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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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9화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천운은 말꼬리를 달지 않고 대평장을 향해서 발을 떼었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가슴 속 답답함만 풀리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어쨌든 당장은 눈앞의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저들의 시선을 돌릴 테니 최대한 빨리 볼일을 보시오. 그럼 시작해 보죠.”
새벽의 봄바람이 흑월대원들의 등을 떠밀었다.
조금 차게 느껴지긴 해도 싱그러운 바람이었다. 이제 곧 그 바람에서 피 비린내가 풍길 것이었다.
‘옳고 그름은 하늘이 판단하겠지.’
* * *
새벽에 불어온 핏빛 폭풍은 순식간에 대평장을 휩쓸었다.
동쪽하늘이 여명으로 붉게 물들 즈음, 대지도 붉게 물들었다.
분노에 찬 고함과 악에 바친 악다구니는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바뀌었고, 귀청을 찢는 병장기 충돌음은 여명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흑월대는 드넓은 대평장을 동서남북으로 가르며 오갔다.
단 두 번의 종횡질주. 난데없는 난리에 뛰쳐나온 무림맹무사 중 칠팔십 명이 흑월대의 공격에 반격도 제대로 못해보고 피를 뿌렸다.
선두에 선 장천운은 처음부터 현월을 뽑아들고 살기를 일으켰다.
대호가 고양이 떼 속을 누비는 듯했다. 검기의 폭풍이 휘몰아친 곳에서는 여지없이 피가 튀었고, 목숨이 스러졌다.
장천운의 손속만 냉혹한 것이 아니었다. 흑월대원 누구도 살인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전쟁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 저들도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자신들도 살기 위해서 저들을 죽여야만 한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만이 승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법이다.
잠을 자다가 뛰쳐나온 무림맹 간부들은 상대에 대해서 파악조차 못했다.
대평장 동쪽의 별원 앞마당에 모인 그들은 상대를 먼저 파악하기 위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적은 몇 명이나 되오?”
“많지는 않은 것 같소이다!”
“본 파의 제자 말에 의하면 서른 명도 안 된다 하오.”
“아니, 그 숫자면 왜 잡지 못하는 거요?”
그 와중에도 별원의 담장 너머에선 고함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놈들이 그쪽으로 간다! 막아라!”
“다른 놈들이 빈틈을 노릴지도 모른다. 외부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무림맹무사들은 어떤 쪽의 장단에 맞춰야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무량수불, 어떤 자들인지 밝혀졌소이까?”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종남파 장로 정소도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순두 살인 그는 종남파의 자랑인 종남삼자 중 하나로 대평장 무림맹무사들의 수장이었다.
차분한 성격인 그는 종남에서 사십 년 동안 검에 매진했다. 그 결과 지난 오십 년 동안 아무도 익히지 못한 태을분광 칠식을 팔성 경지까지 익혔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마 현 장문인인 정구도장의 도력이 조금만 미진했어도 장문인은 그가 되었을 것이었다.
정소도장의 질문에,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중년무사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도장. 숫자는 이삼십 명 정도인데, 이미 당한 무사 숫자만 백 명이 넘습니다.”
그는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광의 셋째 동생인 황보길이었다.
“이삼십 명? 본 맹의 정예무사 백여 명이 그딴 자들에게 당했단 말인가?”
“그들만 왔을 리가 없습니다. 성동격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해서 바깥쪽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침입자는 소수다. 대평장을 공격하면서 그들만 왔을 리 없었다.
황보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정소도장 역시 그의 생각을 지지했다.
“잘했네. 놈들의 성동격서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게.”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장천운이 그러한 판단 착오를 노리고 무식한(?) 공격방법을 택했다는 걸.
장천운은 어차피 끝장을 보겠다고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치고 빠지면서 지금의 상황에서 최대한 피해만 주면 그로선 만족할 것이었다.
정소도장이 상대에게 농락당했다는 걸 깨달은 것은 황보길의 말을 들은 지 반각쯤 지났을 때였다.
무사 하나가 헐레벌떡 별원으로 들어왔다.
“장로께 아룁니다! 밖은 조용합니다. 안에 있는 놈들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뭐야? 적의 지원무사들이 없다고?”
“인근을 모두 살펴봤습니다만, 쥐새끼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소도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놈들에게 속았단 말인가?’
피해가 커지긴 했지만 아직도 늦은 것은 아니다.
“황보 시주, 놈들이 있는 곳으로 무력을 집중하라 하시오!”
“예, 장로!”
황보길이 다급한 걸음으로 별원을 나섰다.
“우리도 놈들 있는 곳으로 갑시다!”
버럭 소리친 정소도장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신형을 날렸다.
문등천은 무림맹무사들이 흑월대 쪽으로 몰려가는 걸 보고 대풍전으로 향했다.
대풍전은 대평장 장주인 왕두성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문등천은 대풍전 앞을 지키던 경비무사 여섯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리고 내전으로 뛰어들었다.
내전에는 왕두성을 호위하기 위한 일류고수가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 중 셋은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었다. 하북의 팽가를 대표하는 오호단문도였다.
나머지 둘은 등에 검을 매고 있었는데, 팽가 무사들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문등천이 강해졌다 해도 아직 그들 모두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문등천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들과 맞섰다.
한 사람을 베었을 때 그의 등에도 상처가 났고, 둘을 베었을 때는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다.
상처가 깊어질수록 그의 눈빛은 시퍼런 불길을 토해냈다. 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더욱 강해졌고, 초식의 변화 하나하나마다 살기가 흘러넘쳤다.
상대하던 자들은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온몸이 피로 젖은 놈의 눈에서 시퍼런 귀화가 넘실거렸다.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가 저럴까 싶었다.
문등천이 가슴에 상처가 난 대가로 세 번째 호위무사의 목을 베었을 때, 내전 안쪽에서 오십대로 보이는 중노인과 도인이 나타났다.
중노인이 바로 왕두성이었다.
눈을 치켜뜬 왕두성은 문등천을 알아보지 못하고 노성을 내질렀다.
“웬 놈이냐!”
문등천은 왕두성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왕두성! 문가승이란 이름을 아느냐!”
왕두성의 눈이 커졌다. 그가 어찌 그 이름을 모를까.
문가승은 자신의 의형제였으며, 사랑하는 여인을 뺏어간 연적이었고, 평생 자신을 패배감 속에서 살게 만든 숙적이었다.
“너는…… 설마…… 등천?”
“와하하하하! 그래도 내 이름을 잊진 않았구나!”
“네가 어떻게 여기에…….”
“의형제를 배신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사지를 자르고 머리를 밟아 부순 후 침을 뱉은 놈을 찾아왔다! 의형제의 부인을 능욕하고 처참하게 난자한 개만도 못한 놈을 찾아왔단 말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이놈! 그게 어디 백부에게 할 소리더냐?”
왕두성이 버럭 소리쳤다.
부릅뜬 눈, 파르르 떨리는 입술. 분노한 표정으로 다그치는 그는 집안의 아이를 야단치는 여느 어른과 다를 게 없었다.
“백부? 백부라고? 크크크크,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왕두성!”
“이놈! 네가 어찌 이 백부에게 그딴 헛소리를 하는 거냐? 도대체 어디에 있었기에 순한 놈이 그리도 달라진 거냐?”
“내가 누구 때문에 달라졌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바로 네놈! 내 부모님과 어린 하아를 찢어 죽인 네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도 혼을 팔 수 있는 사람이 나니라!”
내전에 있던 사람들은 문등천의 말을 믿지 않았다.
대평장의 장주인 왕두성은 덕망이 높았다. 흉작이 들 때면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나누어주어서 칭송이 높았다.
인근 백 리 이내에서 그는 생불이나 다름없었다.
무림맹이 대평장을 지원군의 거처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그런 왕두성을 천하의 흉악무도한 사람처럼 말하다니.
왕두성과 함께 나타난 오십대 도인이 노성을 내질렀다.
“정말 못된 놈이구나! 문가승이 마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져서 부인을 죽이고 자결했다 들었거늘, 그 아들이라는 놈도 아비나 다를 것 없이 마에 물들었구나! 빈도가 너의 목을 쳐서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마!”
“도장, 저 아이가 모르고 하는 소리니 용서해주시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의형제의 마지막 피붙이외다. 제발 목숨만은…….”
왕두성이 처연한 목소리로 도인을 향해 말했다. 절절한 그의 표정과 말투에 사람들은 문등천을 더러운 쓰레기 보듯 했다.
퉤!
호위무사 중 한 사람이 가래침을 뱉고 냉랭하게 비웃었다.
“저런 놈은 살려줘서는 안 됩니다. 본보기로 목을 잘라서 대문에 걸어야 합니다.”
왕두성은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아아아, 어쩌다 순한 네가 그리 되었단 말이냐. 저승에 가면 가승 아우를 무슨 낯으로 볼꼬?”
애절한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내전이 잠깐 동안 숙연해졌다.
그때 문등천이 미친 듯이 광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하! 왕두성! 너는 그날 일을 아무도 못 본줄 알겠지? 야반삼경에 아무도 없는 외떨어진 집에서 벌인 일이었으니까. 더구나 네놈의 수하들이 밖을 지키고 있었으니 당연히 아는 자가 없을 거라 생각했을 거다.”
“제발 그만해라, 등천아! 네가 그럴수록 무림맹의 영웅들이 더 분노한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네 놈은 악마처럼 그 짓을 하느라 미쳐서 내가 입을 틀어막은 채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장주.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놈 같소이다.”
“도장.”
“이미 호위무사가 셋이나 저놈에게 죽었소. 빈도는 장주께 죄를 짓더라도 저놈을 용서할 수 없으니 이해하시오.”
오십대 도인, 무당파의 장로인 청기도장이 노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나섰다.
그 순간, 문등천이 왕두성을 향해 몸을 날리며 찰나에 허공을 세 번 그었다.
“헛!”
왕두성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르륵 물러섰다.
대신 두 사람 사이로 청기도장이 끼어들면서 쌍장을 휘저었다.
쩌정!
문등천의 공격이 청기도장의 장력을 뚫지 못하고 튕겨났다. 무당파에서조차 정통한 자가 몇 없다는 태극면장이 청기도장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문등천은 의외의 방해자로 인해서 왕두성을 처단하지 못하자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되었다.
“당신은 비키시오!”
“무량수불. 흉악한 놈을 빈도가 어찌 그냥 놔둘 수 있겠느냐. 죽음으로써 죄를 묻겠다!”
노성을 내지른 청기도장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의 쌍장 장심에서 청광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때였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
뻥 뚫린 구멍 사이로 한 사람이 날아들고 있었다. 장천운이었다.
그는 문등천과 청기도장 사이로 내려서며 좌수를 뻗었다. 그의 좌수에서 뇌정무극수의 강맹한 장력이 쏟아졌다.
청기도장도 본능적으로 태극면장을 펼쳐서 뇌정무극수에 맞섰다.
콰광!
굉음에 내전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청기도장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더니, 쾅, 소리와 함께 등을 벽에 부딪치고 멈춰 섰다.
한쪽에 서 있던 호위무사 둘이 장천운의 좌우를 공격했다. 상단과 하단을 노리는 완벽에 가까운 합공이었다.
빙글, 몸을 한 바퀴 돌린 장천운이 그들을 향해 현월을 휘둘렀다.
쩡! 따당!
“크억!”
“켁!”
현월은 두 호위무사의 무기와 몸을 동시에 갈라버렸다.
청기도장과 호위무사 둘을 단숨에 처리한 장천운이 문등천을 향해 말했다.
“시간이 없소.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가지만 말해보시오.”
문등천이 왕두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놈의 왼쪽 가슴 옷자락을 찢어주십시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저놈의 가슴을 손톱으로 깊숙이 그었습니다. 그 바람에 유두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놈은 화가 나서 어머니를…… 크흑, 더욱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문등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천운이 움직였다.
안색이 창백해진 왕두성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내전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장천운의 빠름은 그가 피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왕두성 앞에 도착한 장천운이 좌수를 저었다. 왕두성은 사력을 다해서 대항했다.
장천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현월을 뻗었다. 십여 개의 환영을 일으키며 뻗어간 현월이 왕두성의 우수 팔꿈치 부분을 잘라버렸다.
“크헉!”
우두둑.
왕두성의 좌수 손목도 장천운이 팔목을 잡아서 꺾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