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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0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03화

103화. 심안(心眼)

 

 

처음에는 그저 작은 장난에 불과했다.

마냥 쳐다보기만 하기는 뭐해, 지루해서 시작한 일종의 유희였다.

'저 각도면 제 성격상 주먹을 휘두르겠지.'

'저런. 저거 볼 것도 없이 자빠지겠는데?'

'쯧쯧. 예상대로구만.'

그게 한 번, 두 번, 세 번.

들어맞기 시작하자 재미가 붙었고,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예측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을 얻은 천강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 흠흠.

- 이보게?

- 저기, 소년? 지금 정신 상태 괜찮은 거 맞죠?

'응, 나 멀쩡해. 걱정 마.'

- 그런데…… 왜 그러고 있나요?

'조용히 해 봐. 나 지금 집중하느라 바쁘니까.'

연화가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한다. 천강도 갸웃한다.

연화가 웃는다. 천강도 따라 웃는다.

연화가 하품을 하면, 천강도.

"하아암."

연화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하는 천강의 행태에, 신병이기들은 자신들의 주인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시작해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소녀의 모든 걸 따라 하는 천강.

우연찮게 그걸 본 진악과 화정마녀는 천강을 미친놈 보듯 했다.

"너…… 괜찮냐?"

"어이, 선배. 미친 거 아니지?"

그러거나 어쩌거나 끝까지 따라하는 천강.

그런데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연화가 코앞에서 반만 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열목 폭포 근처로 오면 당장에 쫓아낸다 호언하던 화정마녀는 미친놈을 상대하는 게 싫어 놔두었고, 덕분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하게 된 천강이었다.

연화가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천강도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야!"

"야!"

아무리 연화가 둔해도 이 정도면 눈치챌 수밖에 없는 상황. 천강은 한 소리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너 나 지금 놀리는 거야?!"

"너 나 지금 놀리는 거야?!"

"이이익!"

아, 내 정신 좀 봐.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천강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연화를 달랬다.

"그런 거 아냐. 지금 내가 다음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이 왔는데, 그중 하나가 타인을 이해하는 거거든. 그래서 잠시 너 따라 하는 중이었어."

"다음 경지? 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기분 나빠."

"미안. 나중에 맛난 거 많이 사줄게."

"……약속이다?"

왠지 이 순간, 천강은 이 꼬맹이에 대해 한 단계 더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천강의 연화 따라하기.

현경까지 도달한 천강에게 고작 꼬맹이 행동을 따라 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천강은 연화의 모든 걸 따라 했다.

훈련이 끝난 뒤에 잠을 자러 숙소에 들어갈 때도.

"잘 자, 천강!"

"잘 자, 천강!"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에도.

"야! 너 저만치 떨어져서 싸!"

"야! 너 저만치 떨어져서 싸!"

천강은 연화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따라했다. 마치 분신이라도 되듯 완벽하게.

그러나 종종 난관은 있었다.

"아, 잘 먹었다!"

"아…… 잘 먹었다……."

천강은 배를 부여잡고는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저 조그마한 배에 그 많은 고기가 다 들어간 거지……?'

아니, 어떻게 내 배에도 그게 다 들어온 거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

진짜 밥 먹다 배 터질 뻔했다.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에서만큼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 천강이었다.

그러나 악착같이 그마저도 뛰어넘고. 그러기를 수일. 기어이 암운곡 애들조차 천강의 상태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 천강. 너 괜찮냐?"

"응? 소운 선배 안녕!"

"응? 소운 선배 안녕!"

"……."

천강과 연화가 지나간다.

두 사람의 인사에 소운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주변 아이들은 수군거린다.

"천강, 너무 열심히 수련하더니 결국 미친 것 같은데……?"

"그럴지도. 그 왜 주화입마 중에는 별의별 증상이 다 있다잖아. 저것도 그중 하나일지 몰라."

"저런……. 어떡해."

그런 모두의 걱정 속에서도 천강은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실천했다.

성과는 더뎠지만, 분명히 천강은 요 꼬맹이를 점점 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화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독목신공에 관심을 가진 지 약 두 달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음?!"

갑자기 연화라는 꼬마 애의 행동과 심리가 전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얘가 지금쯤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사백동굴을 벗어나 열목 폭포를 향하는 동안, 어떤 길로 어느 땅을 밟으며 나아갈지까지.

심지어…….

"이야아앗!"

나무 위 새를 보고는 장난스레 권풍을 날리는 것까지도.

화아악-

품속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을 꺼내 허공에 놓아주자, 천해지경이 펼쳐지며 누런 종이 위에 빠르게 검은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만 한 싹에서 생겨나고, 9층 높이 누대도 한 줌의 흙을 쌓는 데서 기인하리. 그런즉 천 리의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법이라.』

"아……."

『나의 후학이여. 자신 외에 다른 생물을 이해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이것이 다른 생물을 이해한 것……!

그저 연화를 통해 독목신공을 배울 생각이었다.

그 무공이 좋아 보여, 그것을 익히면 왠지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연화의 독목신공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다, 예기치 못하게 생사경(生死境)의 단서를 얻게 된 천강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상이 뭔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천강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이파리 하나를 낚아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 바라본다. 이파리의 결과 그 흐름이 눈에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변화에 흥분한 천강은 그 궁금증을 안고 곧바로 천산의 보고로 달려갔다.

업무를 보던 노인이 천강의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끌끌. 심안(心眼)을 얻었구나."

"심안이요?"

"그래. 사리를 분별하고 진리를 찾을 수 있는 눈이지."

"저어…… 제가 똑똑한 편은 아니어서 그런데, 좀 쉽게 이야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외면이 아닌 내면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이루고 형성하는 힘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것이지."

노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했다.

나 이외의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현경, 나 이외의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생사경이다.

이 생사경에서 자연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필히 상대의 이해를 넘어 그 기운의 흐름까지 느끼고 엿볼 수 있어야 하는데, 심안이 바로 그것이란 의미였다.

"내가 아닌 상대의 존재 자체를 꿰뚫어 보는 것. 자연경(自然境)에 도달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기본기라 할 수 있다."

"그럼 전 자연경인가요?"

천강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자연경(自然境).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꿈의 경지.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며, 언제라도 우화등선해 선계로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을 일컫는다.

생사경만 목전에 두어도 기쁨의 함성을 밤새 질러댈진대, 그 너머 자연경이라니?

'나 당장 내일 불려가는 거 아냐?'

그러나 그건 안타깝게도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노인이 정신 차리라며 천강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예끼, 이눔아. 고작 볼 줄 알게 됐다고 해서 신선이 되면, 네가 그 기술을 베껴온 그 자매들과 아비는 당장 오늘 우화등선하겠구나!"

"윽. 알고 계셨습니까?"

"네놈이 워낙 마교에서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지 않느냐."

하긴. 머리를 긁적이며 천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새로운 기술 하나 터득해 눈 좀 열렸다 해서 신선이 되다니. 어불성설이다.

'요새로 치면, 신선환 먹고 환골탈태는 어찌어찌 했는데 깨달음이 미숙해 화경엔 도달 못한 것과 같은 거지.'

초아의 말에 따르면 그런 경우가 꽤 된다고 들었다. 뭐…… 한두 달 안에 자연적으로 깨닫고 도달하게 된다고도 했지만.

"결국 전 반쪽짜리라 이 말이군요."

"반쪽짜리랄 게 있을 수 있겠느냐. 그냥 아닌 것이니라."

"아, 네."

아무튼 노인의 설명을 가만 들어보면, 천강이 얻게 된 심안(心眼)은 연화가 사용하는 독목신공보다 한 단계 위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독목신공이 눈을 내기로 특수하게 강화해서 동체시력을 향상하고 눈앞에 막을 여러 겹 만듦으로써 상대의 내기 흐름을 투시하듯 자세히 보는 기술이었다면, 심안은 그런 귀찮은 짓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그 모든 게 보이는 것이었다.

다만, 심안을 얻었다 해서 바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해 피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독목신공의 핵심은 보고 피하는 것.

연화나 화정마녀처럼 움직이고 싶다면, 상대의 내기를 들여다보고 피하는 싸움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아무튼 운이 좋았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연화라는 인물의 단순한 성격과 천강의 호기심, 집요함, 욕망, 집중력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물.

먹는 것 외엔 큰 관심이 없는 둔한 연화라 다행이었지, 만약 목표물이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또한 천강도 그 짓을 다시 하라고 하면 성공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몰입했었다.

그렇게 얻은 보상, 심안(心眼).

소년은 마음 가득 뿌듯함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천강은 천해지경을 펼쳐 들었다. 그리곤 그것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생사경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천해지경 왈.

『자신 외에 99가지 다른 생물을 이해하라. 그럼 자연스레 생사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 99가지.'

천강의 얼굴에 도전적인 표정이 올라왔다.

 

***

 

달이 중천에 머문 늦은 밤.

어둠이 내리깔리고 그 위를 은은한 불빛들이 밝히는 어느 공간에서, 스스슷- 은밀한 움직임이 이루어졌다.

야음을 틈타 누군가 담을 넘어 거대한 처소에 들어섰다.

그 그림자는 주위를 살피더니, 한 인물에게 다가가 그 앞에 조용히 부복했다.

남자는 그에게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 제지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폐하. 자시(子時)입니다. 너무 늦었으니 이만 침소에 드시는 게 어떨는지요."

"어느새 시간이 이리되었는가? 알겠네. 내 그리하도록 하지."

황제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한 그는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으슥한 그늘로 들어서자, 아까 나타났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태감(太監).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 뭔가?"

"흑살마신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흑살마신이면……."

"50년 전 그놈 말입니다. 태감께서 20년간 준비한 대의를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만든 건방진 마인 녀석 말입니다."

하. 그 뒤로 조용하기에 마교의 떨거지들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더니, 놈이 멀쩡히 살아있다?

"위치를 파악하는 대로 보고를 올리라고 전해라."

"명."

어둠 속으로 두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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