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5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59화
159화. 계획대로 움직이다
- 저기, 소년. 왜 아까부터 자꾸 도발하는 것입니까?
- 여기 올 때, 싸울 생각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누각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투파창귀를 도발하는 천강.
그로 인해 투파창귀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곤란하긴 하지. 싸움이 일어나면 말이야.'
여기서 싸움이 일어났다가는 곧바로 전면전. 흑막을 이곳으로 유도하리라는 거창한 계획은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천강이 계속 투파창귀를 도발하는 이유.
사람은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 자신이 가진 내면의 것이 튀어나오게 된다.
심안(心眼)을 얻고 생사경(生死境)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천강은 그 하나하나의 정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연화의 모든 걸 이해하는 순간, 천강은 그녀에 관해서는 독심술이라 할 정도로 모든 걸 통달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이 투파창귀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모두 깨닫는다면, 그의 생각, 계획, 행동까지도 다 통달하고 파악할 수 있다 확신하는 천강이었다.
그래서 계속 이리저리 찔러보는 것이고.
- 그것 때문에 이곳에 당도하기 직전 신목의 과실을 먹은 거군요!
그래. 그리고 이제 녀석의 생각을 좀 알 것 같다.
'이 자식…… 뭔가를 꾸미고 있구만?'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것일까. 천강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투파창귀가 이를 바득 갈며 낮게 으르렁댔다.
"이젠 하다 하다 내 행동을 모두 따라 하는 것이냐!"
"이젠 하다 하다 내 행동을 모두 따라 하는 것이냐!"
"놈!!"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투파창귀.
천강 또한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주의 얼굴에 황당하단 표정이 올라왔다.
"신교의 하늘이시여. 아무래도 즐거운 시간은…… 빠득.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그래. 그만 물러가세."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투파창귀가 매서운 눈으로 천강을 쏘아보고는 바람 같이 사라졌다. 천강 또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다 신병이기들의 제지에 우뚝 멈추어 섰다.
"이런……. 가버렸나?"
눈두덩에 손을 올리고는 투파창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천강의 행태에 교주가 잔을 비우며 물었다.
"대체 왜 그런 것인가?"
"뭘?"
"그 도발 말이네. 거의 싸우지 못해 안달 난 수준이더군."
"그냥 녀석을 따라 한 것뿐인데."
그걸 말하는 것이네. 그러나 교주는 말을 아꼈다.
눈두덩에서 손을 내린 천강이 자리에 앉아 잔을 새로 채우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이렇게 하면 녀석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나 해서 그런 거였다."
"효과가 있긴 한가?"
"어. 생사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 그런지 꽤. 아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강의 말을 듣던 천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생사경으로 가는 방법이라 그 말인가?"
"어. 내가 말 안 했나?"
"흑살마신. 자세히 좀 설명해보게!"
간절한 얼굴로 천마가 천강에게 매달렸다. 천강은 잠깐 고민하다, 자신이 배운 것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토끼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방법을 말이다.
'이로써 동지가 하나 늘었군.'
한편 그 시각.
누각에서 멀어지는 투파창귀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흑살마신의 도발이 상당히 화가 나긴 했지만, 앞으로 얻을 이득에 비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어디 다음에 마주할 때도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나 보자.'
암운사신과 두 제자.
그들의 생명을 움켜쥐기만 한다면 오늘의 치욕과 수모는 모조리 되돌릴 수 있으리라 확신한 투파창귀였다.
그렇게 기대를 안고 여울나무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섰다.
앉아 기다리던 마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소식은 아직인가?"
"예. 아무래도 사냥이 좀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암운사신의 수제자들. 마음먹고 숨는다면 찾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그러겠지. 기척을 완전히 지우는 무공이니."
그러나 암운사신의 무공에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면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그 사문에서 일각(一刻)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채 열 명이 안 될 정도로.
"금세 잡힐 것입니다. 걱정 붙들어 놓으시지요."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여울나무의 병력들은 살기 위해 전력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피, 피해!"
"이런 미친. 난데없는 이무기라니!"
신수를 제외하고는 대자연의 영물 중 제일이라는 이무기의 분노는 가히 대단했다.
한 번 몸을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공동엔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크게 일었다. 심지어 움직임조차 날카롭게 교묘해 여울나무 측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묵봉타귀님은 어디 있나! 어서 명령을!"
"포기해. 이미 골로 갔어!"
"탈출하라. 모두 오목골로 도로 올라가!"
그러나 공동 위 구멍으로 올라가던 이들이 도로 떨어져 내렸다. 위쪽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그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일귀님 말대로네. 그 뱀 무지막지하게 센가 본데."
"그러게. 이렇게 하는 일이 없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호호호."
막 위로 올라오는 마인의 머리 위에 묵직한 몽둥이가 내려앉았다.
검은 기를 머금은 그것은 올라오는 이의 머리통을 부수고, 단숨에 막힌 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근데 언니. 이제 무기는 좀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돼?"
초아가 반만 뜬 눈으로 묻자, 서아가 오른쪽 어깨에 몽둥이를 걸치고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 무기가 어때서 그러니?"
"아니 좀…… 단검 같은 걸 쓰지. 누가 보면 우리 사문 출신이 아니라 무슨 외공 문파 쪽 사람인 줄 알겠어."
"무기는 자신에게 맞는 걸 쓰는 게 제일 좋은 거란다. 얼마나 좋아? 시원시원하고."
몽둥이가 다시 하늘 위로 쳐들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올라오는 이의 머리통을 부수고 막힌 구멍을 뻥 뚫었다.
"그렇긴 한데."
좀…… 무식하게 보여서 그렇지. 초아는 뒷말을 생략했다.
괜히 엄마에게 사족을 붙였다간 본전도 못 찾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로써 한 건 해결인가?'
결국 삼백여 명의 여울나무 정예들은 대다수가 이무기의 밥이 되었고, 채 1할도 안 되는 소수만 살아남아 상류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귀, 삼귀에 의해 명을 달리했다.
이날 여울나무 측에서 살아 돌아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쾅. 묵직한 주먹이 상을 후려친다. 현경의 분노에 그것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그 파편을 쏘아 보냈다.
"스승님……."
"오늘 수련은 알아서 해라."
"예. 알겠습니다."
청청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조금 있으니 적삼혈마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해 있었다.
"어찌 되었느냐?"
"조사해본 결과, 투입된 인원 모두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영내 정비는?"
"쉽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뛰는 이들과 저와의 연결고리 중 두 개를 연달아 쳐낸 게 너무 큽니다."
부관 하나만 쳐냈으면 어떻게든 금세 복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그나마 적삼혈마가 살아있어 어찌어찌 회복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 화재 사건으로 문서들을 전부 소실했을 때, 그걸 다시 작성하면서 남은 기록이 적삼혈마의 머릿속에 있었다.
"못해도 달포는 넘길 듯 보입니다."
달포라…….
"우리 측 식량이 얼마나 되지?"
"겨울까지는 버틸 양이 됩니다."
투파창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서성이던 그는 이내 딱딱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문을 걸어 잠근다. 근무 중인 모든 인력들을 불러 모으고 전면전을 대비한다."
"전면전…… 말입니까?"
전면전은 너무 일렀다. 물론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것보다야 뭉쳐놓는 게 더 통솔하긴 편하지만, 한 번 불러들이면 되돌릴 수 없었다.
그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는데 투파창귀가 손을 들어 그것을 제시했다.
"두 번의 계획을 연달아 실패했다. 이 상태에서 각개격파를 당하면 답이 없다."
그것이 사기가 됐든. 병력이 됐든.
"이대로 가봤자 야금야금 병력을 잃기만 할 뿐…… 흩어진 병력을 싹 다 한데 모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신을 불러라."
"예? 사신은 왜?"
순간 의문을 표하던 적삼혈마의 머릿속에 그제야 투파창귀의 계획이 들어왔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
달이 떠오른 늦은 밤.
사람과 동물이 서로를 마주 보고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동물 쪽이 쉬익쉬익 콧김을 내뿜었다.
녀석은 왠지 모르지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하는 듯한 인간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 적당히 겁을 주고는 쫓아내려는데 상대는 그런 자신을 향해 도리어 머리를 들이미는 상황이었다.
성질을 내고 머리를 들어 위협해도 꼼짝 않는 사내.
결국 협상은 결렬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멧돼지가 맹렬히 돌진했다. 상대도 지지 않고 그런 자신에게 머리를 내밀고 달려들었다.
쿵. 서로 맞부딪친 두 종족.
꾸이이잇!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멧돼지가 그대로 쓰러졌다. 인간 사내와 부딪치며 강한 충격을 받은 탓에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그 행태를 똑같이 따라 하며 쓰러지는 인간.
그때 그에게로 누군가 다가왔다.
"주군."
"……."
"적이 움직였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천강이 흙먼지를 털었다. 그리고는 이마를 살살 문지르며 발길을 옮겼다.
천산의 밑자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두 사람.
이내 높다랗게 솟은 나무 위로 오르자, 꼭대기에 먼저 자리해 있던 암운사신의 손끝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야음을 틈타 이동 중인 두 존재가 있었다.
"사신이로군."
"어. 정보원들에 의하면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러 간다는 것 같다."
두 사신은 천산을 지나 풍미관의 들판에 들어섰고, 이내 그곳을 가로질러 중원으로 향했다.
그것을 가만 지켜보던 일귀가 천강을 돌아보았다.
"주군. 그냥 저대로 보낼 것입니까?"
"아니."
그럴 순 없지.
천강의 몸이 한껏 움츠렸다. 이후 몸을 펴며 단숨에 쏘아져 나간 그는 풍미관을 은밀히 지나는 그들 중 하나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자 하나는 남고 다른 하나는 후다닥 몸을 내뺀다.
주먹으로 가볍게 박투를 하며 도망친 하나가 완전히 멀어진 걸 확인한 천강은 검은 안개에서 흑색 절굿공이를 빼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힘껏 그걸 내려쳤다.
쿠구구구구.
"컥……. 어, 어째서 이런 무력을 가지고도 처음부터……."
천강은 대답 대신 다시 한번 내려쳤다. 일귀가 빠르게 나아와 녀석을 짊어졌다.
"백발괴의한테 갖다줘. 한 번만 더 투정 부리면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다고도 전하고."
"예, 주군."
이로써 백발괴의와 암존에게 빚을 지웠다. 흑막에게 기별도 보냈고.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
천강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귀와 함께 천산으로 복귀했다.
그 모습을 두 인물이 은밀히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묵현과 흑선마희였다.
"아들. 이제 곧이군요."
"예.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