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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0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07화

107화. 꿍꿍이

 

 

암운곡 지하수로.

아이들이 훈련을 위해 모두 사백동굴로 빠져나간 시간, 은밀히 만남을 가지는 두 그림자가 존재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이가 어둠 속으로 막 들어온 이에게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설마하니 우리의 제안에 응할 줄은 몰랐네만."

"그쪽 제안이 워낙에 매력적이어야 말이지."

"들었소. 오랜 기간 그걸 탐내왔다고?"

"말해 무얼 하겠는가. 어서 그대들이 준비한 계획이나 말해보게."

그러자 상대가 그에게 물건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아주 작은 병이었다.

"이것은?"

"무형지독(無形之毒)이오."

"무형지독이면……?!"

"현경의 고수라도 그것 한 방울이면 죽음을 피하기 어렵지."

단 한 방울이면 절대고수조차도 저승으로 보낼 수 있는 극독 중의 극독.

그러나 무형지독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이 색도, 맛도, 향도, 그 어떤 특이점도 없는 평범한 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귀한 걸 어떻게……. 설마 전대 교주를 음독시킨 것도 이걸로?"

상대는 그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그의 손은 잘게 떨리었다.

"그럼 잘 해낼 것이라 믿고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잠깐."

"무엇이오?"

무형지독을 품에 갈무리하며 남자가 말했다.

"꼭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네."

"걱정 마시오. 모든 싸움이 끝난 이후, 일필일사의 신병이기는 그대의 것이니."

상대가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진다.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그럼 부디 좋은 결과를 내어주길 바라오."

 

***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초여름.

열목 폭포 주위 수풀 사이로 한 소년이 웅크리고 앉았다.

조금 있자 수풀에서 토끼 한 마리가 후다닥 튀어 나가고, 그 뒤를 소년이 맹렬히 뒤쫓는다.

파바밧-

그런데 소년의 행태가 좀 특이했다. 분명 행색은 사람인데 네 발로 뛰어다녔던 것.

잠시 냇가 옆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천진악은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선배. 아직 미친 거 아니지?"

"말 걸지 마라. 바쁘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야."

토끼 뒤를 쫓던 소년이 우뚝 멈춰 선다. 천강의 얼굴엔 홀가분한 표정이 올라왔다.

"좀 진전이 있긴 한가 보네?"

"어. 거의 끝이 보이네."

닷새 전. 교주와 협상을 해 신목의 과실을 받아온 천강은 엄청난 속도로 토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먹는 순간 머리가 탁 트이며 효율이 확 증가한 것이다.

심지어 걱정했던 환상과 환청은 백호의 혼 때문인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그저 몸이 차가워지는 이상증세가 있긴 했으나 그마저도 흑이끼를 섭취한 천강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으니…….

'지속시간이 너무 짧아.'

하나를 먹으면 채 일각(一刻)을 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들고 온 신목의 과실이 벌써 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심지어 신교에서 보관 중인 것의 9할을 탈탈 털어왔기 때문에, 꽤 커다란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토끼와 다른 하나. 딱 두 개 성공하겠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천강은 감사한 마음으로 사백동굴로 돌아갔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데 흑철마괴의 말이 이어졌다.

"식사하며 들어라. 사흘 후, 기경만회가 시작된다. 참가하고 싶은 이는 신청하도록."

"기경만회? 기경만회가 뭐야?"

진악의 질문에 연화가 대답했다.

"그냥 매년 맛난 걸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행사야."

"응?"

진악의 얼굴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늘 그렇듯 옆에 있던 무진이 연화 대신 제대로 된 답을 주었다.

"기경만회라고 여울나무와 우열을 가리는 행사야. 이긴 쪽은 다음 해에 예산이 올라가지. 지금 이 음식이나 숙소의 침대나, 다 작년에 우승한 덕택에 얻을 수 있는 거였어."

"아……."

대답을 들은 진악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고기를 입에 집어넣으며 천강이 고갯짓했다.

"진악, 너도 신청해라."

"그래도 돼?"

"4, 5년차를 제외하고 각 기수마다 1명씩 신청할 수 있어. 여울나무와 대련하는 것인 만큼, 아마 네가 신청하면 반드시 참가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선배들은?"

연화와 천강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말했다.

"당근 참여해야지!"

"무진이가 참여할 거야."

응? 다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붙는다. 천강은 회유를 시도했다.

"연화야. 이번엔 네가 양보해라."

"아, 뭐래. 나 나가서 맛난 거 먹어야 한다구! 탕후루!"

아, 그놈의 탕후루.

"무진이 청청 만나야지."

"혀, 형님. 전 괜찮습니다."

그러자 연화가 신이 나 방방 뛴다.

"봐봐. 무진이도 괜찮다잖아! 그리고 나도 청청 보고 싶다고오!"

"청청은 너보단 무진이를 더 보고 싶어 할걸?"

"왜애? 작년에 나랑 청청이랑 막상막하인 거 잊었어? 우리에겐 피만큼이나 뜨거운 우정과 경쟁심이 있다고!"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연화. 그때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조교 방중이었다.

"뭔 그런 일로 싸우고 그래? 한두 명 정도는 내가 데려갈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 말해."

"아, 그러고 보니 선배가 작년 수석 졸업자였지?"

"오오?"

작년에 천강 덕분에 상대의 중요 부위만을 집요하게 노려 승리를 거머쥔 방중.

전년도 수석 졸업자에게는 한두 명의 훈련생을 대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럼 무진이랑 연화 그렇게 둘이 참가하면 되겠다."

"응? 천강 넌 참가 안 하려고?"

"어. 난 지금 하고 있는 게 더 중요해서."

"아, 그 토끼 따라 하기? 그거 재밌어? 나도 해볼까?"

연화가 발을 올려 볼 옆을 긁는다. 하는 짓이…… 굉장히 바보 같다. 천강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날 볼 때 너희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아무튼 지금 천강은 기경만회에 놀러 다닐 게 아니라 훈련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딱 생사경(生死境)까지만 고생하고 나면 모든 게 끝이야. 후다닥 날 노리는 투파창귀와 그 세력들을 처리하고 새로운 삶을 제대로 즐겨보자고.'

투파창귀만 잡으면 그깟 기경만회, 허락 안 맡고 가면 그만이다.

"그럼 천강. 너 대신 내가 참여해도 될까?"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과거 쥐 굴에서 2번이었던 묵현이 서 있었다.

"그렇게 해."

"고맙다. 나중에 사례는 꼭 하겠다."

"난 이래서 네가 참 좋아."

그렇게 올해 기경만회에 천강은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

 

"자네 두 사람이 이번 기경만회에 책임자로 같이 가줘야 하겠네."

암운곡 총책임자 사무실.

흑학대신의 이야기를 들은 흑철마괴와 비격창마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비격창마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그래도 신입 교관 하나 정도는 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도 알다시피, 이백에 가까운 아이들을 통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걱정이 돼서 그런다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암운곡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솔할 지휘력이 부족한 그들에겐 아직 무리이긴 했다.

"백귀는 백발괴의를 돕느라 바쁘다 하니, 별수 없이 자네 둘로 결정되었네. 그러니 신경 좀 써주시게. 올해는 자네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고생 좀 하세."

"알겠습니다."

"그럼 둘 다 이만 돌아가도 좋네."

총책임자 사무실에서 나온 두 사람.

비격창마가 한숨을 내쉬며 흑철마괴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쩌다 보니 애들 뒷바라지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기경만회 기간 동안 잘 부탁하겠습니다, 흑철마괴."

"나 또한 잘 부탁하네."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좁은 복도를 걸어가며 비격창마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신입 교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뜻이지?"

"이렇게 말하면 조금 비약이 심할지 모르지만, 냄새가 나더군요. 간자의 냄새가."

흑철마괴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비격창마의 입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흑철마괴는 별말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칫. 여전히 입이 무거우시군요.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암운곡 돌아가는 낌새가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확실히…… 기류가 좀 이상하긴 하지."

"역시 저만 느끼는 건 아니었군요."

단순히 애들을 의욕 없이 가르치는 걸 짚어 말하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 말입니다. 왠지 이번에 흑철마괴와 제가 자리를 비우고 나면, 혼자 남는 소교주님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며 이번엔 비격창마가 멈춰 섰다. 의도치 않게 그보다 한발 앞에 있게 된 흑철마괴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흑철마괴께서 이번에 교주님께 이야기해서 대비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은 해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장신의 사내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굴 밖으로 사라졌다. 뒤에 남은 흑철마괴의 입가엔 미약한 미소가 떠올랐다.

'슬슬 검증을 끝내고 영입을 할 때도 되긴 했지.'

비격창마. 과거 교주가 중원을 떠돌던 시절, 그의 은덕을 입고 마교로 들어온 인물들 중 하나.

흑철마괴와 친위대들은 그런 그들을 오랜 기간 주시해왔다. 자신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 철저히 검증을 하고 또 하며.

'20년을 지켜봤으면 충분하겠지.'

굴을 빠져나간 흑철마괴가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보고를 올렸다.

"비격창마를 친위대로 전환해도 되겠다고 전해라."

그림자가 고개를 한 차례 숙이고는 사라졌다. 그런 흑철마괴의 얼굴엔 한 짐 내려놨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이로써 전력이 하나 느는군.'

비밀까지도 공유할 만한 인재를 발굴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성공만 한다면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마교에 들어온 지 20년 된 화경 고수. 그의 합류는 인력이 없어 허덕이는 교주의 세력에 작은 단비가 되어줄 것이다.

'그럼 일단 오래된 일거리 하나는 해결됐고, 문제는 신입이 제안한 부분인가.'

분명 비격창마의 말처럼 암운곡 내로 안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혼자만 느끼는 거라면 기우일지 모르나, 다른 이도 함께 느낀다면 필히 무언가 있는 법.

흑철마괴는 바로 천강을 불러냈다.

"천강, 무슨 생각이지?"

"뭐가 말입니까?"

"들었다. 네 일행 모두가 기경만회에 참가하는데 너만 빠지기로 했다고."

"아아. 별거 아닙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소년이 방긋 웃어 보였다.

"하던 훈련의 성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그래도 같이 가는 게 어떠냐? 기경만회로 나와 비격창마가 빠져나가고 나면, 암운곡엔 네 편이 하나도 없다."

이 정도 말하면 눈치 빠른 녀석이니 알아듣겠지.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흑철마괴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기경만회 기간엔 교주님도 널 신경 써주지 못한다. 이곳에 있다간 완전 고립될지도 모른다. 네가 위험에 처해도 우리가 손을 써주지 못한단 의미다."

그러나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며 웃는 소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천강입니다."

그제야 적들뿐만 아니라 요 소년 또한 엉큼하게 무언가를 꾸미고 있단 걸 깨달은 흑철마괴였다.

사실 암운곡 내로 이상한 기류가 도는 건 천강도 진작에 느끼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암운곡에 남은 것이었다.

친 교주 세력이 다 빠져나간 후, 어떻게 나오나 한번 확인해보기 위해서.

'저 멀리서 칼춤을 추고 있다고, 지척에 숨어있는 적을 무시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한번 청소를 할 때가 되긴 했다. 주변 정리정돈을.

"무진이 잘 부탁합니다. 밤마다 점혈 꼭 해주셔야 합니다. 시합 직후에도요."

"알겠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암살자들 주의해 주십시오. 작년에 무진이와 저 납치당할 뻔했었습니다."

흑철마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러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사건을 작년에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위기와 문제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소교주로 의심받아 숱한 사선을 넘나든 소년. 아마 지금 이 여유도 그러한 까닭에 부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럼 기경만회 후에 뵙겠습니다."

"그래. 무사히 다시 만난다면 내 차라도 한잔 대접하마."

"차 말고 다른 건 안 됩니까?"

"용정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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