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7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72화
172화. 어딜 도망가려고
"큿. 닥쳐라!"
투파창귀가 팔을 좌에서 우로 거칠게 휘둘렀다. 그에 따라 수백의 음파가 요동을 치며, 전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소요절기 제6식 해일.
"피해!"
"이런 미친!"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싸움을 멈추고는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그러나 산사태마냥 매섭게 다가오는 기의 파도에 천강이 취한 행동은 간단했다.
몸을 낮추고는 그 기운을 머리 위로 그냥 흘려보낸다.
쿠콰콰콰콰-
"어, 어떻게……."
"바람이 거칠게 불어 파도를 만든다 한들, 육지가 사라지진 않지."
"이이익!"
투파창귀의 손을 바삐 움직였다.
한 번 본 적 있는 악가의 절기, 거대한 회오리가 천강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신병이기의 힘이 더해진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해, 주위 몇몇 이들은 그것에 빨려들지 않도록 바닥에 납작 엎드리기까지 해야만 했다.
"이것도 어디 막을 수 있나 보자!"
소요절기 제7식 회오리.
일필일사의 거처가 산산조각이 나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모조리 그것에 휩싸여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헉.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결과를 바라보는 투파창귀.
그러나 하늘 높이 치솟던 용오름이 순식간에 잠잠해지며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람이 매섭게 몰아쳐 태풍을 일으킨들, 태산이 사라지진 않는 법이고."
"어찌 그걸……."
"크게 포장해 눈을 사로잡아도 결국은 한낱 바람일 뿐이니까."
이곳에 오기 전, 청청과 싸우면서 천강은 심안(心眼)을 사용해 그 원리를 파악했다.
악가의 기술들은 하나같이 바람을 이용한 것으로, 공기 중에 인위적으로 파문을 일으켜 대자연의 기를 끌어다 쓰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술들이 모두 흐름을 타는 경우가 많았고, 어쩌면 악가가 대대로 현경에 쉽사리 도달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 원리를 파악해버린 천강에게 기술 파훼는 아주 쉬운 일.
'특히 회오리는 더욱 파훼하기 쉽지.'
신병이기들을 모아 강하게 회전시켜, 밀려드는 나선의 흐름을 정반대로 감아줬다. 그러자 그냥 맥없이 풀려버린 것이다.
"그런……."
자신의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한 투파창귀의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천강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투파창귀의 신병이기들이 달려들었으나, 곧바로 천강의 신병이기들에 막혀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은 끝이다. 항복해라."
두 사람의 싸움 결과에 서로 눈치를 보는 사람들.
의뢰를 위해 합류한 정사파 무리는 진즉에 멀찍이 떨어져 싸움을 지켜보는 상황이었고, 그저 외부협력자들과 여울나무 측만이 전장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줄곧 굳어 있던 투파창귀의 입이 움직였다.
"투항하면 우릴 어떻게 할 거지?"
"50년 전과 같은 일을 일으킨 배신자들을 가만 놔둘 순 없지. 단전을 폐하고 남은 생을 풍미관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물론, 원하면 다른 곳으로 가게 해줄 수는 있으나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개죽음당하기 싫다면 말이야."
"하. 하하핫."
투파창귀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 자세를 갖추었다.
"무인에게 단전을 폐하는 건 곧 죽음. 그걸 아는 이가 그딴 제안을 하는가."
"나도 그리 생각했는데, 네 제자는 그리 생각 안 하는 모양이더군."
"웃기는 소리. 죽으면 죽을지언정, 시체마냥 그렇게 살진 않을 것이다."
투파창귀를 필두로 다른 이들 또한 투지를 불태웠다.
호흡을 한 차례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별수 없지. 끝을 보는 수밖에."
사실 투항을 요구하긴 했지만 이리될 줄 알고 권한 것이었다.
아직은 싸움이 끝나선 아니 됐기에.
여기서 계속 싸우고 있어야, 흑막 녀석도 더욱 열심히 자신이 준비한 수를 쓰기 위해 움직이지 않겠는가.
투파창귀가 음공을 쏘아 보냈다. 천강이 파리를 내쫓듯 손등으로 그걸 툭 튕겨내고는 투파창귀를 향해 접근했다.
그에 따라 곳곳에서 다시 재개된 싸움.
파밧. 파바밧-
필사적으로 발악을 하나, 투파창귀의 일격일격은 천강에게 그 어떤 일격도 먹이질 못했다.
투파창귀가 입술을 짓씹었다.
'……역시 몸을 빼내야 하는 건가.'
이미 세는 기울었다. 마교를 집어삼키는 건 실패했고, 흑살마신을 잡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냥 지금은 몸을 빼낸 뒤, 황실 쪽으로 합류해 다음 거사를 준비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녀석이 암운사신의 경공을 사용한다고 하나, 악가의 경공 또한 중원 최고.'
마음먹고 도망친다면 절대 뒤를 쫓지 못 하리라.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적삼혈마였는데…… 주변을 둘러본 그는 곧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적삼혈마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두고 보자, 흑살마신.'
주변에 흩어져 싸움을 치르던 신병이기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투파창귀는 그것들을 이끌고 그대로 산 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전장을 이탈하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
'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의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등 위로는 흑살마신의 다리가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악가의 뛰어난 경공도 그를 따돌릴 순 없었다.
***
"태감! 태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이동했다. 일곱의 병사가 헉헉대며 그 앞으로 도착해 상황을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본대가 습격받았습니다."
"습격? 그게 무슨 말입니까."
"거대한 뱀이……."
"무슨 소린가? 그건 이무기였네!"
뱀이니 이무기니 서로 다투는 병사들.
가만 요약을 해본즉 영물 하나가 나타나 대기 중이던 병력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암운곡 지하수로에 있던 이무기가 사냥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는…….'
서로 다투던 병사들이 다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지휘첨사 또한 이미 그 입속으로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 태감께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이대로 가다간 본대는 전멸입니다."
그건 곤란했다. 남은 마교인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본대는 필히 필요했다.
그래야만 황궁으로 귀환했을 때,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소상히 전달될 테니까.
무림에 황궁의 힘을 확실히 새겨주기 위해서는 보는 눈과 귀가 많아야 했다.
"부관."
"예, 태감(太監)."
"이쪽 일을 잠시 맡기겠습니다."
"염려 말고 다녀오시지요. 속전속결로 일을 정확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반드시 성공하셔야 합니다."
"제 목을 걸겠습니다."
태감이 천산의 지하수로로 들어가는 비밀통로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혀를 차며 빠르게 남쪽 군영이 자리한 곳으로 이동했다.
한편 그 시각.
황실의 군대가 주둔한 곳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되어 있었다.
"화살을 쏴라! 쏴!"
"소용없습니다. 통하질 않습니다!"
거대한 영물이 날뛰는데, 비늘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질 않았던 것이다.
활을 쏘면 튕겨 나가고, 창으로 찌르면 창대가 부러진다.
검으로 내려치면 날이 상하는 상황.
그나마 철퇴가 조금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몇 번 사용하자 금세 손상되고 말았다.
"으아악. 도망가!"
"살려줘!"
비명이 하늘을 메웠다.
이미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간 상황에, 싸우는 병사들이나 지시를 내리는 지휘권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차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때 사정없이 그들을 집어삼키던 흑사의 몸이 돌연 멈칫했다.
'뜨, 뜨거워.'
용이 돼 하늘로 승천을 준비하는 뱀이나 이무기들은 몸이 늘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로 인해 항상 물을 끼고 사는데, 그 열기를 다스리지 못할 경우 자칫 죽을 수 있었다.
흑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임을 직감하고는 허겁지겁 천산을 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이 빠져나온 구멍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
"제법이네. 쥐새끼마냥 도망 다니는 게."
천강의 말에 투파창귀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늘어났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그는 흑살마신을 견제하며 도주, 거리를 벌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속도 좀 내볼까 하면 순식간에 다가와 위협을 해댄 탓이다.
아까 전 등허리에 맞은 일격이 욱씬욱씬 거리는 걸 느끼며 투파창귀는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고자 애를 썼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잡힌다.'
진정 살고자 한다면 필사의 각오가 필요할 터.
투파창귀를 따라다니던 신병이기들이 부르르 떨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은 공격 방도라도 떠올랐나 봐?"
"그래.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투파창귀의 표정을 읽은 천강의 얼굴에 흥미가 올라왔다. 응집되는 양이 보통이 아닌 게, 일격필살이라도 준비하는 모양.
실제로 투파창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 한 방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일직선으로 몸을 내빼는 투파창귀와 그런 그를 뒤쫓는 사내.
마치 어서 기술을 날려보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 천강의 얼굴에 올라왔다.
'그 자신감이 네 실수로 이어질 것이다!'
투파창귀 앞으로 모든 신병이기들이 모였다.
그것들은 주위에 떠다니는 대자연의 기운을 끌어모으더니, 투파창귀의 기운과 어우러져 일제히 쏘아져 나갔다.
일대를 산산조각을 내며 나아가는 투파창귀의 일격.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재미있네."
쿠콰콰콰콰-
'성공했나?'
창공의 하늘. 그 위를 나는 투파창귀의 시선이 조금 전 폭발이 인 곳에 닿았다.
모든 신병이기들을 끌어모아, 그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날린 한방.
경공만으로는 흑살마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어, 강력한 일격을 날리며 그 반발력을 날개 삼아 도주를 시도한 투파창귀였다.
'신병이기들이 아깝지만 별수 없지. 일단은 생존한 것에 의의를 두는 수밖에.'
그렇게 천산 밖으로 전력으로 도망을 가는 그때였다.
"신비한 재주는 이걸로 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앞으로 흑살마신이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아아. 이전이라면 모를까, 나도 이젠 속도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말이야."
마교 제일의 경공인 암운행보와 공기의 저항을 없애주는 백호의 가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백호와 자웅을 겨룰 만큼 빠르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발바닥을 통해 지천뇌공을 사용한다면, 곱절 이상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원래 있던 데로 돌아가야지?"
"이런 우라질……."
"이 악물고 내기 끌어올려라. 뒈지기 싫으면."
투파창귀가 양팔을 앞으로 모아 방어하고 천강의 일격이 그것에 닿았다.
천산의 하늘을 뒤흔드는 나지막한 파공음. 투파창귀는 그대로 날아가 자신의 신병이기들이 있는 곳에 같이 처박혔다.
따라 내려서기가 무섭게 천강에게 나아오는 두 사람.
[ 작전 완료 ]
"뱀이 막 자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상류에 다 진입한 상황입니다."
암룡과 일귀의 보고에 천강이 수고했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슬쩍 연회장을 본즉, 그쪽 싸움도 거의 일단락되어 보였다.
'역시 천마는 천마인가.'
그럼 무대도 싹 다 정리됐고, 이제 남은 건 손님을 맞으러 가는 것뿐.
천강의 시선이 남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