천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긴…… 알았다, 그럼 그 일은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노야.”
“그리고…… 천운의 일은…… 미안하다.”
95장: 무창에서 무슨 일이
장천운은 왕규가 장악한 무창의 흑도조직을 새롭게 정리했다.
최상위에 흑월회가 있고, 단혈방과 혈수문, 흑검방이 그 밑의 군소조직 십여 개를 지휘하게 했다.
그러고는 뒷골목 흑도무리 중 무공에 소질이 있는 자를 뽑아서 무공을 가르치게 했다.
누구보다 뒷골목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장천운이다.
그는 흑도 무리 중에 뛰어난 소질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소질이 뛰어남에도 신분 때문에, 성격 때문에, 심지어 돈 때문에 무공을 배울 수가 없었다.
구천성에 함께 간 추소철이나 이한, 저두심, 한명후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교관선택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호양청에게 일임했다.
누가 뭐라 해도 천은방은 강호의 대문파였다. 간부 중에는 무공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데 능숙한 사람들이 많았다.
흑월대 대원들이 알았다면 ‘그들도 대주의 특별교육을 받아봐야 하는데……’하면서 무척 서운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천운은 그 일이 아니어도 할 일이 많았다.
장천운은 무공을 가르치게 하는 한편으로 흑도문파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강호의 무사들을 찾아냈다.
몇 명이나 될까 싶었는데, 막상 찾아내고 보니 제법 많았다.
일류고수만 해도 이삼십 명은 되었고, 이류무사도 백 명은 될 듯했다.
나이는 이십대부터 오십대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대부분 죄를 짓고 흑도로 기어들어온 자들이었다. 그러다 뒷골목 생활이 생리에 맞아서 강호로 나가지 않은 자들도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흑도조직이 강해진다는 사실에 불만이 전혀 없었다. 조직이 강해지면 그만큼 자신의 안전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장천운은 그들을 본래의 조직에 계속 있으면서 필요시에만 모이게 했다.
물론 그들에게도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왕규는 장천운의 명령을 이행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감탄했다.
그 역시 흑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정보장사꾼답게 눈치도 빨랐다.
그는 장천운의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천은방이 떨어져 나간다 해도 이삼 년 안에 귀룡문과 대등한 문파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아쉬운 것은 그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누군가. 사람의 껍질만 뒤집어 쓴 괴물, 장천운 아닌가 말이다.
‘씨바, 한번 해보는 거야!’
* * *
흑월회에 의해서 평정된 무창의 뒷골목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시도 때도 없이 내던 자릿세 대신 정식으로 일정한 대여료를 받았다. 전에 비하면 삼 할 정도만 내면 되었다.
흑도문파는 그 대가로 떠돌이들의 횡포를 막아주고, 손님들이 많이 오게끔 분위기를 조성했다.
흑도무리의 횡포를 걱정하지 않고 장사할 수 있게 되자, 뒷골목의 상인들은 왕규를 진짜 활불처럼 떠받들며 환호했다.
왕규의 입은 하루 종일 귀밑까지 찢어졌다.
합비의 정보장사꾼, 독종 왕규가 무창에서 활불 소리를 듣다니.
‘허허허, 이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가 보군.’
좋은 일하고 추앙받는데 왜 안하고 싶겠어?
어차피 죽을 때 갖고 갈 돈도 아닌데.
그런데 장천운이 무창에 온 지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든 유월 중순.
후덥지근한 날씨가 하루 종일 이어지던 날 오후 신시쯤, 왕규가 다급한 표정으로 장천운에게 달려왔다.
장천운은 남초초에게 기문진과 독에 대해서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대주, 선창에 귀룡문 무사들이 사오십 명이나 풀렸다고 하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그는 왕규의 말에 미간을 좁히고 생각을 정리했다.
구천성 십이지부 중 하나인 귀룡문은 무창에서 황강 쪽으로 백여 리쯤 내려간 곳에 총단이 있었다.
정규무사의 숫자는 팔백 정도. 귀룡문을 따르는 중소문파까지 합하면,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무사만 해도 천 명이 훌쩍 넘었다.
그들의 주요 수입은 무창에 벌여놓은 사업체에서 나왔다.
무창제일표국인 양화표국도 그들 것이었고, 장강을 오가는 배도 십여 척이나 되었다. 주루와 객잔도 큰 것만 서너 개나 운영했고, 심지어 도박장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쪽에 다친 사람이 있습니까?”
“보고 받을 때까지는 없었네. 단혈방 놈들이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귀룡문에 대들 정도로 멍청하진 않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네. 그놈들이 웃으면서 인사나 하려고 몰려오진 않았을 테니까.”
“그들이 왜 왔을 거라 보십니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네만, 아무래도 며칠 전에 발생한 귀성호의 침몰 때문이 아닌가 싶네.”
사흘 전, 귀룡문의 배인 귀성호가 수적의 공격을 받아서 침몰했다.
그 후 소문이 돌았다. 귀룡문의 배를 장강팔련이 공격해서 침몰시켰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소문과 함께 ‘무창의 흑도문파 중 어딘가가 장강팔련과 손을 잡았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귀룡문이 장강팔련과 손을 잡은 문파로 단혈방을 의심하고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네.”
그때 방으로 호양청과 곽교진이 들어왔다.
호양청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듯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마 그들은 단혈방뿐만이 아니라, 무창의 흑도를 평정한 흑월회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을 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사실 흑월회가 혼자의 힘만으로 무창의 흑도를 평정했다는 것 자체부터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오. 그런데 귀룡문이 아닌 다른 강호문파의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으로선 장강팔련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소?”
명쾌한 결론이었다.
“그럼 호 형은 우리가 귀룡문을 어떻게 상대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시오?”
“대답하기 전에 하나 묻겠소. 버리는 길과 취하는 길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장 형은 두 길 중 어느 길을 택할 거요?”
호양청이 반문을 던지고는 장천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장천운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호 형, 사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두 길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취하는 길을 택하겠소.”
왕규는 눈만 껌벅였다.
버리느냐, 취하느냐의 대상이 귀룡문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남들이 들었다면 ‘미친놈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했겠지만, 왕규는 그에 대해선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장천운의 대답이었다.
‘무슨 말이 그래? 욕심이 없다면서 왜 취하는 길을 택해?’
반면 장천운의 그 말에 곽교진은 고민에 찬 표정이었고, 호양청은 눈빛이 잘게 떨렸다.
“정말 그럴 생각이시오?”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더 큰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취하는 게 좋지 않겠소?”
“후우우우.”
호양청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몰라도 씁쓸해하는 표정.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왕규는 슬슬 화가 났다. 나름대로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두 새파란 인간들의 말과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속 시원하게 말해봐!’
다행히 호양청이 그의 소원 아닌 소원을 들어주었다.
“장 형이 정 그렇게 하시겠다면, 취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거요. 그런데 왜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거요? 귀룡문을 버리면 장 형 만의 길을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오.”
“말했잖소? 나는 욕심이 많지 않다고. 그리고 피와 시신을 담보로 해서 남 위에 서고 싶은 마음도 없소. 피로 올라선 자리는 결국 피로 끝나는 법이니까.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느니 차라리 나는 작은 행복을 택할 거요.”
“정말 하늘이 될 마음이 없소?”
하늘(天)!
천하의 누가 그 말에 가슴이 뛰지 않으랴.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든 천하 강호인의 위에 우뚝 서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호형이 실망하시더라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소. 내가 천외에 반감을 가진 것도 사실 그런 마음 때문이오.”
장천운은 강호인의 자유로움을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한다는 게 싫었다.
“생각해 보시오. 내가 택해서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길을 가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 누군가가 가는 길을 몰래 조종하고 있다면, 호형은 기분이 좋겠소?”
“그것과 제가 물은 것은 다른…….”
“왜 다르다 생각하시오? 지금까지 구천성이 지시를 내리면 구천성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싫어도 따라야만 했소. 진짜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도. 무림맹 역시 다를 것 없소. 물론 황제야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고 말이오.”
장천운은 조금 전과 달리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듣고 있는 호양청은 만근 거석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
“강약(强弱)과 대소(大小)의 차이일 뿐 본질은 같은 것 아니오? 싫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없다면 또 모르겠소. 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 데도 큰 고난을 던져주지 않소?”
오로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그래야 규율이 선다는 같잖은 미명 하에.
“그리 말씀하신다면, 지금 이곳 무창의 상황도 누군가를 조정한다는 건 마찬가지 아니오?”
호양청이 반론을 제기했다.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다.
―하고 싶지 않다면서 당신도 결국은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말이다.
그런데 장천운이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같지요.”
설마 그렇게 순순히 수긍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지 호양청의 눈이 커졌다.
“그런데 왜……?”
“이곳의 상황이야 오래 갈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서로 이익이 되는 일이잖소? 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좋은 일 좀 하자는데, 욕하면 욕 좀 먹지요, 뭐.”
호양청은 끝내 입을 반쯤 벌리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었다.
그는 곧 그 전율의 정체를 깨닫고 숨을 멈췄다.
‘맙소사! 설마…… 왕도(王道)?’
더 어이없는 것은 장천운이 왕도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호양청은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이 사람의 말대로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장천운이 설령 하늘이 되지 않는다 해도 얻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 자와 함께 뭔가를 해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마음이 가벼워진 그는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장 형의 말씀에 따르지요.”
평소와 다른 공손한 자세.
옆에서 지켜보던 곽교진은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다.
한 달 이상 호양청을 지켜본 그다. 그는 호양청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림십룡 중 하나라는 용화성조차 호양청만 못한 듯했다.
그런데 호양청이 마치 주군에게나 올릴 법한 예를 올리고 있지 않은가.
장천운의 그릇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호양청을 말 몇 마디로 품을 줄이야.
‘허어, 내가 지금 강호의 역사에 남을 장면을 직접 보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깨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왕규가 빽 소리쳤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 * *
왕규가 먼저 만대평을 대동하고 선창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단혈방의 방도로 보이는 건달 이십여 명이 선창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 중 절반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머지는 무릎을 꿇거나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귀룡문 무사들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면서 추궁하는 중이다.
“멈추시오!”
만대평이 달려가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