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8화
대운은 그제야 말을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자신 혼자만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 감정대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속으로 불호를 계속 외어서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말했다.
“부상자들을 데려가도 되겠소?”
“좋을 대로.”
장천운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한마디만 던지고 몸을 돌렸다.
“뭐하는 거요? 우리도 부상자 챙겨서 그만 갑시다. 계속 싸우고 싶으면 남든가.”
* * *
장천운은 기껏해야 백 장 이동한 후 멈췄다.
수풀이 우거진 평평한 곳, 근처에 개울도 있었다.
“쉬면서 부상자부터 손보시오.”
사망자는 없었다. 특별교육을 받고 싶지 않은 흑월대원들이 동료의 안전을 자신의 안전처럼 생각하고 싸운 덕분이었다.
그러나 부상자가 열 명 가까이 되었다. 강마우와 단사유, 한명후는 제법 깊은 상처를 입었고, 철상문과 단중낙, 문등천, 이공진, 유각도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 외에도 서너 명이 자잘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래도 어쨌든 무림맹무사들이 절반 이상 시신으로 변한 걸 생각하면 대승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대주? 부상자가 많은데. 그래도 철기보에 갈 거라면 부상자는 돌려보내는 게 어떻겠소?”
사공명신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장천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뭐 부상자까지 전쟁터로 데려갈 만큼 독한 사람인 줄 아쇼?”
독하지!
대주가 안 독하면, 세상에 독한 놈 아무도 없을 걸?
대원 대부분이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장천운이 쓱 둘러보자 재빨리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본래 철기보에 머물고 있는 무림맹에 타격을 주는 것이 목표였소. 그런데 사정이야 어쨌든 무림맹에 큰 타격을 준 셈이 되었소.”
오늘 싸운 무림맹무사들의 숫자는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모두 일류 수준 이상의 고수들이었고, 절정고수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그 중 반이 죽고 나머지도 반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무림맹의 대표적인 고수에 속한 현오자와 대운도 심한 부상을 입었고.
아마 그들이 돌아가면 철기보의 무림맹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철기보에 머물고 잇는 무림맹 전력 중 삼 할은 무너진 셈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꿩 대신 닭이라고, 이창의 철기보가 아니라 서평에 있는 자들을 칠까 하오.”
“씨발…….”
부상이 심한 사람은 정양으로 돌려보냈다.
강마우와 단사유, 한명후, 이공진, 유각, 철상문, 단중낙까지 총 일곱 명이 돌아갔다. 문등천도 어깨의 상처가 제법 심했는데, 아무리 돌아가라 해도 괜찮다며 버티고 남았다.
다른 사람은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고 천으로 싸맨 것만으로도 움직임에 지장이 없었다.
흑월대원들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했다.
막소광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맨 뒤에서 따라갔다.
‘이놈의 방정맞은 입 때문에…….’
장천운의 명령은 넋 놓고 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망치로 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상자가 많아서 그냥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 서평을 공격하겠다고?
미쳤지!
그래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 나왔다.
황급히 입을 닫은 그는 재빨리 눈알을 굴려서 지원을 요청했다.
아무도 자신을 위해서 나서주지 않았다.
심지어 슬그머니 눈을 돌리는 놈도 있었다. 목진화도 그랬고, 탁도광도 그랬다.
수은귀 놈은 고소하다는 듯 웃기까지 했다.
나쁜 새끼들!
‘지들도 속으로 욕했을 거면서…….’
그런데 장천운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말하는 예절에 대해서도 특별교육을 해야 할 것 같군.”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나쁜 새끼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아마 눈에서 강기를 뿜어낼 수 있었다면 자신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었다.
‘흥, 나 혼자 당할 것 같아? 네놈들도 함께 당해야지.’
그나마 혼자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동료라면 그래야하지 않겠어?
막소광이 히죽 웃으며 앞에서 걷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문등천이 말했다.
“저, 대주.”
평범한 얼굴의 그는 평소에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말수가 없다는 단중낙보다 오히려 더 조용했다. 장천운조차도 처음 그를 데려올 때 외에는 말을 나눈 적이 두어 번밖에 안 되었다.
아마 그와 가장 많은 말을 나눈 사람은 홍산산일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홍산산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저렇게 순한 사람이 어떻게 칼만 잡으면 도살자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해보십시오.”
“서평은 제가 잘 압니다.”
“그래요?”
“열 살 때까지 서평에서 살았습니다.”
“무림맹 지원대가 있다는 대평장도 잘 아시오?”
순간적으로 문등천의 눈에서 시퍼런 불똥이 튀었다.
“압니다. 서평의 대지주지요. 장주인 왕두성은 하북 팽가와 막역한 사이고요.”
“그를 잘 아나보군요.”
문등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랗게 얼어붙은 눈빛. 악다문 입술이 한겨울 문풍지처럼 떨렸다.
그러고 보니 입술에 상처가 많았다. 잘근잘근 씹어대면 저런 상처가 남을까 싶었다.
“그럼 서평에 가거든 문 형이 앞장서시오.”
“알겠습니다.”
장천운은 문등천의 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갈기갈기 찢겨져서 얼어붙은 심장에 처절한 한을 간직한 자만이 그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
어떤 한이 가슴에 맺혀서 저 순박한 사람이 그런 눈빛을 품고 있는 걸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 한을 풀게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 *
제갈승조는 딱딱한 각질로 뒤덮인 것처럼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현오자와 대운이 부상을 당해서 돌아왔다. 그들과 함께 간 무림맹의 정예고수 중 절반은 시신으로 변했고, 나머지도 대부분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숫자를 떠나서 엄청난 피해였다.
더구나 그 와중에 나온 이름 하나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흑월대 장천운?”
“그렇소, 군사.”
현오자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운도 나중에서야 그 이름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에게 지독한 패배감을 선사한 자가 장천운이라니.
그도 장천운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구천성의 최고 기재라는 구천삼공자 위에 무적호위가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는 판이었다.
사마경의 남자라는 말도 들렸고, 심지어 공손백조차 그를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흑도의 건달이었다가 대 구천성의 최고 호위무사가 된 청년.
그는 이미 강호무림의 젊은이들에게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갈승조도 그에 대한 소문을 귀가 따갑게 들은 터였다.
“어이가 없군. 사마경의 최측근인 그가 각산 근처에 있었다니.”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가로막은 것은 아닌 것 같았소.”
당연히 그랬을 것이었다. 이리저리 따져 봐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미리 움직였다는 뜻.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그곳에 나타났을까?
문득 어떤 생각이 든 제갈승조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만약 그가 우리 쪽을 치기 위해서 움직였다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삼십여 명으로 철기보를 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제갈승조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이라면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뭔가 목적을 갖고 움직인 것은 분명해.’
구천성에 잠복해 있는 자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정해진 움직이라는 뜻.
누굴, 무엇을 노리는 걸까?
예상치 못했던 움직임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일단 휘하 무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오.”
“예, 군사.”
“지금 즉시 일대의 순찰을 강화하고, 수상한 움직임이 발견되면 즉시 보고해라.”
* * *
인시 무렵, 제갈승조는 순찰대의 긴급 보고를 받고 눈을 치켜떴다.
“영풍에서 수상한 무리들이 움직이는 걸 본 자가 있다고?”
영풍진은 이창에서 북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그렇습니다, 군사. 이른 새벽 이창으로 오던 자가 이삼십 명 정도는 되는 인원이 북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걸 봤다고 합니다.”
북쪽?
제갈승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럼…… 서평으로 갔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철기보에는 근 천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운집해 있다.
반면 서평에 있는 지원군은 오백 정도. 개인적인 무위도 철기보에 있는 무사들만 못하다.
현오자와 대운이 이끈 정예무사대를 무너뜨린 자들이라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루하의 본진은 아침에나 출발할 테니 서평의 지원군을 도울 수도 없다.
놈들이 먼저 서평을 치고, 구천성의 주력이 철기보를 공격한다면?
“즉시 추격대를 소집해서 놈들의 뒤를 쫓아야하지 않겠습니다, 군사?”
제갈승조의 측근인 정오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제갈승조라 해서 어찌 그러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그들을 잡기 위해서 상당한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설마 그것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실이라면 적은 철저한 계산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힘과 머리를 함께 지닌 적. 그러면서도 소수의 인원.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다.
“정오. 즉시 정양과 각산에 사람을 더 보내서 감시를 강화해라. 나는 철승원으로 가서 장로들을 깨울 테니까. 서둘러!”
제갈승조는 무림맹의 장로들을 설득해서 추살조를 꾸렸다.
장로 넷이 포함된 이백여 명의 추살대는 현오자와 대운의 공격대에 뒤지지 않는 전력이다.
거기다 한 사람이 더 참여함으로써 장천운이란 자를 잡을 고수도 확보되었다.
경산일군(景山一君) 소정경.
정사 구분이 없는 오왕과 달리, 칠군(七君)은 오직 정파에 속한 고수들만을 칭했다.
소정경은 바로 그 칠군에 속한 고수로 지난 세월 떨친 명성이 오왕에 뒤지지 않았다.
어젯밤 그가 왔다는 걸 안 제갈승조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대운에게 들은 말을 넌지시 던졌는데, 그가 말했다.
“교왕과 비등하게 싸운 청년이 있다고? 어떤 놈인지 보고 싶군. 나도 함께 가겠네.”
그렇게 급히 구성된 추살대는 인시 정 무렵에 철기보를 나섰다.
장천운과 흑월대가 대평장에서 이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을 지나갈 무렵이었다.
89장: 진실의 흔적
동쪽 지평선 위가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저 멀리 대평장이 보였다.
거대한 장원의 담장을 따라서 붉게 타오르는 화톳불 수십 개가 사슬처럼 이어져 있었다.
평소에 비하면 몇 배나 많은 숫자였다.
“공격 시간은 일각. 그 안에 최대한 피해를 주고 물러서시오.”
대평장을 바라보며 오연히 서 있던 장천운이 말했다.
흑월대원들의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났다.
문등천에게 대평장의 건물배치에 대해서 들은 후였다. 공격할 위치와 이동경로에 대해서도 숙지했다.
장천운은 간략하게 계획을 말하고 문등천을 바라보았다.
“바라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시오.”
문등천이 새파란 눈빛으로 말했다.
“왕두성에 대해서는 모든 걸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설령 제가 죽더라도.”
장천운은 하나의 조건을 걸고 문등천의 청을 흔쾌하게 허락했다.
“알았소. 그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지요. 단, 죽지는 마시오. 그럼 다른 사람들이 특별교육을 받아야할지 모르니까.”
문등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진화가 툭 던지듯 한마디 했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 무조건 살아, 무조건.”