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4화
134화. 신물(神物)을 소유하다
"아, 배고파. 더는 못 패."
배가 고파서 더는 못 해 먹겠다. 천강의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막야가 못 말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 그러게 왜 그런 데에 힘을 빼나요, 소년?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종종 이렇게 쓸데없는 부분에 의욕이 샘솟곤 했다.
마인들은 저마다 병적인 증세를 달고 산다는데, 아무래도 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 그래도 끈기가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아닌가?
- 고럼고럼.
- 뭐…… 그렇긴 하지만요.
막야가 그건 인정한다는 듯 수긍했다.
- 무엇보다 성과가 좀 있지 않았나?
그랬다. 다행히 천강이 때려치울 때 즈음 녀석의 숨도 거의 끊어졌다.
땀을 닦고는 숨을 고르고 있자, 아까 녀석이 등장했던 문이 재차 등장했다. 그리고는 문이 활짝 열리며 녀석의 시체를 빨아들였다.
하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녀석.
"이로써 땅의 길인지 뭔지 하는 시험은 통과한 건가?"
그 증거로, 신물 주위를 감싸던 불투명한 막이 허물어졌다.
- 자, 그럼 얼른 챙겨서 밖으로 나가자꾸나!
그래. 얼른 나가야지. 배고파 죽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강이 찬찬히 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울한 보랏빛을 띠는 검.
자세히 보니 검신 자체가 그러한 색을 띠고 있었다.
신물(神物)이라 불린 것치고는 딱히 멋들어진 문양도 화려한 꾸밈도 없었지만,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검이었다.
지옥검, 마검, 암검, 파천검, 지옥마검.
신물(神物)이라는 이름 외에는 그 어떤 기록도 없어, 도전자들에게 수많은 이명으로 불리게 된 물건.
하긴. 시험 난이도만 봐서는 그 어떤 인간도 이것을 소유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인간 역사에 나타나질 못했으니, 그 이름 또한 가지지 못한 것이겠지.
천강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걸 꽈악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이 한 차례 떨리더니, 스르륵 영체가 본체에서 빠져나와 천강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뭔가 섬뜩하면서도 오싹한 감각.
천강은 손을 거두었다.
'됐다. 날 주인으로 인정했어.'
분명 신물은 여전히 제자리에 꽂혀있지만, 천강은 느끼고 있었다. 전생에 교주가 신검을 소환한 걸 직접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산 어느 곳에 있건 그 주인이 부르면 나타났다가 일을 마치고 나면 본디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마 이 녀석도 동일할 것이다.
"음. 대화는 못 하나? 막야, 뇌명 너희가 말 한 번 걸어봐."
천강의 지시에 이리저리 말을 걸어보는 신병이기들.
- 소년 말이 맞아요. 말을 못 하는 듯해요.
"뭐…… 주인이 된 거면 충분하겠지."
그럼 어디 소환해 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든 무기는 들고 다녀야 한다. 검을 사용하는 이는 검을, 창을 사용하는 이는 창을.
그것을 숨기기 위해 살수들은 늘 품에 조그마한 암기를 품고 다니기도 하고, 제갈세가 놈들은 부채나 쇠로 만든 붓을 챙겨 다니기도 했다.
혹시 모를 싸움의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이다.
당장 천강 자신만 해도 내기를 사용해 머리 위로 신병이기들을 들고 다니지 않던가?
그러나 이놈은 다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편히 꺼내 쓸 수 있는 무기.
그러면서도 역사에 기록된 신병이기들조차도 가볍게 씹어 먹을 능력을 지닌 전설의 무구.
천강은 떨리는 마음으로 신물(神物)을 소환해 보았다.
신물을 상상하고 손 위에 나타나는 걸 떠올리자, 보랏빛 검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른손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오오! 이런 멋진……."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쿠구구구구.
"켁?"
신물을 잡는 순간, 몸에 내기운용이 안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까진 괜찮았다.
천강은 어이가 없단 얼굴로 바닥을 내려 봤다. 보랏빛 검이 누워있고, 그 밑으로는 지반이 갈라지고 움푹 내려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
마치 산 하나를 들어 올린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중량이었다. 하마터면 팔이 그대로 빠질 뻔했을 정도로.
- 당장은 드는 건 무리 같아 보입니다, 주인님.
- 그래 보이네요. 뇌명, 혹시 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아나요?
막야의 말이 천강의 가슴에 날아와 콕 박혔다.
- 이런 걸 그림의 떡이라고 한답니다.
'……젠장. 방법이 없나?'
희대의 무기를 얻고도 쓰지를 못하는 상황이라니.
혹시나 싶어 내기를 운용해 이기어검술을 사용해보았다.
천강의 몸에서 다량의 내기가 방출돼 신물을 감싸고 찬찬히 위로 들어 올린다. 그러나 그 즉시 허공에서 내기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다.
"이익……!"
몇 번을 시도해도 똑같았다. 이것을 들기 위해서는 직접 손으로 들어야만 했다.
천강은 마른침을 삼키고 신물의 손잡이를 다시 잡아보았다. 양손으로 전력을 다해도 꼼짝을 않는 무기.
"아, 몰라!"
결국 천강은 그대로 뒤로 드러누웠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검은 천장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짜 뭔가 방법이 없을까.'
천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입술이 이빨에 의해 잘근잘근 씹혀졌다.
그런 그때였다. 천강의 간절함을 하늘이 듣기라도 한 모양인지,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번뜩 스쳐 지나갔다.
"혹시나 그 방법이라면?"
***
뿌연 연기가 하늘 위로 꽃봉오리를 올려 만개하고, 은은한 유황이 향기를 퍼뜨리는 무저갱의 입구.
그곳으로부터 100보가량 떨어진 바위 옆에 한 사내가 섰다. 일귀였다.
그의 시선은 꾸준히 무저갱에 머물러 그 위를 탐색했다.
"주군……."
- 천강에게 꼭 전해라. 어떻게 할 건지도 대답도 받아오고.
암운사신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던 마교는 갑자기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을 다녀간 뒤로 조용하던 투파창귀의 행동에 돌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노골적으로 교주의 뜻과 행보에 불만을 드러내는가 하면, 중립세력과의 모임을 자주 갖기 시작했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물밑으로 행동하던 때와는 다소 달라진 모습.
그러면서도 암운사신을 쏙 빼놓은 게 굉장히 찜찜했다. 저번 사건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린 모습 같았다.
그것을 느낀 암운사신은 천강의 의견을 듣기를 원했다. 그러나 천강이 나올 때까진 일귀로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군의 부재가 너무 큽니다.'
망부석마냥 서서 무저갱 입구를 바라보는 일귀를 보며 금나한의 얼굴 또한 굳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짐작이 된 그는 어중간한 위로를 건네기보단 말을 아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가 내리깔리고 있던 차였다.
"음?"
무저갱 안쪽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따스한 기운.
한 소년이 성화를 들고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의 등장에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퍼졌다.
"오오. 소년!"
"주군!"
일귀와 금나한을 발견한 소년이 허공에서 후다닥 뛰어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에게 매우 급박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말이야."
"예, 주군!"
"그래. 말하거라!"
"혹시…… 먹을 거 좀 남은 게 있나?"
미친 듯이 먹을 것을 입에 넣는 두 사람. 아니, 두 존재.
천강과 금나한은 일귀가 가져온 다량의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우걱우걱. 꿀꺽. 하아……. 살겠다. 일귀, 너도 좀 먹지?"
"아닙니다. 전 주군 오시기 전에 먹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둘이서 뚝딱 해치우는 모습에 일귀는 감히 끼어들 생각을 못 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일귀는 옛 흑학대신의 창고에서 가져온 찻잎을 건넸다.
"고맙다."
따스한 차로 입가심을 한 천강이 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래. 신교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투파창귀는 살아 있습니다."
"나도 알아. 한 놈은 잡았는데 다른 놈이 살아있더군."
"예? 다른 놈이 살아있다니. 그럼……."
천강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놈들 쌍둥이더라고. 실력도 생김새도 엇비슷한 걸 보아하니 그동안 둘이서 활동하면서 하나인 척 숨겨왔던 모양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군요."
꽤나 놀랐는지 일귀가 한동안 그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귀의 보고가 이어졌다.
"아무튼 주군을 죽였다고 생각하는지, 교주 측을 향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전쟁까지는 바라는 것 같진 않지만, 아무래도……."
"교주의 숨은 패인 날 잡았고, 천산의 보고 사건을 이용해 중립세력까지 등에 업었으니, 이 기세를 몰아 교주를 압박하고 요직을 차지하겠단 거로군."
"정확합니다."
천강의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암운사신이 주군께 꼭 대답을 받아오길 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여튼 그 녀석은 늘 걱정이 많다니깐. 이제 수감 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호들갑은……."
제아무리 기세를 잡고 요직을 점거한다 한들, 바로 싸움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그의 목적 때문이었다.
- 투파창귀도 황실도 무림인들을 다 멸하길 원한다는 것. 그것이 진실의 전부다.
흑도마황이 죽기 전 말해주었던 정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곳 마교에서 전력 손실이 커서는 안 된다. 그래야 중원 정벌을 갈 수 있을 테니까.
"투파창귀의 신병이기 개수는 어떻게 되지?"
일귀가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주군께서 싸우실 때도 꺼내 들었습니까?"
"그건 아니고, 절벽을 무너뜨릴 때 봤어."
"그렇군요. 일단 기존 아홉 개에 다섯 개가 더해져 총 열네 개에 해당합니다."
"다섯 개 모두 검?"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많네.
천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깊고 선명한 주름살이 그 위에 만들어졌다.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신물을 얻었으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천강의 입장에선 꽤나 상황이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꼴이 되었다.
"주군. 언제 나오실 생각이십니까? 다들 주군께서 목적을 달성하고 나오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일단 주태랑 맹익보고 1년만 어떻게든 버텨보라 해."
"1년…… 말입니까?"
"그래. 놈들이 뭘 주장하고 나서든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하나씩 내어주라고 해. 그러면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바로 참전하면 된다.
현재 천강의 입장에선, 지켜보는 시선도 없고 운신이 자유로운 지금의 상황을 적극 이용해야 앞으로의 싸움이 쉬워졌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냥 교주와 합심해서 투파창귀와 그 세력을 몰아내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투파창귀 하나를 잡았으니 교주와 힘을 합치면 다른 하나 또한 쉽지 않겠느냐는 의미.
뭐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천강은 고개를 저었다.
"1년. 그쯤 되면 놈들은 다 이겼다고 판단해 기세등등해질 것이고, 숨어있던 곳에서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거다."
적이 어떤 패를 숨겼는지 모를 땐 위험하다.
사신이란 존재도 그러했고 흑학대신의 배신 또한 그러했다.
투파창귀도 쌍둥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절대 녀석을 덫으로 유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자신들이 가진 패를 모두 드러냈을 때, 그때 나갈 거다."
신물(神物), 신검(神劍)을 모두 챙겨 들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