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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2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7화

127화. 자업자득

 

 

산봉우리가 곳곳에서 고개를 쳐들고, 구름이 잔잔한 호숫가의 물결처럼 내리깔려 있는 천산의 전경.

그중 가장 높다란 봉우리를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신교의 마인들이었는데,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에게 현혹돼 지금 이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 자네, 나와 같이 천산의 보고를 털어보지 않겠나?

솔직히 그동안 사람들은 천산의 보고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가본 이가 거의 없기에 몇몇 마인들의 경우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냥 교주님의 개인 창고를 그리 부르는 거 아냐?'

이리 생각할 정도.

그런데 얼마 전 소교주 사건이 불거지면서 그들의 생각은 뒤바뀌었다.

『 천산의 보고는 실존한다. 그 안에는 세상의 온갖 진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공포, 용연, 의천검 등등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검들을 소교주가 들고나왔지만, 그 무기들조차 그 안에서는 별것 아니라 한다. 』

그런 소문이 돌았으니, 평소 강해지는데 욕심이 많은 마인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들은 금세 탐욕을 드러내며 한 남자, 마교 서열 97위 사혼귀마에게 합세했다. 그 숫자는 자그마치 오백.

일전에 교주의 증표인 반지를 갖기 위해 움직였을 때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아마 이쪽이 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일단 천산의 보고를 다 함께 턴 뒤에 서로 나눠 가지는 걸세.'

'그런데 자칫 교주의 귀에 들어가면…….'

'뭐가 걱정인가? 신병이기를 드는 순간, 나보다 한 단계 위 경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데. 그리고 취한 뒤 다 같이 중원으로 도망가면 그만 아닌가?'

오백의 마인이 사혼귀마를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은밀히 교주의 눈을 피해 천산의 보고를 향해 올라갔다.

꼭대기에 도착한 사혼귀마가 저 멀리 천산의 보고를 향해 팔을 치켜들며 외쳤다.

"자, 다 왔다! 이제 가서 물건들을 모두 취하자!"

우오오오-

 

***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걸 실제 행동으로 보일 줄이야. 큭큭.'

천산의 보고가 내다보이는 하늘 위. 투파창귀가 천산의 보고를 향해 달려드는 마인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는 제일 후미에서 사람들을 부추기는 사혼귀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처음 볼 때부터 약삭빠르고 선동질에 재능을 보이더라니…… 그 성격대로 움직이는구만.'

그런 이유로 과거 호접일검이 그를 데려오려 했을 때 제지했었다. 선동질을 하는 녀석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혼귀마는 교주 쪽으로 갔는데, 오늘에 와서는 제 욕심을 채우겠다고 제 주인 창고를 털고 있었다.

'한 번 쓰레기는 변하지 않는 법이지.'

투파창귀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어디 보자. 중립 세력은 그렇다 치고 그 외에도 교주 세력이 꽤 되는구만.'

투파창귀가 입맛을 다셨다. 저들을 미리 구슬릴 수만 있었다면 간자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때, 그의 미간이 돌연 확 좁혀졌다.

"내가 분명 움직이지 말라 했거늘……."

사이사이 보이는 여울나무 세력들.

역시 욕심을 따라 사는 불나방들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투파창귀가 팔짱을 끼고는 가만히 그들을 주시했다.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들개처럼 돌진하던 마인들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는 온몸을 흑색 복식으로 차려입은 이들이 나타나 그들과 대치하는 중이었는데, 아마 천산의 보고를 지키는 흑영대일 것이었다.

싸우는 십여 명의 흑영대와 오백여 명의 마인들.

투파창귀는 그 틈에 천산의 보고 입구에 내려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관리자층에는 노인 하나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무슨 용무로 왔는가?"

"천산의 보고 관리자 되시오이까?"

"그렇네만."

"소교주의 신병이기들을 제대로 압수했는지 확인차 왔소이다."

"그걸 위해 여울나무 대표가 직접 왔다라…… 끌끌."

노인이 한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곳엔 신병이기 여섯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나가 비는 것 같군요."

"집행관이 하나를 가져가라 챙겨주더군."

강철신마 녀석…….

투파창귀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말했다.

"물건이 가짜가 아닌지 잠깐 확인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시게."

투파창귀가 걸음을 옮겨 검들을 확인해 보았다. 과연…… 하나하나가 신병이기라 불릴 만큼 대단한 무구들이었다.

그는 기감을 펼쳐 노인을 가만 살폈다.

투파창귀가 이곳에 온 이유. 그것은 천강이 두고 간 신병이기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이것들만 소유할 수 있다면, 교주가 가진 신검을 상대로 우위를 확실히 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순간, 투파창귀가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챙-

"음? 조심히 다루게. 그것들 성격이 고약하니."

"……."

"다 확인한 겐가?"

"예. 문제없군요. 이만 돌아가 보겠소이다."

"잘 들어가시게."

투파창귀가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온통 시체로 그득했다.

오백여 명의 마인들 중 살아있는 건 고작 사혼귀마 하나. 그러나 그도 막 목이 떨어지던 참이었다.

"응? 하나 놓쳤었나?"

검에 묻은 핏물을 바닥에 털어내고는 그를 돌아보는 남자.

'바깥을 지키는 이는 현경. 안쪽 관리자는 최소 생사경.'

그제야 왜 지금껏 교주가 천산의 보고에 있는 무구들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된 투파창귀였다.

'큭큭. 천산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구만.'

 

***

 

화르륵-

성화의 불길이 무저갱의 바닥을 비춘다. 그 영역 안에 있기만 해도 마치 푸른 초원에 등을 대고 누운 것처럼 천강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들려오는 대사에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지만 말이다.

"이 새낀 대체 어디 가서 뒈진 거야? 죽을 거면 곱게 쳐 죽을 것이지."

순간 수행원이 한 말인 줄 알았다. 신녀는 천강의 생각보다 더 예의 따윈 없는 듯했다.

"강철신마, 그대는 저쪽을 찾아보세요. 저와 제 수행원들이 이쪽을 찾아볼 테니."

"알겠소."

그러나 일각(一刻)이 지나도 찾지를 못하자 그녀는 수행원들을 크게 호통쳤다.

"대체 뭐 하는 것이냐? 이 쓸모없는 것들! 진정 사지가 찢겨 죽고 싶은 게냐!"

"죄, 죄송합니다!"

"더 빨리 움직이겠나이다!"

두 수행원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천강은 그들의 대화에 가만 귀를 기울였다.

"씨발. 지가 무슨 황제의 딸이라도 돼? 어디서 한낱 평민 주제에 이래라저래라야?"

"야야. 참아. 요새 마두들과 어울린다고 콧대가 하늘 모르고 솟아오르잖아."

신녀는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징적인 존재다. 그래서 그 하는 일 대부분이 봉사다.

주민들과 만나 소통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뭐 그런 거.

그런데 두 수행원의 이야기를 들어본즉 아주 가관이었다.

"요샌 밤마다 비부쌍마를 불러내서는……. 이러다가 교주님에게 걸리면 농이 아니라 우리 모두 진짜 사지가 찢겨나갈 텐데."

"그거 들었어?"

"뭐?"

"아니 글쎄…… 비부쌍마에게 얼마나 빠졌는지, 이곳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라잖아. 뇌명창을 선물로 주려고!"

"정말? 미쳤어, 미쳤어!"

비부쌍마는 마교 서열 10위에 해당하는 고수다.

여울나무 측에서 투파창귀와 흑도마황, 적삼혈마를 제외한 가장 강한 실력자라 볼 수 있었다.

그는 꽤나 호탕하고 산적같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이번 신녀님은 걸걸한 입과 어울리게 취향도 그런 쪽이었던 모양이다.

"뭘 그리 시끄럽게 떠드는 게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녀의 호통에 수행원들이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 진짜 이놈의 소교주는 대체 어디를 가서…… 응?"

그때였다. 신녀 가까이로 움직이는 검은 구름. 그걸 본 한 수행원이 검지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 어어?"

모두의 시선이 수행원에게로 향한다. 그리고는 다시 손끝을 향해 이동한다.

'늦었어.'

천강은 곧바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려는 신녀의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북명신공.

쿠콰콰콰콰-

손바닥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다량의 기운. 신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로 인해 똑같이 허공에서 똑 떨어지는 사람들.

"이런. 의도치 않게 나와 같은 처지들이 되었네?"

성화의 불꽃이 빠르게 사그라진다.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던 기운이 확 수그러들었다.

천강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 그럼 다들 다음에 보자고."

태연하게 벽을 발로 밟는다. 그리고는 내기를 사용해 위로 쭉쭉 올라가며 천강이 소리쳤다.

"물론, 살아있다면 말이야!"

소년은 곧바로 무저갱 위쪽으로 사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 파악이 되지 못한 네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일깨운 건, 누군가의 괴성이었다.

그워어어어-

"이, 이런 미친! 다들 올라가!"

"꺄아악!"

강철신마가 벽을 짚고는 올라갔다. 그 뒤를 따라 신녀의 수행원들도 벽을 올랐다.

"자, 잠깐만…!"

유일하게 천강에게 내기를 쪽 빨린 신녀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한계까지 빨린 탓에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탓이었다.

"야, 이 미친년들아! 감히 날 놓고 가? 죽고 싶어, 너희들?!"

무시하고 계속 벽을 오르는 수행원들.

"너희들 잡히면 아주 사지를 갈가리 찢어놓을 거야!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날 데려가면 용서해줄 테니……."

그러나 그녀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워어어어-

괴물들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그제야 신녀의 머릿속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나, 나, 나도 데려가 줘. 제발 살려줘! 뭐든 부탁한다면 다 들어줄 테니까…… 응? 앞으로는 안 괴롭히고 잘 대해줄게. 나도 데려가 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진심을 전달해도 그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신녀는 목표를 바꿨다. 자신의 재색이라면 그 어떤 남자라도 꼬드길 수 있을 거라 자신했기에.

그러나 이미 강철신마는 저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

고개를 돌린다.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것들이 뛰어온다.

그것들의 눈과 입엔 탐욕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굶주리고 굶주린 저승의 아귀들 같았다.

크륵. 크르륵.

모처럼의 만찬을 앞에 두고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는 녀석들.

신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바닥으로 누런 액체가 웅덩이를 이뤘다.

꺄아아악-

천강은 그 모든 것을 절벽에 서서 가만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 막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년. 가만 보면 일말의 자비도 없군요.

'어떤 점이?'

- 그래도 여인들은 자비를 베풀어줄 줄 알았는데요.

'음……. 그건 네가 마교 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

쥐 굴에서 시작해 암운곡까지의 장장 5년의 걸친 훈련 기간. 그동안 훈련생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성별 따위 구분 없이 평등하게 취급받는다.

그 뒤 졸업하고 정식 마인이 되도 그건 동일하다.

여자라 차별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그게 마교였다.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마교에서 크고 자라다시피 한 천강에겐 남자나 여자나 그저 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마인들이 좀 드센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반대로 마인들이 중원의 여자들에게 넋을 잃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리라.

- 그건 그렇고, 서로 돕질 않는군요. 도왔다면 모두 살 수 있었을 텐데요.

'다들 제 코가 석 자라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을걸.'

두 수행원이 토막 나 아귀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강철신마는 육체 능력으로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으나, 지옥 아귀들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떠, 떨어져! 젠장! 젠자아아앙!"

결국 강철신마도 발악을 하다가 아귀들에 의해 한 끼 식사 거리가 돼 사라졌다.

그렇게 형벌 집행을 위해 내려온 네 명의 사람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이었다.

바로 신녀.

그녀는 운 좋게 옆에 성화가 있어 살 수 있었다. 성화의 기운으로 괴물들은 그녀에게 3보 안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명신공으로 내기가 한계까지 빨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떠는 것뿐.

그런 그녀를 둘러싸고는 지옥의 아귀들이 침을 뚝뚝 흘려댔다.

'자업자득이지.'

천강은 절벽을 거슬러 올라갔다.

붉은 암석이 끝이 나고 검은 벽이 나타났다. 일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움직이자 천강은 곧 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의 기운과 죽음의 기운이 서로 영역을 다투는 곳.

'역시 여기가 맞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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