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4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42화
142화. 신물(神物)의 능력
"흑살마신! 잘 지냈는가!"
공동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천강의 눈이 뜨였다. 그 앞으로 흑색과 백색으로 선명히 나뉜 두 노인이 다가와 친근하게 인사했다.
추혼살개와 그 동료, 흑백무상이었다.
"우리 추혼살개님. 신수가 훤해지셨네?"
"하핫. 다 우리 흑살마신께서 도와주신 덕분 아니겠는가?"
이전보다 더욱 능청스러워진 그의 모습에 천강이 작게 웃었다. 이제는 마두였던 과거는 완전히 털어내고 영락없는 관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장갑은 어떻게 됐어?"
"흠흠. 자 받게!"
추혼살개가 장갑 한 쌍을 내어놓는다. 천강은 그것을 받아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하핫. 이 친구 이거 놀라서 표정 관리도 못하는구먼! 안 그런가?"
"그럴 만도 하지. 그 노인이 보통 실력이던가?"
지금 대체 뭔 개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천강은 다시 장갑을 내려 보았다. 역시나 한 쌍이다.
"이봐. 내가 주문한 건 두 쌍인데 왜 한 쌍이야?"
분명 천강은 두 쌍을 만들어 달라 했다. 몸이 자라서 끼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대비해 말이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되면 기억력이 감퇴라도 되는 것인지, 이 욕심 많은 것들은 한 쌍을 만들어놓고 어깨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천강의 말을 들은 흑백무상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핫. 역시 아직 이승에 있는 존재라 뭘 못 느끼는구먼."
"뭔 말이 필요할까. 한번 껴 보시게!"
반응을 보아하니 그저 웃어넘기려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에 다시 한번 장갑을 살펴봤다.
아직 어린 천강의 손보다도 작은 장갑.
'이걸 대체 어떻게 끼라는 건지.'
그래도 일단 손을 집어넣어 보자는 생각에 그 구멍에 손끝을 가져다 대자, 천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천강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어어?"
"어떤가? 좋지?"
"이 무슨……."
"큭큭. 이제야 제대로 된 표정이 나오는구먼!"
천강의 표정을 본 흑백무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천강은 그런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작디작은 장갑에 손을 넣는 순간, 그것이 자연스레 늘어나 손에 딱 맞았던 것이다.
"우리가 진짜 힘 좀 썼네. 우리 몫으로 준 천잠사 중 2할을 뇌물로 바쳐서 만든 것일세."
과연 그럴 만했다. 사람의 몸에 맞춰 그 크기를 자유로이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장갑이라니. 이는 거의 신병이기와 같지 않은가?
"그래서 두 쌍을 안 만들어온 것이로군."
"그래도 들어간 천잠사는 두 쌍 분량일세. 최대한 구멍이 없도록 촘촘히 해 달라 부탁했네."
"명계의 최고 기술자이자 장인이 만든 것이니 거칠게 써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걸세."
"정말 수고 많았군."
천강이 장갑 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화려한 문양이나 장식은 없지만, 그걸 올려다보는 천강의 입가엔 흡족한 미소가 올라왔다.
천강은 검은 안개 안에서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천잠사였다.
"자. 받게."
"으잉? 또 주는 겐가?"
"일을 맡은 자가 그 일을 잘 처리하면 차를 한 잔 권하고, 일을 맡은 자가 그 이상의 것을 해내면 추가로 보상을 내어주는 것. 그게 우리 마교의 규칙 아닌가?"
"하하핫. 그랬지. 암 그렇고말고. 역시 계산 하나는 기가 막히구만. 과연 흑살마신일세! 땀 흘리며 움직인 보람이 있어!"
흑백무상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신이 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승사자들을 가만 지켜보던 천강이 살짝 운을 뗐다.
"근데 내가 이것들을 어디서 얻은 건지 궁금하지 않나?"
"흠흠. 그런 걸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닌지라 묻진 않았네만 궁금하긴 하지."
"따라오게. 보여줄 테니."
천강은 두 저승사자들을 이끌고 뽕밭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억중과 아귀들이 열심히 나무들과 누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전부가 천잠사를 만드는 누에란 말인가?"
"어때? 놀랍지?"
두 저승사자의 넋이 나갔다. 마치 황금 산을 앞에 두었다 해도 이런 표정은 나오지 않으리라.
"문제는 이게 쉽지가 않아. 엔간히 까다로운 게 아냐."
"어떤 점이 말인가?"
"저 누에란 것들이 냄새와 환경에 민감하거든. 까딱 실수하면 바로 픽 죽어버린다고 할까?"
"화기를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모양이구먼."
"심지어 그게 다가 아냐."
천강이 누에 한 마리를 내기로 데려와 그들 앞에 보여주었다.
"얘네들 보통 누에가 아니거든. 영기를 머금은 누에야."
"허허. 그것참 흥미롭구먼."
"이런 누에를 만들려면 영기를 머금은 나무를 만들어줘야 해. 이후엔 땅에 지속적으로 내기를 넣어줘야지."
저승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것들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깨달은 것이다.
"천잠사가 보기 힘든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먼."
"이러니 부르는 게 값이지."
"그래서 말인데, 매달 일정량의 천잠사를 건네줄 테니 우리 추혼살개와 동료분께서 이곳을 맡아줬으면 좋겠어."
"응? 지금 우리보고 일하라 이 말인교?"
"공직 수행 중 딴 주머니 차면 큰일 난다. 안 돼."
그런 거 아니라며 천강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일은 쟤들이 다 할 거야. 그저 이상한 놈들이 이쪽 작업장 망치지 않게 잘 좀 막아달란 의미야. 다른 악귀나 혹은 저승사자 같은. 무슨 의미인지 알지?"
그제야 흑백무상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과연…… 이런 황금 동산을 가만 놔둘 이유가 없겠지."
그동안은 이무기가 있어서 이 근처를 얼씬도 안 했겠지만, 이무기가 사라진 이상 언젠가는 들키게 되어있다. 소문이 나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미리 줄을 댄 이 두 저승사자에게 부탁해놓는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우리 두 저승사자님은 이곳에서 난 수익으로 재물도 쌓고 승진도 하고. 여기 우리 억중이와 애들은 그런 저승사자님들을 통해 교역도 하고 안전도 보장받고. 상부상조하는 거지. 얼마나 좋아?"
"흠흠. 좋군."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그렇게 억중과 그 작업장을 흑백무상에게 잘 연결해 준 천강이었다.
'그럼 이제 이쪽 일도 다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떠나야겠군.'
천강이 억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젠 한껏 여유로운 얼굴로 지시도 하고 본인의 일도 하는 녀석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억중아, 난 이만 간다."
"예?"
"살아있는 생물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순 없지 않느냐. 다시 밖으로 나가야지."
억중의 눈이 가늘게 흔들거렸다. 녀석은 천강 앞에 넙죽 엎드렸다.
"주군!"
"앞으로 이곳을 이용해 잘 먹고 잘 살고. 혹시나 감당 못할 일이 생기면, 아까 소개해준 흑백무상을 통해 내게 소식을 알리고."
천강의 손이 억중의 어깨에 닿았다. 두어 번 토닥토닥 두드린 천강이 몸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주군! 꼭 대성하셔서 선계에 올라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작별인사를 나눈 천강은 무저갱 밖으로 빠져나갔다. 금나한과 짧게 인사한 그는 인적이 없는 고요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후우우.
고개를 든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무저갱에서 달구어진 몸을 시원하게 냉각시켜 준다.
하늘은 창공 그 자체.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은 보기만 해도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그럼 해볼까.'
천강이 팔을 수평으로 뻗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한 무구를 떠올렸다.
음울한 보랏빛이 감도는 검. 태산과 같은 중량을 가진 기이한 무기.
신물(神物)이 천강의 손에 나타났다. 천강은 온 내력을 두 다리와 허리, 아랫배와 오른팔에 쏟아 부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쿠콰콰콰콰-
'된다.'
이전처럼 검이 떨어지지 않고 천강의 손에 머물렀다.
원래라면 천령초를 많이 먹어 그 근력으로 들어 올릴 생각이었는데, 뜻밖의 기연으로 천잠사를 얻더니 기어이 신물을 드는 데 성공한 천강이었다.
'내기 운용도 된다.'
다만 무게가 상당했다.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오른팔이 덜덜 떨리며 서서히 하강할 정도로.
천강은 왼팔에도 내기를 실어 양손으로 신물을 붙들었다. 그제야 그것은 허공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공은 더 이상 증진할 수 없는 상태. 외공 또한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상황. 그런데도 양손으로 겨우 들 정도라니.
휘두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게 탓에 자세가 어정쩡하기 일쑤인데다가 속도가 나오지 않아 도저히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각(一刻)쯤 지나자 저주의 기운이 장갑을 관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이걸 대체 어떻게 휘두르라고!"
이걸 얻기 위해 그 갖은 노력을 한 게 전부 헛짓거리였다는 사실에 천강이 신경질적으로 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파직. 파지직.
검이 박힌 곳을 기준으로 땅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먹물을 잔뜩 바닥에 뿌린 것마냥 칙칙한 검은빛이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갖가지 생물들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땅에서 공기 중으로 떠오르는 지독한 사기(死氣).
사방을 뒤덮는 검은 안개.
그리고 무저갱과 똑 닮은 빛깔의 암석까지.
털썩. 천강이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보았다. 신체 내로 기분 나쁜 기운이 흘러들어와 내기 운용을 방해하는 게 느껴졌다.
"하. 이런 거였나?"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검을 회수한 천강의 시선이 천산의 꼭대기를 향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
"소교주 옥살이가 웬 말입니까. 교주님, 소교주님을 석방해주십시오!"
"석방해주십시오!"
이른 아침. 천산의 초입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크게 울부짖었다.
그들은 천마신교의 주민이자 신도들.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징조를 언급하며 그들은 이 모든 게 소교주를 억울하게 누명 씌운 것에 대한 하늘의 진노라 주장했다.
그걸 지나가며 우연히 목격한 호접일검이 수행원에게 물었다.
"저들이 주장하는 흉흉한 징조가 무엇이냐?"
"작년 하계 장마 기간에 발생한 연속적인 우레와 큰 수해. 천산의 한 지역이 송두리째 말라버린 늦가을 사건과 두 달 전 일어난 폭설입니다."
확실히 듣고 보니 반년 새 기이한 자연현상들이 많이 발생하긴 했다.
특히 우레와 수해, 폭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천산의 한 구역이 송두리째 말라버린 기이한 사건은 마교 내부에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현상이었다.
줄기뿐만 아니라 나무의 뿌리 속까지 모두 바싹 말라버린 그 행태는 마치 재작년에 보았던 뇌명신창의 시체를 보는 듯했다.
흑살마신에게 당해 내기는 물론 생기마저 빨려버린 그런 상태 말이다.
"어떡할까요? 사람들을 시켜서 처리할까요?"
호접일검의 시선이 신교의 주민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이제는 여울나무 숲을 욕하고 있었다.
"일단 놔둬라. 내가 윗선에 보고하고 어찌할지 일러주겠다."
"예, 알겠습니다."
"가자."
호접일검이 천산의 초입을 지나 위로 쭉쭉 올라갔다.
신도들의 부르짖음에도 천산과 그 주인은 조용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