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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7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74화

174화. 생사경의 고수

 

 

"제법이네. 이걸 피할 줄은 몰랐는데."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바닥을 잠깐 내려다본 천강의 시선이 20보 정도 떨어진 태감에게 닿았다.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정돈 중인 남자.

'분명 완벽하게 은신을 갖추고 접근했어.'

어느 정도인고 하니, 몽둥이가 녀석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피했다. 천강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정돈을 마친 태감이 천강을 위아래로 훑었다.

"네놈이로군. 50년 전 우리의 일을 방해한 미꾸라지 같은 녀석이."

"아아. 그때? 딱히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런 것치고는 정말 열심히 뛰더군."

태감의 말에 천강이 한 차례 파안대소를 하고는 말했다.

"미꾸라지가 죽은 듯이 있는 거 봤어? 흙탕물을 일으키는 게 걔 본연의 성질이야. 그게 자연의 섭리지. 너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에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안 그래?"

"그 말은 정말 의도한 게 아니다?"

"그래. 난 나 살겠다고 바삐 움직인 거였는데 공교롭게도 뭐 그렇게 되었네."

픽 코웃음을 터뜨린 태감이 말을 이었다.

"그럼 비켜라. 이번엔 방해하지 말고."

"그건 안 되겠는데?"

태감의 이마에 주름이 올라왔다. 반만 뜬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천강이 그 이유를 설파했다.

"이번에도 내가 살기 위해 전력으로 움직이는 중이라서 말이야."

"방해하지 마라. 그럼 네가 원하는 그 목숨, 살려주겠다."

그러고는 피신 중인 흑선마희를 뒤쫓으나, 천강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이내 태감의 앞에 나타나 그 가슴에 장법을 먹였다.

팡. 태감이 곧바로 천강의 손을 털어내고는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제법이야. 흡공을 쓰기 전 바로 털어내고."

"……진정 죽고 싶은 게냐."

"글쎄. 모든 무림인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나만의 철칙이 있어서 말이야."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중 맞은 건 배로 갚아주기.

"맞은 건 아니지만 받은 건 돌려줘야겠지."

그러면서 천강이 종이를 꺼내 태감에게 날려 보냈다. 그걸 받아 내용을 확인한 태감의 얼굴이 뻣뻣이 굳었다.

 

『 흑살마신의 위치를 계속 파악하라. 내가 직접 그 목을 치러 가겠다. 』

 

"어디 더 입 털어봐."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냥 모른 척 피해 다녔더라면, 그 벌레 같은 생을 조금은 더 누릴 수 있었으련만."

태감이 서신을 불태워 허공에 흩날렸다. 그 너머에서 천강이 슥 자세를 낮추었다.

폭풍전야의 고요. 무거운 적막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고. 이내 두 시선이 첨예하게 맞부딪쳤다.

 

***

 

천강이 알기로 심검(心劍)은 팔을 휘두르지 않는다. 벤다는 의지만 있으면 될 뿐, 그저 시선을 주면 끝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선을 줄 필요도 없지만.

그런데 놈은 팔을 휘둘렀다.

벤다는 의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형(形)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즉 녀석은 아직 심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의미였고. 그 말인즉슨 아직 육신의 한계에 매여 있는…… 온전한 생사경은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수풀에 숨어, 흑선마희와 태감이 싸우는 모습을 본 천강은 놈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천강이 자세를 잡았다. 녀석도 팔을 들어 올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을 들기라도 한 듯한 자세. 신병이기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무리 그래도 생사경 고수를 상대로는 아니다. 도망가자.

- 그래. 소년, 너라면 십 년 안에 생사경도 달 수 있다. 그때 싸우도록 하자구나.

- 소년. 우리 말을 들어요.

'다들 조용. 싸움에 집중 좀 하게 협조들 좀 하지?'

그런 그때, 천강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걸 느낀 태감이 팔을 휘둘렀다. 천강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옆으로 움직였다.

피하기가 무섭게 서 있던 공간을 가르고 지나가는 태감의 의지.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니, 급하게 피해 자세가 무너진 천강에게 태감이 연격을 날렸다.

사삿- 사사삿-

하지만 암운행보를 사용할 수 있는 천강은 자세와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든 회피기동이 가능한 상황.

태감이 눈이 착 가라앉았다.

"제법이군."

"칭찬인가?"

"그래. 미오왕도 피하지 못한 일격들이다. 흡공을 써 움직임이 별로일 줄 알았더니 아니로군."

태감의 움직임이 더욱 매서워졌다. 그에 따라 천강의 신형도 숲 곳곳을 빠르게 누비기 시작했다.

왕이라 불리는 무림의 절대 고수조차도 피하지 못한 일격을 피한 천강. 태감은 그 이유로 천강의 신묘한 발놀림을 주목했다.

그러나 실상은 좀 달랐다. 제아무리 몸이 날래 본들 손보다 못한 법이다.

'역시 효과가 있다.'

미오왕과 태감이라는 두 절대고수가 싸우는 순간부터 천강은 심안(心眼)을 사용해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독목신공을 사용,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다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회는 한 번. 적어도 한 번은 올 거야.'

상대는 지금 천강을 자기보다 하수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다.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심안과 인간의 한계까지 다다른 내공의 양을 제외하면 사실상 천강 또한 현경에 불과했기에.

아까 북명신공의 효과가 미약한 걸 확인한 천강이 신병이기들을 쏘아 보냈다.

검은 안개에서 튀어나온 신병이기들이 태감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흥. 이런 의미 없는 짓거릴."

태감이 손을 한 번 휘젓자, 신병이기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 으허어억.

- 꾸에엑.

그러나 신병이기들이 잠깐의 틈을 벌어준 덕분에 천강은 놈의 지척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웅. 공간에 미약한 떨림이 일고, 천강의 손아귀에 순백의 검신을 가진 검이 나타난다.

"그것은?!"

검을 알아본 태감의 눈이 번쩍 뜨이고, 천강의 손에서 천마신공의 검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천마신공 환검결 제1식, 춘풍낙화.

좌에서 우로 검이 궤적을 그려 나간다.

그와 더불어 천강의 등 뒤로부터 수십의 검이 생성돼, 목표인 태감을 향해 빠르게 짓쳐들어온다.

그것은 마치 꽃봉오리의 형상과 같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혹해 시선을 뺏긴다면, 그 육신이 산산조각이 날만치 위력적이었다.

만개했다가 다시 모이는 수십의 환검.

사사사사삿-

그때 태감의 두 손이 모여 크게 원을 그렸다.

핑그르르- 중심으로 모여드는 검이 바깥으로 도로 튕겨 나간다.

'두전성이?'

순간 모용세가의 비기 두전성이인 줄 알았으나 조금 달랐다. 가만 보니 무당의 태극의 원리를 사용해 모든 공격을 흘리고 있었다.

'무당의 태극권이라면 간단하지.'

천강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발 또한 마찬가지.

좁혀든 거리에서 펼쳐진 맹공 탓에 태감은 심검을 사용하지 못했고, 흘리는 데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그 탓에 애꿎은 천산의 지반이 산산조각이 나며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놀랍군.'

신검. 제대로 써보는 건 처음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천마신공의 위력을 배가시켜준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단순한 초식이 이 정도면, 파검결을 대체…….'

새삼 천마가 왜 파검결을 써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천강은 파검결 대신 환검과 쾌검을 지속했다.

보다 못한 신병이기들이 물었다.

- 그냥 한 방 큰 거 날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 크게 한 방 가자꾸나!

'조용히들 해. 방금 전 녀석이 공격을 가볍게 흘리는 거 못 봤어?'

보통 놈이 아니다. 아까 미오왕의 기술을 맞고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기술 크게 한 방 날리는 것에 천강은 늘 회의적이었다.

'자고로 싸움이란, 이제껏 땀 흘려 수련한 것을 모두 모아 내놓는 결실.'

진정 이기기를 원한다면, 큰 기술이 아닌 도리어 작고 간단한 기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천강은 여유를 갖고 찬찬히 태감을 구석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약 일각(一刻)이 지났을 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정신없이 몰아치던 공격을 일단 궁여지책으로 무작위로 흘리던 태감이…… 그 자세가 무너진 것이다.

천강의 안광이 번뜩이고, 그 신형이 순식간에 태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의 머리 위였다. 태감은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어, 재빠른 회피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못해도 팔, 혹은 다리 하나를 가져간다.'

뒤로 잡아당긴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며 검의 비를 선사한다.

'천마신공 쾌검결 제8식, 검우(劍雨).'

수백의 칼날이 태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쾌검. 워낙 빠르고 많은 찌르기라 이건 태극은 물론 두전성이로도 막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런 그때였다.

갑자기 태감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옆으로 이동해, 검우(劍雨) 영역을 벗어나는 태감의 몸뚱어리.

그의 발바닥 밑으로 나선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것은 암운행보였다.

"너무 기고만장했군, 흑살마신."

태감의 팔이 움직였다.

그의 눈은 정확히 천강의 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끝이다."

태감의 심검(心劍)이 천강의 목을 갈랐다.

 

***

 

태감.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하는 걸 흉내를 잘하였다. 뭐든지 한 번 보면 그걸 따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황궁에 들어가서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고, 이어 황제의 눈에 들기까지 하였다.

그런 그의 재능은 단순히 잡심부름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였나?"

무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모조리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재능을 통해 끝없는 성장을 이루었고, 불과 30년의 세월 만에 지존(地尊)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단 한 번 봤을 뿐인데, 무림인들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능력.

흑살마신이 그를 궁지에 몰았다고 확신해 큰 기술을 쓰는 순간, 그의 경공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태감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천강의 목을 갈랐다.

이 한방을 위해 일각(一刻) 동안 당하는 척 연기를 한 것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 드디어 네 명을 끊어놓는구나, 흑살마신!'

그러나 곧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목을 갈랐으면 마땅히 그 부위에 자리한 기운이 잘려 나가는 게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당황스러워하는 그때, 상대의 낯빛이 눈에 들어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흑살마신.

어찌 보면 섬뜩하기까지 한 그 미소는 태감으로 하여금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네놈의 숨긴 한 수가 그거였구나?"

천강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태감 위에 나타나고, 당황하는 바람에 미처 대응을 못 한 그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면서 그대로 같이 지반으로 낙하.

그런 천강의 손엔 신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대신 보랏빛 검이 음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 이번에도 피할 수 있나 보자고."

천강과 태감, 그리고 신물(神物)이 한데 어우러져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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