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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2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1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1화

“무슨 말이냐? 하늘 밖에 있는 하늘이라니?”

“세상에는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힘이 있더군요. 저는 그들을 천외라 부릅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자들은 그 천외의 하수인들이지요. 얼마 전 하마터면 그들에게 죽을 뻔했는데…….”

장천운은 핵심적인 부분만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소정경은 입이 달라붙었다.

“…….”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지요. 그럼…….”

말을 끝맺은 장천운이 허공으로 쑥 솟구치더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장천운이 떠난 후에야 하나 둘 나타났다.

일대를 파괴해버린 가공할 기운이 거짓말처럼 잦아든 후였다.

그들은 공터가 되어버린 곳에 홀로 서 있는 소정경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터에는 그 혼자만 있었다. 장천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고개를 살짝 쳐든 소정경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수만 가지 상념이 뒤섞인 듯 기이한 표정이었다.

“아미타불. 소 시주, 괜찮으십니까?”

나타난 자들 중 오십대 중년승려가 조심스럽게 소정경을 불렀다.

그제야 소정경이 허공에서 시선을 돌렸다. 하얀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십 초 대결을 펼쳤다. 승부가 나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진실은 그와 장천운만이 알 일이었다.

문제는 대결이 끝난 후의 대화 내용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일까?’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 소림 기재인 대운에게도 말했다고 했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말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강호무림이 농락당하고 있단 말 아닌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으니, 좀 더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소정경은 심호흡을 하며 격탕된 진기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괜찮네. 그나저나 실망시켜서 미안하군. 내 실력으로는 그를 붙잡아놓을 수 없었네.”

몰려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중에는 팽가의 장로인 팽석도 있었고, 소림사의 장로인 원정대사도 있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면서도 감히 소정경에게 토를 달지는 못했다.

“어쨌든 인원을 둘로 나누어서 일대는 그들을 쫓도록 하겠습니다.”

팽석이 이를 갈 듯 말했다. 흑월대에게 당한 무림맹무사 중 팽가의 제자가 다섯이나 있었다.

 

* * *

 

“무림맹이 허를 찔렸습니다.”

장산이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무노인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정말 뜻밖이군. 그런 수를 써서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다니.”

“나이가 어려도 사마중천의 딸 아닙니까?”

“그래, 사마중천의 딸이지.”

무노인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저편에 숨어 있는 자들을 끌어내려면 무림맹이 우위에서 구천성을 몰아붙여야 한다. 구천성이 밀리면 지원을 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여우굴에서 기어 나올 테니까.

구천성이 우세해도 기어 나오겠지만, 무림맹이 약세에 처하면 파천회가 나서도 상대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

무림맹에 슬쩍 힘을 보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손백과 나극이 힘을 분리해서 안휘로 갔으니 사마경을 흔드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철기보가 무너지면서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한순간에 계획이 틀어졌다.

무림맹의 선봉과 지원대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힘의 균형이 원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여우굴을 나오려던 천외의 무리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 느긋이 구경할 것이었다.

양쪽이 다 극심한 피해를 입고 허둥댈 때쯤 등장해서 천하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치며 즐기겠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다.

“천운이 예상한 것보다 더 강한가 보군.”

“경산일군 소정경도 막지 못했다 합니다.”

“칠군조차도 그 아이를 막지 못하다니…… 허어, 그 아이가 천고의 자질을 지녔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 발전이야.”

“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그 아이를 보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모든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제 곧 천하십절에도 포함될지 모르겠습니다.”

천하십절(天下十絶).

최근 새롭게 유행하는 이름이다.

고요하던 구천성에서 폭풍이 불고, 무림맹이라는 거인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말 많은 호사가들이 너도나도 떠들어 대며 갑론을박했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고수는 누군가!

그들의 입에서 회자 되는 구천성의 고수는 둘이었다.

구천대공 공손백, 마제 나극.

그런데 이제 이름 하나가 더해질지 모른다.

그 점만 생각하면 무노인과 장산은 환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치 못한 장천운의 강함 때문에 더 고민이었다.

“너무 일찍 강해졌어. 지금까지 세운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진행하고 있는 계획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화살이 이미 쏘아진 상태인지라…….”

“그래서 문제야. 바꿀 수가 없어서…….”

읊조리듯 말하는 무노인의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장산은 입을 굳게 닫고 무노인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거렸다.

그는 누구보다 연약한 노학사처럼 보이는 노인을 잘 안다. 노인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도.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물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다. 아마 가족이 있다면 가족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었다.

하긴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천하를 농락하는 자들과 싸우겠다며 단기필마로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마음이 메마른 사람이냐 하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시비의 안색이 조금만 안 좋아도 자신의 손녀가 아픈 것처럼 측은해했고, 굶어 죽어가는 들고양이가 안쓰러워서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온 적도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런 노인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힘든 결정을 내리고 나면 본인이 더 힘들어할 테니까.

“계획을 바꿀 수 없다면…… 이 기회에 저들을 자극해서 힘을 조금 빼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들이 움직여줄지 모르겠습니다, 노야.”

장산의 말에 무노인의 가라앉았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예상대로만 된다면야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을 움직일 방법이 전혀 없진 않아.”

“어떤……?”

무노인을 바라보며 무심코 묻던 장산이 흠칫하며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생각. 만약 무노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자신은 또 한 번의 죄를 지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을 끌며 곤혹한 표정을 짓자, 무노인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마 천운이를 내세운다면 저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다.”

“노야, 꼭 천운이가 아니어도…….”

“현재 상황에서 저들을 자극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끼가 천운이라는 걸 너도 모르진 않을 거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긴 합니다만,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무노인은 장산이 우려하듯 말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천운이 만한 미끼는 사마경밖에 없다. 그 아이를 미끼로 쓰는 건 우리에게도 좋지 않아. 천운이 놔두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천운이가 장수 운을 타고났다는 무창의 점쟁이들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무노인이 결정을 내리듯 말했다.

장산도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더 말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가 않았다.

‘너무 가볍게 말했어.’

그 사이 무노인이 단호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회주에게 내 말을 전해라.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그가 직접 나서야할 것 같구나.”

“예, 노야.”

“네 마음 잘 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그 정도의 어려움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면 어찌 하늘 밖의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

맹수는 새끼들이 스스로 생존 방법을 터득하게끔 거친 광야에 던져놓는다. 어차피 거친 광야에서 버텨내지 못하면 다른 짐승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산은 더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무노인의 눈 깊은 곳에서 잔떨림이 일고 있었다.

그도 자신만큼이나 초조한 듯했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손자처럼 생각한 장천운을 적 앞에 미끼로 던져놓아야 하거늘.

 

 

90장: 나를 지켜줄 거지?

 

 

장천운과 흑월대는 오시 초쯤 정양에 도착했다.

사마경은 장천운과 흑월대 세 조장을 모두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아주 골고루 다쳐서 돌아왔군.”

장천운과 흑월대 세 조장을 쓱 둘러본 사마경이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혁련기는 창백한 안색에 천으로 감싼 상처만 세 곳이나 되었고, 사공명신은 머리에도 상처가 나서 천으로 머리를 둘둘 말고 있었다.

특히 구산은 다리의 상처가 깊어서 절룩거렸는데, 오전 담당을 맡고 있던 류화까지도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나마 장천운이 큰 상처를 입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다쳤다면 저렇게 농담조로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눈과 입에서 살기 번뜩이는 광선이 소나기처럼 쏟아졌을 것이었다.

“경산일군 소정경이 나타나는 바람에 피해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장천운은 은근슬쩍 소정경 핑계를 댔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하지만 사마경은 경산일군의 이름에도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았다. 이제는 칠군의 이름이 모두 나와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았다.

“그러게 누가 서평까지 가라고 했어?”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 덕분에 저들의 지원이 여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 점은 인정해. 그 잘났다는 화산의 현오자와 소림의 대운도 한 동안 움직이기 힘들다니까. 하지만 그 대신 루하의 본진이 더 빨리 내려올 거야.”

“그럼 더 좋지요.”

“뭐가 좋아?”

“무림맹 본진이 빠르게 이동해서 내려오면 ‘그들’도 비 내린 다음 날의 독버섯처럼 고개를 쳐들 겁니다.”

그들. 천외의 무리들을 말함이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약점이 드러나겠지요.”

“천운도 이제 병법가 다 됐네.”

“병법가까지는 아니어도 상황을 유추하는 건 좀 하지요.”

“말이나 못하면…….”

장천운을 째려본 사마경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장들은 가서 상처부터 치료해. 천운은 남고. 멀쩡한 걸 보니 일을 더 시켜도 되겠어.”

“소성주, 저도 몸이 찌뿌둥해서…….”

“전쟁이 벌어진 판에 그 정도 엄살로 쉰다는 게 말이 돼? 누구처럼 머리가 깨지든가, 팔다리를 크게 다쳤으면 몰라도.”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를 크게 다친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소성주.”

“아무래도 머리를 싸맨 붕대를 빨리 갈아야 할 것 같아서…….”

그 와중에도 류화를 훔쳐보던 구산마저 마지못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럼 대주는 수고하쇼. 류화야, 이따 보자.”

류화가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았다.

분위기도 이상한 판국에 왜 자신을 끼워 넣어?

어쨌든 세 사람이 장천운의 눈길을 피하며 방을 나가자,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운, 본성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구천성을 떠나올 때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철저히 지켜보라고 했다.

그 일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구천호령을 활용했다. 현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구천호령이 유일했으니까.

그들조차도 모든 것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이상하다는 겁니까?”

“너무 조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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