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4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47화
147화. 내기
천마신교. 그리고 그곳의 교주 천마.
이 장대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혹자는 서방에서 중원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조직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도교에 반발해 만들어진 기괴한 종교집단이라 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 모든 주장을 역으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주장하는 이들 또한 이 단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천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서적을 독파한 그였지만 신교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전무했다.
그래서일까? 토끼 녀석의 이야기는 꽤 흥미를 유발했다.
"원래 이곳 천산은 인간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라. 무저갱과 선계를 두 눈으로 본 넌 알겠지만, 천산은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계와 명계, 이승의 시간이 각기 다른 게 문제가 되었다.
"문제?"
"그래. 우리 쪽을 예로 들면 선계에서의 찰나는 이승에서의 수년과 같으니…… 이승에 근무를 서는 부분에서 잦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쉽게 말해 선계에서 이야기가 오갈 때는 고작 몇 달 정도의 파견으로 생각됐지만, 실제 이승에 가서는 십수 년을 근무서야 하는 괴리가 발생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능력 있고 신망 있는 인간들에게 그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게 바로 천마와 신교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에 천강이 옆으로 드러누워 토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런데 다음 이어지는 말에 천강은 도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후보를 뽑았는데, 그중 한 명이 초대 천마인 검마(檢魔)고 다른 한 명이 무제(武帝)였다."
"뭐?"
방금 무제라고?
"너 무제에 대해 알아?"
"그래. 몇 번 대화도 나눈 적 있다. 그러나 친하지는 않다."
혹시나 뭔가 아는 게 있어 물으나 녀석은 재차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특이한 무공을 쓴다는 것 정도?"
그 특이한 무공이라는 것도 직접 부딪쳐보지 않아 잘 모른다고 했다.
'흡성대법의 원류 북명신공. 그 창시자가 진짜로 초대 천마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 이 말이지?'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자부심? 아니면 흥미? 아무튼.
"그래서. 계속 이야기해봐."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검마랑 무제까지 했어."
"아, 그랬지."
흠흠. 헛기침을 한 토끼 녀석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곳 천산에는 두 개의 강력한 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린 그걸 이용해 이곳을 지킬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었지."
무제는 강하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검을 다루지 못했다. 선계에선 그런 무제보단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검마를 선택했다고 했다.
"선계의 입구를 잘 관리하라는 뜻에서 우리는 그 핏줄에 축복을 주었다."
그 축복이란 바로 재능.
검마의 피를 이은 이들은 대대로 검에 대한 천부적인 이해도를 지니고 태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손쉽게 우두머리에 올라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단다.
"그럼 이곳에 오기 전 하늘의 길 시련도 대략 그 혜택의 연장선인가?"
"흠흠. 그러하다."
들어본즉 천마의 핏줄은 손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그 핏줄이 아닐 경우, 설령 현경의 고수가 들어와도 그 환상을 이겨낼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몇몇 녀석들은 그 이점을 이용하기도 했지."
일부러 교주직에서 물러나 경쟁자로 하여금 신검의 시련을 치르게 하고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아니 그런 좋은 점이 있다면 왜 현 교주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걸까요?
막야의 질문에, 간단한 문제라는 듯 천강이 즉시 대답해 주었다.
'그건 투파창귀가 신검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투파창귀가 원하는 건 멸무림.
신검은 천산을 벗어날 수 없다. 무림을 정벌할 땐 못 들고 나간다는 뜻이다.
교주를 쓰러뜨리고 천산의 주인이 된 시점이 되면 투파창귀에겐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아무튼 맹약에 의해 검마와 그 후대는 천산과 선계 입구를 지켜야만 한다. 이 신검은 그걸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 토끼 녀석이 천강을 홱 노려보았다.
"네놈 따위에게 가야 할 물건은 아니란 말이다."
"어찌 됐든 시련을 통과하면 나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까짓거 쓰는 동안엔 나도 천산이랑 선계 입구 지켜줄게."
좀 귀찮지만 말이야.
"하.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오만한 인간이로다."
슬슬 맞은 데가 고통이 줄어드는지 토끼 녀석의 고개가 점점 뻣뻣해졌다. 천강은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었다.
"히익?!"
바로 양쪽 귀를 수그리고는 양 앞발로 머리를 가리는 녀석.
"다시 말해봐. 뭐라고?"
"내 말은 그러니까…… 네 녀석은 저걸 다룰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무슨 조건이 따로 있는 건가?"
"그래. 천마신공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천마신공은 신검의 내기 운용 원리를 인간의 몸에 맞게 추출한 것! 그 심오한 검결을 이해하기 전엔 절대 사용할 수 없느니라."
"과연……. 그런데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난 특별하니까 될 거야."
천강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토끼가 한바탕 파안대소했다.
"왜 웃냐?"
"하하하핫. 내 너 같이 오만한 놈은 진정 처음 보는구나!"
"왜? 못할 것 같아?"
"당연한 소릴!"
"그럼 내기할래?"
"응?"
천강이 오른손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내기하자고. 내가 저 신검을 다룰 수 없다면, 내가 네 절굿공이 돌려주지."
"……정말로?"
토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위로는 반짝반짝 광채가 일었다.
"그래. 대신 내기니까 그에 상반되는 게 있어야겠지? 넌 어떤 걸 걸 테냐?"
고민에 잠긴 녀석. 천강과 절굿공이를 번갈아 쳐다본 토끼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지 크게 소리 높여 외쳤다.
"내 절구를 걸겠다!"
"절구……?"
"그래!"
이게 지금 장난하나.
"그딴 걸 어따 갖다 쓰라고. 아, 안 해."
"자, 잠깐! 내 절구는 보통 절구가 아니니라!"
"이게 사기를 치려고 하네? 절구가 그럼 절구지, 무슨 통째 금으로라도 만들었냐? 뭐 안에다 넣고 이걸로 이렇게 찧어대면 무슨 절대 영약이라도 뿅 하고 튀어나와?"
천강이 절굿공이를 들고 빻는 시늉을 하자 토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엇?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설마 백호가 말해준 것이냐!"
"……뭐야. 사실이야?"
"응? 너 알고 말한 거 아니었어?"
오호?
"그럼 난 이 절굿공이 걸고, 넌 네 절구 걸고. 어때?"
"좋다. 내기 성립이다!"
"그럼 상품부터 일단 볼까?"
"잠깐만."
토끼 녀석 앞으로 한번 사라졌었던 선계의 문이 다시 나타났다.
순간 도망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으나, 안으로 들어간 녀석은 이내 낑낑대며 물건 하나를 들고나왔다.
그것은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진짜 통째 금으로 만든 듯한 절구였다.
"됐지?"
"……그래. 근데 그거 정말 영약 만들 수 있냐?"
"당연하지. 이게 보통 물건인 줄 아느냐?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니라. 자, 어서 신검을 집어봐라, 인간이여!"
승리를 확신하는 얼굴. 사기를 치는 것 같진 않다.
잠깐 물끄러미 절구와 토끼를 지켜보던 천강이 말했다.
"그게 가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봐."
"응?"
"내가 들고 있는 이게 진품이란 건 네가 직접 몸으로 맞아봤으니 잘 알 테고. 난 그게 그냥 황금 덩어리인지 진짜 물건인지 알 수가 없으니 영 찜찜해서 말이야."
토끼가 반만 뜬 눈으로 혀를 찼다.
"쯧쯧. 의심 많은 건 용들 못지않은 놈이로구나. 그래. 한번 보여주지. 어디 보자……."
주변을 슥슥 둘러보는 녀석. 이내 천강에게 손을 슥 내밀었다.
"혹시 먹을 것 좀 가지고 있느냐?"
"먹을 거?"
"그래. 이왕이면 조리하지 않은 자연산 그대로인 게 있으면 좋겠는데."
천강은 일귀가 챙겨준 보자기를 열었다. 아쉽게도 조리하지 않은 건 없었다.
"육포는 안 돼?"
"안 되느니라. 자연 그대로의 상태여야만 하느니라."
그것참 까다롭긴. 그때 천강의 눈에 무엇인가 잡혔다. 그것은 앵화였다.
아까 앵화고목 뜰을 지나올 때 보따리 위로 그 꽃잎의 상당수가 수북이 내려앉은 듯했다.
"이것들이면 되냐, 혹시?"
"으음. 살짝 눌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가능하겠네."
토끼 녀석이 천강에게서 앵화를 받아다 절구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천강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거 줘."
"그래. 근데 들고 도망가면 알지?"
생긋 웃는 천강의 낯에 토끼는 부르르 몸을 떨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절굿공이를 껴안고는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흑흑. 우리 아가. 내가 곧 다시 데려와 줄게. 조금만 기다리거라!"
그렇게 잠깐의 해후 이후 시작된 영약 제조.
"잘 보거라. 딱 한 번만 보여줄 터이니!"
절구 위로 올라간 녀석이 절구를 힘껏 내려쳤다. 땅이 울리고 거센 바람이 절구로부터 터져 나왔다.
쿵. 쿵. 쿵. 쿵.
한 번 내려칠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지반 속에서도 토끼는 절구 위에 중심을 잡고는 쉬지 않고 내려쳤다.
그렇게 일각(一刻) 정도를 내려쳤을까?
화아아악-
오색 빛 광채가 절구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눈이 시릴 만큼 환한 그 빛은 공간을 가득 메웠고, 이후 서서히 잦아들다 완전히 사라졌다.
감았던 눈과 그 위를 가렸던 손을 치워 절구 속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환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걸 집어 천강에게 내어주는 토끼.
"이게…… 영약이라고?"
"그러하다. 못 믿겠으면 먹어보거라."
먹어보았다. 과연 온몸에 퍼져 나가는 기운은 틀림없는 영약이었다. 마치 영물의 내단이나 설삼 등을 섭취한 것 같은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훗. 이것이 바로 우리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의 능력이니라!"
천강의 놀란 모습에 기가 완전히 살아난 토끼가 거만하게 팔짱을 끼었다.
"이 절구는 자연 상태에 놓아두면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가득 차면 황금빛을 띠는데, 그때 이 절굿공이로 내려치면 그 자연의 기운이 모두 절구 안에 든 음식물에 스며들며 뭉치게 되는 것이다."
고개를 내려 토끼의 발치를 바라보았다. 황금빛을 뿌리던 절구는 사라지고, 평범한 돌로 만든 절구가 놓여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정말 주변 자연의 기운을 은은히 흡수하고 있었다.
"자, 그럼 확인은 되었겠지?"
"그래."
천강은 절굿공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토끼 녀석은 순간적으로 앞발에 힘을 주었다가 슥 놓아주었다.
신검 앞으로 나아가 심호흡한다. 그리고는 손을 쭉 뻗는다.
"제발제발제발!"
뒤에서 토끼 녀석의 비나이다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천강은 신검의 손잡이를 확 움켜쥐었다.
신물(神物)과는 다르게 거의 중량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검.
바람을 움켜쥔다는 이런 느낌일까? 뒤에서 토끼 녀석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하하하핫. 실패구나! 드디어 내 아가가 도로 내 손에!"
그때였다. 천강의 몸이 움직였다.
"무, 무슨?!"
좌에서 우편으로 검이 궤적을 그려 나간다. 사방으로 그와 같은 검이 여럿 생성돼, 목표지점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마치 꽃봉오리의 형상을 검으로 만들어가는 듯한 모습.
천강의 입에서 나직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천마신공 환검결 제1식, 춘풍낙화."
고요한 가운데 이는 작은 파문. 그것은 이내 거친 강풍이 되어 전방을 휩쓸었다.
쿠콰콰콰콰콰-
"마, 말도 안 돼!"
토끼 녀석의 외마디 비명이 그 뒤를 뒤따랐다.
"안 돼, 내 가보오오오!"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손바닥에 안에 착 감기는 검. 천강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울고 있는 토끼에게 말했다.
"야. 넌 앞으로 도박은 하지 마라."
"흐어어어엉."
그렇게 선계 주민에게 인생의 쓰디쓴 교훈을 내려준 천강이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신검도 얻고 토끼도 그대로 선계로 끌려갔다(?). 더는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천강은 발걸음을 옮겨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신검이 잠든 공간을 빠져나가려는 그때였다.
팟-
"음?!"
갑자기 신검이 손아귀를 벗어나더니 허공에 궤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작은 문이 되었고 그 안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박사박-
전생에 천강의 마지막 순간을 목도한 인물.
흑살마신 시절엔 아직 앳되었던 청년.
천산의 주인이자 신교의 교주. 신검의 전 주인인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