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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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55화
155화. 전세가 뒤바뀌다
핵심 계획은 소수만 공유하는 게 좋다. 천강은 본심을 숨기고 적절히 둘러대었다.
"지금부터 여울나무를 서서히 압박해 갈 생각이다."
"그 말씀은…… 중원 쪽을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겠다는 거군요."
일필일사의 확인 질문에 천강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를 하나도 입지 않는다고 해도 전력이 반이 날아가는 싸움이다. 피해가 크다면 최소 세를 회복하는 데에만도 100년이 걸릴지 몰랐다.
"여울나무가 그동안 우리에게 써먹은 방법을 그대로 되돌려준다라……. 근데 괜찮겠습니까? 저들의 패인은 사실 그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랬지. 그러니 이미 다들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지 않나?"
마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을 칠 계획을 세운 순간부터 그들은 서로가 담당한 정보를 공유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 함께 다니기로 한 것이다.
"이미 써먹은 방법은 효용이 없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무엇보다 지금의 적들에겐 간자가 없어 우리를 염탐할 이들조차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제야 일필일사를 필두로 다른 마두들도 그 계획을 흡족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천강과 교주, 그리고 두 벗들만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였다.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그 피해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됐기에.
외부에서 흑막이 들어온다는 건, 어찌 됐든 치열한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니까.
'그래도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한 번은 뿌리를 뽑을 때가 됐다.
표정 관리가 잘 안되는 괴기나한이 차를 벌컥 들이켰다. 그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하여 천강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부탁할 게 있는데. 지금 신녀 쪽 구역은 우리가 관리하고 있나?"
"예. 천산의 신전과 신녀의 거처 두 봉우리는 모두 저희가 꽉 잡고 있습니다."
"잘됐네.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신녀 쪽 수행원들은 입단속 시키도록."
"예? 그건 왜……?"
담당 지역 마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녀라면 어찌 됐든 신교의 핵심 중 하나. 이곳 천산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알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천강은 이번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모든 변수를 제거하고 싶었다.
음존은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뒤바꿀 만한 힘이 있는 존재였다.
천강의 의도를 아는 교주가 대신 대답했다.
"이미 흑살마신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었네. 그건 본교의 평안을 위한 것일세. 혹여나 신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또 새로 뽑는다면 안 그래도 현 상황에 근심 많은 신도들의 행태가 더욱 심해질 터."
소교주를 무저갱에 가두었다고 들고 일어난 이들이다. 신녀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응원해주는 건 좋은데, 마치 천산을 올라올 기세라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신녀 쪽으로 가는 모든 인력을 차단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작전 회의는 파하고, 교주 측과 여울나무 측의 첫 전초전은 교주 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세력의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교주 측은 정신을 못 차리는 여울나무에게서 하나둘 모든 걸 빼앗기 시작했다.
***
"공석이 된 서쪽과 남쪽 방위대장으로 권광투마와 일휘혈마를 임명하겠다."
권광투마와 일휘혈마는 각각 연화와 소운의 아버지다. 모두 암운곡 출신.
거의 쓰러져 가는 교주 편에 끝끝내 남은 이들로서, 교주 측은 그렇게 가장 최근 빼앗겼던 두 직책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공세를 시작했다.
교주의 선포에 여울나무 측에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것으로 오늘 회의는 파하도록 하지."
신전 밖으로 빠져나가는 마두들.
숫자는 여울나무 측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그들은 회의 내내 한마디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신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나오는 어린 사내 때문이었다.
천강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권광투마와 일휘혈마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축하드립니다, 두 분."
"말 낮추시지요."
"아니면 시원하게 서로 말 놓아도 좋고 말이오. 하하핫."
권광투마의 호탕한 제안에 천강이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흑살마신. 자네는 어찌 마두에 안 드는 건가?"
그랬다. 천강은 마두가 되기를 거부했다. 조금 전 회의에는 그저 교주의 직권으로 참여를 했을 뿐.
천강이 별거 아니라며 작게 웃었다.
"내가 서열 경쟁에 참여하면 무조건 1등인데, 의미가 없잖아?"
- 허허헛.
- 자신감이 지나치군요, 소년.
천강의 자신감에 두 마두가 크게 웃어젖혔다. 전혀 기분 나빠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젠 어디를 갈 생각인가?"
"훈련. 오늘 저녁 회의 때 보자고들."
천강의 신형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신목의 과실이 열리는 시기이니, 그동안 밀린 수련을 좀 할 참이었다.
두 마두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머나먼 선배가 저리 훈련을 열심히 하는데, 그들 또한 뒤처질 수 없었다.
"가지."
"그러세."
한편 교주 측의 여유로운 상황과는 달리 여울나무 측은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뒤늦게 비대해진 조직을 다스리기 위한 재정비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적삼혈마가 뒤늦게 회의실로 들어서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 처리가 바빠 늦었습니다."
"아니오. 고생 정말 많으시오."
"어서 오시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고는 도로 앉는 사람들. 적삼혈마가 앉기가 무섭게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까지 가만히 계실 생각이십니까?"
투파창귀가 의자에 푹 몸을 실으며 말했다.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때까진 현 상태를 유지한다."
"어르신. 이러다간 힘들게 빼앗은 직책들을 도로 다 뺏길 것입니다."
서쪽과 남쪽 방위부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저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이 뺏긴 걸 모두 되찾고 그 이후엔 이쪽의 것도 탐을 낼 것이다.
그러나 투파창귀의 생각은 이전과 동일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다. 최대한 빨리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 우리 것을 뺏기지 않는 방법이다."
"그냥 한판 붙으면 안 됩니까?"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한번 붙읍시다!"
사실 저들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이쪽이 마두 숫자도, 순수 병력 자체도 더욱 많으니까.
그러나 중원을 칠 계획을 가지고 있는 투파창귀로서는 절대 응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했다.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말해도 들은 분위기가 아닌 상황.
아직은 달래야겠지. 투파창귀의 미간이 좁혀졌다.
"들어라. 지금 우리는 간자들…… 즉, 정보원이 전혀 없다시피 한 상태다. 최소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있어야지 싸움이 되지 않겠나."
"……그것도 그렇지요."
"하긴."
"그래도 그냥 가만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다들 사기가 떨어진 탓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한 마두의 이야기에 투파창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아무리 재정비 중이라 해도 가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의 시선이 상석으로 모였다. 투파창귀가 의자에서 등을 떼 앞으로 기울이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부터 혹시 모를 군비 확충에 들어간다."
"군비 확충이라 하심은……?"
"풍미관에 가서 물건들을 털어온다."
풍미관. 과거에는 여울나무의 소속이었던 곳이다. 그 덕에 여울나무는 늘 품질 좋은 식량을 다량으로 보급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풍미관의 총책임자가 사망한 것에서부터 발생했다.
암운곡은 늘 작황이 여울나무보다 좋았으나 총책임자는 그걸 조작해 상부에 보고했는데, 그곳에 들이닥친 교주 측의 조사로 그것이 드러나면서 총책임자가 바뀌게 된 것이다.
지금의 풍미관은 암운곡 출신 추밀이 총책임자로 자리했다.
그는 암운곡에 더 퍼주거나 그러지 않고 공정하게 나누어 주었지만, 늘 풍족히 받던 여울나무로서는 그동안 그 부분에 불만이 꽤 쌓여 있었다.
"이참에 그쪽 총책임자를 처리하고, 약 일 년 치 식량을 챙겨 오도록 한다."
"어르신. 그쪽 총책임자는 그냥 놔두는 게 낫지 않습니까? 어차피 힘도 없는 이입니다만."
"그래서 그러자는 것이다."
지금 교주 측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암운곡에 교관조차 배치 못 할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풍미관 쪽에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한 번 털어가고 나면 놈들 입장에선 사무나 볼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를 배치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실력자를 배치하겠지."
"저희로서는 그만큼의 전력 이득을 챙길 수 있겠군요."
마두들의 얼굴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곧바로 풍미관을 털어갈 계획에 착수했다.
***
여우 한 마리가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그 앞에서 한 사내가 하품을 한다.
여우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사내 또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그러다 한쪽으로 동시에 시선을 주는 두 생물.
다가와 그들의 행태를 본 화정마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진짜 흑살마신 맞아?"
고개를 갸웃. 천강 또한 고개를 갸웃.
화정마녀가 살기를 피우자 여우가 후다닥 놀라 도망갔다. 천강 또한 따라 도망가다가 멈칫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회의 갈 때 데리러 오라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이른 아침. 마두 회의 이후로 잠깐 훈련한 것 같은데, 어느덧 사위엔 붉은 황혼이 내려앉고 있었다.
기지개를 한 번 쭉 켠 천강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때였다. 그들에게로 나아오는 한 생명체.
사박. 사박.
천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늑대가 나타나 그들 앞에 섰다. 비키라며 화정마녀가 살기를 띄워도 그것은 가만 쳐다볼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뭐야. 이건?"
도리어 당황한 화정마녀. 그런 그녀를 놈은 지나쳐 천강 앞에 앞발을 내밀었다.
앞발엔 천이 똘똘 동여매져 있었다. 그걸 풀자 조그마한 서신 한 장이 바닥에 똑 떨어져 내렸다.
『 내일 자정. 여울나무 풍미관 습격 예정. 』
- 어? 이거 그거 아닌가요, 소년? 맹익인가 했던 노인이 말한.
여울나무가 외부 인력과 만나는 순간마다 그 일자와 장소를 보내온 의문의 존재.
한동안 뜸하던 그의 서신이 다시 등장했다.
이걸 직접 받아보는 건 천강도 처음이었다.
"뭔데 그리 멍 때리고 봐?"
"받아."
"어, 어?"
관심을 가지고는 고개를 내미는 화정마녀에게 천강이 서신을 건네주었다.
"그거 들고 교주에게 가."
"그럼 당신은 어디 가려고?"
"난 잠시 볼 일이 있어."
"어어? 야!"
불러 세우는 화정마녀를 무시하고 천강의 신형이 늑대의 뒤를 쫓았다. 서신을 전해준 순간, 녀석은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하산하고 있었다.
동물을 쫓는 천강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 갑자기 동물 뒤꽁무니는 왜 쫓느뇨? 훈련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러게. 왜 나는 저걸 뒤쫓고 있을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그러나 몸과 마음이 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유를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천강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에 천강은 북명신공의 비급을 찾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었다.
은둔 고수를 찾아가는가 하면 역사서를 깡그리 뒤지기도 했었다.
그중 유독 이곳 마교에서 흑막에 가려진 인물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최근까지 흔적이 발견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 분명해. 녀석이야.'
무림을 통틀어 동물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는 단 한 명뿐이다.
옛 마교의 망령. 신교의 영웅 중 하나.
'묵범귀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