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8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1화
181화. 마교의 습격
어두운 공간.
천장으로부터 또옥또옥 물방울이 떨어지고, 사위는 칠흑과 같이 깜깜하다.
이리저리 뚫린 구멍은 마치 벌레가 파먹은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 안에서 한 남자, 곤륜파의 장문인은 말없이 고뇌에 잠겨 있었다.
'승냥이 같은 것들…….'
언제부턴가 이곳 곤륜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움직임에 불과했지만 이내 그 크기를 더하더니, 하나하나의 사건이 되었고 이후엔 살변에 이르렀다.
차기 장문인으로 지목된 인재가 독살당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이 어디선가 하나둘 죽거나 실종된 것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영물의 짓으로 몰아갔다.
'진정 영물의 짓이란 말인가. 여태 서로 조화롭게 지냈는데 어찌하여.'
이곳 곤륜의 영물들은 특이하다. 보통 영물은 인간을 보면 피하기 마련인데, 이곳의 영물들은 도리어 싸움을 걸어오곤 했다.
마치 여기는 인간이 들어서기 전부터 자신들의 땅이었다는 듯.
그래도 오랜 시간 그들과 마주치다 보니, 그래도 곤륜의 사람들을 보면 넘어가 주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며, 사람들은 영물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후우. 선인들이시여. 송구합니다. 제가 못나 제 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고뇌에 잠긴 장문인의 목소리가 나직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동굴 문을 열고는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문주님! 당장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넌…… 범천? 대체 무슨 일인데, 이곳에 들어오는 게 허락되지 않은 네가 들어와 있는 것이냐!"
장문인의 매서운 추궁에도 그는 몸을 벌벌 떨면서 자신의 할 말을 다 했다.
"그, 그게…… 마교의 습격입니다!"
"무, 뭐라?!"
후다닥 바깥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한 곤륜파 장문인이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곤륜을 이루던 수많은 제자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탓에, 피가 흘러나오는 환부 위로는 뿌연 증기 같은 게 올라오고 있었다.
"전투 중 특이한 점은 없었더냐?"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본 것들을 한 명씩 소상히 말해 보거라."
한 사내의 등장과 그를 둘러싼 곤륜인들. 그리고 단 일각(一刻) 만에 끝난 전투.
그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곧바로 장로들의 사체로 다가가 살폈다.
그들의 몸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마치 숯처럼 시커멨다.
'내가 잘못 생각했더란 말인가? 난 필히 이자들이 마교의 속셈에 넘어가 악을 자행하고 있다 생각했거늘…….'
죽은 지 이각(二刻) 정도밖에 안 된 시신에 내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걸 확인한 장문인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이건 흡공. 즉, 마교에서나 익힐 법한 무공이었다.
"……붓과 먹, 종이를 가져오너라."
범천이 그것들을 가지고 나타나자, 장문인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서신을 단숨에 작성했다.
『 무림맹주. 나 팔룡구검이오. 지금껏 잠잠하던 마교가 기어이 움직이기 시작했소. 현재 곤륜은 괴멸 직전에 상황에 처했고, 그 화마는 곧 중원으로 이어질 것이오. 그러니 미리 대비토록 하시오. 』
"범천, 오죽. 이걸 무림맹 맹주에게 전하라. 그리고 나머지 셋은 나와 같이 이곳을 정비하도록 하고."
"예, 예!"
범천이 서신을 품에 넣고는 오죽과 함께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그들은 조금 전 자신들의 문파를 아작 낸 사내를 떠올리며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 앞으로는 누가 뭘 물어보든 성실히 대답해주도록 하세."
"그, 그러세."
***
- 형계의 시냇물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차가운 공기에 어느덧 붉은 단풍도 드물다."
- 한적한 산길엔 본디 비가 내리지 않건만.
"빈 산중의 푸른 녹음이 사람의 옷을 적시는누나."
물이 흐르는 계곡의 옆을 지나며 천강과 막야가 시를 주고받는다.
천강이 마지막 구절을 마치자, 막야가 크게 놀란 목소리로 칭찬을 연신 거듭했다.
- 소년, 정말 대단합니다. 어찌 모르는 시가 없습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화경에 도달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진다. 한 번 본 것도 잘 안 잊어버린다고 해야 할까.
그 덕에 천강은 웬만한 문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시를 많이 알고 있었다.
- 정말이지 소년을 만난 건 제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보아요!
딱히 나쁠 건 없어 그러자고 했다.
천강이 길을 나아가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숲이 끝이 나고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자, 저 멀리 다시 사천의 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지금이라도 뛰면 늦지 않게 도시에 도착할 수 있겠구먼.
- 흠.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겹겹이 모이고 있는 먹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들판은 평소보다 색감이 더욱 짙고 푸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뭐 급할 것은 없으니, 중간에 비 오면 마을 하나 잡고 쉬지 뭐."
일단 하나의 일을 끝내지 않았던가.
중원을 구해달라는 거창한 임무를 맡긴 했지만, 사실 그게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은 천강은 오랜만의 중원행을 좀 느긋이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피차일반인 신병이기들 모두 그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참으로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신병이기들과 천강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 진짜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천강의 질문에, 긍정을 표하는 투파창귀의 신병이기들.
- 그러하다.
- 투파창귀나 태감(太監)이나 워낙 철저한 인간이었던지라…….
'아쉽네.'
천강의 시선이 잠시 하늘 위 떠다니는 검은 구름에 닿았다.
투파창귀를 처리하고 그 전리품을 취하면서, 천강의 신병이기 개수는 어느새 23개에 다다랐다.
각각의 신병이기들이 능히 현경의 수준에 버금가니, 이는 천강 포함 현경 24명에 해당하는 전력.
말 그대로 천강 혼자서 한 나라 수준에 버금가는 힘을 갖추었단 의미와도 같았다.
물론 아직 악기 종류들은 천강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막야와 천강이 시를 주고받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조금씩 대화에 참여하는 그들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냉담한 9개의 기문병기들.
'악기 다루는 법이라도 배워야 하나. 친해지려면 그게 최고인 것 같은데…….'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 그때, 천강의 얼굴에 똑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공포(工布)의 외침이 머릿속에 곧바로 울렸다.
- 소년, 비 온다. 뛰자!
천강의 신형이 전광석화로 움직였다. 사천까지 가기엔 너무도 먼 거리.
빗줄기가 굵어지고 공기가 습해지는 걸 느낀 천강은 제일 가까운, 그러나 조그마한 마을에 들어섰다.
살짝 걱정은 했으나 다행히도 객점은 존재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벼락이 치며 빗소리가 사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로 드릴깝쇼."
"방 하나 내어주고, 간단히 먹을 음식과 술……."
잠깐 생각을 한 천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차로."
"옙. 알겠습니다. 얼마나 묵으실 생각이십니까?"
천강이 우수수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리켰다.
"장마가 끝나려면 삼칠일(三七日) 정도 걸리려나?"
"보통 그 정도 걸립니다요. 음. 살짝 일찍 끝날 수도 있고요."
태아(太阿)로부터 숙식 요금을 조언받은 천강이 돈을 건넸다.
"나머지는 수고료."
"감사합니다요, 대협!"
점소이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사라졌다.
음식은 곧바로 나왔고 맛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50년 새에 중원에 뭔 일이 있었던 건가? 음식 수준이 왜 이리 올라갔지?'
이름난 객점인가 싶어도 손님이라고는 천강 자신과 한 사내밖에 없었다.
그때 그 사내가 천강에게 다가와 웃으며 이야기했다.
"합석해도 되겠소?"
"좋을 대로."
본디 생판 남이랑 같이 밥 먹는 걸 즐기는 건 아니나, 중원에 대한 지식이 다소 동떨어지는 상황에서는 환영이다.
지학(志學)을 살짝 넘긴 나이. 그는 사람 좋은 미소로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붓는군. 그쪽은 어디서 왔소? 난 섬서에서 왔소이다."
섬서……. 칼을 차고 몸에는 짙은 내기가 흐르고 있다.
그 신체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화경인 걸로 볼 때, 필히 화산파 사람이리라.
"난 곤륜산 인근."
"오오. 곤륜 출신이오?"
"그건 아니고. 그냥 산 뿌리나 캐 먹던 사람이라고 할까. 근데 댁은 연화봉에서 이제 막 내려온 건가?"
천강의 질문에, 그가 하하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아니 내가 화산 사람인 건 어찌 알았소?"
비리비리한 섬서 출신이 칼 차고 다니면 특별한 일 없는 한 화산파지 뭐.
근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지학(志學)에 들고 나면 무림에 초출을 하는데, 보통 동행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를 데리고 다니며 중원을 보여주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곳 중 하필 볼 거라곤 자연밖에 없는 중원의 서쪽, 곤륜 인근까지 온다고?
"일행은?"
"없소. 혼자외다."
"아니, 무림 초출을 혼자 나왔다?"
"뭐 그렇게 됐소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캐묻진 않았다.
이런 건 피해주어야, 저쪽에서도 눈치 빠르게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게 무림에서 서로 간의 예의기도 하고.
"그래서 형씨는 구체적으로 어느 문파 출신이오?"
곤란한 질문을 피하기는 개뿔. 뭔 놈이 눈치가 없어?
산에서 풀뿌리 캐 먹었다고 하면 적당히 알아들어야지.
식사를 마친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또한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강에게 예를 갖추었다.
"난 한사라 하오. 아까 들으니 장마 기간엔 이곳에 쭉 계신다던데, 종종 같이 식사나 합시다."
천강이 알았다며 손을 흔들었다. 왠지 이십 일을 귀찮음 속에서 보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형씨 이름이 어찌 되시오!"
천강은 점소이를 따라 계단 위를 오르며 답했다.
"천이라 불러."
***
칠흑 같은 어둠이 자욱이 내리깔리고, 하늘에서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거대한 궁궐.
한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애매모호한 그 소리의 주인은 황제 앞에서 책을 읽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야기했다.
"더 읽으시겠습니까?"
"흠. 그래. 오늘은 비가 오고 하니, 주역(周易)을 읽고 싶구나."
"예. 그럼 잠시 서고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섬이 예를 올리고는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서고를 향하던 중, 한 인물을 발견하고는 급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태감(太監)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은 없었느냐?"
그가 태감의 귀에 대고는 작게 소곤거렸다.
"반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대장군 쪽이더냐."
"예. 다만, 대장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랫것들이 일을 벌이는 듯합니다."
"아쉽군. 아주 한꺼번에 다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근데 어찌 이리 혼자 은밀히 궁에 드셨습니까?"
태감의 얼굴이 뻣뻣이 굳었다.
불현듯 천산에서 흑살마신과의 일전이 떠오른 탓이다.
"마섬."
"예, 태감."
"흑귀에게 연락이 오는 대로 궁으로 불러들여라."
"그 마인은 무슨 연유로……?"
"알 것 없다. 시키는 대로 하거라."
"예."
마섬이 그동안의 일을 빠르게 인수인계하고는 사라졌다. 서고로 향하는 태감의 안광이 강하게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