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8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8화
188화. 사천제일미
"어때? 여기 경치?"
"하핫. 연화봉에 비할 바는 못 하지만, 사천의 모습이 두루 보이는 게 정말 절경이오."
방중과 헤어진 뒤, 점소이는 그들을 가게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천강을 소교주로 알고 있는 만큼, 응당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기 위함이었다.
뭐 꼭 그게 아니라도 방중은 자신이 이곳 관리자로 있는 한 천강에게 늘 최상으로 대우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올라선 사천제일미의 최상층.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널찍한 상 하나가 자리하고, 그 위로는 하늘. 주위로는 사천의 전경이 훤히 내다보인다.
또한 상 위로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으니, 한사의 입에서 찬사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내 스승께서 말씀하신 신선놀음인 듯하오. 이런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어 고맙소, 천 형!"
한사뿐만 아니라 남궁선 또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는 게 꽤 이곳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천강이 자리를 잡고는 앉으며 작게 웃었다.
"근데 이 정도로 벌써부터 놀라면 안 되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따 우리가 갈 홍루의 전경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 거다."
"푸웁. 콜록콜록."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린 듯, 기침하는 한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남궁선은 사레에 들리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왜들 이래?'
- 정말 몰라서 그런가요, 소년?
겉모습은 어려 보여도 속은 이립(而立)이 넘은 천강이다.
그리고 꼭 그게 아니라도, 중원 사람들과는 달리 마교는 쥐 굴을 거처 암운곡을 졸업할 때까지 남녀 구분이 없었다.
훈련하는 도중이던 씻을 때건, 서로의 알몸을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까닭에 천강으로서는 두 사람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어여들 먹자고. 음식 식겠다."
그렇게 음식들을 막 한 입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돌연 음식을 먹던 천강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천님. 왜 그러십니까?"
"아, 밖에 아는 얼굴이 지나가네. 나 잠깐 나가서 인사 좀 하고 올게. 먼저들 먹고 있어."
"예, 다녀오십시오."
"천 형. 얼른 갔다 오시오. 늦게 오면 우리끼리 다 먹어 치울 터이니!"
알았다며 미소를 보인 천강이 건물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골목 음침한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느낀 게 맞나?'
- 그래. 현경의 실력자니라.
- 사천에 현경의 실력자면 둘뿐입니다.
하나는 아미파의 수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성파의 1장로.
느껴지는 내기로는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는 청성파의 장로일 가능성이 크며, 청성파 1장로는 배신자 무리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었다.
'현경급은 잠적하면 찾기 힘드니 이참에 처리해 버리는 게 낫겠지.'
그게 천강이 식사 도중 움직인 이유였다.
온몸을 암운신공으로 감싼 천강은 은밀히 녀석의 뒤로 접근했다. 놈은 흥미롭게도 한 가게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가게를 본 천강은 의아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 사천제일미 』
'……뭐지?'
***
"아아. 정말이지 따분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한 여인이 작게 투덜거린다.
목선과 턱선이 유려하고 콧날이 오뚝 선 여인.
고작 지학(志學)에 불과한 소녀지만, 그 모습은 숱한 남정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또한 길게 빠진 팔다리와 몸매는 그 외모를 받쳐주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 끝이 매섭게 선 걸로 보아 성정이 보통은 아닌 게 분명했다.
부채로 입을 가리고는 하품을 하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부채질을 하던 수행원이 고개를 숙이고 바짝 따라붙었다.
"당소여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어제 갔던 곳으로 가자꾸나."
"예."
부채를 내려놓은 수행원이 대신 빠르게 햇빛 가리개를 머리 위로 두른다.
사천의 거리에 당소여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재빨리 길을 터주었다.
"저 사람이 당소여야? 그 5봉(鳳) 중 하나라던?"
"어어. 맞는 모양이야."
"4년 전 용봉지회에 참여할 때만 해도 완전히 꼬맹이였는데, 미모가 엄청나졌구먼."
"괜히 봉이라 불리겠나. 무공만큼이나 외모 떡잎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늙은이들 아닌가."
사방에서 당소여의 미모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당소여는 그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의 칭찬과 우러러보는 시선은 그녀에겐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고관대작의 청혼도 거절했다 하던데."
"그럴 만하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게, 얼마 전 고인이 된 사천당문의 가주는 그녀의 할아버지요, 임시 장문인의 자리를 차지한 당묘오는 그녀의 어미였다.
또한 그 어미의 언니는 무림의 다섯 존자 중 하나인 음존이니, 지위로 보나 뒷배로 보나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기세가 어찌 대단한지, 그녀의 맞은편에서 나아오던 황실 관료조차도 말에서 내려 옆으로 길을 터줄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 그녀가 향한 곳은 한 식당이었다.
『 사천제일미 』
최근 그녀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
그에 이틀에 한 번은 꼭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그녀의 등장에,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당소여는 늘 그렇듯 당연하게 계단 위를 올랐다.
"음식은 저번과 같이."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안절부절못하는 점소이.
"저…… 당소여님."
"음? 무슨 일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점소이가 이리 나온 적은 없었기에, 그녀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점소이가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이야기했다.
"정말 송구하오나, 지금 가게 제일 위층에는 이미 선객이 있사옵니다."
그러자 수행원이 대뜸 그에게 화를 냈다.
"그럼 그를 쫓아내고 자리를 정리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 그것이…… 원체 중요한 손님이라고 들은 터라……."
점소이로서는 진정 죽을 맛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이 누군가.
사천에서 제일 위세가 강대한 사천당문. 그것도 그곳의 현 실세라 할 수 있는 당묘오의 여식 당소여가 아닌가.
그것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정이 꽤 난폭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선객으로 자리한 이들 또한 그녀 못지않은 사람들.
"제발 용서를……."
"흥미롭네. 대체 누가 있기에 그런 것이냐?"
당소여의 질문에 점소이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곳의 주인이자 책임자인 방중이 그 신원을 절대 알리지 말라 한 탓이다.
"하. 고민을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다? 과연 이곳 사천에서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구나. 주인장을 불러라."
"죄, 죄송합니다. 지금 물건 재료를 직접 검수하신다고 자리를 비우신 터라."
"당장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것이냐!"
점소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중이 있는 곳을 향해 튀어갔다.
당소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그걸 본 수행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직속 호위를 맡은 당묵정이 한쪽에서 의자를 가져와 그녀 뒤에 배치했다.
"곧 끝날 것입니다. 잠시지만 앉아 기다리시지요."
그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 쿠당탕 큰 소음이 일었다. 부채질을 하던 당소여의 손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묵정. 방금 그 소리는……."
다시금 울리는 요란한 소리.
"제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당묵정이 올라간 뒤로도 한동안 소식이 없고,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을 느낀 당소여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곧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선객을 쫓아내기 위해 올라갔던 당가의 사람들이 역으로 당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
당소여가 올라서기 약 일각(一刻) 전.
천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사와 남궁선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무인 다섯이 들어와 그들에게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네 이놈들! 썩 이곳을 비우지 못할까?"
두 사람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하자, 들어온 다섯 명 중 중심에 있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당당히 용건을 이야기했다.
"우리 주인께서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자리를 비켜주어야겠다."
"그게 무슨 소리요?"
"곱게 이야기해주니 잘 못 알아듣겠나? 그럼 다시 말해주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꺼져라."
식사 중에 갑자기 나타나 소리치는 걸로도 모자라 뭐?
그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좀처럼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남궁선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한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앞에 서서 정중히 말했다.
"우리가 먼저 이곳에 왔소. 그러니 우리가 식사를 끝낼 때까진 기다리시오."
"한낱 나부랭이가 어디서 말대꾸더냐! 진정 죽고 싶다면 그 소원을 들어주는 수밖에!"
한사와 그 마주한 다섯이 검을 빼 들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진 걸 느낀 남궁선 또한 자신의 검을 들고 한사 옆에 나란히 섰다.
"옆의 둘을 맡기겠소."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디 계집이 감히 사내들 일에……."
계집?
남궁선을 향해 계집이라 조롱하던 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훅 튀어나오는 남궁선의 검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느껴진 탓이다.
급히 검을 들어 막으나 그대로 본인의 검과 신검합일이 되고, 이내 옆 벽에 날아가 그대로 처박혔다.
그걸 본 적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쳐라!"
"아주 혼쭐을 내줘!"
그러나 애초에 절정 수준 다섯이서 두 사람을 이길 순 없었다. 그들은 금세 바닥에 나뒹굴었다.
중간에 저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화경 고수 하나가 난입해 들어왔으나, 이내 한사와 남궁선의 협공에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그대로 쓰러졌다.
"요새 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소. 오직 힘으로 다 해결하고, 기본적인 예는 지키지 않는다니."
"공감입니다. 저희 남궁도 문제가 많지만 이 정도로 무례하진 않습니다. 정말 심각하군요."
아무튼 승부는 갈렸다. 한사와 남궁선이 검을 회수하고는 자리로 되돌아가 착석했다.
그러나 계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에 그들은 도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학(志學)쯤 되어 보이는 소녀.
외모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현신한 듯하나, 눈매와 기세는 맹수 그 자체다.
"네 이놈들!"
그녀는 부채를 치켜들고는 두 사람을 향해 매섭게 호통쳤다.
"감히 이 사천 땅에서 당가의 사람을 건들다니! 죽음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사천당문.
사천엔 수많은 조직이 있지만, 그중 지나가는 이 아무나 붙잡고 첫 번째를 뽑으라 하면 사람들은 두말하지 않고 사천당가를 일 순위로 뽑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음존 천수향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 때문에 숱한 욕을 먹긴 했지만, 반대로 그녀 때문에 이곳 사천에서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된 당가였다.
그게 지속되자 당가는 자연스레 사천의 상가를 장악해, 이후엔 그 자금력으로 실제 권력까지 움켜쥐게 되었다.
의도했든 상황에 끌려갔든, 한사와 남궁선은 그런 가문의 사람들을 건드린 꼴이 된 것이다.
- 일이 커지기 전에 적당히 마무리 짓는 게 좋겠소.
-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한사와 남궁선의 시선이 부딪치고, 한사가 양손을 모으고는 예를 갖추었다.
"미안하오. 식사 중인데 다짜고짜 칼을 들고 덤비기에 제압하게 되었소. 내가 대표로 사과드리리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는 일. 당소여가 눈을 치켜떴다.
"너에게 생사투를 신청한다."
***
'이상하군. 너희들 생각은 어때?'
- 우리가 봐도 확실한 것 같다.
- 이 가게를 여러 고수가 빙 둘러싸고 있습니다.
암살을 위해 지상 골목으로 내려선 천강은 기이한 행태에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강이 포착한 현경을 포함한 약 사십여 명의 무인들이 '사천제일미'라는 식당을 빙 둘러싼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해 딱히 짚이는 바는 없었지만 처음 추론한 부분은 이거였다.
'혹 마교 지부인 걸 눈치챈 건가?'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들이 마교 지부를 공격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여울나무 숲은 숙청당하기 직전 중원 쪽, 즉각 지부의 모든 인력을 자신들의 것으로 재배치했었다.
그러니 그들과 연맹을 맺은 각 문파 배신자들은 응당 이곳이 마교 지부인 걸 알고 있을 것이었다.
'시간상 애매하긴 하지만, 아직 여울나무가 몰락한 건 모르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뭘까. 대체 뭔데 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는 걸까.
그때 돌연 가게 최상층에서 싸우는 기척이 느껴졌다. 주위에 포진해 있던 적들 중 세 사람이 가게 정문으로 이동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쟤들은 왜 갑자기 밥 잘 먹다가 싸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릴 만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건물로 들어선 그 셋과 방중이 다투는 게 느껴진 것이다.
'다들 준비.'
- 좋아. 어디 간만에 몸 좀 풀어보실까!
- 공포. 힘 조절 잘하시게. 이번은 암살이라는 걸 잊지 말고!
- 자, 가자!
골목의 음지에 꾸물꾸물하던 검은 안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