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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8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9화

189화. 사천의 배신자들

 

 

짙은 어둠 속.

인기척을 피해 은밀히 만남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를 한 차례 살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들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가? 우리 쪽 제안에 대해 결심이 좀 섰는가?"

"확실히 좋은 생각이더군. 서로가 서로의 적대 세력을 없애준다니…… 뜻대로만 된다면 말 그대로 사천은 우리들 세상 아닌가."

"우리 측 또한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바이오."

"그럼 이로써 합의는 끝났군. 이제 첫 목표를 어디로 할지 정하면 되겠구려."

그러자 한 사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가로 하지."

"이유는?"

"우리의 계획이 진척되면 어떤 식으로는 그들이 나설 것이오. 어찌 됐든 사천 제일이니까."

"그러기 전에 선수를 치자는 말이군."

일리가 있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은 사천당문이네."

"당묘오나 그 여식이 어떤가."

"당소여로 하지."

"그래. 일단 첫 목표는 당소여다."

 

***

 

"주인 어르신! 지금 가게에 당소여께서 당도해 계십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점소이의 말을 전해 들은 방중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보통은 이틀에 한 번꼴. 오시(午時)가 끝날 즈음 나타나곤 했기에 오늘은 안 오는가 보다 하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돌연 미시(未時)에 나타난 것이다.

"야. 네가 이것들 검수해."

"예? 주, 주인 어르신."

"이따 보자!"

방중이 사건 수습을 위해 급히 움직였다.

'으아아아. 하필 우리 가게 단골손님하고 부딪칠 줄이야.'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봉으로 불리는 당소여의 얼굴은 이틀에 한 번씩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치유가 되는 그런 게 있었다.

마교의 고단한 일에 치이는 와중, 방중이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손님하고 하필 천강이 부딪치다니.

'별일 없겠지? 별일 없을 거야.'

그동안 지켜본 천강이라면, 음……. 상대가 여자건 혹은 예쁘건 신경 안 쓰고 손을 봐줄 것 같다.

상대가 얼마나 까부는지에 따라.

'어떡해. 우리 선녀님!'

혹여나 당소여가 흠씬 두들겨 맞을까 걱정이 든 그는 후다닥 가게 안으로 들어서 계단 앞으로 이동했다.

근데 그 순간, 정문으로 들어서는 세 사람. 아니, 세 고수.

"음?"

중원에 정찰조로 있으면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주요 인물들 얼굴 파악은 기본으로 숙지한다.

방중은 보는 순간, 그들이 사천 지역의 배신자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청성파 이대제자, 아미파 일대제자, 그리고 사해단의 부단주로군.'

목적을 모르니 일단은 손님을 맞이하는 척.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급히 볼 일이 있어 그러니 협조하라."

"예? 그 무슨……."

"자세한 건 나중에 주인장에게 직접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러고는 계단을 오르려 하는 자들.

'이것들 아직 여울나무가 망한 줄 모르는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그때, 위에서 전투의 기척이 느껴졌다.

방중이 계단 아래쪽에서 자신의 봉을 빼 들고는 벽을 타고 올라, 그들 앞을 탁 막아섰다.

"비켜라. 죽고 싶지 않으면."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난 그대들에게 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위로 올라가면 진짜 괴물이 있으니까."

"진짜 괴물?"

"있어.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라."

"흥. 기어이 명줄을 줄이는군."

 

***

 

방중이 입구를 틀어막은 그 시각, 사천제일미 최상층에서는 말다툼이 일고 있었다.

"아니, 꼭 그럴 것까지 있소? 이들 중에 죽은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데."

"말 돌리지 말거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분위기를 보아하니 쉽게 물러날 기세는 아니다. 그렇다고 싸우자니…… 한사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한다.

"미안하오. 여인과 싸우는 것은 협에 어긋나서."

그랬다. 어찌 저리 연약하고 아리따운 여인과 위험한 칼부림을.

혹여나 저 미모가 상하기라도 하면 자책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한사의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남궁선이 곧바로 검을 움직였다. 한사의 앞을 막은 검에서 미약한 소음이 일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다량의 침.

"이것은……?"

"어찌 다짜고짜 독을! 사천당문은 기본 예의도 없는 것입니까!"

남궁선이 소리를 치자 당소여가 매서운 눈으로 맞받아쳤다.

"예의 운운하기 전에 소저께서는 동료의 입단속부터 하시지. 여자라고 차별하는 말을 듣고도 가만 있을 만큼 내 성격이 온화하진 않거든."

남궁선의 눈꼬리 또한 바짝 올라갔다.

"난 여자가 아니……."

그러나 그 순간, 어느새 날아든 침 하나가 그의 옷자락에 걸려 흔들거렸다.

당소여가 턱을 치켜들고는 말했다.

"너. 같은 여자로서 봐주는 건 이번 한 번만이야. 두 번은 없어."

당소여의 손이 한사를 향했다. 그 손가락 사이사이엔 실 두께의 침이 여럿 자리하고 있었다.

"생사투를 받을 거냐, 말 거냐. 혹 남자가 돼서 여자를 상대로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닐 테지?"

한사와 남궁선의 시선이 마주쳤다.

- 한 번은 싸워야 할 듯하오.

-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 뒤로 물러나 있으시오.

- 조심하십시오.

살짝은 얼빠진 표정으로 일관하던 한사의 기운이 착 가라앉았다.

당소여는 그가 생각보다 실력자임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생사투라고는 하나, 위험하면 적당히 항복을 해줬으면 하오."

"풉.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한사와 당소여의 신형이 움직였다.

 

***

 

북적북적. 저잣거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그 인파에 끼어 사천제일미를 바라보는 자들.

그러나 그들은 곧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응?"

"햇볕이 뜨거워서 쓰러진 모양인데?"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탈진해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러나 실상은 천강의 신병이기들이 하늘에서 검강을 쏘아 보내 그 정수리를 꿰뚫어 버린 탓이다.

- 이로써 반은 처리했습니다.

- 나머지는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기엔 꽤 실력 있는 자들이니라.

그럴 것이다. 이유는 몰라도 전투를 앞두고 긴장한 상태.

조금이라고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진다면 곧바로 방어를 취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직접 움직여야 하나?'

다만 피가 사방으로 튀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것이고, 저들은 아마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곧장 빼낼 것이다.

그러면 현경은 놓친다.

반대로 현경을 노리면 한 방에 잡지 못하니 다른 화경 녀석들이 몸을 빼낼 수 있을 거고.

'어찌해야 할까.'

코앞에 두 먹잇감을 두고 잠깐 고민하는 그때, 귓가로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곳은 마교 지부 아냐?"

"그게 왜?"

"그럼 그냥 마교 쪽에 협조를 구하면 더 빠를 것 같은데."

"그걸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듣기로는 마교 쪽에선 일을 좀 천천히 진행하길 바라는 모양이야."

"하긴.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달포 안엔 사천 정리가 끝날 테니까."

오호라?

곧바로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가 슥 어깨동무를 하는 천강.

"여어. 동료 여러분."

"누, 누구냐."

"이익."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목뼈가 부러져 뒈지기 싫으면 말이야."

천강의 낮은 윽박지름에 두 사람의 저항이 사라지고, 천강은 생긋 웃으며 물어본다.

"자. 그럼 조금 전 하던 이야기, 마저 해볼래?"

 

***

 

삐이이이-

저잣거리 내로 어떤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위험하니 작전을 중지하고 즉각 퇴각하라는 신호였다.

빠르게 몸을 빼는 사람들. 그들은 사천의 인적 드문 어느 개울가 앞에 모였다.

"누가 신호를 보낸 것이지?"

"글쎄. 문제는 그 신호가 의미가 있다는 거다. 7할 가까이 복귀를 안 하고 있다."

"우리의 작전 계획이 새어 나간 건가?"

"그럴지도."

그때 뒤늦게 다섯 무인이 후다닥 뛰어와 합류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원은 총 열아홉.

청성파의 1장로 청명적풍이 가장 늦게 합류한 이들에게 물었다.

"혹 그대들인가? 신호를 보낸 것이?"

"그, 그렇습니다."

이유를 묻자, 다섯 중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자네들 말은 투파창귀가 나타나 당장 철수하라 했단 말인가?"

"예."

"그대들은 투파창귀를 본 적이 없을 텐데?"

"그렇긴 한데, 신병이기로 보이는 악기들을 다수 들고 있었습니다."

투파창귀의 얼굴은 몰라도 그가 다루는 무기가 악기인 건 누구나가 알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근데 무슨 이유로 철수를?"

제아무리 투파창귀라 한들 중원, 그것도 이곳 사천의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지금 이곳에 흑살마신이 와 있다고 합니다."

"뭐? 흑살마신?"

"마교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이곳 사천에서 여울나무와 손잡은 저희 측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저희 쪽을 사냥하다가, 투파창귀의 등장에 흑살마신은 급히 몸을 뺐고요."

"흠……."

생각에 잠긴 사람들.

"아니, 어찌 흑살마신이 갑자기 이곳에."

설명을 들어도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그때 아미파 쪽 한 여인이 손을 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저 둘의 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퇴각하면서 공교롭게 두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죽은 지 일다경(一茶頃)도 되지 않았으나 몸엔 내기가 한줌도 없었습니다."

"크흠."

"그렇다면 흑살마신이 확실하겠구려."

갑작스러운 흑살마신이라는 지각변동에 사람들의 얼굴에 고뇌가 드러났다.

동료를 스무 명이나 잃은 것은 어찌 보면 전초전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상황.

청성파 1장로의 시선이 그 이야기를 물고 온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래서 투파창귀는 뭐라 하던가."

"조만간 흑살마신이 문파를 하나씩 점거할 것이고, 그 시작이 아미파라 하였습니다. 그때 자신도 함께할 터이니, 다 같이 힘을 모아 흑살마신을 잡자고 하였습니다."

"흑살마신을 잡자?"

"아니 되오! 흑살마신은 50년 전에도 그 위세를 크게 떨친 인물. 어떤 괴물일지 모르외다."

당가 사람의 말에 사람들이 수긍하고 나섰다.

막말로 조금 전 사십 중 그 반이 흑살마신에게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마치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는 듯, 두 사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투파창귀가 그러더군요. 살겠다고 뿔뿔이 흩어지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뭉쳐야 살 것이라고."

"흠.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 사실만으로는 미온적인 사람들.

그때 그들의 귀가 솔깃할 제안이 튀어나왔다.

"만약 이번 일을 도와준다면, 투파창귀 또한 마교로 돌아가기 전 사천의 일을 정리하는데 협조해 주겠다고 약조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사람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악가의 마지막 남은 일인이자 신병이기를 여럿 들고 다니는 투파창귀의 능력은 어찌 됐든 중원의 일반적인 현경들보다 한 수 위로 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협조해 준다면, 각자의 문파를 먹어 치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약속 장소가 어디라 했지?"

"닷새 후 자시(子時). 아미파입니다. 흑살마신을 잡고 바로 아미파를 점거, 이후 사천당가, 청성파 등등 그날 새벽에 모두 정리할 터이니, 최대한 다들 참여해 달라 하였습니다."

즉, 전면전을 한다는 의미.

그동안 너무 은밀히 일 처리를 하느라 진전이 없어 답답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기다림이 벌써 몇 년이던가? 요란하긴 해도 확실한 계획에 다들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게 닷새를 기약한 이들이 모두 흩어졌다.

그리고 조금 있자, 연못의 어스름한 곳에서 한 검은 안개가 스르륵 밖으로 빠져나왔다.

- 일단은 계획대로 움직이는구먼.

- 내력을 빨아들인 시체 두 구를 저들이 도망가는 길목에 배치한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

흑살마신의 등장. 그를 잡기 위해 따라 나타난 투파창귀.

시체와 악기로 증거를 확실히 했으니 그에 대해 더는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아미산에서 그들을 일망타진하는 일뿐.'

일일이 잡으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서 참으로 좋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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