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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8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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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7화

187화. 사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평야.

장마가 그친 곤륜의 평지는 뭐라고 할까, 초록 풀이 나 있는 사막과 같았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뒷배경으로 한쪽에는 곤륜산맥이, 그 반대편에는 사천의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

천강과 그 일행이 바싹 마른 땅 위를 걸어 사천의 땅으로 나아갔다.

한사가 옆으로 다가와 천강을 불렀다.

"천 형."

천 형이라…….

마을의 수해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 식사를 위해 문을 나서는데 한사가 돌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천강에게 넙죽 절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 저번에 큰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리오. 그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즉,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소. 혹 앞으로 형님으로 모셔도 되겠소이까?

- …….

솔직히 달포는 생각에 잠겨 아무 짓도 안 할 거로 생각했는데, 이리 빨리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한 천강이었다.

'어쩌면 생각이란 게 없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생각보다 빠른 회복에 천강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 좋을 대로.

- 예, 천 형!

적어도 형님이 하는 말이라면, 의니 협이니 중얼거리며 발목을 잡아끌진 않으리라.

아무튼 지극히 사심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인해 호칭이 어색하게 다가오는 천강에게 한사가 자신의 용건을 드러내었다.

"천 형!"

"어. 왜."

"내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았소."

"뭘?"

이 녀석, 아직 그때 그 고민 안 끝난 거였었나?

희소식에 천강의 얼굴이 밝아지려는 순간,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남궁적 말이오."

"남궁적이 왜?"

남궁이란 말에 함께 걷던 남궁선도 천강 옆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한사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날 이후 남궁적과의 싸움을 계속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그 검을 이길 방도를 모르겠소."

그럴 것이다.

자연이 오행에 따라 그 상성이 있듯, 그것에 속해 있는 무공 또한 그러했다.

"한사 너는 쾌(快), 변(變), 환(幻)인가?"

"그렇소이다."

화산의 검은 빠르고 변화무쌍하며 눈을 어지럽힌다.

이는 유(柔)의 성질을 띠는 무공을 상대로는 압도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중(重)과 강(剛) 상대로는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바람이 날래다고 한들 태산을 압도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남궁의 검은 물같이 흐르는 유(柔)를 제압하지 못하는 것이고.'

각각의 무공은 그렇게 강점과 약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천 형께서 뭔가 조언 하나 해주시면 안 되겠소?"

조언. 조언이라…….

"백 마디 말보다는 직접 부딪쳐 보는 게 낫겠지."

"그 말씀은?"

"시간 날 때마다 둘이 대련해."

"아……."

남궁선과 한사의 시선이 마주치고, 한사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도…… 천 형. 자랑은 아니지만 난 화경이오. 혹여나 남궁선께서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외다."

"걱정 마. 네 앞에 있는 아이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니까. 물론, 대련은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져야겠지?"

그렇게 사천으로 가는 길. 쉬는 시간마다 두 사람은 대련을 하게 되었다.

천강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검을 나누는 둘을 가만 지켜보았다.

'젊은 게 좋긴 좋아. 쉬는 시간에 쉴 생각도 안 하고 쌈박질하고.'

기운이 넘치는구만.

- 소년, 애늙은이 같습니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네 뭐.

"시작합니다."

"들어오시게."

두 사람이 검이 빛을 받아 강하게 번뜩였다. 날붙이가 부딪치며 수차례 검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확실히 남궁선이 상성으로는 우위이나, 화경의 격차를 좁힐 순 없었는지 번번이 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러나 검기를 발현하지 않고 싸우는 터라 한사는 쉽게 승기를 잡지는 못했다. 그걸 본 천강은 무언의 결심이 섰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눈을 감고는 태감과의 싸움을 떠올리는 천강.

'녀석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암운행보를 따라 했었지.'

즉, 녀석에겐 상성이라는 게 없다는 의미. 그런 녀석과 싸워 이기려면, 적어도 나 또한 모든 무공 원리를 터득해야만 하리라.

그리고 그것에 적합한 무공이 딱 하나 있었다.

'천마신공.'

뛰어난 무공일수록 약점이란 게 없다.

신선들에게 받은 신검과 검마 본인의 재능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천마신공의 검결엔 모든 원리가 다 담겨 있으니, 아마 매일 그것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천강의 시선이 다시 남궁선과 한사에게로 가 닿았다. 둘은 검을 맞부딪치며 치열한 접점을 벌이고 있었다.

'뭐든 예시가 많으면 습득이 빨라지는 법이지.'

일단 나는 강(剛)이야. 강 부분에서만큼은 더 습득할 필요가 없어.

한사가 있는 화산파는 쾌, 환, 변.

남궁은 강, 중.

'흠. 유가 비네. 무당파라도 찾아가 배워야 하나.'

아무튼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고 따라 하다 보면 온전히 내 것들로 만들 수 있으리라.

천강의 눈 위로 내기가 모이고, 그 시선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다.

 

***

 

장마가 끝이 나고 무더운 여름으로 접어드는 와중에도, 산들에 둘러싸인 사천의 땅은 굉장히 선선했다.

산을 내려서기가 무섭게 기다란 성벽이 내다보이고, 오랜 세월 사람과 동물에 의해 잘 다져진 길 위로 많은 인파가 줄지어 오고 간다.

간만에 들어서는 사천의 공기에 천강은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솔직히 이제껏 지나온 길은 중원행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사천은 다르다.

사람 수도 수거니와, 사천당문을 포함 꽤 힘 있는 문파들이 이곳에 여럿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간만이네. 근데 괜히 길 가다 홍랑을 만나는 건 아니겠지.'

뭐 50년 세월이 지났으니 설마하니 살아있겠어? 란 생각이 들다가도, 길을 돌아다니는 무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쏙 사라졌다.

신선환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화경이 상당수 보였던 것이다. 그들 대다수가 열여덟 안팎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훠이훠이. 괜히 이상한 생각 말자.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아무튼 사천당문 쪽은 얼씬도 말아야지. 고개도 안 돌릴 거야.

"그래서 천 형. 어디로 숙소를 잡을 생각이오?"

"아아. 저기."

천강의 손끝을 따라 두 사람의 시선이 이동한다.

그곳엔 거대한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수많은 건물들 위로 혼자만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50년 전과 변함이 없다면 저곳이 맞겠지.'

그런 천강의 생각을 확인시켜주는 두 사람. 남궁선과 한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 형. 저긴……."

"저긴…… 홍루 아닙니까?"

홍루(紅樓).

쉽게 말해 술 먹고 몸 파는 여인들과 뒹구는 곳이다.

본래는 홍루라는 게 그러한 가게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거리를 의미했으나, 저 거대한 건물이 생긴 뒤로는 홍루 하면 저곳을 지칭했다.

다른 창기(娼妓)들을 영업하는 집들과는 달리 시설이 깨끗하고 여인들의 미모가 빼어났으며, 그로 인해 남정네들이 홍루에 가고 싶다 하면 일반적으로 저곳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값은 꽤 나갔다. 다른 집의 열 배 정도.

'과거에 꽤 자주 드나들었었지.'

중요한 정보를 사고팔기도 해, 북명신공의 비급을 찾기를 원하는 천강은 환생 전엔 꽤 단골이었다.

'근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홍루가 예전 그 홍루가 맞는 거겠지?'

순간 그러한 걱정이 들었으나, 양옆에 자리한 남궁선과 한사의 얼굴을 보고는 걱정을 접었다.

우리 숫총각 두 분께서 저곳이 어떤 곳인지를 온몸으로 표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그전에, 밥부터 먹을까?"

산을 오르내리느라 배가 고팠던지 두 사람이 환호하고 나선다. 천강은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한 식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거대한 식당.

"천 형. 저, 정말 이곳에서 드실 것이오?"

"왜?"

"그게…… 좀 비싸 보이오만."

'사천제일미'라 간판이 붙은 그곳을 한사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러나 평소 이런 곳을 자주 다녀보았던 듯 남궁선의 얼굴은 반대로 평온했다.

천강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셋. 좋은 데로 안내 좀 해줘. 주인장에게는 내가 왔다고 좀 전하고."

"누구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옛적에 99번 자리에 앉았던 손님이라 해. 그럼 알아들을 거야."

식당은 꽤 한산했다.

그 한산함은 시간대가 안 맞았다고 하기보단, 화려한 실내 풍경으로 인한 것이리라.

고급스러운 비단이 천장 곳곳에서 허공에 적절히 내려앉고, 벽에는 각종 글과 그림이 걸려 있다.

또한 기둥을 장식한 금붙이 조형들은 웬만한 돈으로는 얼씬도 못 하는 곳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안 앉고 뭐 해, 한사?"

좋은 빛깔의 원목으로 실력 있는 장인이 만든 듯한 의자.

그 위에 흙먼지로 더럽혀진 궁둥이를 붙이자니 좀 그런 듯 한사가 주저하는 중이었다. 그는 엉덩이를 내렸다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허리를 꼿꼿이 폈다.

"흠흠. 전 아무래도 밖에서 먼지 좀 털고 와야겠……."

결국 천강이 내기로 한사의 양어깨를 짓눌러 강제로 앉히고, 한사가 살짝은 멍청한 얼굴로 자신의 의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음식은 어떤 걸로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어어. 전 그냥 간단하게……."

그러나 한사의 말을 끊고는 천강이 말했다.

"이 집 자신 있는 음식은 다 내와. 우리 한사, 이런 데 처음 와봤으니 후회 없이 먹어봐야지."

"처, 천 형!"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사라지고, 한사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음식값이 얼마나 나올지 알고 이러시오?"

"괜찮아. 나 이 집 집주인이랑 친하거든."

"그런. 아무리 그래도……."

"우리 한사 많이 먹어야 한다. 난 그럼 잠시 볼일 좀 보고 올게."

천강이 자리를 이탈하고 사라지자, 그는 바로 옆에 앉은 남궁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궁선께서는 괜찮으시오? 너무 비싼 것 같으니 같이 호응 좀 해주시게."

그러나 선선한 얼굴로 남궁선 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천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실거니와, 설령 음식값을 못 내는 상황이 와도 제가 내면 됩니다. 저 돈 많습니다."

그러며 남궁선이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금원보가 다섯 개가 떡 하니 들어 있었다.

"……."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고 했던가.

순수한 얼굴로 방긋 웃는 소년을 보며, 한사는 왠지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

 

"이쪽입니다."

두 동료가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천강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가게 뒤편에 숨겨진 은밀한 공간에 들어섰다.

그곳에 들어서자 한 사내가 나아와 천강의 손을 맞잡았다.

"천강! 그동안 잘 지냈나!"

"선배도 잘 지냈습니까?"

"하핫. 나야 잘 지내지. 너한테 봉술을 배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하고 이렇게 밖으로 나오다니."

천강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남자. 그는 천강이 1년 차일 때, 5년 차 대표였던 방중이었다.

천강에게 봉술을 배워 상대의 중요 부위만 노린 덕에, 당해 여울나무를 꺾고 수석졸업자가 될 수 있었다.

"근데 선배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요새 사람이 없잖냐. 그래서 사천 지부 부지부장을 임시로 맡고 있는 상황이다."

각각의 도시엔 마교의 지부가 자리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보는 바와 같이 호화스러운 식당으로 둔갑한 채.

방중이 이곳에 부지부장으로 있단 뜻은, 이곳 식당과 사천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관리하는 직책에 있단 걸 의미했다.

"출세했네?"

"하핫. 출세했지. 누구 덕분에!"

사람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수석졸업자라는 명성이 그를 이곳에 앉게 했으리라.

"그래서 이곳엔 어쩐 일이야, 천강?"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능청 떠는 게 제법이야."

"큭큭. 자 받아."

방중이 천강에게 서신 네 개를 건네주었다.

살펴본즉 각각 사천당문, 아미파, 청성파, 그리고 그 외에 작은 문파들의 배신자 명단이 기재되어 있었다.

"근데 혼자서 가능하겠어?"

"내 실력 몰라?"

"실력이야 잘 알지. 암운곡 출신 중 네 실력을 의심하는 자가 있을까? 다만 사방으로 도망치면 혼자 잡기 불편할지도 몰라."

"뭐 그렇긴 한데……."

천강에게는 23개의 신병이기가 있었다. 현경 24명에 해당하는 전력으로부터 도주한다는 게 쉽진 않을 것이리라.

"나 천강이야. 걱정 붙들어 매."

"하핫. 그래."

"그럼 난 이만 간다. 다음에 같이 한잔하자고."

"숙소는 정했냐?"

"어. 홍루에 가 있을 생각이야. 확정되면 연락 줄게."

천강이 배신자 명단을 검은 안개 속에 집어넣고는 발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는 방중이 작게 미소 지었다.

"늘 자신감이 충만한 게 참 멋진 녀석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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