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9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4화
194화. 사해단
"단주 오셨습니까?"
"그래. 오늘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면서. 어떻게 됐지?"
"그게……."
사해단의 부단주 망주가 금일 낮에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보고했다.
당소여를 잡으려다 실패한 것과 흑살마신, 투파창귀의 출현 소식까지.
"그게 정말인가?"
"예, 단주. 닷새 후 자시(子時)에 아미산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습니다. 아미파를 시작으로 모든 문파를 다 정리할 거라고요."
"지금 즉시 나간 애들 다 불러 모아라."
"임무를 위해 나간 이들까지 말입니까?"
"그래. 어떻게든 그 거사에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해야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 아니냐."
사해단의 단주 적월의 안광이 번쩍였다.
"이건 기회다. 어떻게든 머릿수를 부풀려 참여하면, 이번 공을 빌미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단주!"
"그리고 오늘부터 홍루 쪽은 더욱 몰아치도록 하고."
미리 작업해 놓은 티를 내야, 사천 정리가 끝난 후에 그쪽을 우리가 도맡을 수 있으리라.
부단주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바삐 움직였다.
***
암룡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천강은 주위를 한 차례 돌아보았다.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가 해서였다.
"암룡? 너 맞아?"
[ 예, 주군. ]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니,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천강의 질문에 종이를 바삐 움직이는 여인.
천강은 그 종이를 뺏고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쓰란 뜻이다.
잠깐 고민하던 암룡이 조심스레 검지를 놀렸다.
[ 교주를 통해 신분 회복을 마쳤고, 이곳 사천 부지부장을 통해 주군의 위치를 전달받았습니다. ]
그러면서 서신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무영삼귀와 천마의 전언이 적혀 있었다.
'대략 마교 쪽은 정비가 다 끝나가는 모양이로군.'
늘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은 부지기수로 죽어가는 곳.
그러니 일 처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톡톡. 서신을 다 읽자 천강의 어깨를 암룡이 검지로 두드렸다.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낸 그녀는 그것을 천강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 금나한님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억중이란 요괴가 주군께 전해 달라 했답니다. ]
기묘한 기운이 흐르는 특유의 비단 천.
그것은 천잠사였다.
'자식…….'
무저갱 형벌을 받고 1년간 녀석과 돌아다니던 때가 잠깐 떠오른다. 천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천강은 그것을 검은 구름 안에 잘 챙겨두었다.
"수고 많았다. 피곤할 텐데 그만 돌아가 쉬어라."
그러고 누각으로 돌아가려는데, 몸을 돌린 천강의 손을 암룡이 덥석 움켜잡았다.
[ 저어 주군. ]
"음?"
[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주군을 따라다녀도 되겠습니까?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교로 안 돌아가 봐도 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암룡.
그때 나룻배 한 척이 근처에 닿아 사람들이 내려서고, 그 잠깐 사이 천강은 대략 암룡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무영삼귀야 중원에서 쫓겨 다니는 신세다. 그들은 이번 일을 통해 마교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지낼 거처도 하사받았다.
그러나 암룡의 경우엔 그녀가 아는 모든 자들이 다 이승을 떠난 상황.
그동안은 복수 때문에 버텨왔지만, 그것이 다 끝난 지금 시점엔 마교에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것이다.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며 여인의 궁둥이를 만져대는 진상 손님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암룡이 검지를 찬찬히 움직였다.
[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고 싶습니다. 주군 곁에 있으면 언제든 잡다한 심부름은 물론 마교로 급히 서신을 보낼 때도 쓰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저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
뭐…… 내 입장에서도 한 명이라도 수족이 있는 게 낫겠지. 몸을 운신하기도 편하고.
"그래. 알겠다."
그렇게 암룡은 천강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럼 애들한테 소개를 해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몰래 따라오라고 해야 하나.'
누각으로 돌아가며 잠깐 고민하는데 웬 소란이 느껴졌다.
뭔가 하여 1층 접수대를 바라본즉, 덩치가 산만 한 남정네 이십여 명이 한 여인과 실랑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지나가는 손님들에게서 강제로 기녀들을 빼앗아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여인들이 몸부림치면 그들은 즐겁다는 듯 더욱 그들을 끌어당겼다.
"이봐. 정당하게 돈을 내고 사용 좀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엉?"
"루주 언니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쪽들은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장난해? 이유가 뭔데?"
"그걸 일일이 다 말해야 합니까? 당신들 때문에 기물 파손은 물론 다친 애들이 많아요."
"아, 그거야 술도 먹고 하면 힘을 주체 못 할 수도 있는 것이지. 참나. 안 그냐, 얘들아?"
하하하핫. 크게 웃는 사람들.
"아무튼 절대 안 되니 그냥 돌아가세요."
"하아. 시발. 진짜 이년이 돌았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게, 홍연이라 하는 저 여인도 배포가 참으로 대단하다.
-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중원의 청루와 홍루를 찾아가 이걸 보이세요. 거기에 제가 아끼는 아이들이 있는데, 도움을 드릴 겁니다.
미오왕이 아끼는 아이들이라 했던가?
'도움을 준다면 여러모로 돌아오겠지.'
천강이 찬찬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을 치켜든 남자는 실제로 홍연이란 여인의 뺨을 막 갈기고 있었다.
목이 홱 돌아갈 정도로 세게 맞았는데도, 눈에 눈물이 맺힐지언정 그 눈초리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어, 언니!"
"홍연 언니!"
"하. 이 년 보게. 어디서 눈을 치켜떠! 건방지게!"
다시금 올라가는 손. 그러나 이번에는 여인이 아닌 남자의 뺨을 쳤다.
"응……?"
"어, 어어?"
"너 지금 내 뺨을 갈긴 거냐?"
갑작스런 천강의 등장에 남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이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천강이 나타나는 걸 전혀 못 본 탓이다.
'설마 고수…….'
그러나 천강의 외모가 어린 것을 확인한 그들은 이내 일말의 불안을 벗어던지고 다시 악당 같은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네놈은 뭔데 끼어드는 것이냐. 혹 네 이것이라도 되느냐?"
한 놈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흔들자, 다른 놈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웃음에 천강은 한마디 툭 내뱉을 뿐이었다.
"지랄하네."
"무, 뭣?"
"못 들었어? 그럼 다시 말해줄게. 아주 지.랄.하.고. 납셨네."
"이런 개잡놈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던 녀석이 주먹을 움켜쥐고는 천강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천강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슥 내미는 밀어차기에 복부를 얻어맞은 상대가 10보가량 허공에 떴다가 이내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 입구까지 굴러갔다.
그 한방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
"야. 시, 시발 우리 고수를 잘못 건든 것 같은데?"
"튀. 튀어!"
옆에 강제로 끼고 있던 여인들을 강하게 밀치고는 후다닥 입구로 도망을 친다.
그러나 곧 그들은 그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넌 뭐야?"
"비켜, 썅!"
그들은 입구에 떡하니 서 있는 암룡을 지나가질 못하고 크게 고성을 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는 한때 만천옥주의 다섯 수족 중 하나.
능히 마교 서열로 치면 50번째에 들 만큼의 강자다.
일개 왈패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암룡의 안광이 형형히 빛났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진즉에 나가떨어졌고, 그다음으로 보이는 자가 검지를 치켜들고는 소리쳤다.
"네, 네놈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우리는 사해단이다!"
사해단?
그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던 천강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사해단이면 사천의 배신자들과 연결이 된 자들. 닷새 후에 손 봐줄 녀석들이었다.
'괜히 지금 죽였다간 일이 이상하게 꼬일지도 모른다.'
천강의 걸음이 멈춰선 걸 본 놈들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거들먹거렸다.
"당장 썩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 어느 골목에서 칼 맞아 뒈질지 모를 것이다."
"썩 물러가고 다시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거라!"
그 말을 듣고는 몸을 홱 돌리는 천강.
"오오. 통했나?"
녀석들이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천강이 도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천강의 손에는 몽둥이 두 개가 들려있었다.
"어, 어?"
"그건 왜……?"
"왜긴."
몽둥이 하나를 반대편 암룡에게 건네주며 왈.
"때론 매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거든."
"자, 잠깐."
두 손을 들고는 손사래를 치는 그들에게 천강의 매질이 시작됐다. 그걸 본 암룡도 반대편에서부터 다가오며 하나하나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맞는 와중에도 주둥이는 살아서 열심히 소리치는 녀석들.
그로 인해 술 마시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그들을 지켜보는 형세가 되었다.
"다, 당장 억. 그, 그만두지 못해앳. 으아악!"
"우리는 아악! 자, 잠깐 정강이 맞았어!"
"우린 사해단이다! 뒷일 두렵지 않거든…… 아악. 그, 그만 때려라!"
그러나 과거 모용세가의 제일검, 현경 고수의 엄포에도 사정 봐주지 않고 팬 천강이다.
그들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결국 얻어맞던 한 녀석이 크게 소리치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잠까아아안!"
그 용기 있는 행동에 존경의 시선을 담아 보내는 동료들. 지금부터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처우는 물론, 저 당사자의 말로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저러고 의미 없는 말을 내뱉었다간 시선을 끈 죄로 두 배로 맞으리라.
"뭐 할 말 있어?"
"그, 그게…… 우리가 잘못했긴 하나, 이 정도 맞았으면 충분하지 않소?"
"흠. 그러니까 너희들 말은, 이미 많이 맞았으니 그만 용서해 달라 뭐 그런 뜻이야?"
"그, 그렇소."
천강이 고개를 돌려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홍연이란 여인을 검지로 지목했다.
그녀의 볼은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손바닥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너는 어때? 얘들 충분히 맞은 것 같아?"
여인이 우물쭈물 말을 못 한다. 뒷감당이 안 될까 봐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고민을 끝내고 입을 여나, 천강이 선수를 쳤다.
"아직 부족하다는데?"
"예? 그, 그럴 리가. 네 이년이 감히 뒈지고 싶어서……."
"야."
"예, 옙!"
"너희들 순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천강의 질문에 땅바닥을 구르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천강이 몽둥이를 위협적으로 허공에 휘두르며 이야기했다.
"순자님께선 그러셨지.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없고, 성인들이 남기신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학문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게 무슨……."
"간단해. 오늘 많이 맞아둬야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 말이다."
멈추었던 천강의 다리가 움직인다. 왈패들이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다, 다시는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자비를……!"
그러나 매질은 계속됐다.
"아악! 잠깐 대협!"
"끄으윽. 마, 맞았던 데 또 맞았어……!"
천강은 최대한 힘 조절을 해 아픈 데만 골라 때렸다. 암룡 또한 마찬가지.
그들은 무려 일각(一刻)을 쉬지 않고 얻어맞았고, 그 이후에야 절뚝거리며 누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