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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3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9화

139화. 정진 또 정진

 

 

 

중국 서쪽 끝에 자리한 천산의 장마철은 7월이다. 연간 내리는 비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내렸다.

거의 쏟아붓는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많이 내렸다.

분명 계곡으로부터 꽤 거리가 있음에도 암운곡이 괜히 매해 여름마다 무너져 내린 토양을 치운다고 훈련생들을 끌어모아 쓰는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신교 주민들을 돕기 위해 천강이 그 스승과 산을 내려가던 때였다.

쿠르릉.

거센 비바람과 함께 번쩍 어둠이 순간적으로 걷혔다가 복구되길 반복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뇌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스승과 함께 걸음을 멈추고 그 진원지를 바라보자, 천산으로부터 한참을 떨어진 웬 산에 천둥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천강아, 보이느냐? 하늘이 뚫려 비가 우수수 쏟아지는 시기면 오랜 시기 준비하던 용들이 하늘 위로 올라간단다. 그것은 바다로 흘러갔던 물고기가 제집을 찾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듯 숙명적인 것이지."

스승의 말을 들으면서 그곳을 가만 바라보았다. 자연의 기이한 현상은 그거로 끝나지 않고 지면에서부터 하늘 위로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여의주를 만들고 비로소 하늘의 부름을 받으니, 새끼손가락만 한 실뱀에서 시작한 그들에겐 그야말로 일생일대 기쁨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강풍이 더욱 몰아쳤다. 하늘에서 선녀들이 단체로 물을 퍼다 버리기라도 하듯 물줄기가 주륵주륵 쏟아져 내렸다.

그 속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서서히 하늘로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진하거라.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땅에서의 모든 수고를 잊고 저들처럼 날아오르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

 

이무기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벽이 터져나가고 용암이 솟구치고, 사방에서 불꽃이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 천강의 신형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암운행보와 백호의 가호에 힘입은 천강은 순식간에 아귀들의 왕을 지나 굴 너머로 내달렸다.

그런 천강을 매섭게 쫓아오는 녀석.

캬오오옷-

굴과 굴 사이를 돌아다니며 두 존재가 추격전을 벌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늦는 순간 곧바로 죽임을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신병이기들이 바삐 움직였다.

- 자네 셋은 하단을 막게! 우리가 상단을 막겠네!

용암이라면 치를 떨던 그들은 필사적으로 검풍을 일으켜 화기와 붉은 액체를 막는 데 집중했다.

천강 또한 암운행보를 적극 사용해, 전방과 사위에서 펼쳐지는 천재지변의 빈틈을 비집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 소년. 너무 일을 크게 벌인 것 아닙니까! 가져올 거면 하나만 가져오지 몽땅 가져오다니요!

이는 어미 새에게서 그 알을 몽땅 훔쳐 온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나 천강은 조금 전 행동에 조금도 후회가 없었다. 어차피 하나를 가져오던 다 가져오던 성질머리 고약한 이무기의 행동엔 큰 변화가 없었을 테니까.

그저 찢어 죽일 거 갈가리 찢어 죽이는 정도의 차이뿐.

'조금만 버티라고.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공기가 조금씩이지만 시원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무저갱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허공을 내달리는 천강의 머릿속으로 과거 스승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 천강아, 보이느냐?

하늘이 내다보이는 무저갱 바닥에 도착했다. 하늘은 마치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주룩주룩 장대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천강은 무저갱 위로 쭉쭉 나아갔다. 그런 그를 이무기 또한 맹렬히 뒤따라 나왔다.

볼에 빗줄기가 강하게 와 닿는다. 양이 많은 탓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천강은 기감을 넓게 펼치며 올라갔다.

- 이놈의 지렁이 자슥이! 그만 쫓아오거라!

- 소년, 몇 개를 내어주는 게 어떻습니까? 녀석 끝끝내 쫓아올 생각입니다!

그러나 천강은 챙겨 든 고치를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거슬러 올라, 무저갱 위로 두 존재가 솟구쳤을 때였다.

"크륵?"

이무기의 움직임이 돌연 우뚝 멈추어 섰다. 녀석이 주위를 홱홱 둘러보더니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기감을 넓게 펼친 천강은, 하늘이 활짝 열리며 사방에서 매섭게 몰아치는 맹렬한 강풍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무기를 향해 짓쳐 들더니, 이내 상승기류를 만들어 녀석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크르르?"

- 하늘이 뚫려 비가 우수수 쏟아지는 시기면 오랜 시기 준비하던 용들이 하늘 위로 올라간단다.

이무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녀석은 지금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당황해하고 있었다.

- 그것은 바다로 흘러갔던 물고기가 제집을 찾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듯 숙명적인 것이지.

천강 주위로 떠다니는 고치와 뻥 뚫린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는 녀석.

고민은 깊어 보였으나 그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놈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승님."

용오름에서 이탈해 무저갱 바닥으로 쭉 떨어지는 천강의 머릿속에 스승과의 추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게 천강은 이무기를 강제로 승천시키고 놈이 관리하던 누에들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어, 어르신!"

무저갱 안쪽으로 돌아가자 억중이 당황한 얼굴로 크게 외쳤다.

관리하던 이무기가 사라진 탓인지, 화기로 인해 나무들도 누에도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었다.

"뭔가 방도가 필요합니다! 이러다 다 죽을 것입니다!"

"진정해라."

천강이 숲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확실히 땅과 공기의 온도가 급상승 중인 게 느껴졌다.

천강은 눈을 감고는 기를 넓게 펼쳐 이무기가 보여주었던 내기 흐름을 따라 했다.

그러자 뜨겁게 달아오르던 화기가 금세 잡히면서 다시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르신. 대체 어떻게……."

인간보다 강한 생물은 많다. 신수를 제외하면 이무기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능히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기에.

그런데 천강이 그런 이무기의 능력을 따라 했으니 억중의 입장에서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지켜보다 보니 알게 됐다."

"그냥 지켜보았는데 깨닫게 됐단 말입니까?"

그 지켜본 것도 겨우 두 번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천강은 말을 아꼈다.

계획한 건 아니고, 그저 이무기는 내기를 어찌 운용하는지 궁금해서 독목신공으로 관찰했던 건데 그걸 이리 써먹을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 못한 천강이었다.

"아무튼 억중아."

"예, 어르신."

"이제부터는 이곳이 네가 지내야 할 곳이다."

"예?"

"내가 이곳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줄 테니까, 앞으로는 천령초를 지키지 말고 이것들을 키우거라."

녀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내가 쓸 데가 있어서 이 고치들을 한 번 가져가긴 할 건데, 그 뒤론 네가 키우고 팔고 마음대로 해라. 솔직히 그게 너한테도 더 낫지 않겠느냐. 사방에 널린 천령초보단."

"어, 어르신……."

녀석이 목소리를 떨었다.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게 영 꼴불견이다.

그에 한마디 하려는 순간, 아귀들의 왕 억중이 천강의 앞에 넙죽 엎드려 소리쳤다.

"대인! 주군! 감사합니다! 앞으로 평생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 대단하군요. 이젠 인외의 존재에게도 주군 소리를 다 듣고.

천강은 억중에게 내기 흐름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실 고작 현경 입문 수준에 불과한 녀석에겐 뽕밭을 관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이무기 녀석이 괜히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닌지 화기를 잡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천장에 뚫려있는 수많은 구멍들을 통해, 반은 열기를 배출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지상의 선선한 공기를 끌어오기만 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 더 빨리. 이파리 마른다, 억중아."

"예, 예!"

심지어 이무기 녀석이 똬리를 틀고 있던 곳엔 물도 있었다. 이무기와 물은 뗄 수 없는 관계라더니, 늘 이곳에 웅크린 채 몸의 일부를 물에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천산의 지하수가 잠깐 지나치는 곳인지 물의 온도는 뜨겁지 않았다. 그것은 뽕밭 밑을 교묘하게 관통해 가면서 급격한 온도 상승을 나름 방지해 주고 있었다.

"얌마. 너희들! 이 몸이 이리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더 빨리 안 움직이냐?"

억중의 외침에 아귀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더 바삐 움직였다. 녀석들은 입 안 가득 물을 담아 뽕밭 곳곳에 뿌리는 작업을 했다.

늘 배고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웅덩이에 고개 처박고 있는 놈이 5할 이상이었지만.

억중이 스스로 잘하는 걸 확인한 천강은 한쪽 구석으로 가 신물(神物)을 소환해 보았다.

쿠구구구구.

'역시나. 아직은 무리인가?'

천령초를 그렇게 처먹어 악귀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힘을 길렀는데도, 마치 처음부터 인간을 위해 만든 무기가 아니라는 듯 근력만으로는 신물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천잠사가 있다면 다르겠지.'

신발을 신어 차단한 것처럼 장갑을 만들어 신물의 저주를 차단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천강의 시선이 뽕밭에 닿았다. 아까 훔쳤던 고치들은 도로 제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좋은 장갑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천잠사가 필요로 할 테니까 지금은 투자할 때였다.

천강은 걸음을 옮겨 한 나무 앞에 앉았다. 그곳엔 막 누에 한 마리가 알을 깨고 나오고 있었다.

- 다시 훈련 시작인가요, 소년?

'그래.'

준비할 건 다 했으니, 이젠 기다리면서 생사경을 향해 나아갈 때이다.

천강의 시선이 누에에 머물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선선한 가을에 접어들었다.

 

***

 

고운 천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앉고, 값비싼 비단이 바닥에 촘촘히 깔린 어느 공간.

침대 위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눈 끝이 뾰족하게 올라간 그녀의 눈은 뭔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아 보였다.

- 야야. 우리 신녀님 진짜 너무 아름다우신 것 같지 않니?

- 그러니까. 황금 머리칼에 푸른 눈이라니!

"흥. 본좌가 예쁜 건 알아가지고."

소녀가 털썩 침대에 옆으로 드러누웠다. 한 팔로 한쪽 볼을 받친 채 삐딱하니 누운 그녀는 다리를 까딱까딱하며 작게 투덜댔다.

"근데 대체 흑살마신 이 새끼는 어디에 숨은 거지?"

하오문주의 조언을 받아 쥐 굴로 성공적으로 스며든 음존 천수향.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녀는 실력을 빠르게 인정받아 마인 신분을 얻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마인 신분만 갖는다면 합법적으로 천산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쥐 굴에서 100일. 이후엔 암운곡으로 들어가 추가로 5년간 훈련.

그 개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세운 계획을 모두 때려치우고 이곳을 뒤집어엎으려 했다.

그런 그때였다.

- 신녀가 될 만한 재목은 좀 찾아봤는가?

솔깃한 이야기였다.

'오호. 신녀라?'

딱 봐도 권력 좀 있게 생긴 직책. 교주 정도는 못 돼도 천산에서 힘 좀 쓰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서 한 거였는데 말이야……."

이런 힘도 능력도 없는 명예직인 줄 알았다면 절대 안 했을 것이다.

천수향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좋은 향기에 좋은 공간. 그리고 수발들어주는 수행원들까지.

웬만한 황족보다 나은 대우다. 심지어 하는 일도 별거 없다.

한 주간의 기상 예측.

신교 주민들 앞에서 환하게 웃어주기.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성화 토닥토닥 해주기?

그나마 기상 예측이 좀 어려울 수 있었는데, 생사경 문지방에 한 발 내디딘 그녀에겐 한 주의 기상 예측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거 몇 번 맞춰줬다고 역대급 신녀라니. 참 신녀 해 먹기도 쉽네.'

마교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는 기분이다.

"하아. 그건 그렇고, 빨리 흑살마신 녀석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대우 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그러나 이 넓디넓은 천산에서 무슨 수로 찾는다?

괜히 신녀를 했나? 지금이라도 때려치워? 천수향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때 밖에서 수행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녀님. 씻을 시간입니다!"

"좋아. 일단 씻고 생각하자."

다른 건 몰라도 이 매일 하는 목욕 때문에 신녀를 그만 못 두는 그녀였다.

"근데 애들아. 나 뭐 하나만 물어도 돼?"

"예, 말씀하세요~"

수행원들을 따라 목욕물 받아 놓은 곳으로 가면서 질문.

"혹시 너희들 흑살마신이라고 알아?"

"그럼요. 알죠."

"본교의 영웅이잖아요."

그놈이 영웅? 하! 천수향의 눈 끝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눈에서 순간 안광이 번뜩였다.

'씹어 죽여도 모자랄 그놈이 영웅이라니.'

내게 준 치욕. 모멸감. 무림의 법도대로 목숨으로 그 앙갚음을 해줄 것이다.

그러나 살기등등한 것도 잠시, 수행원들이 돌아볼 때쯤엔 늘 그렇듯 그녀는 해맑은 얼굴을 연기했다.

"내가 그 흑살마신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거든. 뭔가 방법이 없을까?"

"흑살마신이요? 으음. 그분 성격상 신녀님이 부른다고 오실 것 같진 않고…… 그분 거처로 직접 찾아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정말이야?"

"네. 본교를 구한 탓에 늘 무림으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리시거든요. 그래서 거처에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그래?"

참 이리 쉬운 것을. 진즉에 애들한테 물어볼걸.

혼자서 알아보겠다고 밤마다 돌아다니느라 애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음존 천수향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그 흑살마신 거처는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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