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1화
121화. 여울나무 숲을 털다
여울나무 숲.
천산엔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두 개의 훈련소가 존재한다. 암운곡과 여울나무 숲이다.
그중 여울나무 숲은 땅속에 파묻혀 있는 암운곡과는 달리, 볕이 잘 닿는 평지와 절벽에 자리했다.
그래서인지 훈련소 가까이로는 여러 명성 있는 마인들이나 마두들의 거처도 함께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투파창귀를 필두로 한 거대한 세력의 군락이 되었다.
그 중심부로 나아가며 주태가 투덜거렸다.
"아,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냐?"
"걱정 마. 이번엔 진짜 성공한다니깐? 우릴 봐봐. 옛날의 그 어수룩한 세 명이 아니라고."
주태가 고개를 뒤로 돌린다.
몸에는 암운신공의 검은 연기를 두르고 얼굴엔 복면을 쓴 그의 두 벗, 맹익과 천강이 그를 찬찬히 뒤따라오고 있다. 주태는 못 미덥다는 얼굴로 말했다.
"야. 솔직히 우리가 지금껏 한 번이라도 사고 안 친 적이 있었냐? 땡추야, 네가 대답해 봐. 안 그냐?"
"흠흠. 저는 침묵으로 일관하겠습니다."
"야, 진짜 걱정 말라니까? 나 천강이다. 흑살마신 천강!"
자신만만하게 엄지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키는 소년. 암운사신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 나이 먹고……."
아무튼 이미 벌어진 일. 저 앞에서 누군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새로이 부책임자로 임명된 호염입니다. 혹시 암운사신님 되십니까?"
"그래. 이 뒤는 내 수행원이다."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절 따라오시지요!"
호염이란 남자는 세 사람을 이끌고 여울나무의 중심부 안쪽으로 인도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정말 송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어…… 실은 지금 총책임자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상태입니다."
알고 있다. 일부러 자리 비운 틈을 노려 찾아온 세 사람이었다.
자고로 털 때는 빈집털이가 기본이기에.
"오래 걸리나?"
"아닙니다. 반 시진(時辰) 안에 돌아오실 겁니다."
반 시진이라. 일단 시작은 좋군.
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통해 산등성이를 쭉쭉 올라간다. 그러자 곧 구릉 지대와 같은 평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엔 수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얼마나 많고 잘 지어져 있던지 순간 작은 도시를 연상케 했다.
호염은 그들을 그곳 중앙에 자리한 총책임자 건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사무실 옆에 나 있는 대기실로 그들을 인도했다.
"어떤 차로 준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 됐다. 먹고 왔다."
"혹 필요하신 건?"
"없다. 총책임자가 오거든 바로 알려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호염이 물러나고, 천강과 맹익은 대기실 밖 복도에 섰다. 감시하는 인원들이 있었으나, 주태가 불편하니 좀 치워 달라 하자 곧바로 자리를 비워주었다.
- 오오. 주태. 제법인데?
- 흥. 이 정도야.
- 그건 그렇고, 일이 생각보다 훨씬 잘 풀리는 군요, 선배님들.
그랬다. 사실 원래라면 총책임자가 자리를 비운만큼, 손님인 그들은 건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우휘전마의 보조를 오랜 기간 해온 호염은 그가 암운사신을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를 봐왔다.
현 상황에서 암운사신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한 잘 알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기분 나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답시고 그들을 안으로 들인 것이었다.
감시하는 인원들을 멀찍이 떨어뜨린 것 또한 마찬가지.
'모든 게 순조롭군.'
천강은 맹익과 자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검은 연기로 마치 한 몸처럼 이어져 있었다.
암운신공을 두르면 다른 사람들은 그 기척과 내기를 느끼지 못한다.
그나마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눈으로 인식되는 검은 안개인데, 그마저도 감시 인력들이 전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즉, 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적들은 전혀 눈치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천강이 맹익에게 고갯짓하며 주태에게 전음을 날렸다.
- 주태, 넌 거기서 누구 오는지 잘 감시해라. 쥐새끼들은 없는지.
- 알겠다.
주태가 자신의 기척을 일부러 흘리고, 그 사이 천강은 맹익과 함께 총책임자 사무실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 입구에는 정교한 수식으로 된 기관진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일각(一刻)이면 충분합니다.
자리를 잡고는 풀기 시작하는 맹익. 천강은 가만히 눈을 감고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는 일각이 흘렀을 때, 맹익이 그를 불렀다.
- 됐습니다.
- 시간 정확하네.
- 이 짓을 벌써 50년 넘게 했잖습니까.
- 확실히 70년 전보다는 훨씬 나은걸?
암운곡 영약 창고를 털 당시에는 맹익이 창고 입구 여는 걸 실수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었다.
당시에도 맹익은 충분히 그걸 풀 능력이 있긴 했지만, 천강과 주태가 닦달하는 바람에 사소한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다섯 곱절은 어려운, 다중 기관진식을 이리 간단히 푸는 걸 보면 새삼 그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됐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 그럼 어디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총책임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사방으로 각종 서류들이 즐비해 있다.
'암운곡과는 달리 건물이니, 분명 아래쪽에 영약 창고를 숨겨뒀을 텐데…….'
- 땡추, 그쪽에 있냐?
- 없습니다.
찾아도 찾아도 없는 입구.
- 선배. 혹시 여기는 암운곡과 달리 영약 창고가 밖에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
-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응당 이리 덩치가 큰 조직이면 영약 창고도 따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것을.
암운곡처럼 당연히 총책임자 사무실에 딸려 있을 거라 생각한 천강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 선배. 어떡합니까?
- 뭘 어떡해. 여까지 온 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으니 쓸 만한 것들 있나 찾아보자.
천강이 사무실을 빠르게 훑는다. 옆방에서 주태 녀석의 전음이 날아온다.
- 아직 멀었어?
- 좀만 기다려!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고, 가구도 뒤져보고.
'아니, 여긴 무슨 서류가 이리 많아?'
그리 투덜거리길 잠시, 문득 서류 한 장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천강의 눈이 이채를 발한 건 바로 그때였다.
- 이것은…….
여울나무의 기밀문서?
- 뭔가 발견하신 겁니까?
- 어. 이거 봐봐라.
- ……세상에.
서류 내용을 본 맹익의 눈이 크게 뜨였다. 거기에는 여울나무 조직도와 그 전력, 현황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천강은 바로 다른 서류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간자들의 정보도 이리 세세히 남겨놓다니!'
현경이 되면서 좋아진 머릿속에 그 내용을 차곡차곡 집어넣는다. 그러면서 신병이기 녀석들에게도 부탁한다.
'너희들, 이 내용 머릿속에 다들 집어 넣어둬.'
- 킁. 글 읽는 건 싫다. 싸움할 때 불러다오.
- 저도 시는 좋지만 이런 재미없는 정보는…….
그래도 시키니까 여덟이서 열심히 외우기 시작한다. 특히 뇌명은 이런 일을 자주 해보았는지,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 천강. 아직이냐?
주태 녀석에게서 다시 전음이 날아왔다. 조금은 다급해 보였다.
- 거의 다 됐어.
- 이제 나와야 해. 우휘전마 녀석 나타났다.
- 거리가 얼마나 돼?
- 여울나무 숲 어귀야.
천강과 맹익이 후다닥 총책임자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맹익이 해체한 기관진식을 다시 하나하나 작동시켰다.
- 빨리해. 내가 왔다는 걸 들었는지, 갑자기 뛰어오기 시작했어.
분주히 손을 놀리는 맹익.
- 이제 코앞이야. 10, 9, 8…….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일을 묵묵히 처리한다. 다 끝내고 두 사람이 제자리로 막 돌아가 섰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암운사신! 나 우휘전마가 왔소이다!"
대기실 앞에서 천강과 맹익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우휘전마가 안으로 들어서며 나직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암운사신. 정말이지 대단하오! 코앞에 있는데도 수행원들조차 그 기척이나 내기가 하나도 안 느껴지다니!"
주태가 천강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무공이긴 하지만 가끔 나도 놀라곤 한다."
“하핫. 아무튼 암운사신께서 직접 찾아왔으니 내 귀한 차를 내오라 하겠소. 여봐라!”
그러나 손을 들어 올리며 제지하는 주태.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다. 그저 이 근처를 지나가다 잠깐 들른 것뿐이다. 급히 가봐야 한다."
"그런……. 그래도 일각(一刻)이라도 이야기 좀 하고 가시지 그렇소?"
"선약이 있어서 말이다."
주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우휘전마 또한 바로 따라붙고, 천강과 맹익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전에 우휘전마가 내게 제안해 주었던 건 아직 심사숙고 중이다. 반나절만 더 생각해보고 말해주겠다."
"하핫. 고맙소이다, 암운사신!"
"그럼 이만."
세 사람이 예를 차렸다. 우휘전마 또한 두 손을 모아 예를 취했다.
그렇게 천강과 주태, 맹익은 무사히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울나무 영역 밖으로 나온 천강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큰소리를 빵빵 쳤다.
"거봐! 내가 이번엔 아무 사고 없이 성공할 거라 했냐, 안 했냐?"
"……그러게.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천강의 득의양양한 모습에 주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맹익은 잠시 고개를 돌려 여울나무 쪽을 가만 바라보았다.
"땡추.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천강을 돌아보며 손뼉을 치는 노인.
'별일 없겠지?'
아까 기관진식을 재가동시킬 때, 급하게 하느라 약간 편법을 썼는데…… 그게 좀 신경 쓰이는 맹익이었다.
아무튼 아무런 사고도 없이 처음으로 성공한 세 사람. 그들은 그 일을 자축하며 암운사신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한편 그 시각. 여울나무 숲 총책임자 사무실.
"응? 어디서 물이라도 샜나?"
우휘전마는 사무실로 들어서다, 음영이 진 바닥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잠금을 푸는데…….
"어어? 이게 뭐야?"
갑자기 말썽을 일으키는 기관진식.
화르륵- 불길이 뻗어 나가더니, 눈 깜짝할 새에 건물 전체를 화마가 뒤덮었다.
"여,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외부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필사적으로 불길을 막아본다. 그러나 불길은 더욱 거세어져 모든 걸 불태웠다.
그렇게 건물은 순식간에 전소되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우휘전마는 재가 되어버린 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총책임자 사무실 앞에 설치된 기관진식은 잠금 해체에 실패할 경우 외부에서 침입했다고 판단,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발화하는 형태다.
그래도 보통 그전에 경보음이 울리고 하는 예고 단계가 있었다. 그동안 진식을 안정화하면 최종 화마는 막을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 맹익이 편법으로 재가동하다 보니 그 예고 단계가 사라져버렸고, 기관진식이 꼬여버린 탓에 말 그대로 홀라당 모조리 불타버린 것이었다.
여울나무 중심부에서 벌어진 화재 소식에 투파창귀 세력은 발칵 뒤집어졌다.
"암운사신을 뭣 때문에 건물 안쪽까지 들였지?"
투파창귀의 추궁에 우휘전마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대답했다.
"그, 그건 암운사신을 저희 쪽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랬습니다. 제가 그동안 암운사신과 관계를 돈독히 해 와서……."
"그래. 그럼 결과도 가져왔겠군?"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반나절이면 답을 준다 했습니다! 아마 긍정적인 답변이 날아올 것입니다!"
그에 바로 사람을 보내나, 보고자 왈.
"총책임자님, 거절하겠답니다."
"뭐? 거절……?"
이, 이게 아닌데…….
투파창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휘전마는 보고자와 투파창귀를 번갈아 바라보며 얼굴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난 능력 없는 놈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남들 누리는 걸 누리지도 못한다는 건 참으로 불쌍한 것이지."
"저, 저기 어르신……. 이건 말입니다."
"그런데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 많은 놈들. 난 그것들을 혐오한다.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결국 주변에 피해를 입히거든."
"투, 투파창귀 어르신.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바로 이 사태를 수습……."
"됐다, 우휘전마. 죽음으로 네가 배신자가 아니란 걸 증명해라."
"어르신!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투파창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 즉시 우휘전마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그 몸이 그대로 넘어갔다.
"가서 적삼혈마를 다시 불러와라."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이는 사람들. 그러나 적삼혈마의 소환에, 그들은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했다.
"책임지고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그를 다시 데려오는 건 형편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상황에 적삼혈마가 다시 돌아올 경우, 자신들에게 총책임자 기회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투파창귀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럼 너희들 중에 전소된 정보를 복구할 수 있는 놈이 있나? 있으면 나와라."
"……."
"쯧쯧. 어서 가서 적삼혈마나 데려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