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4화
124화. 호랑이를 사냥할 계획을 짜다
"전 자유를 원합니다."
"내 자네가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대가는 무엇입니까?"
작영의 질문에 투파창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별거 아니다. 그저 자네가 아는 비밀을 말해주면 될 뿐이다."
"……전 교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교주에 대해 아는 건 없어도 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소교주에 대한 것이니까."
작영의 얼굴에 고민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암운곡의 소교주…… 그는 대역입니다."
"음?"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
감겨있던 투파창귀의 눈이 찬찬히 뜨였다.
천산의 신전. 족히 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에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말싸움을 벌이는 100명의 마두들. 그들은 소교주가 천산의 보고를 무한히 열람한 것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교주님의 자녀분이라 해도 그렇지, 아무런 공적도 없이 천산의 보고를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다니요! 그 무슨 경우입니까!"
"그럼 안 됩니까?"
"뭐요?"
"교주는 천산의 주인이오. 모든 신교의 것은 교주에게 속해 있소이다. 응당 천산의 보고 또한 마찬가지! 주인이 제 물건을 쓰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이오?"
"어허! 그리 사적으로 사용한다면, 천산의 보고에 재물이 남아돌지 않을 것이외다! 역대 교주들께서 그걸 모르고 사용하지 않으셨을까!"
"그 이야긴 교주의 권한이 천산과 신교 내에 못 미치는 곳이 있단 뜻이오? 그리 받아들여도 되겠소이까? 아무래도 그대들은 신교의 도리와는 맞지 않는 불순한 사상을 들고 있는 것 같소이다!"
팽팽하게 맞고는 두 세력. 그러나 교주 쪽 세력이 불리했다.
교주가 사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몰아가면서 여울나무 쪽에서 중립세력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양측 주장 모두 명분이 있었으나, 내가 가지지 못했는데 남이 가진다면 배가 아픈 법이다.
중립 세력들은 소교주 개인에게 주어진 과도한 혜택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드러냈다.
'어디서 반로환동 고수를 고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안 될 것이다.'
상황을 가만 지켜보던 투파창귀가 신호를 보냈다. 여울나무 측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주님! 이것은 신교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제아무리 소교주라 한들 이것은 도를 넘어선 것! 죄를 물어 주시옵소서!"
"죄를 물어주시옵소서!"
하나가 되어 외쳐대는 마두들. 그들은 사전에 맞춰온 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서서히 처형으로 가닥을 잡아나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진도를 더 나가지 못했다. 차마 처형을 운운했다간 곧바로 교주에게 목이 떨어져 나갈까 해서였다.
'쯧쯧. 쓸모없는 것들.'
결국 한 발 앞으로 나서는 투파창귀. 그때였다.
"교주님, 이 흑도마황이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습니다."
여울나무 제일 후미에서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흑도마황에게로 향했다.
"그래. 무엇인가?"
교주의 물음에, 흑도마황이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듣기로는 영약 등은 전혀 먹은 게 없고 무기를 들고나왔다 들었습니다. 그걸 참작해 천산의 보고에서 얻은 물건을 모두 회수하고 무저갱 5년형에 처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무, 무저갱?!"
"아니, 무저갱이라면……."
무저갱.
천산에 밑바닥에 자리한 마교 제일의 감옥이다.
역대 신교의 기록을 뒤져보아도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이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무저갱은 그 악명이 자자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신교에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자나 정치적인 이유로만 수용되곤 했다.
그런데 그 무저갱이라니.
웅성웅성.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교주 쪽 세력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어찌 그런 사악한 방법을 생각한단 말이오!"
"그곳에 수용된다는 뜻은 죽으라는 말과 같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강한 반발과는 반대로 여울나무의 의견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약 4할에 해당하는 무리가 한 목소리를 내자, 중립세력 또한 그 기세에 합승했다.
"암운곡 소교주에게 죄를 물어주시옵소서!"
"무저갱 5년형이면 족한 듯합니다!"
그런 그때였다.
쿠구구구. 한 차례 땅이 진동하고, 신전 내로 천마의 목소리가 가득 메웠다.
"시끄럽다. 어디서 교주인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그 힘 있는 어조에 단숨에 수그러드는 마두들.
그는 천산의 주인이기도 하지만, 현경의 고수이자 신검의 주인. 교주의 광대하고 무거운 기운에 마두들은 본인들도 모르게 고개를 수그렸다.
천마는 일단 이 끓어오른 열기를 가라앉히고자 회의를 파하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좀 차가워진다면 여울나무에 편승한 중립세력이 다시 제 위치를 찾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회의를 파하기 직전, 교주와 마두들 사이에 서 있던 소년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겠습니다."
"뭐라?"
소년이 흑도마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교주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까짓거 5년형,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겠나이다."
교주의 시선이 천강을 훑는다. 그리고는 그 뒤에 서 있는 마두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천마는 진한 살기를 피워 올렸다.
"다들 나가라. 이 일은 소교주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뒤 결정할 것이다."
"교, 교주님. 마두 모두가 모였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회의를 파하시면……."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리면, 그 목이 날아갈 줄 알거라."
"……."
마두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갔다. 천강의 입가에 호선이 떠올랐다.
결국 그날 천강의 무저갱 5년형이 확정되었다.
***
"하하핫. 그렇게 골치를 썩이던 소교주가 드디어 사라지게 되었군요."
"그러게 말이오. 역시 투파창귀 어르신께선 다르긴 다르신 것 같소이다."
축제 분위기의 여울나무 숲.
그들은 오늘 신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오늘 교주 쪽 세력 얼굴들 보았소이까?"
"크하하핫. 봤소이다. 아주 속이 다 시원하더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마치 똥 마려운 개 같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웃음이 끊이질 않는 그곳에서 유독 진중한 얼굴의 사내가 있었다. 거대한 도를 멘 채 한쪽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흑도마황이었다.
- 투파창귀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들었소이까? 암운곡의 소교주가 진짜 소교주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하……. 들었소. 중원에서 반로환동의 고수를 고용했다지?"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았소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범상치 않다고 했는데…… 흡공을 가르치면서까지 속이려 들다니."
흑도마황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러자 간밤의 일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저들이 말하는 가짜 소교주와의 일이.
***
전날 자시(子時). 흑도마황의 거처.
한 소년이 흑도마황 앞에 앉아 물었다.
"투파창귀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내가 교주 쪽과 손을 잡을 것 같나?"
"왜 저를 교주 쪽이라 생각하시는 모르겠군요. 저도 이용당했습니다. 소교주가 아닌데 목숨을 위협받아 소교주 행세를 해야만 했죠."
소년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호소했다.
"어차피 이쪽이든 저쪽이든 목숨 위협에 시달리는 건 똑같고. 그나마 교주가 이득을 챙겨준다 하니 붙게 된 것뿐입니다."
"그럼 그 사실을 투파창귀에게 가서 말해라. 그러면 네 가치를 높이 사, 널 살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흑도마황님도 아시잖습니까. 흑도마황님의 제자가 저를 잡기 위해 지하수로로 들어왔을 때, 전 거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 분께선 어찌 되었습니까?"
"그 입 닥쳐라. 한 번만 더 네 입에서 내 제자 이야기가 나온다면, 내 당장에 널 죽일 것이다."
분명 그리 엄포를 놓았음에도, 마치 그런 걸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듯 소년은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지금 투파창귀를 찾아가 말한다면 당장은 살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의가 끝난다면 저 또한 누구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이승을 떠야 할 겁니다."
"……."
"흑도마황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투파창귀는 한 번 자기에게 대든 자를 절대 살려두는 성정이 아닙니다. 그저 쓸모가 있어 아직 놔두는 것일 뿐."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소년의 입가에 티 나지 않게 미소가 걸렸다. 천강은 본론에 들어갔다.
"저는 투파창귀를 죽일 것입니다."
흑도마황의 눈에 힘이 실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교서열 3위 흑도마황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 혼자서는 부족해서 말입니다."
"내가 있으면 가능하다? 그럼 교주와 일필일사를 불러다 하면 되지 않느냐."
"아니요. 오로지 흑도마황님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흑도마황의 상체가 천강 쪽으로 기울었다.
"그 계획, 한 번 들어는 보지."
"흑도마황님께서는 신교의 신물(神物)을 찾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네놈…… 내 쪽에 사람을 심었더냐?"
천강은 흑도마황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 신물이 어디 있는지 제가 압니다."
"뭐라?"
일귀가 신물의 구결을 읊어주자마자, 천강은 그게 어딜 가리키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일전에 아귀의 입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서, 의도치 않게 그 의심이 되는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벽과 검은 벽이 정확히 등분되는 지점에 굴 하나가 있었지.'
아마 그곳이 맞을 것이다.
"그건 무저갱에 있습니다."
"무저갱……!"
그래서 찾지를 못했던 것이로구나!
흑도마황의 밝아진 표정을 본 천강이 다시 그의 상처를 살살 건드렸다.
"흑도마황님. 이미 투파창귀와 한 판 붙어보셨으니 아실 것입니다. 이번에 제 제안을 거부하신다면 그를 죽일 평생의 기회를 놓치실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들쑤시고 후벼 팠다.
"제자의 복수……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적막 속 흑도마황의 미간이 좁혀지고 그 주름이 깊게 파였다.
흑도마황의 입이 움직였다.
"투파창귀는 강하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본들 이기지 못한다."
"아뇨. 이길 수 있습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는 거지?"
"진정 그를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흑도마황과 천강의 눈이 마주쳤다. 흑도마황은 소년의 눈에서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말이냐?"
"무저갱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신체가 닿는 순간, 제아무리 현경이라도 내기 운용을 전혀 할 수 없지요. 역대 수감자들이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건 그 때문입니다."
"그런 비밀이……."
"그곳에 굴이 하나 있습니다. 신물이 잠들어 있는 굴이지요. 그 굴을 함정으로 이용할 것입니다."
흑도마황의 눈에 빛이 감돌고, 그 입 끝이 살짝 올라갔다.
"즉 투파창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내기를 전혀 운용 못 하니 그걸 이용해 둘이서 쓰러뜨리자 이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숫자도 저희가 둘. 거기에 흑도마황님은 화경에 도달하고도 근력 훈련을 꾸준히 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투파창귀를 땅에 떨어뜨리기만 한다면, 저희가 이기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지? 다른 이와 함께 해도 되지 않은가?"
천강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흑도마황님께서 그 미끼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뭐라?"
"흑도마황님은 투파창귀와 이미 갈등을 치른 전적이 있습니다. 신경 안 쓰는 것 같아도 아마 투파창귀는 흑도마황님을 은밀히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내가 신물의 행방을 찾는 것과 그 이유도……."
"이미 알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믿을 수 없군."
천강 쪽으로 기울였던 흑도마황의 상체가 뒤로 움직여 의자에 실렸다. 천강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솔직히 제 계획에서 흑도마황님이 손해 볼 게 전혀 없지 않습니까?"
"……."
"만약 투파창귀가 흑도마황님의 제자를 죽인 걸로도 모자라 뻔뻔하게 흑도마황님마저 죽일 마음이 있다면, 그래서 은밀히 주시하고 있다면, 반드시 이 함정에 걸려들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흑도마황 자신은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계획이었다.
만약 투파창귀가 안 나타난다면 신물을 얻어 직접 복수하면 그만이니까.
흑도마황이 잔을 들어 올렸다. 천강 또한 찻잔을 마주 들었다.
"그럼 내가 무얼 하면 되지?"
"이미 아시겠지만, 천산의 보고 일로 전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 무저갱 형벌을 제안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그걸 받아들이고 먼저 들어가 준비하고 있겠나이다."
흑도마황이 잔을 기울였다.
"좋다. 그 제안 받아들이지."
천강 또한 잔을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