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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3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7화

시간이 지나면서 막힌 혈도가 하나 둘 뚫리고 비틀린 혈맥이 서서히 바로 잡혔다.

물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 지는 시간이 더 흘러봐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으니 그 정도만 해도 어딘가 말이다.

문제는 사람이 물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동굴에 들어온 지 닷새째 되던 날.

장천운은 동굴을 나가기로 했다. 이제는 몸을 움직여도 저릿하기만 할 뿐 별 다른 고통은 없었다.

그가 닷새를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동굴 안에 따로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굴을 나가려면 입구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석벽의 글과 무우자와의 관계였다.

이 동굴에서 도를 닦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무우자가 침석산에 머물게 된 이유가 바로 동굴의 석벽에 새겨진 글 때문이었다.

글은 석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매끈한 바닥에도 새겨져 있었다. 무우자가 남긴 글이었다.

 

무우자는 섬서의 영산(靈山) 태백산에서 삼십년 동안 도를 수련한 후 천하를 주유했다. 그러나 십 년간 천하를 돌아다녔는데도 자신과 도를 논할 만한 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실망한 그는 다시 태백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침석산 근처를 지나다 노숙을 하던 중 꿈을 꾸었다. 백발백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노인이 꿈속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다음 날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냥 꿈이려니 했다. 그런데 침석산에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을 지날 때였다. 꿈속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홀린 듯 그곳으로 간 무우자는 절벽에 있는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그는 보름 동안 동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보름 후 동굴에서 나온 그는 대소를 터트렸다.

웃음을 멈춘 후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발로 물을 퍼서 황하의 양을 재려 했으니, 왕옥산과 태행산을 삽으로 퍼서 옮기려한 우공이 차라리 나보다 낫구나.”라고 자신의 우매함을 질책한 후 침석산에 눌러앉았다.

 

‘삼십 년 동안 도를 닦은 사람도 주저앉게 만든 글을 닷새 만에 깨달으려 한 내가 도둑놈이지.’

물론 장천운은 도를 깨달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얻으려 한 것뿐.

뭐,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렇고, 밖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네.’

아마 밖은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자신이 사라진 기간은 기껏해야 열흘밖에 안 되지만, 천하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구천성과 무림맹의 전쟁에 파천회가 본격적으로 끼어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천외의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손백과 나극도 지금쯤은 사마경 쪽의 상황을 알고 그에 대한 대처를 생각하고 있겠지.

“후우, 일단 이곳을 나간 후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보자.”

한숨을 내쉰 그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 경사로로 올라갔다.

어차피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 장 높이 절벽 때문에 고민하는 놈이 무슨 천하를 걱정하고 있어?’

 

* * *

 

황군의 훈련이 끝난 이후 이창 일대는 폭발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림인들간의 싸움이었음에도 양민들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무인들 간의 싸움은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천 무인들의 싸움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전쟁은 예기치 않은 피해를 발생시키는 법이다.

재수 없으면 옆으로 날아든 칼바람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구천성의 간부들은 사마경이 전면전을 벌이지는 못할 거라 예상했다.

무림맹의 전력이 모두 철기보에 집결했고, 파천회마저 호시탐탐 구천성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 간부는 천외의 존재마저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림맹 공격은 자멸의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림맹 수뇌부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사마경은 이제 스물이 갓 넘은 어린 여자 아닌가.

—아무리 성격이 까칠하고 드세다 해도 어린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

—강호는 여자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런 선입견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하의 전쟁에서 사마경과 맞서 본 사람들이 절대 얕보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무림맹 수뇌부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실패한 자들의 말이기에.

그런데 닷새째 되던 날……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동마보 우측에는 광할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얼마 전 같았으면 수백 마리 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 말 대신 무사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감시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감시대 위에는 사마경이 호위무사 여섯 명과 간부 십여 명을 대동한 채 서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턱을 쳐들고 도도한 표정으로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무사들은 침을 삼켰다.

무사들에게 사마경은 구천성의 소성주를 넘어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사마경은 삼천에 이르는 무사들을 앞에 두고도 한 점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펼쳤다.

“우리는 맹약을 맺은 형제들을 지켜주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싸우는 게 두려워서 형제도 지켜주지 못한다면 누가 우리 구천성과 형제가 되려 하겠어요!”

봉황이 창천을 향해 날아가며 울어대면 백 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창천을 울리는 봉음처럼 들판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복수 역시 마찬가지에요! 그대들은 죽음이 두려운가요? 형제를 위한 복수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한가요?”

“아닙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소성주!”

무사들이 합창하듯 외쳤다. 대지가 들썩이고 천공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잘못을 묻지 않겠어요!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제가 모두 감당하겠어요!”

무림맹과의 전쟁을 앞두고 긴장해 있던 무사들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주겠다고 한다면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 사람이 대 구천성의 아름다운 소성주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무사들은 사마경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환호성을 내질렀다.

특히나 젊은 무사들은 주먹을 쥔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악을 쓰듯 외쳤다.

“우린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소성주!”

“소성주! 명을 내리시면 따르겠습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소성주와 함께 무림맹 놈들을 무찌르자!”

“형제들을 위해 복수의 칼을 들어라!”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은 상대가 약하게 보이면 더 강하게 나오는 법이에요!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저들은 우리를 나약한 사람이라 비웃고 더욱 더 강하게 몰아붙일 거예요! 여러분들은 소심한 비겁자가 되고 싶나요, 아니면 죽더라도 대 구천성의 무사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나요!”

“죽더라도 대 구천성의 무사로 죽겠습니다, 소성주!”

“무림맹 따위가 어찌 우리 구천성을 비웃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딴 놈들은 목을 쳐야 합니다!”

“모두 일어나서 천하에 구천성의 위대함을 보여주세요!”

“명령만 내리시면 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충!”

“소성주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충!”

충! 충! 충!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연설 이후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기가 한순간에 반전되었다.

충천한 사기는 젊은 무사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간부들까지 전염시켰다.

몇몇 간부들이 나서서 사마경의 뜻을 꺾어보려 했지만 냉소에 찬 잔소리만 들어야 했다. 그들은 사마경이 왜 무림맹과의 전면전을 결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나마 우문각이 사마경의 내심을 읽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도 없었다.

사마경은 단순히 철기보의 복수만을 위해 무림맹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공격 대상이 무림맹만이 아닐 수도 있다.

파천회와 천외의 세력.

사마경은 장천운을 죽음으로 내몬 그들과도 싸울 작정이었다.

단호하고 냉혹하게!

피가 강이 되어 흘러도, 시체가 산처럼 쌓여도 그녀는 한이 풀릴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마경을 너무 모르고 있어.’

우문각은 묘한 흥분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래 전, 저 구석에 처박혀서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 생각한 투지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나보다.

‘이런 기분도 정말 오랜만이군.’

 

그렇게 무사들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린 사마경은 다음 날이 되자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일차적 목표는 철기보 탈환.

이차 목표는 구천성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는 것.

그리고 삼차 목표는 무림맹 궤멸.

그녀는 패왕거를 타고 선두에 섰다.

우문각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구천성 무사는 물론이고 철기보와 풍운산장, 화검문, 섭가장, 용천방, 새로 지부가 된 대봉문 등 십이지부 무사들도 일제히 출동했다.

후방전력은 남겨 놓지 않았다.

 

그 날은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댔다.

짙푸른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이 곧 쏟아질 비를 맞이하기 위해 꽃잎을 활짝 벌렸다.

동마보를 출발한 삼천무사는 패왕거가 속한 중군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누어져서 울긋불긋한 들판 위를 내달렸다.

비를 기다리던 야생화들은 무사들의 발길을 피하려는 것처럼 바람을 따라 몸을 흔들어댔다.

무사들은 야생화의 간절한 노력을 무참히 짓밟고 달려갔다. 누구도 덧없이 쓰러지는 야생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 *

 

동백현 풍원객잔의 유일한 점소이 왕칠은 허름한 옷을 입은 청년이 주렴을 걷고 들어오자 이마를 찌푸렸다.

‘생긴 건 멀쩡한데, 어디서 뒈지게 맞았나?’

풀어 헤쳐진 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린 청년의 옷은 군데군데 찢어진 것으로도 모자라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디선가 실컷 두들겨 맞고 진흙탕 위를 구른 듯했다.

‘돈이나 있을지 모르겠군. 보통 저런 놈들은 돈도 없으면서 음식을 처먹고 내빼는 게 보통인데.’

청년, 장천운은 왕칠이 나름대로 심각하게 분석하는 동안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돈주머니를 공회가 가져갔으니까.

그나마 남은 해독단을 안 가져간 게 다행이었다.

평범한 약인 줄 알았나보다. 아니면 다 죽어가는 사람의 품속에 든 약이다 보니 양심에 걸려서 다시 넣어두었든가.

어쨌든 돈은 없어도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세상에는 돈을 대신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왕칠은 점소이의 필수품인 행주와 엽차를 들고 장천운의 자리로 갔다.

“뭘 드시겠습니까요?”

본래 맞고 다니는 놈들이 객잔의 점소이에게는 거만을 떤다. 심한 놈은 맞은 분풀이를 점소이에게 하기도 한다.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면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다.

장천운은 간단한 요리를 시키고 엽차로 목을 축였다.

동굴을 나선 후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무작정 걸었다.

오면서 몇 가지 소문을 들었다.

구천성이 철기보 일대에 집결해 있는 무림맹 본진을 이틀 동안 세 차례나 공격했다고 한다.

핏물이 강이 되어 흘렀고, 시신이 늦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일대를 뒤덮었다고 한다.

이틀에 걸친 싸움은 결국 구천성의 승리로 끝이 났고, 구천성은 승리의 대가로 철기보를 되찾았다.

양측 합해서 죽은 무사는 이천여 명. 승리하고도 환호를 지를 수 없는 상처뿐인 승리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사마경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고.

‘천외의 미친 늙은이들이 가장 좋아할 구도군.’

서로가 끝장을 보려고 해야 전쟁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흘러가지 않겠는가.

사람이야 얼마가 죽어나가든.

장천운이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왕칠이 요리를 가져왔다.

턱.

“요리가 나왔습니다, 손님. 동전 열 문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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