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1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13화
113화. 소소한 복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교관들. 그때 그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막아주고 계셨네요, 괴기나한 님."
흑학대신을 이끌고 천강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의욕이 없던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맹익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비키라고!"
"제발 꺼져어어!"
그러나 그런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변변찮은 내기도 없는 그들은 맹익의 망치에 맞고 곤두박질쳤다.
"어이. 그만 발악하고, 순순히 협조들 하시지?"
"혀, 협조하면 살려주실 겁니까?"
존칭을 하며 천강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사람들.
"글쎄. 하는 거 봐서?"
"그럼 하겠습니다! 협조하겠습니다!"
신입교관 여덟이 천강의 앞에 엎드렸다. 그렇게 무형지독 사건은 간단히 일단락되었다.
점혈을 마치고 총책임자의 사무실에 가둔 후, 굴밖에 나와 바람을 쐬며 맹익이 천강에게 물었다.
"이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이거 마저 마시고, 애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겠지."
천강이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무형지독의 원액이 담긴 병이었다.
"외부에 알리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어. 처음에는 그럴까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무려 소교주를 음독시키려 했다. 그것도 전대 교주를 암살시킨 같은 방법으로.
이건 명백히 교주의 화를 돋우는 행위.
"적이 이리 나설 정도면, 사실상 놈들은 싸울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봐도 될 거다."
"모른 척 늦출 생각이시군요. 시기를."
"그래야지. 복수를 하고는 싶은데, 아직 난 준비가 덜 되었으니까."
천강이 병에 든 액체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내면에서부터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뱅글뱅글 돌리자 독기가 빠른 속도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해독 속도였다. 마치 흐르는 물에 먹물 한 방울 떨어뜨린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빠르게 옅어져 사라져버리는 무형지독의 기운을 보며,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로써 완전한 독 내성을 갖추었네.'
앞으로는 먹는 것에 대해선 걱정 따윈 안 해도 되리라.
"자, 그럼 애들 오기 전에 마지막 작업을 해볼까?"
"마지막 작업이라 하시면?"
"여울나무 새끼들이 살격을 내질렀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당장 일을 크게 벌이진 못해도 소소한 복수는 해야지."
천강은 총책임자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들어간 후에 왈.
"너희들 살고 싶어?"
"예, 예!"
"그럼 기회를 한 번 주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목소리 크고, 의욕 좋고. 좋아. 그럼 어디 움직여볼까?
"일단 자신이 표정 관리나 연기를 잘한다, 손?"
"표정… 관리요?"
흑학대신과 신입 교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
암운곡 지하수로의 어둠 속.
흑학대신과 검술교관이 물속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있으니, 한 사내가 다가와 그들에게 까딱 고개를 숙였다.
"들었소. 소교주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래."
검술교관이 한쪽을 가리켰다. 지하수로 가장자리에는 한 소년이 벽을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소년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남자.
"…죽은 게 맞군."
"임무를 완수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면 하네만."
"여울나무로 가서 보고를 올리고 이후에 내어주겠소."
"지금 바로 줬으면 좋겠군. 교주 쪽에서 무형지독을 눈치챘고, 그에 대해 투파창귀 님과도 어젯밤 이야기가 다 끝난 사항이네. 보상을 받은 뒤, 잠시 천산에서 떠나있기로 말이네."
흑학대신의 입에서 투파창귀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남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가져다주겠소."
남자가 빠르게 암운곡 밖으로 사라진다. 시체처럼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법 연기들 잘하네?"
"후우. 약속대로 목숨은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래. 걱정 마라. 그건 그렇고, 투파창귀 입김이 세긴 센가 봐? 그 한마디에 저리 허겁지겁 사라지다니."
검술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나무 내에서만큼은 교주보다도 더 강하다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을 팔아먹길 잘했구만.
암운곡 구석진 그늘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늘이 잠깐 일렁이더니 암운곡 위로 사라졌다.
천강의 시선이 잠시 지하수로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맹익이 무려 닷새를 공들여 만든 진식.
전생에 비해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 그저 저기 누워있을 뿐인데 상대는 환각에 걸려 천강을 시체로 인식했다.
'분명 50년 전엔 나보다 실력이 떨어졌는데 말이지.'
시간의 흐름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한 시진(時辰) 정도 기다리자, 사라졌던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흑학대신과 검술교관에게 각각 물건을 내어주었다.
"약속했던 것들이오. 확인해 보시오."
두 사람이 받은 것들은 확인했다.
"맞군. 맞아."
"이쪽도 맞습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소. 부디 잘 살아남으시오."
남자는 한쪽에 쓰러져 있는 소년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여울나무로 사라졌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걸 느낀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슥 내밀었다.
"자, 이제 내어놓으실까?"
"예? 무엇을…? 서, 설마 이걸 말입니까?"
"그 무슨! 이건 약속과는 다르지 않나!"
당황해 따지는 두 사람. 소년의 눈동자가 얇아졌다.
"멍청한 거야, 아니면 뻔뻔한 거야? 내가 너희들을 연기시킨 게 고작 내 죽음 위장하려고 그런 줄 알아?"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저건 내가 가져야 하는 게 맞았다.
"투파창귀의 이름 팔아먹었다고 저들이 바로 내주다니, 쟤들이 등신이냐? 내가 너희들 말 듣고 미리 배신자 하나를 그쪽으로 보내둬서 그게 이리 전달되어 온 거다."
아까 여울나무 쪽으로 돌아갈 때, 일귀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아마 가짜 신분을 이용해 교묘한 시간차를 두고 도착. 마치 투파창귀가 보낸 것처럼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 투파창귀 님께서 말씀하시길, 흑학대신과 그 무리가 임무에 성공할 경우 보상을 바로 내어주라 하셨습니다.
라고 말이지.
"그러니 어여 내놔."
그러나 고개를 젓는 두 사람.
흑학대신과 검술교관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천강이 다시 손짓하자, 검술교관은 입술을 짓씹다 이내 품에서 도로 물건을 빼냈다.
검술교관의 손 위에 놓여있던 상급 영약 여덟 개가 스르륵 날아가 천강의 손에 안착했다.
"자, 그럼 너도 어여 이리 내."
"그,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만년설삼이었나?"
"만년설삼?!"
옆에 있던 검술교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화경 상태에서 만년설삼 하나만 복용해도 평생 내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순수하게 내력 증진만으로 놓고 볼 때, 상급 영약 스무 개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게 바로 만년설삼이었다.
그런데 만년설삼엔 냉기에 대한 내성을 높여주는 효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새삼 흑학대신이 안 내놓고 버티는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안 내놓냐?"
끝끝내 버티는 노인.
하. 욕심이란 게 뭔지. 천강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영약 하나가 쏘아져 나가, 검술교관의 미간을 관통했다.
"어…? 대체 왜…?"
"내가 최하급 영약으로 바꿔치기한 걸 모를 줄 알았냐?"
"그런…."
검술교관의 품에서 영약 하나가 빠져나와 천강에게 날아왔다. 검술교관의 몸은 그대로 쓰러져 지하수로를 타고 하류로 흘러 내려갔다.
"자, 그럼 우리도 하던 실랑이 마저 해볼까?"
"드, 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꼴을 보니,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구만.
그러나 이미 늦었어. 자비는 한 번으로 충분. 베풀어주고픈 일말의 마음은 조금 전 싹 사라졌다.
그에 천강이 손을 들어 올리자, 흑학대신이 후다닥 품에 품던 만년설삼을 앞으로 내어놓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소교주님!"
"후우. 이게 그렇게 갖고 싶어?"
만년설삼을 빼앗아 좌우로 흔들자, 그의 눈동자가 그것을 따라 좌우로 흔들거렸다.
"예! 꼭 갖고 싶습니다!"
"…좋아. 그럼 이것과 맞바꿀만한 걸 들고 와봐."
"예?"
"너 암운곡 총책임자 오래 했잖아. 그 기간 동안 이래저래 해 처먹은 거 많이 있을 거 아냐? 아냐?"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어떻게야. 너 같이 욕심 많은 놈들의 행태는 안 봐도 뻔하지.
"가져올래, 말래?"
"가져오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천강은 가만히 물 밖으로 나와 암운곡 바닥에서 대기했다. 오늘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사백동굴로 보냈기에, 암운곡에는 휑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조금 있으니 품 안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타나는 녀석.
'이야…. 진짜 많네. 대충 영약 개수만 세어 봐도 사오십 개는 되어 보이는데?'
물론, 그 대부분이 하급이었지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장난해? 너 이거 갖기 싫어? 그냥 내가 이 자리서 먹을까? 응?"
"아, 아닙니다! 가져오겠습니다!"
"몽땅 다 털어와. 한 번만 더 간 보면…."
흑학대신이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는 노인. 암운곡 바닥은 그동안 그가 모아둔 물건들로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진짜 엔간히도 해 먹었구나.'
그때 이귀가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천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학대신을 멈춰 세웠다.
"잠깐. 지금 이거 한 창고에서 다 가져오는 거야?"
"아, 아뇨. 지금 그게 2개째고, 앞으로 3개 더 있습니다…."
"그럼 그냥 안내해. 직접 보고 결정할 테니까."
그렇게 모든 창고를 다 훑어본 천강.
"그럼 이렇게 하지. 네 모든 재물하고 이 만년설삼하고 맞교환. 어때?"
"그, 그런…."
"솔직히 싸게 해준 거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걸 교환하겠냐. 안 그래?"
흑학대신의 미간이 좁혀졌다.
확실히 소교주가 뭐가 아쉬워 자신과 교환을 하겠는가? 다른 재물 따위보다야 무림인이나 마인들에게는 영약이 최고인 것을.
"하겠습니다."
"좋아. 잘 생각했어. 그럼 바깥의 물건들 도로 창고에 원상태로 정리해두고 이만 가봐."
"저, 정말 보내주는 것입니까?"
"그럼. 난 약속을 지키는 주의라고."
흑학대신이 수차례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다시 물건을 창고로 들여놓았다.
"그럼 이제 그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어. 근데 잠깐. 창고에 진식 푸는 방법은 가르쳐주고 가야지?"
"예, 예."
창고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가르쳐주는 녀석. 마지막 창고까지 다 전달받은 천강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 그럼 잘 가고. 다음에 보면 인사는 꼭 하고."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잘 가!"
흑학대신이 허리를 숙인 뒤 후다닥 굴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바깥에 나가기가 무섭게 도로 들어와 천강에게 달려왔다.
"소, 소교주님."
"어, 왜?"
"저 좀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그게… 교주님과 그 그림자가…."
아, 이제야 나타난 건가? 이귀의 예상보다 조금 늦었네.
천강은 그를 진정시켰다.
"나로서는 그저 내 멀쩡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해명은 너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뭐 잘 되지 않겠냐? 음독하려던 소교주는 멀쩡하고, 무형지독은 사라져 없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 흑학대신의 얼굴에 근심이 사라졌다.
"대신 혹시 모르니 만년설삼은 내게 잠깐 맡겨두고 나가라. 혹여나 빼앗길지도 모르니."
"그럼 잠깐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라. 네가 내게 돌아오는 즉시 돌려줄 테니."
흑학대신이 천강에게 만년설삼을 내어주었다. 천강은 그걸 품에 간직하며 방긋 웃었다.
녀석은 한 차례 허리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