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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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3화
용화성이었다.
백리우진은 그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낯짝만 번지르르해서는 목에 힘을 주고 말하는 본새가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생긴 것도 자신보다 못생겼다.
그래도 겉으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답했다.
호남 광양산장의 차기 주인 아닌가.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건 없었다.
“용 공자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소성주를 만나서 담소나 나누려고 왔네. 안에 계신가?”
“계시긴 합니다만,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 하십니다.”
“하하하, 내가 ‘아무나’는 아니지 않은가? 일단 말씀을 드려보게.”
말하는 거야 뭐 어려울까? 자신도 이 기회에 사마경을 한 번 더 만나볼 수 있으니 나쁠 것도 없다.
“알겠습니다.”
사마경은 의외로 용화성을 순순히 만나주었다. 예상 못했던 일이어서, 말을 전하러 간 백리우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서 오세요, 용 공자.”
사마경의 표정과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용화성은 그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소성주께서 마다하지 않고 만나주시니 이 용모는 그저 고마울 뿐이외다.”
“별 말씀을. 한데 어인 일이십니까?”
“이 용모도 소성주 곁에 있으면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만.”
흠칫한 백리우진이 용화성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사마경이야 그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녀는 보란 듯 포권까지 취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요, 용 공자. 천하의 동정일수께서 도와주시겠다는데 제가 어찌 마다할 수 있겠어요.”
“하하하, 솔직히 말해서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공연한 우려였나 봅니다.”
“천운이 잠깐 자리를 비웠어요. 아마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당분간이라도 용 공자께서 그 자리를 메워주셨으면 해요.”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점은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이 누군가. 광양산장의 차기 주인이자, 무림십룡 중 하나인 동정일수 아닌가?
그러나 장천운은 사마경의 최측근이다. 그를 대신하는 자리라면 자존심 정도야 잠깐 접어놓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소성주를 지키겠소이다.”
용화성은 힘주어서 대답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의 표정이 오랜만에 밝게 빛났다.
“저도 덕분에 걱정을 덜었어요.”
사마경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무림맹을 공격하면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고수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에서 용화성과 광양산장의 무사들은 이용가치가 컸다.
우선은 꼴사나워도 참는 수밖에.
한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리우진은 손에 쥔 떡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서 한 대 맞은 아이처럼 눈가에 독기가 흘렀다
‘흥, 자식까지 있는 놈이 사마경의 미모에 눈이 돌았군. 용화성, 헛된 욕심을 부리다가는 저승사자를 만나러 가게 될 거다.’
* * *
은천궁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곳의 깊은 계곡 안에는 작은 통나무집이 두 채 있었다.
통나무집 사이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고, 뒤쪽에는 떡갈나무가 우거져서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산을 뒤덮을 무렵, 왼쪽의 작은 통나무집 안에서 기괴한 광경이 벌어졌다.
통나무집 안에는 한 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몸을 들썩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어어억!”
정말로 괴이한 것은 그가 비명을 내지를 때였다. 얼굴에 굵은 핏대가 툭툭 튀어나온 그의 입안에서 거무스름한 기체가 몽실몽실 새어나오는 것이다.
마치 뱃속에서 불이라도 난 듯했다.
“그거 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래도 죽지 않고 버티는 게 용하긴 하다만…….”
노인은 곤혹함과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진기로 고통을 다스려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기를 주입하면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비틀고 세차게 들썩거리며 비명소리만 더 커졌다.
게다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체의 냄새는 너무나 고약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자신이 복용시킨 썩은 단환과 같은 냄새.
‘그 썩은 약이 잘못 되었나?’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도 죽지 않고 버틴다는 것이었다. 정말 고래힘줄보다 더 끈질겼다.
“다른 놈이었다면 진즉 염라대왕에게 끌려갔을 텐데…….”
자신이 특별하게 한 일은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고.
기껏해야 입술을 강제로 벌리고 약초 달인 물을 넣어준 것이 전부였다. 약초를 달일 때 아끼고 아꼈던 몇 가지 기물을 넣긴 했지만 그래도 저승길을 붙잡아둘 정도의 영약은 아니었다.
“그놈 부탁 때문에 데려오긴 했는데, 이러다 엄한 송장만 하나 치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꼴을 보니 살아난다 해도 멀쩡할 것 같지가 않다. 그럴 경우 다 늙은 자신이 젊은 놈의 시중을 들어야할지도 모를 판이었다.
‘그럴 순 없지.’
노인은 이런저런 생각에 슬슬 짜증이 났다.
지금이라도 산속 깊은 곳에 내다버릴까? 아니면 땅 파고 묻어버려?
그러고는 찾지 못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숨이 끊어지는 징조만 보였어도 벌써 내다버렸을 텐데.
노인은 몸을 들썩거리는 장천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꼬나보았다.
비명이 잦아들고 있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무스름한 기체도 희미해졌다.
‘좋아,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내일 아침까지도 저러면 진짜로 내다버려야지.’
냄새나서 살겠나?
노인은 나름대로 결정을 내리고 방을 나가기 위해서 돌아섰다.
그때였다.
“끄으으…… 제길…….”
비록 단 한마디였지만, 비명 외에 처음으로 다른 단어가 들렸다.
노인은 고개만 돌려서 장천운을 내려다보았다.
부서질까 걱정될 정도로 이를 앙다문 채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모습 역시 처음이었다.
“응?”
다시 몸을 돌린 노인은 장천운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장천운의 눈꺼풀이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정신이 드느냐?”
노인은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보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돌아온 것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린 노인은 장천운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때 방 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 선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왔나? 들어오게.”
곧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놀랍게도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장산이었다.
그는 나무침상에 누워 있는 장천운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좀 어떻습니까?”
“그게 말이야…….”
노인, 공회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간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다만 썩은 약이라는 말은 쏙 빼고, 품속에 약이 있기에 복용시켰다고만 말했다.
장산은 공회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입에서 연기가 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좌우간 목숨 하나는 끈질기네. 금방 죽을 것 같은데도 오히려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거든.”
장산이 공회의 말을 들으며 품속에서 금빛이 나는 함을 하나 꺼냈다.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이 흘러나왔다.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질 정도로 청량한 향기였다.
함속을 본 공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약인가?”
장산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일전에 운이 좋아서 하나 얻은 약입니다.”
“냄새만 맡아봐도 굉장히 귀한 약 같은데…….”
“아무리 귀한 약이라 해도 사람 목숨만 하겠습니까?”
공회는 뭔가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것도 아니니까.
그 사이 장산은 장천운의 입을 벌리고 단약을 복용시켰다. 단약을 먼저 입안에 넣은 후 찻물을 흘려 넣자, 단약이 순식간에 녹아서 목구멍을 넘어갔다.
‘미안하다. 나중에 모든 걸 알게 되더라도 날 용서하지 마라.’
* * *
장천운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렸다.
‘누구지?’
정신이 희미하게나마 들었을 때 아득한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적인지 아닌지 모르는 터라 모른 척하고 정신부터 차리려했다.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대화내용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래도 몇 마디 말은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어렴풋이나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은천동에서 발견했고, 그 후 품속에 들었던 독왕의 해독단과 독령귀혼단을 동시에 복용시켰다. 그 약이 어떤 약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 후 이곳으로 데려온 듯했다.
썩은 독령귀혼단을 복용하고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아직 염라대왕을 만나러 갈 때는 아닌가보다.
혹시 독왕의 해독단 때문에 그 썩은 약의 독성이 중화된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살아 있으면 되었다.
그가 내심 안도하고 있을 때 나중에 들어온 누군가가 억지로 입을 벌리고 뭔가를 입 안에 넣었다.
약 같은데 무슨 약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자신에게 해가 될 독약은 아닌 듯했다. 죽이려 마음먹었다면 독약을 먹일 필요도 없으니까.
곧 청량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다. 약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열기가 일었다.
약을 먹인 자는 진기로 약의 기운을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공회가 그랬듯이 곧 포기했다.
극렬한 고통에 몸이 반사작용을 해서 저절로 들썩거렸다.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참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갈 즈음 열기가 사지백해로 자연스럽게 퍼지기 시작했다.
장천운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영약을 복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중상을 입은 그로선 한 줄기 기운도 아까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기를 움직이면 극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기이한 느낌이 든 것은 그 열기가 온몸의 혈맥 곳곳에 자리 잡은 후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되새기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나타난 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득한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목소리 같았다.
더 묘한 것은, 기억을 더듬고 더듬을수록 처음 듣는 목소리라는 사실만 확실해진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자는 누굴까? 누구기에 자신을 구했을까? 누구기에 자신에게 영약을 복용시킨 걸까?
최소한 모르는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아니, 자신은 모를지 몰라도 그는 자신을 알 것이다.
아니라면 천금을 줘도 구하기 힘든 영약을 선뜻 복용시켰을 리 없다.
‘누군지 몰라도 목숨을 빚졌군.’
설령 상대가 극악한 자라 해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극악한 자였다면 자신에게 영약을 복용시키지도 않았겠지만.
‘끄응, 좌우간 몸을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 일이 문제군.’
시간이 흐르자 상태가 전보다 조금 나아진 듯 느껴졌다.
장천운은 구륜심법을 운용해서 진기를 천천히 일으켜보았다.
처음보다 나아졌긴 해도 좋아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억지로 운기를 하다 혈맥이 조금만 큰 충격을 받아도 내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컸다.
그는 여차하면 운용을 멈출 생각으로 진기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기해혈에서 일어난 진기는 굼벵이가 기어가듯이 느릿느릿 이동했다. 기해혈에서 신궐, 수분혈을 거쳐 하완혈까지 몇 치 이동하는데 반각은 걸린 듯했다.
그가 무공을 익힌 후 이렇듯 진기를 느리게 이동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움직이려는 진기를 억지로 붙잡고 속도를 늦추려니 오히려 신경이 더 쓰였다.
이러다가는 소주천만 마치려 해도 하루는 꼬박 걸릴 듯했다.
그런데 참으로 묘했다. 진기를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감각이 하나 둘 느껴졌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